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16.

[명시음악] 김춘수 시모음 -꽃 외 Sicabro Fair (Whisper)






[명시음악]  김춘수 시모음 -꽃 외  Sicabro Fair (Whisper)






[음악동영상]

















01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02 가을 저녁의 詩


누가 죽어 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롬 속에서
물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온 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03 갈대 섰는 風景



이 한밤에
푸른 달빛을 이고
어찌하여 저 들판이
저리도 울고 있는가

낮동안 그렇게도 쏘대던 바람이
어찌하여
저 들판에 와서는
또 저렇게도 슬피 우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바다보다 고요하던 저 들판이
어찌하여 이 한밤에
서러운 짐승처럼 울고 있는가





04 너와 나


맺을 수 없는 너였기에
잊을 수 없었고

잊을 수 없는 너였기에
괴로운 건 나였다.

그리운 건 너
괴로운 건 나.

서로 만나 사귀고 서로 헤어짐이
모든 사람의 일생이려니.






05 부재


어쩌다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
울타리는
슬픈 소리로 울었다

맨드라미 나팔꽃 봉숭아 같은 것
철마다 피곤
소리 없이 져버렸다

차운 한겨울에도
외롭게 햇살은
靑石(청석) 섬돌 위에서
낮잠을 졸다 갔다

할 일 없이 세월은 흘러만 가고
꿈결같이 사람들은
살다 죽었다






06 정


외로운 밤이면
자꾸만 별을 보았지.
더 외로운 밤이면
찬란한 유성이 되고 싶었지.

그토록 그리움에
곱게곱게 불타오르다간

그대 심장 가장 깊은 곳에
흐르는 별빛처럼
포옥 묻히고 싶었지.





07 꽃을 위한 서시(序詩)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 드는 이 무명(無明)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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