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26.

[사건사고] 만약은 없다-응급실에서의 삶과 죽음






[사건사고] 만약은 없다-응급실에서의 삶과 죽음





남궁인(응급의)/문학동네간/2016년 6쇄본/

이책은 응급과 의사가 수많은 환자들과 함께 삶과 죽음을 나눈 사연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마치 소설같은 느낌도 들고... 우리가 모르는 응급실의 한 단면이 적
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독자들은 이책을 읽으면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
있고, 삶과 죽음은 종이한장 차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일독을
권하며, 몇가지 에피소드를 발췌 소개한다.
 -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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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죽고자하는 열망

자살실패 50대 공무원. 수면제과다복용. 퇴원 후 집에 돌아가 자택인 아파트 7층
복도에서 다시 투신 자살 시도. 사망한 이야기

나는 하얀 포를 훌쩍 걷었다. 두 다리의 발목이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 있었고,
그중 하나는 아예 침대 밖으로 흘러내려 있었다. 누워있는 그의 다리를 앞으로 들
자, 관절인형처럼 흐물거리며 접혔다. 몸통을 누르자 오도독 거리는 소리가 났고,
왼팔도 세 조각이었다.
피범벅인 얼굴은 왼쪽 두개골부터 안면까지 심하게 무너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얼
굴 원쪽이 날아가버린 느낌이었다.

그는 의료진을 안심시키고 무난하게 퇴원했다. 가족들도 그 모습에 마음을 놓았다.
그는 오늘 있을 가족모임과 저녁 메뉴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직접 운전을 해서 집으
로 향했다. 그의 집은 복도식 아파트 7층에 있었다.
집안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그는 아내에게 잠깐 바람을 쐬겠다고, 먼저 잠시 들
어가서 쉬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퇴원하면서 챙긴 짐을 들고 먼저 집으
로 들어갔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그가 마지막 장
소로 점찍어 두었던 문 앞 복도에서 뛰어내렸다.





57 술집의 사고

어느날 티셔츠와 바지에 피칠갑을 한 창백한 얼굴의 20대 여자가 응급실로 실려왔
다. 의식이 가물거리는지 멍한 표정과 흔들리는 눈동자로 말을 힘겹게 이어갔다.
술집에서 삿소한 말다툼 끝에 날아온 칼을 맞았다고 했다. 상처는 세 곳이었다. 등
쪽 갈비뼈에 한 군데, 복부를 스친 하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복부를 뚫고 들어간 자
리.
상처를 입은 환자가 왔을 때, 의사는 맨 처음 그 상처를 파악한다. 상처가 깊어 보
일수록 면밀히 파악해야한다. 그렇다고 상처를 파악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
니다. 일단 전체적으로 상처의 위치와 길이를 본다. 그리고 하나하나 상처의 피를 닦
고, 최대한 상처를 벌려본다. 벌려서 깊이가 짐작되지 않을 경우 그 상처의 너비에
알맞은 두께의 손가락을 골라 상처 사이로 집어넣는다. 손가락으로 그 안을 최대한
후벼서 해부학적으로 안쪽에 있을 법한 구조물을 만져본다.

나는 환자를 보자마자 의료용 장갑을 양손에 꼈다. 그리고 손가락을 넣어 상처를 휘
저었다. 등 쪽의 상처와 복부를 스친 상처는 손가락을 넣자 금방 막혔다. 이둘은 깊
지 않았으므로 생명을 위협할 정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창백한 얼굴로 봐 마지막 상
처는 불안했다. 상처 안으로 오른쪽 두번째 손가락이 들어갔을 때, 나는 이 사람이
곧 죽음과 가까워 지리라 직감했다. 손가락 끝으로 느껴진 복강은 막 흘러나온 뜨겁
고 붉은 피와 찢어진 내장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것 때문이었다. 도착 당시부터 의식
이 희미해지고, 혈밥이 분 단위로 급강하한 이유는.

온갖 가능성있는 치료를 시도해보았지만 결국 그녀는 처참하게 죽고 말았다. 치료과정
에서 더욱 많이 생긴 참혹한 상처를 감싸안은채....

