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4.

[팝송] 감동의 노란 손수건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명곡팝송] 감동의 노란 손수건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실제로 있던 일이라고 합니다. 아주 유명한 사연이죠.
아시는 분도 다시한번 그 느끼을 되새겨보시길...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기사라는데 죔 깁니다. 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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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동영상]

남쪽으로 가는 그 버스 정류소는 언제나 붐비었다. 생기찬 모습의 젊은 남녀 세 쌍이 까
불거리며 샌드위치와 포도주를 넣은 주머니를 들고 버스에 올랐다. 플로리다주에서도
이름 높은 포트 라우더데일이라는 해변으로 가는 버스였다.

승객이 모두 오르자 버스는 곧 출발했다. 황금빛 사장(沙場)과 잘게 부서져 오는 하얀
파도를 향하여. 차장 밖으로 추위 속에 움츠러든 회색의 뉴욕 시가가 뒤로 뒤로 미끄러
져 흘러갔다.

세 쌍의 남녀들은 알지 못한 곳으로의 여행이 주는 흥분 때문에 계속 웃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들도 뉴저어지주를 지나갈 무렵쯤 되어서는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회복하여
조용해져 가고 있었다.

그들의 앞자리에는 몸에 잘 맞지 않는 허술한 옷차림의 한 사내가 돌부처처럼 묵묵히
앞쪽만 응시하고 앉아 있었다. 먼지로 더러워진 얼굴만으로는 나이가 어림되지 않았다.
그는 입술을 굳게 깨물고 뒤에서 조잘거리는 그 남녀들이 무안해질 만큼 한사코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밤이 깊어서 버스는 위싱턴 교외의 어떤 음식점 앞에 멈추었다. 승객들은 다투어 버스
에서 내려 허기진 배를 채웠다. 단 한사람 그 돌부처 같은 사내만이 그대로 눌러앉아 있
었다. 젊은이들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그의 거동에 점차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들은 멋대로 그에 대한 여러 가지를 상상
하기 시작했다. 배를 타던 선장일까, 아니면 아내와 싸우고 집에서 도망쳐 나오는 사람?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퇴역 병사일까?

식사를 마친 승객들을 태우고 버스가 워싱턴을 떠날 때 일행 중의 용감한 여자가 그 남
자의 옆자리에 가 않아 말을 걸었다. 그녀는 자기 소개를 하고 나서
 "우리는 플로리다로 가는 길인데 처음 가는 길이거든요.
듣자니까 그렇게도 경치가 멋지다면서요?"하고 명랑하게 물었다.

"그렇지요" 한참만에 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순간 그의 얼굴에 야릇한 우수
의 그림자 같은 것이 어렸다. 잃어버렸던 옛 기억이라도 떠오른 것이었을까?

"포도주 좀 드시겠어요?" 자신을 얻은 젊은 여자가 그에게 다시 말했다.

"고맙소" 그는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 여자가 컵에 따라 주는 포도주를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다시 완강한 침묵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여자가 다시 일행 가운데로 돌아가자 그는 잠을 청하려는 듯 등을 뒤로 기대며 눈을 감
았다.

아침이 되었다. 버스가 다시 음식점 앞에 섰다. 이번에는 그 사내도 승객들을 따라 식
사를 하러 내려왔다. 어젯밤 말을 붙였던 그 젊은 여자가 그에게 자기들과 자리를 같이
 하자고 제의했다. 그는 몹시 수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그는 마음이 뒤숭숭한 사람이 으레 그러듯 연신 담배를 피워 물곤 하였다. 젊은이들은
 즐거움에 들떠 해변 모래사장에서의 멋진 야영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리 높여 재잘거렸다.

식사를 끝내고 모두들 다시 버스에 오르자 그 젊은 여자가 또 그의 옆자리에 가 앉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 사내는 그 젊은 여자의 호기심에 두 손을 들었다는 듯 괴로운 표정
으로 천천히 자기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내의 이름은 빙고, 지난 4년 동안 뉴욕의 형무소에서 보내다가 이제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결혼은 하셨던가요?" 젊은 여자가 혀를 끌끌 차고 나서 물었다.

"잘 모르겠소"

"잘 모르다니요?" 그 여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형무소에 있는 동안 나는 아내에게 편지를 냈었소" 그는 가느스름하게 눈을 뜨고 말했다.

