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6.

[꿈이론] 죽음 임종 죽어가는 사람이 꾸는 꿈







[꿈이론] 죽음 임종 죽어가는 사람이 꾸는 꿈









"임종 앞둔 꿈·환시, 환자들에게 위안 효과"
<美의료진> 송고시간 | 2016/02/03 17:11


'임종夢·임종視' "나는 좋은 부모, 좋은 자식이었다" 재확인 과정
 '좋은 죽음'으로 가는 여정, 주변에서 도와줄 필요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미국 뉴욕주에 있는 말기환자 요양원인 `호스피스 버팔로'에 입원한 54세의 한 여성은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남자 아이가 나이 든 모습으로 나타나 "미안해. 너는 좋은 사람이야.
도움이 필요하면 내 이름을 불러"라고 말하는 꿈을 꾸고는 아흐레 뒤 숨졌다.

역시 호스피스 버팔로에 입원한 92세의 할머니는 간호사와 대화하다 말고는 방문쪽을 향해
 "잠깐만 기다려, 간호사와 얘기중이니"라고 말했다. 간호사가 아무도 없다고 말해주자 할머
니는 웃으며 "앤트 재니스야(먼저 죽은 여형제 이름)"라고 답하고, 와서 앉으라는 듯이 침상
 한쪽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다시 간호사쪽으로 몸을 돌려 하던 얘기를 마쳤다.

말기 환자들이 사망 수일전, 혹은 수주전 자주 경험하는 '임종몽'(臨終夢)과 '임종시'(臨終
視)의 사례들이다.

이러한 임종현상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흔한 일지만, 현대 의학계는 이 현상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버팔로 요양원의 임상의들이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종 직전 꾸는 꿈과 환시의 의
미와 이를 '좋은 죽음'에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3일자에서 소
개했다.

임종몽이나 임종시는 근사(近死)경험과 구별된다. 집중치료실 환자들이 회복 후 얘기하는 죽
음의 경험은 죽을 뻔 한 순간의 기억인 데 비해, 임종현상은 죽음으로 가는 여정에서 경험하
는 것이다.

버팔로 연구팀은 말기환자 85%까지 경험하는 정신착란 상태의 환각과도 구별한다. 신체의 열
이나 암의 뇌전이,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일어나는 신체 화학작용의 변화 등으로 인해 정신
착란을 일으킨 환자는 자신이 꿈꾸는지 깨어 있는지조차 모르고, 다른 사람에게 환각 내용을
 일관되고 조리 있게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차이는 임종몽과 임종시는 환자들에게 마음의 위안 효과를 주는 데 반해 정
신착란 상태의 환각은 상처를 주는 내용이다.

연간 5천 명의 환자가 거쳐가는 버팔로 요양원의 연구팀은 생의 끝 자락에 선 환자 5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1차 연구 결과를 완화의학지(JPM)에 실었다.

이에 따르면, 이들 환자가 겪은 임종몽과 임종시는 대체로 이미 죽은 사람과 만남,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는" 장면, 마무리하지 못한 일 등으로 분류된다.

이들 내용을 관통하는 주제는 이미 베풀었거나 베풀지 못한 사랑, 화해, 용서이며, 꿈속에서
 환자들은 자신들이 좋은 부모, 좋은 자식, 좋은 직원이었음을 재확인받는다.

76세의 한 환자는 어릴 때 죽은 어머니 꿈을 꾸면서 어머니가 쓰던 향수 냄새를 맡을 수 있었
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랑한다 얘야"라고 하는 것도 들을 수 있었다.

