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15.

[사랑사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 스승과 제자의 사랑이야기






[사랑사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 스승과 제자의 사랑이야기












[선생과 제자간의 사랑이야기... 당사자에게는
낭만적인지 모르겠지만,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때가
많고 종종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기 중세의 유명한 연애사건, 스승과 제자의 적나라한
애욕이야기가 있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오늘은
이들의 사랑을 소개한다]


01
-책이 펼쳐저 있었지만, 공부보다는 사랑얘기가 더 많았고, 학문의
설명보다는 입맞춤이 더 빈번했으며, 내 손은 책보다 그녀의 가슴으
로 자주 갔다. 사랑은 두 사람의 눈을 교과서의 문자 위에 더듬게 하
지않고 서로의 눈망울 속에 머물게 했다.

-당신이 내게 준 것은 우정보다는 격정이었고, 순수한 사랑이기 보
다는 육욕이었을 겁니다. 이제 격정은 죽었고, 당신의 격정이 목표로
 향해 길을 내던 모든 게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님이여.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왕복서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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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이즈의 편지


1142 년 프랑스의 파라크레 수녀원장인 엘로이즈는
그녀의 젊은 수도녀들과 함께 한 남자의 시신을 성교회로부터 인수하여 수녀원
뒷산에 고이 묻었다.
스승이며 남김 없는 사랑 을 바친 남편이기도 한 아벨라르의 분묘를 지켜 30년,
이윽고 그녀마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은 이 두 분을 전례 없는 합장으로 모
시었고,
몇 해 후 개장하여 라슈즈의 묘지로 옮겨 아름다운 쌍묘를 이루었는데 그 후 팔
백 여 년이 되는 지금껏 그들의 무덤을 찾는 이의 인적이 끊이지 않는다고한다.

< 저는 로마의 황후가 되기보다도
당신의 아내 되기를 열망하며,
심지어 당신의 창녀가 되는 일이라고 해도
그것은 황제의 영화로운 황후 되기보다
몇 갑절 나를 기쁘게 했을 것을 의심할 수 없읍니다.>


이 말은 수도녀 엘로이즈가 이 역시 수도자이던 아벨라아르에게 준 편지 속의 담
대한 한 귀절이다.
<< 사랑과 수도의 편지 >> 라는 표제로 이 두 사람 사이의 서한은 온 세계에 번
역되어 퍼진 바 있는데 고래로 여성이 쓸 수 있었던 가장 격렬한 사랑의 말들이라고
정평되어 온 엘로이즈의 편지들을, 한 번 되새겨 생각해 보고 싶다.

일본어 이와나미 문고판으로 된 <<아벨라아르와 엘로이즈>> 의 첫 머리에 보면,


[ 아벨라아르는 세상이 다 아는 중세기 굴지의 철학자,
엘로이즈 는 재색을 겸비한 가인(佳人),

이 두 사람의 사랑은 하룻밤 기구한 운명으로 중단되고 이들은 각기 수도원으로 몸
을 의탁했었다.
이 책은 수도원에서 수도원으로의 왕복 서한집이요, 인간애와 수도 생활의
아픈 상극을 내용으로 하였으며 세계에서 가장 저명 한 서간문의 그 한 권이 된다]
라고 씌어 있다.

중세 철학계에 그 이름을 떨친 아벨라아르는 나이 39세에
이미 그를 흠모하여 모이는 오천 학도를 거느리고 명성과 자긍(自矜)의 절정에 있었
을 즈음 17세의 총명하고 어여쁜 하 처녀를 알게 되어 깊은 사랑에 빠져 들어 갔다.

그 곳의 명가이던 휼벨 가의 질녀 엘로이즈의 교육을 맡는 명목으로 그 집에 입주한
그는 저녁 나절 학교로부터 돌아 온 다음엔 줄곧 두 사람만의 서재에 들어 박혀 애무
와 환락에 사로잡혔었다.

아벨라아르의 정신이 사랑으로 인해 혼란되고 있음을 알아 차린 제자들은
재빨리 격분과 비탄에 휘몰리고,더구나 엘로이즈의 숙부는 누구도 말릴 수 없는
횡포한 분노 때문에 이성을 잃은 보복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자기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었던 엘로이즈를 그는 그의 고향으로 도피
시켜 그 곳에서 아기를 낳게 했고, 사랑스런 아들에게 아스트라라브라는 이름으로
명명한 다음 아기를 누이 동생에게 맡겨 두고 두 사람은 다시 파리로 돌아 와 비밀리
에 결혼식을 올렸던 것이다.