"내가 오랫동안 집을 비워야 할 형평인 만큼 만일 그렇게 오래도록 나를 기다릴 수 없다
고 생각되든지, 아이들이 자꾸 아버지를 찾는다든지, 혹은 혼자 사는 것이 괴롭고 고생
이 된다면 나를 잊어 달라고 했소.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재혼해도 좋다고 말이오.
그 여자는 훌륭한 여인이오. 나를 그냥 잊어버려 달라고 썼소. 편지를 안 해도 좋다고 말
이오. 그 뒤로 아내는 편지를 하지 않았소. 3년 반 동안이나……"

"그런데 지금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이란 말이죠?
어떻게 될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그렇소" 그는 조금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사실은 지난주일 가석방 결정이 확실해지자 나는 또 편지를 썼소. 옛날에, 우리는 그때
부른스위크라는 곳에 살았는데, 그 마을 어귀에 커다란 참나무가 한 그루 있소. 나는 편
지에서, 만일 나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라면 그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붙들
어 매어 두라고 말했소. 노란 손수건이 참나무에 걸려 있으면 내가 버스에 내려 집으로
갈 것이라고. 만일 재혼을 했거나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라고, 나
도 잊겠다고 썼소. 손수건이 보이지 않으면 나는 그냥 버스를 타고 어디로건 가 버리는 거요"

여자는 깜짝 놀랐다.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그녀의 일행들도 빙고가 보여주는 아내의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이제 잠시 후에 전개될 광경에 대해서 지대한 호기심을 보였다. 마
치 자기들의 일이기나 한 것처럼 모두들 흥분에 들떠 제나름대로 상상의 날개를 폈다.

꾸겨지고 낡아빠진 빙고의 사진 속에는 부인과 세 자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부인은
비록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그 표정 속에는 착한 마음과 얌전한 태도가 잘 나타나 있었다.
사진 속의 어린애들은 아직 어렸다.

버스는 계속 달렸다. 마침내 이정표는 부른스위크가 20여마일 밖에 남지 않았음을 가르
쳐 주었다. 그러자 젊은이들은 모두 오른쪽 창문 옆자리로 다가붙어 빙고가 말한 그 커다
란 참나무가 나타나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을 기다렸다.

이 이야기는 다른 승객들에게도 전해져 부른스위크가 가까워 올수록 버스 안에는 뒤숭
숭한 설레임의 공기가 흘렀다. 그리고 이상스런 정적이 버스 안을 채웠다. 어두컴컴한
침묵의 구름에 휩싸인 듯한 버스 안의 분위기는 마치 그 빙고라는 사나이가 집을 비운
그 잃어버린 세월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빙고는 그대로 조용히 안자 있었다. 흥분한 표정을 보이거나 얼굴을 돌려 창 밖을 내다
보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굳어진 그 얼굴에서 누구라도 긴장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마치 이제 곧 눈앞에 나타난 그 실망의 순간을 대비하여 마음속으로 각오를 단단
히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마을과의 거리는 20마일에서 15마일로. 다시 10마일로 점점 가까워졌다.

물을 끼얹은 듯한 버스 안의 정적은 계속되었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만이 꿈결에서처
럼 아스라하게 일정한 리듬으로 고막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별안간 젊은이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젊은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리
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치며 춤을 추듯 뛰었다.

그때까지도 침묵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빙고 한사람뿐이었다. 그는 멍하니 넋 잃은
사람처럼 차장 밖 멀리 보이는 참나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나무는, 그 참나무는 온통 노란 손수건의 물결로 뒤덮여 있었다. 20개, 30개, 아니 수
백개가 바람 속에 환영의 깃발로 마구 물결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박수를 치며 소리치고 있는 동안, 늙은 전과자 빙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앞문 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오천석 번역, 샘터사 발행, 1974년판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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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손수건

1973년 한해동안 미국 최다 음반 판매는 물론 빌보드지 4주 연속 수위였고,
1974년 2월 American Music Award에서 " 'Favorite Pop Single'상을 수상했던
Tony Orlando and Dawn 의 노래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ak Tree'의
가사에 얽힌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플로리다행 버스에 허술하고 덥수룩한 수염에
굳게 닫힌 입술, 우울하고 굳은 표정으로 앉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빙고, 지난 4년 동안 뉴욕 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하다 퇴소하여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그의 얼굴이 그처럼 굳어 있는 이유는 4년간이나
소식이 끊긴 아내가 과연
자기를 반가이 맞아 줄 것인가 하는
불안함 때문이었습니다.

석방 전에 그는 아내에게 편지를 띄워
아직도 재혼을 하지 않고 기꺼이 맞아준다면
그 표시로 동구 밖 커다란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붙들어 매어 두라고 했습니다.