한 나이 든 여성 환자는 침대에 누워서 보이지 않는 아기를 두 팔로 안고 있었는데, 그 남편
은 연구진에게 첫 아이를 사산했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단짝 친구와 10대 세 아들을 차에 태운 채 그랜드 캐니언을 찾은 꿈을 꾼 얘기를 해
주고 3주 후 사망한 84세의 한 남자는 현재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인 세 아들이 어린 모습
으로 꿈에 나타난 이유에 대해 "아들들이 내 인생의 최대 보람"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연구 대상 환자들은 죽음이 임박할수록 산 자보다는 죽은 자가 더 많이 등장하는 임종몽과 임
종시를 더 자주 겪는 경향을 보여, 이런 임종현상이 사망의 전조로서 의미도 있는 것으로 보
인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를 진행한 크리스토퍼 커 박사는 자신이 늘 환자의 수명 연장을 위해 더 해줄 조치는 없
는지 찾아보는 공격적 진료를 하는 의사였으나, 임종몽과 임종시를 알게 되면서 생각을 바꿨
다고 설명했다.

수분을 보충하면 더 연명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자에게 그 조치를 취하려 했더니, 환자와 꿈
얘기를 많이 나눈 간호사가 "모르시는군요. 죽은 어머니가 자주 나타나고 있대요"라고 말해준
이틀 뒤 환자가 사망한 일이 있다는 것.

그는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진정제를 계속 투여하는 게 죽음으로의 여정을 삭막하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며 과거 자신의 의료행태를 자성하고 "환자들이 '당신이 기회를 빼앗아갔지? 아
내와 함께 있었는 데 말이야'라고 나에게 얘기할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임종몽과 임종시의 위안 효과를 들어, 환자들이 헛소리라고 놀림 받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들이 꾼 꿈을 얘기할 수 있도록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이 환자의 꿈에 대해 물어봐주
는 게 좋다고 말했다. 임종 직전의 꿈이 환자들에게 "정신적 정화작용"을 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생의 마감 단계에 있는 환자 뿐 아니라 남겨질 유족에게도 위안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ydy@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2/03 17:11 송고

-원문출처: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2/03/0200000000AKR20160203180800009.HTML





-[기사내용추가] 죽음이 가까이 올 때 보는 환상들의 의미
2014년 12월 2일  |  By: veritaholic 


“우리는 환자의 질병만을 치료해서는 안 됩니다. 환자가 삶을 마무리할 때 느끼는 총체적
 삶의 질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버팔로 요양병원의 연구소장 페이는 환자의 가족과 의사들이 환자의 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환자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고 죽음을 준비
할 수 있게 됩니다.

“옆에서 들어주세요. 그게 그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환자들이 꾸는 꿈의 여섯 가지 종류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누군가가 나를 달래주는 꿈:
보통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이 등장하지만 때로 아직 살아있는 이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2. 여행을 준비하는 꿈:
한 여성환자는 자신의 (살아있는) 아들과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꿈을 꾸었고 편안함을 느꼈
습니다.

3. 죽은 이를 보거나 만나는 꿈: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나 친척이 등장하며 환자는 압도적인 위로를 느낍니다.

4. 사랑하는 이가 나를 기다리는 꿈: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가 나를 기다리는 꿈입니다. 한 여성은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 계단
의 위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신의 남편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5http://newspeppermint.com/2014/12/01/mvisions/. 고통스러웠던 경험:
환자는 때로 전쟁이나 어린 시절의 괴로움 같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다시 꿈에서 경험합니다.

6. 마무리하지 못한 일:
소수의 환자는 중요한 일을 끝내지 못한 두려움이 주요 내용인 꿈을 보고했습니다. 두 명의
젊은 엄마는 자신의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를 고민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발췌원문:
http://newspeppermint.com/2014/12/01/mvisions/





----------------------------------[보충: 시간날 때 보세요]


아래 내용은 꿈분석가 융의 동료이자 제자인 프란츠 박사의 저서를 발췌한 것입니다. 꿈은
우리에게 많은 멧시지를 전달해주는데 특히 죽음과 삶에대한 명상에도 훌륭한 자료가 됩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원문책을 보신다면 더욱 풍성한 느낌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연우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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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죽음 -죽어가는 사람의 꿈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융의제자.공동연구자.융연구소교수) 저/한오수역/한국융연구원/2017



10 꿈은 죽음을 종말로 보지않는다

무의식적 정신은 비교적 죽음을 육체적 삶의 급작스러운 종말로서 보지 않으며, 그래서 개개인의
 심흔의 삶 또는 개성화과정이 그냥 계속 지속하는 것같이 행동한다고 융이 강조했던 것은
맞는 말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육체적 삶의 종말과 사후의 삶이 명백히 지속한다는 주제를 상징적으로 암시하
는 꿈들이 항상 존재한다. 즉 무의식은 아주 분명하게 사후의 삶을 '믿는다'.