며칠 후에 끔찍이도 불행한 밤은 오고 세상에서도 가장 참혹하고 추악한 복수는 거침
없이 이루어지고 말았다.
아벨라아르가 깊이 잠들었을 때 엘로이즈의 숙부는 하인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아벨라아르의 신체의 한 부분을 절단해 버린 것이었다.

남자의 성(性)을 잃은 아벨라아르에겐 육체의 고통보다도 치욕의 고뇌가 더 참기 어
려웠고 상처의 아픔보다 동정받는 아픔이 훨씬 더 혹독했었다고 한다.

국부가 손상된 동물은 신의 제물로도 쓰지말라고 성서
(舊約)에 씌어 있음을 아는 그의 고통은 도저히 표현할 수도 없을 만큼 가혹했었다는
것이다.

그는 곤혹과 수모를 안은 채 수도원으로 뛰어 들었고,
엘로이즈 또한 그의 뜻을 받들어 쌍 도니의 수도원, 그 깊은 울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때 눈물과 흐느낌의 뒤범벅 속에, 저 폼페이우스 장군의 아내 고루네리아가 남편의
 참혹한 죽음을 통곡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 뒤를 좇은 비탄의 대사가 그녀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아아 우리의 침실에서 나의 사랑스런
위대한 낭군이여, 죽어 가시었나.
죄 많은 이 몸
임의 화를 빚으려고 몸 바친진 몰라도
지금은 받으소서.
기쁨으로 목숨을 버리는
나의 이 보상을...



엘로이즈는 본시 수도원에 맡겨져 거기서 양육되었고 철든 후 잠시 속세에 나왔다가
아벨라아르와의 열애로 인해 다시 수도원으로 이번에야말로 영원히 돌아가게 된 것이다.

그녀가 세속에 섞여 산 것은 불과 삼 년뿐 엘로이즈의 유일한 재산이라고 할
아벨라아르와의 사랑의 회상은 그녀의 한 평생을 통해 더없이 보배스러웠다.

그녀의 신앙심 역시 찬양받기에 충분했었으나
일단 그녀가 아벨라아르를 향해 붓을 잡았을 때만은 숨겨 온 격정의 둑이 터지고
적잖이 관능과 욕정을 마저 호소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끝내는 아벨라아르의 명령 , 그 범 할 수 없는 절대의 발언을 따라
육체적인 사랑을 정신애에까지 이끌어 올렸고,
따라서 그네들의 서한집 그 후반부에서는 뜨거운 구도의 부르짖음으로 넘쳐 있음을 보게된다.

아벨라아르는 에로이즈 수녀원장 및 그녀가 거느리는 젊은 수도녀를 위해
기도문을 써 주었으며 아름다운 찬미가도 여러번 지어 보낸 바 있다.

아벨라아르의 만년은 여러 수도자 중에서도 남달리 겸양하여
의복가지와 음식의 검소함이 말할 수 없을 정도였고, 모든 회장에서도 반드시 그 말석에 몸을
두었다 한다.

< 참으로 카톨릭적인 경건 속에서 묵상했고 그 마음이 또한 비할데 없이 온유하여
한때 온 세계에 명성을 떨쳤던 사람 이라는 실감이 좀처럼 생겨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고
측근의 한 수도자 피엘은 아벨라아르의 별세 후 엘로이즈에게 써 보낸 글월 속에서 이렇게 말
했던 것이다.

여하간에 그녀 엘로이즈는 평생을 아벨라아르의 동일 혈육으로 깊이 자인했었고
모든 점으로 아벨라아르와 동화 하려고 시종 노력하며 살았던 것이다.

다음에 엘로이즈의 편지 중 그 몇 귀절을 옮겨 보겠다.