만약 노란 손수건이 안 보이면 그는 자기 고향을 지나쳐
어디든 떠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고향이 가까워 올수록 초조한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고향이 내려다보이는 마지막 언덕을 넘자
그는 자기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참나무에는 한 개가 아닌 수 백 개의 노란 손수건이
환영의 깃발처럼 바람에 물결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감동과 감격으로 눈물을 흘리며 빙고는
고향 땅에 벅찬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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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토니 올랜도의 싱글 수록 음반 《Tuneweaving》
-발매일 1973년 2월 19일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는 1973년 미국 팝 뮤직 그룹인 토니 올랜도 & 다운
(영어: Tony Orlando & Dawn)의 히트송이다. 이 곡은 어빙 레빈(영어: Irwin Levine)과 L. 러셀 브
라운(영어: L. Russell Brown)이 작곡과 작사를 하고, 행크 매드레스(영어: Hank Medress)와 데이
브 에펠(영어: Dave Appell)이 프로듀싱을 맡았다. 1973년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에서 4주 동안
 1위에 머물렀고, UK 넘버 원 싱글 차트에서도 4주 동안 1위, 오리콘 인터내셔널 차트에서는 2주
 동안 1위를 차지했으며, 발매 3주 만에 320만 장이 팔렸고, 같은 해 총 91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가
는 등 그 해 미국과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려나간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빌보드 지 1973년 '올해의 노래' 로 선정되었으며, 빌보드 지에서 발표한 Billboard's Greatest
 Songs of all time 에서 37위를 기록하였다.[1] 그 외 이 곡은 조니 카버(영어: Johnny Carver)와
 배리 매닐로도 불러 히트했다.



'노란색 리본'의 유래는 청교도 혁명까지 올라간다. 당시 의회파 소속의 청교도들은 젠틀맨 혹은
 자유농민으로 매우 급하게 조직되었으며, 통일된 제식군복이 없는 상황에서 아군 식별이 필요했
다. 그래서 명도가 높은 노란색으로 띠를 만들어 어깨나 허리에 걸치고 전투에 나갔는데, 이렇게
사용하게 된 노란색 띠는 올리버 크롬웰이 조직한 철기대나 신형군에게도 사용되었고, 의회파 소
속 전 군대에서도 사용하게 되었다.

 실제로 이런 노란색 띠는 윌리엄 프레더릭 예임스(William Frederick Yeames)의 유화인 'When
 Did You Last See Your Father?'나 켄 휴즈(Ken Hughes)의 1970년도 영화인 '크롬웰(Cromwell)
'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사용된 노란색 리본은 청교도들의 아메리카 대륙이민으로 미국
에도 전파되었다.

이런 '노란색 리본'이 언제부터 회상이나 그리움의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19세기 미국에서는 '노란색 리본'에 관한 이런 이야기가 구전되었는데, 그것은 남북전쟁
당시 한 여성이 미 육군 기병대에 복무하고 있던 남편 혹은 사랑하는 이에 대해 헌신을 증명하기
 위해 돌아올 때까지 머리카락이나 목에 노란 리본을 매달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전설은 당시
 미 기병대의 연대병과장이 노란색이어서 노란색은 미 기병대를 상징하는 색으로 통했고, 서부
에서 복무하던 기병대 군병들은 먼지를 막기 위해 손수건을 두르고 정찰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
데, 그 손수건 색깔이 보통 노란색이었다는 점에서 그 기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서부를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 프레더릭 레밍턴(Frederic Remington)의 1888년 그림
인 'Lieutenant Powhatan H. Clarke, Tenth Cavalry'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미 육군에서는 노란색 리본을 주제로 한 많은 행진곡이 불렸는데, 노란색 리본을 언급한
 최초의 곡은 조지 A. 노턴(George A. Norton)이 1917년 작곡한 'Round Her Neck She Wears
a Yeller Ribbon(For Her Lover Who Is Fur, Fur Away)'였다. 이 곡은 가상의 인물인 수지 심킨
스(Susie Simpkins)라는 여성이 군인으로 출병한 사일러스 허버드(Silas Hubbard)라는 연인을
기다리는 내용의 곡으로, 이 중 노란색 리본에 대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Round her neck she wears a yeller ribbon,
She wears it in winter and the summer so they say,
If you ask her "Why the decoration?"
She'll say "It's fur my lover who is fur, fur away.


1949년에는 존 포드가 감독을 맡은 동명의 서부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주
로 기병대와 관련된 유래로, 현재 사용되고 있는 보편적인 의미의 '노란색 리본'과는 거리가 있다.

그 후 1959년에 펜실베이니아 주의 유명한 법학자였던 커티스 보크(Curtis Bok)가 캘리포니아
주 치노(Chino)에 있던 교도소장인 케니언 J. 스쿠더(Kenyon J. Scudder)에게 들은 말을 토대
로 'Star Wormwood'라는 책을 썼는데, 그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It is the story of two men in a railroad train. One was so reserved that his companion had
 difficulty in persuading him to talk about himself. He was, he said at length, a convict returning
 from five years' imprisonment in a distant prison, but his people were too poor to visit him
and were too uneducated to be very articulate on paper. Hence he had written to them to make
 a sign for him when he was released and came home. If they wanted him, they should put a
white ribbon in the big apple tree which stood close to the railroad track at the bottom of the
 garden, and he would get off the train, but if they did not want him, they were to do nothing
and he would stay on the train and seek a new life elsewhere. He said that they were nearing
 his home town and that he couldn't bear to look. His new friend said that he would look and
 took his place by the window to watch for the apple tree which the other had described to him.
 In a minute he put a hand on his companion's arm. "There it is," he cried. "It's all right! The
 whole tree is white with ribbons.

