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13.

[종교신비] 고통의 신비 객관화된 고통, 자기화한 고통





[종교신비] 고통의 신비  객관화된 고통, 자기화한 고통



































 








01 자기화를 벗어나면 고통이 사라진다

두통으로 고통받은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한번 두통이 시작되면 이삼
 일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진통제도 듣지 않았다. 병원에 한 달 넘
게 입원도 했고 뇌와 관련된 모든 검사를 받았으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

결국 정신병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나 스스로 내린 결론은, 중력이 맞지 않
는 행성에 불시착한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대학교 때는 더 심해져서 정신착란과 환청으로 이어졌다. 우울하고 암울한
청춘이었다. 자취방 월세를 내지 못해 학교 캠퍼스나 지하도에서 노숙하면
서 두통은 긴 어둠의 터널이 되었다.

이토록 고통받는 머릿속 나는 대체 누구인가 의문을 갖게 된 것이 그 무렵의
 일이었고,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출구는 뜻밖에도 간단히 찾아왔다. 거의 축복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때 나는
 인도 푸나의 명상센터에 있었는데 전과 마찬가지로 두통이 극심하던 아침,
스승이 문득 두통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신이 한때 심한 두통으로 시달렸다
면서 스승은 말했다.

"두통이 오면 내가 아프다고 말하지 말라. 그냥 두통이 왔다고 말하라.
아픈 것은 내가 아니다. 머리가 아픈 것이다. 두통이 거기 있고 나는
여기 있다. 두통을 바라보는 나로 남아 있으라. 두통과 하나가 되지
말라. 두통은 왔다가 갈 것이다. 나는 그 오고 감을 바라보는 자일 뿐이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여겼다. 그런데 그의 말대로 반복해서 생각
하니 두통과 나를 분리시키는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두통이 일어나면
 '아, 두통이 왔구나. 어서 와. 이곳에 두통이 있지만 나는 아프지 않다."
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러자 신비하게도 전처럼 심하게 고통스럽지 않았고 통증이 오래가지도 않
았다. 내가 마음을 열고 환영하자 두통은 공격할 의지를 잃은 듯했다. 그리
고 얼마 후 기적처럼 사라져 아주 드물게만 찾아왔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실제의 두통이 아니라 두통과 자신을 일체화시킨
 일이었다. 살아 있는 한 언제든 두통이 올 수 있는데도 나는 매번 '두통이 나
에게 일어났다. 이것은 문제이며, 아픈 것은 나이다.'라고 규정한 것이다.
이 자기화가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실제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만들었
다. 조금만 아파도, 조금만 다쳐도 '나'의 소멸 위기에 긴장했다. 누군가의 비
난, 크고 작은 상처들, 성취와 상실이 매 순간 습관적인 자기화를 거쳐
 '나의 일'이 되었다.

우리는 '나'라는 단어와 생각을 빼고 하루를 지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심리

학자들은 말한다. 미국에 선을 전파한 스즈키 순류 선사는 나날의 삶에서 우
리 생각의 99퍼센트가 자신을 향해 있다고 지적한다. '나는 왜 고통을 겪는가?
 나에게 왜 문제가 생기는가?' 그리고 우리는 희망한다.
 '이런 문제 많은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러나 벗어나야 하
는 것은 나 자신으로부터가 아니라 모든 문제의 자기화로부터이다. 이 자기화
가 모든 문제의 시작이고 자기화의 멈춤이 모든 문제의 종식이다. 삶에서 일
어나는 모든 일과의 자기 동일화가 불행과 고통의 주된 원인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영적 교사들인 조셉 골드스타인, 잭 콘필드, 샤론 샐즈버그,
수리야 다스 등의 스승으로 알려진 방글라데시 출신의 아나가리카 무닌드라
에 대한 일화가 있다. 그는 불교도였기 때문에 언제나 불교 성지를 보고 싶어
 했다. 그가 늙었을 때 제자들이 더 늦기 전에 그를 모시고 인도를 여행했다.
하루는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무더위에 마실 물도 없고 기차는 다섯 시
간 연착했다. 제자들이 노쇠한 스승의 상태를 염려하자 무닌드라는 말했다.

"이곳에 더위가 있지만 나는 덥지 않다.
이곳에 목마름이 있지만 나는 목마르지 않다.
이곳에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일이 있지만 나는 성가시지 않다."

무닌드라는 죽음까지도 그렇게 맞이했다.
 "이곳에 죽음이 있지만 나는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음이 창조한 자기화
로부터 벗어났을 때 그 '배고프지 않은 나', '아프지 않은 나', '죽지 않는 나'
는 누구인가? 이것은 새로운 탐구의 출발이다.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의미를 숨기고 있다. 두통은 나에게 오랫동안 고통을 안겨 주
었지만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아픈 사람인가? 내
몸이 나인가? 아니면 변화하는 내 마음이 나인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자가 나인가?