< 고귀한 여인 중의 어느 누가,
세력 있는 여인 중의 어느 한 사람인들
그 행운에 있어 나를 넘어 설 수 있겠읍니까.
나는 당신으로 인해 가장 높은 곳,
또 가장 자랑스러운 기쁨에 이르렀고
지금은 다시 당신으로 인해
가장 비참한 이 곳에까지 낙하하고 말았읍니다. >


< 신을 노여우시게 하기보다
당신이 노여워하실까 그걸 겁냈읍니다.
그리고 신의 마음에 들기보다는
당신의 마음에 합당하길 바랐거니,
내가 수도복을 입고 성교회에 온 것도
신의 명령이었기보다는
당신께서 나에게 이와 같이 시키셨던 그 때문입니다..>


< 만약에 당신을 잃는다면 무슨 소망이 내게 남겠읍니까.
정녕 그렇게 되고 만다면
무슨 위로를 힘 입어 이 세상의 여로를 걷겠읍니까.>

< 아아 이렇게 외칠 수가 있다면 얼마나 가슴이 후련할는지.
신이시여, 당신께선 만사에 가혹하십니다.
사랑이 깊으신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무자비 하십니다.>


< 신의 외경(畏敬)도 성인들의 행적도
나를 움직일 수는 없읍니다.
믿음이 흔들리는 나를,
오랜 고뇌로 여위어 가는 나를
부디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십시오.
신성한 혼인의 비적(秘蹟)으로 나에게 연결되어 계시는 이여!>


< 우리가 함께 맛본 사랑의 쾌락은
참으로 감미로와 나는 그걸 뉘우칠 수 없고
또한 내 기억에서 지울 수도 없읍니다.
어느 쪽을 보아도 나의 눈 앞에 되살아 나고
내 욕정에 불을 일굽니다.
내가 저지른 죄를 슬퍼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나는 아주 맹열하게 잃어 버린 것을 그리워합니다.>




<나는 신에 대해서 비난을 품고 있읍니다.
그 분이 베푸신 부당한 형벌을 잠시도 잊을수 없기 때문에
결국 언제나 신을 노엽게 해 드리게 됩니다.
가령 죄를 고백하고 여러가지 고행으로
그것을 기워 갚는 다고 해도
내 정신이 다시금 죄에 대한 의지를 갖고
지난 날에의 욕망으로 불타고 있는 이상
어떻게 통회라고 부르겠읍니까.>




<  유일한 이여!
당신께서 우리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숨져 돌아 가신다면
당신의 시신을 저희에게 보내 주시길 부탁하겠읍니다.
그로써 당신은 항상저희에게 기억되고
보다 더 충분한 기도의 열매를 얻으시게 됩니다.
그러나 이를 못 이룬다 해도 당신의 기억이 어찌 잠시나마
사라질 수 있겠읍니까.>




< 신의 거룩한 이름으로 부탁드리거니
부디 가능한 방법으로 조금만 내 앞에 나타나 주십시오.
나를 위로하는 편지를 써 주십시오.
조금만 당신의 위로를 힘입을 수 있다면
나는 몇 갑절 성심으로 우리들의 신 께 봉사할 수 있읍니다.>




<악마들은 우리를 정사로써 파멸시킬 수 없어
결혼을 통해 우리를 넘어뜨린 것입니다.
아아 신성한 나의 남편이여!>


엘로이즈의 편지 속에는 여인의 한이 맥맥히 굽이치고 있다.
하기야 동일한 서간집속에서라도 가령 신학자가 글귀를 추려오는 경우엔
더욱 신심이 엿보이는 부분을 골라올지 모르지만
내게 있어선 앞서 추려 본 이러한 말들에서만이 그녀의 생생한 진실을 바라볼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렇다고 엘로이즈에게 신앙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녀의 의식 가운데 줄곧 아벨라아르가 살고 있었지마는
그러나 인간의 영토는 심히 광활하며 아벨라아르 앞에 내맡겼던
그 나머지는 모두 그녀의 신께 바쳤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사람에게 준 것과 신께 바치는 것과의 사이  그 분량을 계산하는 따
위를 용서할 수가없다.

아무리 많은 강물을 퍼 내어도 나머지 물은 강 스스로의 자리에 남겨 있듯이
세상의 여인들이그녀의 연인과 남편과 자식들에게 제아무리 많은것을 베푼다고
해도 궁극에 있어 그녀들의 영혼은 남아서 신께 돌아 가며
신 앞에 귀의하여 영원한 안식에 안김을 부인 할 수없다.
이 얼마나 완미한 섭리이랴.


김 남 조 시인의- 바람에게 주는 말-중에서퍼옴-

-발췌출처
http://m.blog.daum.net/nasempk/2494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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