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22.

[명화음악] 오윤 작품감상 민들레처럼 민중시








[명화음악] 오윤 작품감상 민들레처럼  민중시









[음악동영상. 민들레처럼]











껍데기는 가라

          신 동 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1967>















노동의 새벽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하늘 -박노해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

나의 하늘이다.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두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번 짓지 않은 우리를

감옥소에 집어 넌다는 경찰관님은

항시 두려운 하늘이다.



죄인을 만들수도 살릴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무서운 하늘이다.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



높은 사람, 힘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모두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

대대로 바닥만으로만 살아온 힘없는 내가

그 사람에게만은

이제 막 아장아장 걸음마 시작하는

미치게 예쁜 우리 아가에게만은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겠지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짖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를 받쳐 주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민들레처럼

 -박노해





일주일의 단식 끝에

덥수룩한 수엽 초췌한 몰골로 파란 수의에

검정고무신을 끌고 어질어질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굴비처럼 줄줄이 엮인

잡범들 사이에서



"박노해씨 힘내십시요."

어느 도적놈인지 조직폴력배인지

노란 민들레 한송이 묶인 내 손에 살짝이 주어주며

환한 꽃인사로 스쳐 갑니다.



철커덩, 어둑한 감치방에 넣어져

노란 민들레꽃을 코에도 볼에도 대어보고

눈에도 입에서 ?줘보며 흠흠

포근한 새봄을 애무한 민들레꽃 한 송이로 환하게 번져오는

생명의 향기에 취하여

아~ 산다는 것은 정년 아름다은 것이야



그러다가 문득

내가 무엇이길래

긴장된 마음으로 자세를 바로잡고 민들레꽃을 바로 봅니다.

어디선가 묶인 손으로 이 꽃을 꺾어

정성껏 품에 안고 내 손에까지 쥐어준

그분의 애정과 속뜻을

정신 차려 내 삶에 새깁니다.



민들레처럼 살아야 합니다.

차라리 발길에 짓밟힐지언정

노리개꽃으로 살지 맙시다.

흰 백합 진한 장미의 화려함보다

흔하고 너른 꽃 속에서 자연스레 빛나는

우리 들꽃의 자존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빛나지 않아도

조금도 쓸쓸하지 않고 봄비 뿌리면 그 비를 마시고

바람 불면 맨살 부대끼며

새 눈과 흙무더기 들풀과 어우러져 모두 다 봄의 주체로

서로를 빛나게 하는

민들레의 소박함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그래요. 논두렁이건 무너진 뚝방이건

폐유에 절은 공장 화단 모둥이

쇠창살 너무 후미진 마당까지

그 어느 험난한 생존의 땅 위에서건

끈질긴 생명력으로 당당하게 피어나는

민들레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우리는

보호막 하나 없어도 좋습니다.

말하는 것 깨지는 것도 피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피어나야 할 곳에 거침없이 피어나

온몸으로 부딪치며 봄을 부르는

현장의 민들레

그 치열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자신에게 단 한번 주어진 시절

자신이 아니면 꽃피울 수 없는 거칠은 그 자리에

정직하게 피어나 성심껏 피어나

기꺼이 밟히고 으깨지고 또 일어서며

피를 말리고 살을 말려 봄을 진군하다가

마침내 바람찬 허공중에 수천수백의 꽃씨로

장렬하게 산화하는 아 - 민들레 민들레

그 민들레의 투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고문으로 멍들은 상처투성이 가슴위에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 받아 들고

글썽이는 눈물로 결의합니다.

아- 아- 동지들,형제들

준엄한 고난 속에서도

민들레처럼 민들레처럼 그렇게 저는 다시 설 것입니다.













신혼일기



길고긴 일주일의 노동 끝에

언 가슴 웅크리며

찬 새벽길 더듬어

방안을 들어서면

아내는 벌써 공장 나가고 없다.



지난 일주일의 노동

긴 이별에 한숨지며

쓴 담배연기 어지러이 내어뿜으며

혼자서 밤들을 지낸 외로운 아내 내음에

눈물이 난다.



깊은 잠 속에 떨어져 주체못할 피로에 아프게 눈을 뜨면

야간일 끝내고 온 파랗게 언 아내는

가슴위로 엎으러져 하염없이 쓰다듬고

사랑의 입맞춤에

내 몸은 서서히 생기를 띤다.



밥상을 마주하고

지난 일주일의 밀린 얘기에

소곤소곤 정겨운

우리의 하룻밤이 너무도 짧다.

























다시



박노해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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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吳潤 화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생애



1946년 부산 동래구 낙민동에서 소설가인 오영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년기는 경남여고

 미술과 교사를 지내던 아버지를 따라 바다가 보이는 동구 수정동 경남여자고등학교 관사

에서 살았다. 전후 혼란기인 1952년 수정국민학교에 입학했으나, 피난민으로 인한 인구의

 증가로 1953년 흙바닥에 책걸상을 놓고 수업하던 수성국민학교로 분교한다. 국민학교 4학

년을 마친 1955년 서울 돈암동 신흥사 입구 배밭골로 이사와서, 돈암국민학교로 전학왔다.

내성적인 조용한 성격으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던 중 누나 오숙희와 친분이 있던 김지

하와 알게된다.



 1965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에 입학했다. 1968년 휴학하면서 한국 무전여행을 했다.