-류시화 Shiva Ryu
October 9, 2013 ·
-출처: https://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XB51TlkFuq8J:https://www.facebook.com/poet.ryushiva/photos/a.416815941756831.1073741831.415339421904483/439965512775207/+&cd=3&hl=ko&ct=clnk&g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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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타인의 고통을 자기화하다

인도의 신비사상가 라마크리슈나 Ramakrisna는 '신과 합일'로 유명하다.

그는 17세때 칼리 여신 사원의 조수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기도와 경전공부를
하며 지내다 21세에 다크네슈왈의 칼리사원 스님이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신과합일을 위한 격렬한 수행에 몰두했고, 침식을 잊은 열광적
수행 끝에 커다란 신비체험을 하게된다.

그후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스스로를 '천민(찬드라)'이라 부르며 힘들고 천한
일을 도맡아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이에게 겸손하게 대했고,
그 외의 시간은 명상에 몰두해 몰아경 속에서 신과 하나가 되는 기쁨을 느끼곤
했다.

그에 대한 소문이 알려지자 유명인사들의 방문이 이어졌고 그는 인도 각지를
여행하며 자신의 체험담을 전했다. 얼마안가 그는 '신의 화신'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그의 일화 중 하나. 어느날 그는 칼리 사원에서 겐지즈 강가를 보고 있었는데
강에 있던 배안에서 두사람이 심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곧 힘세 보이는 사내가 약한 사공의 등을 막대기로 후려쳤다. 그때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라마크리슈나도 등에 심한 통증을 느낀 것이다.

비명을 듣고 달려온 조카가 그의 등을 보고 깜짝 놀랐다. 등에 심한 매질을 당한
 듯 피멍이 가득했던 것이다. 정신으 차린 라마크리슈나가 조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난 저 뱃사공의 아픔을 같이 느끼는 것이라네."

그말을 이해못한 조카는 돌아갔지만 사람들은 이 사건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자기화한 신의 화신(성육신 成肉身)의 증거라고 말하며 더욱 그를 신처럼 받들
었다.
-인도철학-깨달음의 길' 서광사 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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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신(化身) Avatar. 성육신]

신등 초월적 존재가 인간, 천신 등의 몸으로 탄생하거나 출현하는 것을 말한다.
화신은 문자 그대로 '몸으로 되다, 몸으로 변화다'란 뜻으로 어떤 추상적인 특질
이나 성격이 구체적인 형상을 가지게 된 것을 말하기도 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육신(成肉身-육신을 이루다)이라고 하는데 '예수는 무한한
존재인 하느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분'으로 믿는다. 즉 성육신한 하느님이
라고 본다.

불교에서는 '법신(法身 -진리의 몸),화신'이라고 하며 붓다가 여러가지 형상으로
 나타나 중생을 구제하고 깨닫게 해 준다고 믿는다.

힌두교에서는 신의 화신을 '아바타'라 하는데 엄청 많은 신들이 제각기의 형상으
로 세상에 나타나 중생을 이끌고 구제해준다고 믿는다. 이들은 때로 신의 대리자
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더읽을거리]













<고통>


고통은 죽음보다 더 무서운 인류의 지배자다 -슈바이처
고통은 약함이 육체를 떠나는 것이다.. (Pain is weakness leaving the body. ) -미 해병대


아픔

고통에는 피부, 근육, 뼈 등 신체의 일부에 고통을 느끼는 육체적 고통이 있으며, 불쾌
감과 우울함 등의 부정적 감정으로 '괴롭다'고 여기는 정신적 고통이 있다. 육체적으로
나 정신적으로나, 고통이 심하면 움직이지도 못한다.

신경이 어느 정도 발달한 동물의 대표적 방어기제로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거의 모든 동물
은 고통을 강하게 회피한다. 아프다, 아프다 하고 아픈 걸 싫어하지만 바로 그렇게 아픈
것을 피하려는 본능이 생명을 지켜 주는 것이다. 신체에 해가 올 정도의 손상이 임박했
음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촉각/압각/냉온각/시각(빛의 자극)/미각(화학물질의 자극)/청각(고막의 진동) 등 다른
감각도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신경 말단을 자극해 고통으로 변한다. 역치값이 매우 작아
 미세한 변화도 쉽게 느낄 수 있으며, 일정 시간 이상 자극받으면 순응하는 다른 감각과
 달리 순응이 없다. 같은 강도로 통증을 가해도 통증에 무뎌지진 않는다는 뜻. 당장은
고통도 점점 무디게 느껴지는 게 좋을 것 같지만 만일 고통에 순응이 적용되어 시간이 지
날수록 약해진다면 생명체는 심각하게 생존을 위협받을 것이다. 어떠한 생명체가 심한 상
처를 입었거나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에 걸렸는데 고통이 무뎌져서 그에 따른 대처를
하지 않는다면 그 생명체의 평균 수명은 뚝 떨어질 것이다.