일례로 어떤 동료 분석가가 온몸에 전이된 암을 갖고 있던 젊은 여자 환자를 돌봐주고 있었는데.
결국 그녀는 암이 뇌까지 퍼져서 의식이 거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분석가는 계속 방문해서
그녀 곁에 조용히 앉아 있곤 했다. 그런데 그녀가 죽기 24시간 전, 갑자기 눈을 뜨더니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놀이방 내 침대 곁에 서 있었는데, 건강하고 튼튼하게 느꼈다. 햇빛이
창문을 통해 밀려들어왔다. 의사가 거기에 있었는데,
 "00씨, 당신은 뜻밖에도 완전히 치유 되었습니다.
이제 옷을 입고 병원을 떠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몸을 돌려서 침대에 있는 내 죽은 육신을 바라보았다.

죽음이 '치유'를 의미하고 계속 더 살 것이라고 위안을 주는 무의식의 메시지는 여기선 분명히
소망의 꿈으로 해석될 수 없으며, 아주 잔혹하고 분명하게도 육체 삶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21. 시체의 신비

자신의 사후의 삶을 상상하는 아직 살아있는 사람, 그리고 또한 죽은 사람이 사후에도 계속 살
아가리라고 믿는 살아남아 있는 사람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아마도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자
신을 육체와 거의 동일시한다는것에 근거를 두고 있어서이다. 우리의 자아정체성에 관한 모든
느낌은 육체와 결부되어 있다.

33. 오리게네스는 옛육체를 '묘상(苗床 모종을 키우는 자리. `모(종)판'.=못자리)이라고 말했
고, 그것에서 죽은 자가 다시 자라난다고 했다. 이것은 죽은자들이 마치 식물처럼 다시 살아난다는
 널리 퍼져있는 원형적 사상에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식물의 상은 죽음이 임박한 사람의 꿈에서
빈번히 되풀이 된다.

40대의 남자 한 분이 자문을 구하러 내게 왔었다. 그는 여러 곳에 전이가 진행된 흑색 육종이란
 암으로, 의학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진단을
받은 그날 밤, 그는 다음과같은 꿈을 꾸었다.

그는 녹색의, 반쯤 자란 아직은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밀밭을 보았다. 한 무리의 소떼가
밭으로 침입해 들어와서 모든 것을 짓밟아 망가뜨렸다. 그때 어떤 목소리가 위로부터 울
려 퍼졌는데, 그 목소리는 말하기를
"모든 것이 파괴된 듯 보인다. 그러나 땅속에 있는 뿌리에서 씨앗이 다시 자랄 것이다."

나는 이꿈에서 죽음 후에도 삶은 어찌해서든지 지속되리라는 암시를 보았다. 그러나 꿈을 꾼 사람
은 이를 받아들이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운명과 화해하지 않고 그후 얼마 되지않아 죽음
을 맞이했다.


37. 생명의 불꽃

씨앗이나 보리의 낱알은 구체적이 아닌 삶과 죽음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정신적인 것에 대한 상징
이다. 그것은 다만 뻔한 삶의 일시적인 번영과 소멸을 지나서 계속 지속하는 비밀스럽고 연속적인
삶의 과정을 가르쳐 주는 무었이다. 이러한 생각은 프리스틀리의 '인간과 시간'에서도 잘 나타난다.