살아남기 위해서 몸에 흉터를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목 한가운데 기관절개의
흔적이 있는 사람은 적어도 한 번은 스스로 호흡할 수 없었던 사람이다. 의사는 의미
없는 절개를 하지 않는다. 그 흉터는 , 그것이 없었다면 그가 호흡부전으로 죽었으리
라는 뜻이다. 목덜미에 있는 중심정맥관의 흉터도 그렇다. 그걸 지니고 사는 사람들은
그 시술이 없었으면 순환부전으로 죽었을 것이다. 내 눈에 그 거친 자국들은 분명히
그렇게 읽힌다. 그것은 이승과 그들을 이은 끈이라고.64










84 할머니의 기이한 죽음

여든 살까지 사셨던 할머니가 있었다. 오남매를 키워냈고, 다른 가정처럼 다툼도 있었
지만 대체로 화목하게 지냈다. 그럭저럭 손주들까지 커가던 어느 무렵 할머니는 병들
어갔다. 어느날인가부터 혈압약을 드시기 시작했고, 언젠가부터 허리가 아프다고 하셨
으며, 습관처럼 기운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어 소멸해가는 노인의 전형적인
경과였다. 하지만 허리가 굽고 자주 누워 지내야 했음에도 정신만은 또렸했다.

그러던 어느날, 언제나 마지막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왔다.
할머니는 가족들과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할머니는 천천히 자신의 밥그릇
에서 밥을 떠서 삼켰다. 그러다 갑자기, 수저를 떨어뜨리고 양손으로 자신의 목을 싸맸다.
"컥...컥.."
온가족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고, 그녀는 식탁 의자에서 굴러떨어졌다.

앞에 앉아 있던 아들은 순간 수저를 내던지고 벌떡 일어나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그는
 일단 죽어가는 어머니를 안고 자신이 지닌 모든 힘을 다해 조였다. 그녀의 흉부가 우
그러지고 갈비뼈가 순서대로 부러져 나갔다. 하지만 축 늘어진 어머니는 미동도 하지 않
았다. 아내는 울면서 수화기에 대고 비명을 질렀고, 그는 응급차가 올때까지 하던 일을
반복했다.

여든 살의 육신은 간신히 숨만 붙어있었다. 기도폐색에 의한 심정지, 목격자가 즉시 이물
을 빼내려고 시도했으므로, 운이 좋았다면 살아날 확률도 있었다. 하지만 노인이라서인지
 몸은 너무 빨리 삶을 놓아버리려한다. 교환되지 않는 산소와 이산화탄소, 썩기 시작하는
뇌 조직, 멈춰버리는 심장, 그리고 죽음 순식간에 도미노가 넘어가듯이 이것들은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그나마 눈앞에 있던 아들이 뛰어나가 이 과정을 가로막핬다. 그래서 어머니
는 죽음의 어느 한 과정에서 머췄다. 그것이 바로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상태였다.

"아드님이 어머니를 일단 살려내셨습니다. 이제 48시간 정도는 의식이 얼마나 회복되는지
 봐야합니다. 여든살은 뇌손상에 너무 민감합니다. 애초에 우리나라에서 병원 밖 심정지
가 회복될 확률은 2퍼센트 정도입니다. 여든 살이상이면 그 수치는 0.3퍼센트 미만의 절망
적인 상태가 되지만..."

연락을 받은 오남매는 생업을 내던지고 즉시 병원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현장상황을 전해
듣고 어머니 앞에서 오열했다. 어머니의 임종을 곁에서 지키는 것은 자식의 도리였다. 그들
은 그 순간부터 병원에 기거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보호자에게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고, 나는 중환자실을 떠나 응급실에서 진료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경기를 시작했다는 첫번째 연락을 받았다.

중환자실에 가보니 그녀는 차분하게 전신을 떨고 있었다. 손발이 푸덕거렸고 침대가 규칙적
으로 들썩였다. 심정지에서 돌아온 환자에게 흔한 증상이었다.
경기란 뇌의 신호체계가 엇갈리고 있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마치 본체의 시스템이
망가져 화면이 엉망진창이 된 컴퓨터와 비슷화다. 심정지는 즉시 뇌에 저산소소성 손상을
 일으키고, 뇌 손상은 곧 몸의 수많은 체계 오류를 가져와 이는 전신의 뒤틀림으로 표현된다.
물론 거기서 더 심해지면 죽거나 식물인간이 된다.