고통은 전염된다. 누군가의 아픔을 보면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고통을 느끼는데,
이를 공감고통(Sympathy pains)이라 한다. 무언가를 보면 지각한 것을 실제로 자기가 행
동하는 듯 시뮬레이트해 보는 대뇌의 '거울신경'이 잠시 활성화된다. 이 세포들은 건물 기
둥 사이로 사람이 지나갈 때 기둥 뒤를 걸어가 반대편에서 다시 나오리라 예측하는 등의
고급 추리가 가능한데, 고통받는 광경에 대해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예컨대 팔이 잘린 광
경을 목격했다면 내 팔이 그렇게 잘린 상황을 모의실험하는데, 이 과정에서 팔이 잘렸을
때의 고통을 실제로 느낀다. 물론 절단상과 같은 정도의 아픔을 체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랬을 때의 전류는 발생한다.

이런 거울신경의 작용은 의지와 무관하므로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타인의 아픔에 어느 정
도씩 공감하는 능력을 지닌다. 육체적 고통은 말할 나위 없으며 정신적 고통에도 적용된다.

다만, 육체적 고통이라도 거울신경이 암만 시뮬레이트해 봤자 제대로 알 수 없는 고통, 예를
들어 고환 피격시의 통증이나 생리통은 상대 성별이 공감하기 어렵다.
덧붙이자면 이 세포의 작용에 문제가 생기면 남에게 공감할 수 없는 자, 즉 사이코패스가 된다.

무통증 환자는 픽션에서 묘사하는 바와 달리 정말 고어 수준의 험한 꼴을 많이 본다고 한다.
볼펜으로 볼 살을 뚫고 논다거나…. 몸을 돌보지 않는 생물이 얼마나 위험에 빠지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예다. 반면 신체 손상을 경계할 필요가 적은 식물은 상당히 고도로 진화한 다세포
생물임에도 불구하고 고통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잘린 가지 등이 다른 개체로 자라날
수도 있으니까. 어류나 갑각류가 고통을 느끼지 못 한다고 대부분 알려져 있으며 고통을 느
낀다는 연구도 있고 못 느낀다는 연구도 있어 아직 의견이 분분하여 명확한 결론이 나지않은
상태다.

철학적으로 접근하자면 인간의 기술 발전과 창조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누구도 살아가면서
고통스럽지 않았다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기술을 발전시키고 예술을 창조할 일은 없었
을 것이다.

총알개미, 통풍, 과민성 대장 증후군, 요로결석, 내성발톱, 구내염, 사랑니 발치, 레고 밟기
등은 화상처럼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현상이 아님에도 정말 끔찍하고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한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고통 순위 중 '뼈 n개가 한번에 부러지는 고통'으로 나열해놓은 것은 믿
지 않는게 좋다. 출산의 고통이 3~5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효도 드립에 많에
이용되나 당연히 고통은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근거는 없다.


2. 종류

구강안면통증
구심로차단동통증후군
구강작열감증후군
매운맛
삼차신경통
- 세수를 하거나 음식을 먹을때 얼굴에 전기가 오르는 것처럼 아픈 증상이다. ... 치료는...노답
치통
관절통
근육통
두통
긴장성두통
복통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요통
작열통
환상통
곶통



3. 완화법

신체적 고통의 완화법에 대해서는 전문가와 의견을 교환하는 게 좋다. 어설픈 민간요법으로는
 증상을 완화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 그냥 진통제를 먹어라
고통의 증상만 줄이는 것을 소위 대증요법이라고 한다.

3.1. 정신적 고통의 완화법

통각신경과는 별개인 정신적 고통도 있다. 고뇌, 번민, 스트레스 등으로도 부르며, 그 원인은
당연히 천차만별이다. 남이 보기에는 어디서 피가 나는 것도 멍이 든 것도 아니므로 공감되지
않는 문제를 두고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지만,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고 자살에까지 이를 수 있으므로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공포는 신체의 고통과 비슷
하게 개체의 생존과 종의 보존이라는 목적을 지닌 일종의 정신적 고통으로, 매우 원초적인 정신
작용이다.

1. 독서.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는 책 만한 게 없다.
2. 일광욕과 운동. 햇빛을 쬐며 하는 산책만으로도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3. 웃을 일 많이 만들기. 일단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야 만사가 좋게 보이기 마련이다.
4. 긍정적 사고. 부정적인 사념은 피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자.
5.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열심히 임하기. 집중과 성취감은 당신의 삶에 좋은 약이다.
6. 목놓아 울기. 고통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덜어줄 것이다.
7. 사람 만나기. 가벼워도 좋으니, 고통의 원인과 관계없는 분야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다.
8. 자연속에 들어가 자신을 쉬게하며 명상을 하는것도 좋다.

다만 이상의 방법들은 본인의 정신적 고통이 정신질환 정도까지 악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한 예방 목적으로나 효과가 있을 방법들이다. 정신질환까지 얻게 된 사람들에게 이
상의 방법을 추천해주면서 알아서 다스리라고 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으
면 전문의에게 소개시켜주자.

이외에도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잠깐뿐이더라도 긍정적인 기분과
 생각을 가지도록 노력하는 것. 세상일이 당신에게 고통을 주더라도, 그게 당신이 고독해져야 하
거나 망가져야 하는 이유는 아니다. 그리고 혼자만 안고 가려고 하지 말 것. 익명의 상담이라도
좋으니 어딘가에는 꼭 털어놓자.



-발췌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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