'나는 매우 높은 성탑 맨 꼭대기에 홀로서서, 모두 한 방향에서 날아가는 수많은 새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온갖 종류의 새들이, 세상의 모든 새들이 거기 있었다.
하늘을 가득 채운 이 거대한 새의 흐름은 장관이었다.
그런데 속도가 신비롭게도 변했다. 시간이 더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모든 세대의 새들을 보았다. 그들이 알에서 깨어나고, 살아서 푸드덕거리고, 나이가 들어가고
쇠약해지고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날개들이 생겨났다가 다시 떨어졌고, 몸통이 피어났다가는 바로
피를 흘리고는 무너져버렸다. 죽음이 도처에서 매 순간 덤벼들었다. 이런 모든 맹목적인 삶의 투쟁,
날개의 이런 갈망하는 시도, 이 모든 매우 의미없는 생물학적 노력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내가 내려다보았을 때, 나는 마음이 아팠다. 이러한 생명체의 어느 것도, 우리들 모두 가운데 누구도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을 것이며, 투쟁이 영원히 중단됐다면 좋을 것이다. 나는 깊은 절망에 빠져 나
의 성탑 위에 홀로 서 있었다.

그런데 이때 속도가 다시 변했다. 시간은 더 빨리 흘렀고 매우 빨리 지나가버려 새들이 더이상 움직
임을 보이지 않았고, 온통 날개로 가려진 거대한 평지를 이루었다. 그리곤 이 평지위에 -깜박거리며
몸통을 통과하는 일종의 하얀 불꽃이 떨듯 춤추면서, 그곳으로부터 서둘러 지나갔다.
나는 이것을 보자마자 이 불꽃이 생명 그 자체였음을, 존재의 정수였음을 알았다.- 그리고 폭발하듯
황홀경의 느낌이나를 엄습했으며, 빠르게 지나가는 부드러운, 타서 없어지지않는 존재의 빛 이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
 다시말해 내가 비극이라고 여겼던 것은 다만 공이나 그림자였다. 왜냐하면 모든 진정한 느낌이 터득
되고, 정화되었으며, 하얀 생명의 불꽃과 더불어 황홀하게 춤을 추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에는 성탑
과 새에 관한 꿈의 말미에 느꼈던 것 같은, 그렇게 깊은 행복을 느껴보지 못했다.

프리스틀리는 불꽃을 우리가 들어가게 될 영원한 우주적 자기로서 이해했다.






45. 죽은자의 재가 치유하는 비밀

고대의 이집트인이나 초기의 연금술사들에게 부활은 단지 영혼에서만이 아닌, 육체의 죽은 물질의 잔
재에서, 말하자면 변화된 물질에서 일어난다고 믿었다.
61세의 기병대 장교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기 4주 전에 꾸었던 꿈.

그는 35년 전에 소위 계급을 얻기 위해 다녔던 사관학교에 다시 있었다. 그때 당시 그가 매우 존경했
던 나이든 분대장이 그에게 왔다. 그는 실제로 의미심장하게도 아담이란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는 "소대장님, 당신에게 뭔가 보여드려야만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그를 군대 막사의 지하층으로
데리고가서 납으로 된 문을 열었다. 꿈을 꾼 사람은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그의 앞에는 완전히 부패한
 말의 시체가 누워 있었고, 끔직한 시체 썩는 냄새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 단순한 '죽을 운명의 아담'이 꿈을 꾼 사람에게 그에게 곧 닥쳐올 것, 즉 그의 동물적 육체, 다시 말
해 말이 죽어서 부패하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꿈이 불러일으킨 충격으로 무의식은 꿈을 꾼 사람
의 육체에서 떼어놓으려 했다. 마치 무의식이 "네 자신이 아닌, 네 말이 죽을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은 기병대원에게는 그를 태워 나르는 본능적, 육체적 본성에 대한 상징이다.
꿈을 꾼 사람은 곧 다가올 육체의 해체를 알고 있으며, 꿈을 꾼 사람에게 그것에 대해 준비하도록 시도한다.



48 대극의 통합

에딘저가 발표한 죽음이 임박한 어느 환자의 일련의 꿈 중에서 다음 꿈은 이러한 대극의 투쟁에 대한
 매우 인상적인 서술을 제공한다.

