2016. 7. 1.

[사랑실화] 싱글녀 귀여운 할머니로 살기






[사랑실화] 싱글녀   귀여운 할머니로 살기  




73세 싱글녀? 내가 만날 분이다. 요즘 많은 어르신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돌아
오시긴? 하지만 한 번의 결혼도 이혼도 하지 않으신 순수 싱글 어르신과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내 주변의 싱글녀들을 떠올려 보았다.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고르느라 노느라 혼기를 놓친 내 주변의 자유롭고 여유롭고 야무지고 또 생활의 때
가 묻지 않아 해맑기도 하고 철없는 싱글녀들! 사실 그들과 끈끈한 정을 이어가는 나
로서 싱글녀에 대한 어떤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73세 싱글녀라고
하니 어쩐지 이기적일 것 같고 까칠할 것 같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화기애애한 소통
의 시간이 될지 살짝 걱정이 된다. 호기심 반 부담감 반이다.

 

주황색 원피스의 그녀가 나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기다리신다. 옆자리에는 챙이 넓은
 모자와 화려한 장식의 가방이 놓여있다. 화려한 느낌을 넘어 사치스러움과 함께 까칠
함이 지나간다. 외모로만 보면 전직 모델? 누가 감히 그녀를 ‘’할머니‘라고 부를 수 있
을까?  

하지만 내 추측과 달리 또 드러나는 외모와 달리 그녀는 사치스럽지도 까칠하지도 않
았다. 싱글녀가 가지는 철없음도 자기중심적 생각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
이 그렇게 보인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는 쿨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숙제라도 하듯 73년 전 태어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2남 6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 하지만 여느 집안처럼 막내라고
 해서 부모님과 언니 오빠의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호강을 누리지는 못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한국전쟁이라는 암울한 시대적 상황으로 가난함은 당연했지만 몸이
약한 어머님 때문에 가족들이 흩어져 살아야 했고 그런 마당에 살뜰한 보살핌은 기
대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녀의 바람 부는 어린 시절이 나에게도 전해 오는 듯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모여 살게 된 그녀의 가족은 어머님과 아버님이 서로 화합하
고 형제 자매가 아끼는 화목한 가정이었다고 그녀는 회상하고 있었다. 사실 이것은 백
프로 믿을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모진 세파를 견디어 온 어르신들의 과거미화작용의 효
과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어느 때 제일 행복했냐고 물었다. 그녀는 음악을 듣고 노래를 할 때 제일 행복한 마음이
 된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칠 만큼 신식인 어머니덕분에 음악적 분위기에서 살
았던 덕분에 음악적 재능도 빨리 발견할 수 있었고 그래서 교회 성가대는 물론 프로로
활동할 기회도 여러번 있었다고 한다.



“난 어릴 적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예전 TBC
 방송국 있었을 때 노래하는 어린이 프로 MC에 뽑히기도 했어요. 또 1981년에는 LA위문
공연단에 참가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TBC가 KBS에 통합되면서 무산되고 말
았어요. 옛날에는 연예인을 ‘딴따라’로 비하하는 사회분위기가 있었거든요. 가족들의
반대 때문에 그 길을 가지 못했지요. 그래도 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합창단으로 봉사할 수
 있어서 감사하죠.”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부럽다. 물론 본인의 노력이 있어야겠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태어
날 몸에 장착해 주신 악기가 아닌가? 결혼하고 싶었던 남자가 있었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 그녀는 웃으며 당연히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에서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듯 지나쳐버렸다.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다. 장담할 수 없지만 사랑의 호르몬
으로 가슴이 펄펄 끓고 터질 것 같은 두근거림과 설렘이 다 지나버린 지금 그녀에게 사
랑은 다시 돌이킬 만한 것이 아닌가 보다!

 

오히려 그녀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이성과의 사랑보다는 자신의 병약한 몸
을 고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 공동체에 심취하
였고 거기서 병이 낫는 은혜를 경험했다고 한다.

 

“나를 낫게 하신 것은 어머니의 기도였어요. 제 어머니는 93세 치매로 돌아 가셨어요. 그
때 어머님을 정말 잘 모셨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 후회가 되요.”

 

너무 겸손한 말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치매에 걸리신 어머니를 꼬박 이년이나 극진히 돌
본 효녀이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가 있었냐는 내 말에 그녀는 대답한다.

 

“ 내가 혼자 있으니 어머니는 내가 모시는 게 당연하죠. 다만 일하면서 어머니를 돌보는
것이 힘들었지요.”