1969년 대학 복학 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선후배 사이던 오경환, 임세택 등과 함께 현실

동인을 결성하여 리얼리즘 미술운동을 제창하고, 김지하 등과 함께 “현실동인 제1 선언문”

을 발표했다.



1970년 8월에 대학교를 졸업한 후 1971년 군대에 입대했으나, 위장병이 악화되어 수술을 받

고 1972년 의병제대 했다. 제대 후 경주에서 윤광주, 오경환과 같이 전돌 공장에서 일하면서

 신라시대에서 부터 내려오는 전통 흙을 다루는 기술을 공부한다. 이후에는 일산에서 임진택

이 운영하는 전돌공장에서 조건영과 함께 일하기도 했다. 1976년 한윤수가 운영하는 청년사

가 설립되어 삽화도 제작하고, 지리산, 한탄강 등 현장 답사를 다니기도 했다.



1977년 박명자와 결혼하고 수유리에 방을 얻어, 1977년 3월 선화예술고등학교 미술과 교사가

 되었다. 1979년 5월에 부친 오영수가 작고하고, 그해 11월 19일 젊은 작가들이 모인 “현

실과 발언” 창립회원으로 동인 활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상징적인

 존재가 된다. 김지하의 시집 《오적(五賊)》과 이원수의 전래 동화집 《땅속나라 도둑귀신》

의 판화 삽화와 표지화를 비롯하여 정치적 민주화 운동 및 투쟁을 지원한 포스터와 대형 걸

개그림 제작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1980년부터 1983년까지 현실과 발언 동인전에 계속 참여하면서, 1982년 석형산, 김호득 등과

 함께 서대문 미술학원을 설립하여 조소를 지도한다. 이후 잦은 음주와 흡연, 성격과 가치관

의 차이로 부인과 불화하고 건강이 악화된다. 1983년 7월 간경화로 고려병원에 입원했다가,

 8월에 퇴원하여 민간요법으로 치유를 했으나, 1984년 10월 다시 건강이 악화되어 진도로 요

양을 떠난다. 1985년 3월 서울로와서 1986년 5월 3일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을 개최했다.

1986년 5월 22일 별거상태였던 아내와 합의이혼했다. 판화집 칼노래를 출간하고, 화실을 준비

하는 등 바쁘게 생활하다가 갑자기 1986년 7월 5일 마흔한 살 나이로 짧은 생을 마쳤다.



현대 판화 선구자로 평가받았으며,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가지고 민화, 무속화, 불화,

 탈춤, 굿 등 한국 전통의 민중 문화를 연구하고 이를 민족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했다.

 해학과 민중적 신명, 한이 날카로운 칼맛을 통한 표현적인 선을 통해 형식과 내용의 탁월한

통일을 보여준다. 한국 민화나 풍속화 같은 전통 미술의 형식을 빌러 강렬한 선과 형태로 민

중의 삶과 애환, 분노를 표현을 표했던 오윤의 목판화는 민중 판화의 전형이 되었다.



작품

판화를 비롯하여 수채화, 유화, 삽화, 조각, 탈 등으로 된 작품을 만들었으며, 걸개그림이나

 책 등으로 세상에 선보였다.

조각 작품으로 1974년 제작한 상업은행 구의동 지점에 내외벽 벽화와 동대문 지점에 외벽 장식

 테라코타가 있다.

<세상사람들>, 아이를 지키는 어머니를 그린 <대지>연작, 노동자의 헛헛한 뒷모습을 새긴 <노

동의 새벽>, 노동자와 서민들의 곤한 삶을 컬컬한 흑백 선묘의 얼굴과 땅땅한 인체구도로 포

착한 <칼노래> <북춤> <앵적가>등의 전통춤 몸놀림의 신명과 배경 칼선의 오밀조밀한 리듬감

으로 표현하는 등 1983년까지 대부분 흑백 목판화를 만들었다. 1984년부터는 간결한 장식적

색상을 도입한 작품으로 새로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마케팅>연작은 감로탱 불화, 콜라주, 키

치 모자이크 등이 뒤얽힌 파격적 작업으로 서구의 모더니즘, 팝아트와 맛닿아 있다. 해골 병

사와 사지 잘린 군상이 우리 현대사를 상징하는 <원귀도>, 머리 위로 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

는 <도깨비> <칼노래> 등 신명과 주술이 지배하는 영역까지 표현했다.

마지막 시기의 대형 유화로 《통일대원도》가 있다.









저서

오윤 (2010). 《오윤: 칼을 쥔 도깨비》. 현실 문화 연구. ISBN 9788992214919.

오윤 (2010). 《오윤: 3115, 날 것 그대로 의 오 윤》. 현실 문화 연구. ISBN 9788992214926.

김문주, 오윤 (2007). 《오윤: 한(恨)을 생명의 춤으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ISBN 9788991057326.

오윤 (2006). 《오윤: 낮도깨비 신명마당》. 컬처북스. ISBN 9788992074155.

성완경, 허진무 (2005). 《오윤: 희망을새긴판화가 (어린이 미술관)》. 나무숲. ISBN 898900425X. (사후기념)

편집부 (1996). 《오윤 동네사람 세상사람》. 학고재. ISBN 9788985846172. (오윤 10주기 추모 판화전각집)

오윤 (1986). 《칼 노래: 吳潤 版畵集》. 그림마당·민.



-출처: 위키백과 '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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