나는 프로토콜대로 항 경련제를 처방했다. 초기에 권고되는 약, 그리고 두번째로 권고되는
약까지 순서대로 투여되도록 했다. 그리고 그증상을 지켜보기로 했다. 경기는 그 정도 약이
들어가면 대부분 멈춘다. 나는 응급실에서 내일을 하면서 경기가 멈추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중환자실에서 연락을 받았다.
"멈추는 듯하더니, 할머니가 아직도 경기하고 있어요."
중환자실로 가보니 여전히 할머니는 전신을 뒤흔들고 있었다. 간호사들은 할머니가 여기저기
부딫혀 멍들지않도록 사지를 침대난간에 묶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한 시간이 넘게 경기하는 사람은 보통 몇 시간이고 경기할 수 있다. 나는 그녀 옆에
자리를 지키고 항 경련제의 반응을 확인했다. 하지만 멈출 기미가 없었다. 그녀는 충혈된 흰
자위를 치켜뜬 채로 여전히 몸을 뒤틀어댔다.
"어머니가 너무 끔찍해요."
면회는 점심과 저녁, 하루에 두차례 있었다. 할머니가 낳은 오남매와 사위, 며느리는 중환자
실 보호자 대기실에 둥그렇게 진을 치고, 컵라면으로 허기를 때우며 하루 두 차례의 면회와,
어미니의 회복, 아니 죽음을 기다렸다. 나는 신경과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내 환자, 심정지 후 뇌 손상으로 인한 간질중첩증인데 열두 시간째 경기하고 있어."
"벤조다이제핀을 서른두 배로 쓰고 있는데도 계속 경기한다고?
그정도 양이면 뇌가 통째로 멈춰버릴 건데....?"

일반적인 경기는 5분이면 끝난다. 경기에서 돌아온 사람은 한동안 신호체계가 뒤엉켜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얼굴과 전신이 늘어진 채로 죽음에 기다리며 누워있는다. 하지만 이 여든 살
의 할머니는 열두 시간을 넘게 경기를 하고 있었다. 어디서 저런 기력이 나올까?

다음날 아침에도 할머니의 숭고한 의식은 끝나지 않았다. 생체 징후는 안정적이었지만, 할머니
의 살점은 여기저기 떨어져나가 침대 곳곳에 피부가 묻고, 관절은 기이할 정도로 뒤틀리기 시
작했다.

마침내 가족들은 눈물로 호소했다.
"더는 못보겠어요. 우리 어머니를 죽여주세요."

..나는 내 환자 앞에 섰다. 36시간째, 경기는 소강상태와 치열한상태를 번갈아가며 계속되고
있었다. 호흡은 여전했고, 인공호흡기는 평온하게 작동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눈은 썩어 피와
 진물이 섞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얼굴의 근육은 비틀어져, 이제 표정은 고통스럽다기보다
괴상했다. 정신의 멍이 너무 많아 경계를 찾지 못한 정도로 푸르뎅뎅했고, 팔꿈치는 뼈가 뽑
혀나갈 것처럼 틀어져 있었다. 이런 사지로 할머니는 여전히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부딪혀 으
깨고 있었다. 나는 더이상 그녀의 고통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굳게 결심하고
인공호흡기를.....

"최선을 다했지만 사망하셨습니다. "
나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등을 돌려 중환자실에서 걸어나갔다. (이글은 픽션이 가미된 것임)


103. 붉은 지옥

그는 다른 환자들과 섞여 대기실에서 기다렸다가 호명되자 진료실로 들어왔다. 오른쪽 눈을 감
았으나 비틀거리지않고 걸어들어온 남자였다. 감은 눈에서는핏물이 베어나고 있었지만 목장갑으
로 눌러 닦으면서도 그는 의연히 말했다.

"방금 이쪽 눈에 대못이 박히고 말았수다. 네일건으로 작업하는 중에 잘못발사 했소.
얼마나 빠른지 눈을 감을 틈도 없었소. 내가  방금 성한 눈을 뜨고 여길 열어 거울을
비춰 보았다오. ..."
나는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내심떨리는 마음으로 닫힌 오른쪽의 눈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욕설
을 벹었다. "이런 씨발.."
검은 흔적도, 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새빨갛게 참혹한 심연이 있었다. 분명히 안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용암이 끓는 것처럼 울퉁불퉁한 핏덩이가 엉겨있었고, 그 와중에 정 가운데
보이는 동그란 경계는 분명, 못의 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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