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15.

[성공예화] 대가를 지불할 준비







[성공예화] 대가를 지불할 준비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그린스 포인트 쇼핑 센터에서 내가 아내 마리
안느와 함께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날마다 한 베트남인이 우리에게 찹쌀 도너츠를 팔러 왔다.
그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지만 언제나 미소 지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손짓과 미소를 통해 우리는 서로를 알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레 반 부였
다.

레 반 부는 낮엔 제과점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아내와 함께 회화테이프를
들으며 영어를 배웠다. 나중에 나는 그들 부부가 제과점 뒷방에서 톱밥이
가득 든 자루들을 바닥에 깔아놓고 잠을 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베트남에 살 때 반 부 가문은 동남아시아에서 손꼽힐 정도의 부자였다.
그들은 북부 베트남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규모 공장들과 부동산도 갖고 있었 다. 그러나 부친이 월맹군의
손에 잔인하게 살해된 다음에는 레 반 부는 모친과 함께 남부 베트 남으로
이주해서 학교를 다녔으며, 마침내 변호사가 되었다.

부친과 마찬가지로 레 반 부 역시 많은 재산을 모았다. 그는 남부 베트남에
미국인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걸 보고는 그들의 위한 주택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그는 베트남에서 가 장 성공적인 건축가가 되었다.

그러나 레 반 부는 북부 지역을 여행하던 도중에 월맹군에게 체포되어 3년
이라는 긴 기간 동안 감옥 생활을 했다. 그 후 그는 다섯 명의 군인을 죽이
고 탈출해 남부 베트남으로 왔으나 그곳 에서 다시 체포되었다. 이번에는
월남 정부가 그를 월맹군의 첩자로 간주했던 것이다.

수감 생활을 마치고 다시 사회로 나온 레 반 부는 어업 회사를 시작했다. 몇
년 뒤에 그는 베 트남에서 가장 큰 통조림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미군과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철수한다는 소식을 들은 레 반 부는 인생을 바
꾸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는 숨겨 갖고 있던 금을 꺼내 작은 어선에 싣고 아
내와 함께 항구에 정박해 있는 미국 함정으로 다가갔다. 그는 자기의 전재산
을 내주고 필리핀까지 안전하게 수송해 준다는 약속을 받 아 냈다.

필리핀에 도착한 두 사람은 곧바로 난민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필리핀 대통령과 만나는 행운을 얻은 레 반 부는 대통령을 설득해 어선 한
척을 얻었다. 그는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2년 뒤 필리핀을 떠나 미국으로 갈
때까지 레 반 부는 필리핀 전역에서 성공적인 수산 공장을 건설했다.

미국으로 간 것은 그것이 그의 궁극적인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으로 가던 도중에 레 반 부는 아무것도 없이 밑바닥부터 다시 시
작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실의와 좌절에 빠졌다. 그가 모든 걸 포기하고 갑판
에서 바다로 뛰어내리기 직전에 그의 아내가 그를 발견했다.
 "레!"

아내가 그에게 소리쳤다.
 "당신이 바다로 뛰어내리면 난 어떻게 되죠? 우린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고,
많은 일을 함께 겪었어요. 그러니 죽는 것도 함께 죽는 것도 함께 죽어요."

그 말이 레 반 부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1972년에 레 반 부가 아내와 함께 미국 휴스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주머니
에 한푼도 없었고, 영어도 할 줄 몰랐다.

동양인들은 친척끼리 돕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레 반 부와 아내는 사촌이 경영
하는 그린스 포인트 쇼핑센터의 제과점 뒷방에서 미국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우리 부부의 미용실은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들이 말하듯이,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부터이다.
 레 반 부의 사촌은 두 사람에게 제과점의 일자리를 주었다. 레 반 부는 일주일에
175달러, 아내는 125달러를 받았다. 다시 말해 그들의 한 해 수입은 모두 합해
15,600달러였다. 나아가 그의 사 촌은 그들이 3만 달러의 계약금만 지불할 수 있
다면 제과점을 그들에게 팔겠다고 제의했다.
나머 지 9만달러는 사촌이 빌려 주기로 했다.

레 반 부와 그의 아내는 다음과 같이 했다.
 두 사람의 수입이 일주일에 3백 달러였으나 그들은 계속해서 제과점 뒷방에서 살
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두 해 동안 쇼핑센터의 화장실에서 스폰지로 목욕을 했다.
그 두 해 동안 그들은 제과점의 빵만으로 식사를 했다. 그리고 두 해 동안 그들은
전부 합해 일 년에 6백 달러(50만 원 정도)의 생활비를 썼으며, 마침내 계약금으로
 낼 3만 달러를 저축했다.

레 반 부는 말했다.
 "우리가 일주일에 3백 달러를 번다고 해도 아파트에서 생활하려면
월세를 내야만 했다. 그리 고 물론 가구도 있어야 했다. 그 다음엔
아파트에서 직장까지 오갈 교통수단이 필요했는데, 물론 차를 한 대
사야 했을 것이다. 자동차에 따른 보험금뿐만 아니라 기름값도 있어
야 했다.
그리고 아마도 우린 자동차를 끌고 여기저기 놀러 가고 싶었을 것이고,
그러려면 옷과 화장품도 필요했 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아파트에서
살면서 결코 3만 달러를 모을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았 다."

이제 당신은 레 반 부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아직 더 남아
있다. 두 사람이 3만 달러를 저축해서 제과점을 산 뒤에 레 반 부는 다시금 아내와 마
주 앉아 진지한 토론을 했다. 그들은 아직 사촌에게 9만 달러의 빚이 있었다. 그래서
지난 두 해 동안 힘들긴 했지만 다시 한 해 더 제과점의 뒷방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나의 친구이자 스승인 레 반 부는 제과점에서 나온 이익금을 그야말로 땡전 한푼까지
모은 끝에 일 년 만에 사촌에게 진 빚 9만 달러를 갚았다. 그리고 3년 뒤에는 매우 수
익성 높은 다른 사 업을 시작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그때가 되어서야, 레 반 부 부부는 첫 아파트를 얻었다. 오늘
까지도 그 들은 수입의 극히 적은 액수로만 생활하면서 저축을 계속하고 있으며, 물건
을 살 때는 항상 현금 으로만 산다.

그래서 당신은 레 반 부가 오늘날 백만장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백만장자보다 수십 배가 넘는 부자가 되었다.
 존맥코막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도서출판 푸른숲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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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화 주인공의 의지와 삶의 열정은 대단하다.
그래 이렇게 죽도록 일해 성공하고 난 다음에는?

요즘엔 이런 입지전적 주인공이 거의 없다. 사회구조상
빈부격차가 극대화되고,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거의 없
어졌기 때문이다.

차라리 주어진 여건에 순응하며 여유를 갖고 사는게
나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학력 인재들이 말단공무원
을 꿈꾸는 사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어디에 두는가다. 산다는 것은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나름의 의미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연우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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