'상금을 놓고 권투경기를 하는 두 명의 선수가 어느 의식에 따른 시합을 하고 있다. 그들의
투쟁은 매우 아름답다. 그들은 어떤 세분화된 미리 계획된 본보기를 만들어내는 전우로서,
꿈에서는 그렇게 심한 적대자는 아니었다. 그들은 조용하고 흥분하거나 집중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매 회 끝에 분장실로 들어가서 '화장'을 한다. 나는 그중 한 명이 손가락을 피에 담
그고는 그것을 상대방과 자신의 얼굴에 바르는 것을 본다. 링으로 돌아와서는 빠르고, 격렬
한 그러나 환전히 절제된 싸움의 연기를 다시 계속한다.

여기에서 투쟁은 끝에서 다만 '연기'로 묘사되는데, 연기는 환상의 세계에 속한다. 에딘저가 강조한 것처럼,
그 너머에는 자기-대극의 통합이 있다.


51. 두개의 얼굴

인간의 임종자리에서의 사건은 흔히 실제로 매우 역설적이다. 마지막 즈음에는 특히 의식이 약화됨으로써
그간 너무 억압되었던 모든 것들이 뚫고 나온다. 그래서 예를 들자면, 순결을 지켰던 시인 안데르센은 죽
을 때 노골적인 성적 외설행위를 표현해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 방에서 도망쳤다.

흔히 죽어가는 사람이 대량의 혼란스러운 인상을 보고하기도 한다. 때로는 친척을 비난하거나 저주하기도
하며, 반면에 다른 인간들은 냉정하게 내면의 평혼 속에서 죽는다. 내 관점으로는 이것은 동일한 과정의 두
가지 면을 묘사한다. 어떤 사람은 아직 고통 속에서 대극의 투쟁 속에 있는 반면, 또 다른 사람은 이미 이
투쟁의 최종결과, 즉 만족과 대극의 합일이 예감되어지도 한다. 물론 어떤 인간이 생전, 이미 죽음이 다가오기
 이전에 내면이 대극의 투쟁에 준비가 되어 있을수록 아마도 그는 더욱더 평화로운 종말을 기대해도 좋은 것
이다.





71 꽃이된 여자

꽃이 사후의 '육체'의 상징으로서, 영혼을 위한 확고한 거주 장소의 의미에서 얼마나 생생한지를, 나는 54세의
 내 친구이자 피분석자의 적극적 명상을 통해 경험했다. 그녀는 슬프게도 갑자기 죽었다. 적극적 명상은 융에
의해 발견된 일종의 명상적 방법으로, 이 방법에서는 내면의 환상의 인물과 대화를 한다.

'나는 꽃을 본다. 꽃의 신비는 내 안에 있다. 나는 그것이고, 그것은 나다...
내게 들어와서 인간이 되었다. 나는 이빛을 발하는 꽃이며, 그 꽃에서 역시 생이 분출한다.
나는 그것인가? 내가 지금부터 꽃으로 가면, 나는 내가 내게로 가고 있음을 안다.

나는 꽃을 바라본다. 내가 그 꽃을 명상함으로써 나는 꽃이 된다.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영원히 빛을 내면서, 그래서 나는 영원의 형태를 받아들인다. ...얼마전까지도 나는 항상
꽃을 대상으로만 알았다. 이제 나는 내가 역시 꽃일 수 있음을 안다.

여기서 문장은 중단된다. 왜냐하면 그글을 쓴 이가 아주 갑자기 폐색전증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꽃은
분명히 사후의 육체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84. 죽음의 준비

몇 년 전 52세의 기혼의 개업의가 내게 분석을 받으러 왔다. 그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했다. 그러나
 일반 개업의로 종사하는것이 싫어져서 정신치료자가 되는 교육을 받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최초의 꿈은 의외로
 아주 다른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우리는 분석에서 최초의 꿈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데, 그 이유는 그 최초의
 꿈이 이후 매우 자주 진행할 분석의 모든 과정의 윤곽을 미리 제시하기 때문아다). 그 의사는 꿈을꾸었다.

