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3.

[일화] 아홉 번 솥을 걸다




[일화] 아홉 번 솥을 걸다


조선 선조 때 금강산에 무전사라는 절이 있었다. 절의 주지는 서산대사였다.

하루는 서산대사가 절에서 땔감을 준비하는 개똥이라는 사람을 불렀다. 개
똥이는 평소 참을성이 있는 사람으로 칭찬이 자자했다. 서산대사는 개똥이
에게 내일 있을 법회에 참석한 손님들의 점심공양을 위해 미리 가마솥을
준비하도록 일렀다.

대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개똥이는 자기 몸집만한 가마솥을 짊어지고 절
뒤뜰로 갔다. 그리고 적당히 쌓은 돌무더기에 흙을 바른 뒤 그 위에 가마솥
을 걸었다. 잠시 후 뒤뜰에 나타난 서산대사는 탐탁치 않은 듯한 얼굴로
말했다.

"개똥아, 틀렸다. 다시 가마솥을 걸어라!"

개똥이는 알겠노라고 깍듯이 고개를 조아린 뒤 잘못된 부분을 찾아 가마솥
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다시 손을 본 개똥이는 얼른 대사에게
뛰어갔다. 그러나 대사는 이번에도 시원치 않은 듯 고개를 저었다.

"허허, 다시 하여라!"

도대체 어디가 잘못된 건지 아리송했지만 개똥이는 별 내색없이 아궁이와
굴뚝까지 살펴보았다. 개똥이가 이제는 되었다는 얼굴로 대사에게 달려갔
지만 뒤뜰로 와 본 서산대사는 부지런히 뒤뜰을 오가며 개똥이에게 말했다.

 '틀렸어', '다시해' '다시 걸어라.'

그러나 개똥이의 얼굴색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드디어 아홉번째, 다시
솥을 걸기 위해 뒤뜰로 향하던 개똥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구정선사님, 그 자리에 정좌해 주십시오."

서산대사의 목소리였다. 놀란 개똥이에게 대사는 예를 갖춘 절을 세 번 한
뒤 입을 열었다.

"이제 당신은 모든 법리를 깨치신 선사이십니다.
아홉번이나 솥을 걸었어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으셨으니 ….
이에 아홉 九자에 솥 鼎자를 써 구정선사라 부르겠사옵니다.
소승은 묘향산으로 돌아갈 터이니 이 절을 맡아주십시오."

서산대사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은 개똥이는 그후로 불교를 훌륭히 이끄는 지
도자가 되었다.
 <월간 좋은 생각, 1995년 2월호,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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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선사는 신라시대 무염대사의 제자라는 설도 있음.




[솥을 거는 구정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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