 

부잣집 막내딸로 손에 물도 안 묻히며 살았을 것 같은 그녀의 이미지와는 완전 다르다.
그러면 일하면서 치매 어머님을 돌보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냐고 묻자 그녀는 아니라
고 한다. 어머님을 간병할 때는 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의지하는 어머니가 계셔서 나
름 괜찮았다고 한다. 문제는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경제적, 정신적으로 홀로서기가 가
장 힘들었다고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 정말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어릴 때는 조그만 회사에도 다녔고 그 이
후로는 자영업을 했어요. 처음에는 동부화재 자동차 보험을 팔았어요. 사회성 부족으
로 제대로 영업도 못했지만 친구들이나 교회 성도들이 많이 도와주어서 먹고 살 수는
 있었어요.

혹시 다방이라고 알아요? 지금의 커피숍인데 그것도 차렸다가 접었어요. 조그맣게 스
탠드바도 한 적이 있는데 돈은 벌지 못했어도 재미는 있었지요. 내가 마담이고 연주
자이고 가수였으니까. 하하 내가 피아노도 치며 노래도 부르고 그 때 청중은 주로 가
난한 연극인이나 예술하는 사람들이었지요. 결국 재미는 있었지만 유지할 수가 없어
서 그것도 접었어요. 다단계도 했고 어쩌다 미용실도 맡았다가 골탕 먹었죠. 저는 돈
하고는 정말 인연이 없어요.”

 

그녀는 지금 자신이 기초수급자라고 한다. 정말? 처음에는 화려함에서 소탈함으로 그
리고 다시 가난함의 대명사인 기초수급자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그녀
의 화려한 원피스는 올해로 15년 된 것이고 앞으로도 수년간은 유일한 외출복일 것이
라고 한다. 자신의 커피와 함께 나온 과자도 휴지도 설탕도 소중히 챙기시는 알뜰녀이다.

 

“나는 이 세상에 부러운 것이 별로 없어요. 물건에 대한 욕심도 없고 식탐도 없어요. 가
족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나도 우리 햇님이 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 괜찮아요.

햇님이는 강아지예요. 14살! 그 애도 할머니인 셈이죠. 그 애는 내게 말을 걸고 즐거
움을 주고 웃게 하는 친구이고 남편이고 자식 같은 존재예요. 내가 만약 여유가 있다
면 큰 마당을 가진 집에다 유기견들 전부 키우고 싶어요. 그 애들 모두 소중한 생명이
거든요.”

 
그녀는 늘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산다. 첫째는 생활비 걱정이 없단다. 국가가 자
신을 먹여 살려주기 때문이란다. (그래 맞다. 기초수급자라니까.) 더구나 지난해에는
 심장병 수술도 무료로 해주었다며 ‘대한민국 좋은 나라’를 외치시는 모습이 해맑기만
 하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내 마음도 환해진다. 둘째는 주거비 걱정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다세대 주택 원룸에 전세를 살고 있는데 주인이 세를 올려 받지 않는 사람
이라서 그렇단다. 아침 7시면 이웃인 주인과 모닝티를 마시며 친교하는 것이 빠지지
 않는 하루 일과 중의 하나라고 하신다. (세속적 시각으로 보면 이것은 일종의 비즈니스?)

 

그녀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특별한 일이 없을 것 같다고 하신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
하고 사는 것이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 만족스러워서 감사한 것이 아니고?)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그녀는 이웃과 나누고 웃으며 감사하며 지낼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에 그녀는 갑자기 닥칠 일?을 생각해서 생활비에서 10만원을 저축
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를 멀다하고 물가가 인상되는 요즘에 일인에게 지급되는 기
초수급비가 얼마나 된다고 그 중의 25%를 어떻게 모으실 수가 있을까?

 

“나는 물도 불도 뭐든지 아껴요. 나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것을 쓰려고 노력해요.
습관이 되어서 하나도 불편하지 않아요. 다만 햇님이가 나이가 많아서 그게 걱정
이라면 걱정이예요. 헤어지게 될지도 모르죠...”

 

사랑하는 존재와 이별을 말하는 그녀는 밝다. 그 또한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이라도
 한 듯이 말이다. 이제까지 살아온 자신을 한마디로 표현해보라는 나의 주문에
서슴없이 자신은 긍정주의자라고 한다.

 

긍정은 감사를 낳고 감사는 만족을 준다. 그것이 그녀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멋스
럽게 모자를 쓰고 환한 웃음으로 이별을 고하는 그녀가 다시 화려하고 귀품있는
여성으로 다시 다가온다.
2013/09/25 21:04

-출처:  http://blog.naver.com/jane017/50180079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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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내용을 줄였습니다. 싱글로 사시면서도 나름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사시는 모습이 좋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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