그는 많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어떤 장례 행렬을 따라가고 있었다. 죽은 사람은 그가 모르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남자였다. 그 행렬은 그 도시의 풀로 뒤덮인 사각형의 어느 장소에서 멈춰섰다.
그 풀밭 위에 장작더미가 설치되어 있었다. 운반하는 사람들이 그 관을 장작더미 위에 놓다니 불을
 붙었다. 그 꿈을 꾼 사람은 무관심하게 바라보았다. 불꽃이 타오를 때 갑자기 관 뚜껑이 열리고,
어떤 아름다운 벌거벗은 여인이 관에서 나와 팔을 벌리고는 그에게 급히 다가왔다. 그역시 팔을 벌
렸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행복감 속에서 깨어났다.

이 최초의 꿈은 나를 무척 놀라게 했다. 나는 이 꿈이 그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하고자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당시에 아직도 젋고 강건했다. '비교할수 없는 행복'의 느낌이 무엇보다고 내겐 기분 나빴다. 이 꿈 이후에
그 의사는 다시 '보통'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분석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1년 후 그는 경제적인 이유로 고
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머지않아 교육분석을 다시 받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그때 나는 갑작스럽게 그의 죽음
의 소식을 들었다. 그가 독감에 걸렸는데, 점점 상태가 나빠졌고, 병원으로 옮기던 중 심장마비로 구급차 안에서
죽었다.

우선 그 꿈꾼 사람과 무관한 남자의 매장. 이남자는 아마도 꿈꾼 사람 자신의 현세의 육체적인 면을 나타내는 것
같다. 관에서 나온 아름다운 나체의 여인. 그 여인은 꿈꾼 사람의 아니마, 그의 무의식적 여성적 심혼을 나타낸다.



101. 죽어감 속에서의 희망

데이비드 엘드리드가 그의 논문에서 기술한 죽어가는 여자의 마지막 꿈은 꿈꾼 사람이 고요하고깊은 산간 호수에
 빠지는 것에 끝까지 애를 쓰며 저항하는 주제를 내표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역시 죽음 순간의 '불랙아웃'에
 대한 불안, 또는 좀 더 깊게는 무의식화에 대한 불안과 ,그와동시에 자아정체성의 상실에 대한 불안을 표현한 것
이다 불치의 병을 앓다가 수술을 받고는 예기치않게 좀 더 일찍 죽은 어느 젊은 여인은치명적인 수술을 받기 전에 꿈
을 꾸었다.

남편과 친구들과함께 호숫가에 있었다. 호수는 매우 깊었고, 물은 맑고 투명하고 깨끗하고 푸르렀다.
갑자기 나는 호수 바닥에 있는 검은 새 한 마리를 보았는데, 그 새는 죽어 있었다.
나는 동정심에 가득 차서 그것을 찾아 구하기 위해 잠수하려고 했다. 그 새가 죽어 있다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남편은 다정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간섭하면서, 그 일을 하지 말도록 요구했다.
나는 다시 한 번 그 쪽을 바라보았고 새의 눈을 보았다. 그것은 강하게 빛을 내는 다이아몬드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깨어났다.

죽은 새는 분명 소멸된 육체의 생명의 영일 것이다. 그녀는 죽어가는 육체로부터 거리를 두어야한다. 아니면 그녀는
 죽음 사건의 용해하는 힘에 오염될 것이기 때문이다.


108. 다시 빛나다

켈리가 보고했던 어느 죽어가는 나이 든 여자의 꿈에서는 '전환'이 위로가 되게 기술되어 있다.
그녀는 병실의 안쪽 창턱 위에 촛불이 타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다가 그 촛불이 꺼져 있음을 갑자기 깨닫는다.
 다가오는 커다란 어둠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그를 엄습한다. 그러나 갑자기 그 같은 촛불이 다시 빛을 낸다.
창문의 다른 쪽에서. 그리고 그녀는 깨었다.
그녀는 같은 날 매우 평온한 가운데 죽었다.





114 섬뜩한 침입자

다가오는 죽음은 꿈에서 흔히 침입자의 상, 즉 지금까지의 익숙한 삶에 갑자기 낯설게 침입해오는 어떤 것
으로서 묘사된다. 어는 50대 중밙의 사업가가 분석을 요청해왔다.