이것은 열차 안의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둘 중 한 남자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아,
길동무인 다른 남자는 자신에 대해 한 번 말해보라고 설득하는데 애를 먹었다. 이윽고 그가 말하
기를, 그는 죄수로 멀리 있는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가 5년 만에 출옥했는데, 가족들은 너무
가난해 찾아오지도 못하고, 신문 기사를 거의 못 읽을 정도로 배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갈 때 자신을 위한 신호를 만들어 놓으라고 편지를 썼는데, 만약
가족들이 그를 원한다면 정원 맨 끝자락 철도 가까이에 있는 큰 사과나무에 흰 리본을 묶어 두고,
 그러면 자신이 기차에서 내리겠다는 것이었다.

만약 가족들이 그를 원치 않는다면 아무것도 걸어두지 않으며, 그러면 그는 기차에서 내리지 않
고 다른 곳에서 새 인생을 찾을 것이었다. 그는 마을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으며, 그래서 밖을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새 친구는 그 대신에 창가 쪽에 앉아 사과 나무를 보고 말해주겠노라
고 했다. 시간이 흘러 그는 남자의 팔을 잡았다. "바로 여기야.", 그가 말했다.

 "세상에! 나무 전체가 흰 리본으로 덮여 있어!"

이 이야기는 비록 전체적인 골격은 가사의 내용과 같지만, '열차'나 '사과 나무', '흰 리본' 등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이러한 유형의 돌아오는 유형수에 관한 이야기는 1960년대 종교적인 목적
의 출판물이나 미국 교회의 청년 사역 활동에서 구설로 전해지기도 했는데, 아마 이러한 이야기
가 누가복음의 '탕자의 비유(Parable of the Prodigal Son)'와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일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형식의 '노란색 리본'에 관한 이야기의 골격과 구체적인 사항은 1971년
신문 칼럼니스트인 피트 헤밀(Pete Hamill)이 뉴욕 포스트에 기고한 'Going Home'이라는 칼럼
에서 처음으로 찾을 수 있다. 이 글은 플로리다 주의 포트로더데일로 가는 버스에 있던 한 대
학생이 그 도시에서 유형수였던 한 사람을 사귀게 되었는데, 그가 길가의 떡갈나무에 묶여있는
 '노란색 손수건' 을 찾고 있었다는 내용의 칼럼이었다. 이 이야기가 유행하면서 9달 후인 1972년
 6월에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다시 올라왔고, 같은 달 미국 ABC에서는 이 이야기를 각색한 드
라마가 방영되었는데, 여기서 배우 제임스 얼 존슨(James Earl Jones)이 돌아오는 유형수 역할
을 맡았다. 또한 나중에 피트 헤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1977년 야마다 요지(山田 洋次)가
《행복의 노란 손수건》 (幸福の黃色いハンカチ)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1973년 어빙 레빈과 러셀 브라운이 지은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가 크게
 성공하자, 헤밀은 이 곡은 자신의 칼럼을 토대로 제작된 곡이라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레빈과
브라운은 자신들이 군에 복무하면서 이런 유사한 이야기를 들었고, 귀환병을 유형수로 바꾸는
등 약간의 수정을 해 작곡과 작사를 했다고 주장했으며, 변호인이 증인으로 불려온 민속연구가
가 헤밀이 쓴 이전의 여러 유사한 이야기를 증거로 제시하면서 그는 패소했다고 한다.


이 음악은 이후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탔는데, 방송음악협회(Broadcast Music Incorporated,
 BMI)에 의하면 이 곡은 라디오에서 17년동안 총 300만번 이상이 나왔다고 한다. 필리핀의 야당
 지도자인 베니그노 아키노가 3년간의 미국 망명 후 필리핀으로 돌아올 때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암살당하자, 이 노래와 노란색은 니노이를 상징하는 모티브가 되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반대
 시위에서 많이 사용되었으며, 1986년 필리핀 총선에서 아키노의 미망인인 코라손 아키노가 켐
페인을 벌일 때도 사용되었다. 베니그노 아키노가 암살된 날인 8월 21일은 필리핀의 국경일인
니노이 아키노 데이(Ninoy Aquino Day)인데, 이 날 마닐라 시내엔 노란색 리본이 많이 걸린다.

또한 미국에서는 노란색 리본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베트남에서 귀환하는 장병들을 대상으로
사용되거나,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 억류된 인질의 석방을 기원하며 전국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91년 걸프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에서 귀환 장병들을 환영하는 표시로도 사
용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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