그는 사업에서 좌절을 느끼고 더 딮은 삶의 의미를 찾았다. 그의 첫 꿈은 다음과같다.
그는 꿈에서 한밤중에 반지하에 있는 어두운 방의 그의 침대에서 깨어난다. 밝은 빛이 창문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때 갑자기 어떤 낯선 사람이 그의 방에 서 있다. 그 사람은 비인간적인 섬뜩하고 불안한 느낌이 들게해서 그
는 땀에 흠뻑 젖어 깨어났다.

나는 그 꿈을 이해하지 못했고, 뭔가 매우 낮선 것, 불안을 느끼게하는 것이 그에게 올 것이라는 것, 그러나 또한
 빛, 다시말해 깨달음, 통찰이 그것과 연관되어 있을 것임을 그에게 지적해주는 것에 국한했다. 몇 번의 분석시간
후 그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때때로 전화해서 분석을 계속 하고 싶지만, 지금은 너무 일이 과중
하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 후 1년이 지나서 그가 척추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왔다. 꿈의 섬뜩한 침입자는 다름 아닌 죽음이엇다.

116. 눈에 보이지 않는 섬뜩한 타자의 현존은 죽음을 가리킨다. 쿠르트 뤼켈은 78세 여성의 이런 종류의 꿈을 보고
했다.

처음에는 문 밖에서, 그 다음엔 안쪽의 문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그러더니 누군가 내 방으로 들어와 문
 옆에 서 있다. 그리고 기다린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도통 알 수 없다. 그는 문 옆에 서 있다. 더 가까이 다가오지
도 않고, 그곳에 서서 기다린다. 놀라서.. 불을 켜고 나가라!하고 소리를 지른다. 잠시동안 그는 그곳에 더 있다.
.. 그러더니 사라진다. 나는 매우 놀랐다. 섬뜩하다. 나는 그의 뒤에다 소리친다. '너는 내게 뭘 하려고 하니? 더
이상 나타나지마!"... 그러나 나는 더이상 잠을 잘 수없다.
그녀는 대화 중에 스스로 이것이 '신의 전령', 즉 죽음일 수 있다는 것에 생각기 미쳤다.


117 검은개

융은 자신의 어머니가 죽은 밤에-그는 어머니의 사망에 대해 전혀 몰랐다- 다음과같은 꿈을 꾸었다.

나는 나무가 빼곡한 칠흑같은 어두운 숲에 있었다. 그것은 장엄한 원시세계의 풍경이었다. 돌연 나는 날카롭게 울
리는 휘파람 소리를 들었다. 놀라서 무릎에 힘이 빠져버렸다. 그때 숲에서 우지끈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무시무시
한 아가리를 가진 거대한 세퍼드가 튀어나왔다. 그개는 내 곂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도깨비의 우두머리가
이제 어떤 인간을 물어오라고 그 개에게 명령했다는 것을 알았다.
... 다음날 아침에 나는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121 의인화된 죽음

의인화된 죽음 또는 살아있는 사람을 데려가는 '타자'는 꿈에서는 종종 명백하게 긍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
다. 예를 들면 50대 중반의 어느 피분석자가 다음과같은 그의 최초의 꿈을 분석시간에 가져왔다.

그는 회색의 평원에 서 있었다. 흐리고 안개 낀 날씨, 회색 구름에 덮인 하늘, 갑자기 구름이 갈라지면서
틈이 벌어졌고, 빛이 쏟아져 내려왔다. 날개 달린 신발을 신은 어떤 벌거벗은 젊은이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꿈을 꾼 사람은 그에게 무한한 사랑을 느꼈으며 매우 심원한 행복의 느낌을 경험했다.

나는 이꿈에 대해 매우 놀랐다. 왜냐하면 내가 즉시 헤르메스, 즉 죽은 삶을 저 세상으로 데려가는 영혼의 안내자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곧 꿈꾼 사람은 건강에 해를 입었고, 분석은 그의 때이른 죽음에 동행이 되었다.





137 폭파된 생명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이 빠져들어가는 강한 흥분상태는 아직 육체에 붙어있는 심혼의 에너지와 육체에서 벗어나는
에너지의 투쟁을 반형하는 것이다. 강제적인 죽음(살인, 자살)의 경우에는 내 자신이 언제가 경험한 바처럼, 그것은
본래의 '폭파작용'에 이르는 듯하다.
내가 대략 24살 때, 나는 병든 16세 소녀와 그녀의 간병인이 사는 아파트에서 세들어 살았다. 어느 날 밤에 나는 꿈을
 꾸었다.

끔찍한 폭발이 일어났다. 나와 간병인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돌과 흙덩어리에 맞지 않으려고,
담 뒤에 웅크리고 숨어 있었다.

내가 깨어났을 때, 그 병든 소녀가 같은 날 밤에 수면제를 먹고 자살했다는 것을 알았다. 자살의 경우에는 '샘명의 에
너지가 종말까지 자연스럽게 다 소진되지 않아서 그 죽음은 주위에 위험스럽게 영향을 미치는 갑작스러운 폭발처럼 작
용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폭발은 강한 에너지가 갑자기 유리되는 것이다.


143 가족과의 해후

어떤 고령의 남자가 융에게 그의 꿈을 보냈다.

이꿈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어느 건물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그는 그의 부모와 계부를 만났으며, 그들은 환영하기
위해 그를 껴안았다. 그럼에도 그는 더 가야만 했고 그의 길은 어느 절벽에서 끝났다. 어떤 목소리가 뛰어내리라고 명
령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거부했으나 결국 복종했다. 놀랍게도 그는 깊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고, 행복하게 영원의
푸르름 속으로 헤엄쳐 갔다.

융은 그에게 이 꿈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해석해 주었다.


146 육신의 해체는 희생

영혼이 육체에 되돌아올 수 있기 전에 어떤 변화를 거쳐야한다. 우선 과거 육체의 해체나 희생같은 어떤 것이다. 과거의
 육체는 고통받거나 불의 시련을 겪게되는 등... 희생은 어떤의미에서는 육체의 희생이다.  즉 신을 위해 뭔가를 포기하
는 것을 의미한다. 근본적으로는 자아집착성의 단념이 중요하다.
전쟁에서 중상을 입어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의식을 다시 찾은 어떤 사람이 다음과같이 말했다.

'나는 이순간(그는 간호사가 그가 두 시간 정도만 살아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 갑자기 불안한
느낌을 가졌다. 나는 격렬하고 고통스러운 내면의 투쟁을 알게 되었다. 희생 이전에 영혼의 마지막 투쟁을,
그것은 의식이 완전히 명료한 상태에서 일어났다. 나는 영원히 이 순간에 대한 기억을 간직할 것이다.
그것이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게되기를 신에게 간구했다. .. 생명을 용기있게 떠나야 한다면, 생명을
용기있게 살았어야만 한다.'

152. 다른 예로서 죽음을 앞둔 어느 여인의 꿈을 마크 펠그린이 전한다.

'나는 분명하게 몇몇의 매우 진지한 남자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마치 장엄한 의식에 있는 것처럼 나를 기다
리고 있었다. 그들은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개방된 베란다 위에 들것을 갖고 있었는데, 그 마당을 내려다봤던
 무엇인가 매우 중요한 것, 가치 있는 것을 갖고 있었다. 그 남자들은 밝은 색깔의 의복을 입고 있었는데
마치 경마 기수의 비단옷 같았다. 그들은 모두 내게 어떤 일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불확실한 느낌이지
만 어떤 제단이 있었고, 신에게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서, 그리고 내면의 힘에의해 어떤 치유적인 방법으로
처러되어지기 위해서, 나는 그 제단으로 데려가져야만 했다.

이 꿈은 내게 다시 육체의 신격화가 이집트의 의식에서 성문화되어 나타난 것같은 유사한 육체의 신격화를 가리키는 것같이
 보인다.  즉 육체의 변환을, 또 내면에서 육체를 순화하고 동시에 그것의 부분을 개개의 원형과 연결시킨 동일한 육체의
치유를 가리키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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