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7.

[국악] 기생들의 사랑시 모음 가시리




[국악] 기생들의 사랑시 모음 가시리





[음악동영상]












  










  









  








01
배꽃 흩어뿌릴 때 울며 잡고 이별한 임
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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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계랑(桂娘). 여류시인. 부안의 기생.
성은 이(李) 본명은 향금(香今), 호는 매창
(梅窓), 계생(桂生). 시조 및 한시 70여 수가
 전하고 있다.

황진이와 비견될 만한 시인으로서 여성다운
정서를 노래한 우수한 시편이 많다.






02

弄珠灘上魂欲消  사랑을 나눈 시냇가에서 임을 보내고
獨把離懷寄酒樽  외로이 잔을 들어 하소연할 때
無限烟花不留意  피고 지는 저 꽃 내 뜻 모르니
忍敎芳草怨王孫  오지 않는 임을 원망하게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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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영양 기생
참 고 ; 농주(弄珠)―연인과 함께 사랑을 속삭임
옛날 기생들의 사랑시 모음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03
不是傷春病  이것은 봄이 감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고
只因憶玉郞  다만 임을 그리워한 탓이네
塵豈多苦累  티끌같은 세상 괴로움도 많아
孤鶴未歸情  외로운 목숨 죽고만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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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계생(桂生) 혹은 매창(梅窓).부안 기생.
[매창집(梅窓集)]이 전한다.





04
池邊楊柳綠垂垂  시냇가의 실버들 유록색 가지
蠟曙春愁若自知  봄시름을 못 이겨 휘늘어지고
上有黃隱啼未己  꾀꼬리가 꾀꼴꾀꼴 울음 그치지 못하는 것은
不堪趣紂送人時  임 이별의 슬픔 이기지 못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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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금원(錦園).원주 사람.김시랑, 덕희(金侍郞 德熙)의 소실.
참 고 ; 황리(黃麗鳥)―꾀꼬리






05
梅花 옛등걸에 봄철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柯枝)에 피음직도 하다마는
춘설(春雪)이 난분분(亂紛紛)하니 필듯말듯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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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매화(梅花). 생몰년 미상, 조선시대
평양 기생. 애절한 연정을 읊은
시조 8수 (그중 2수는 불확실함)가 『청구영언』에 전한다.






06
郞去月出來  임 가실 제 달 뜨면 오마시더니
月出郞不來  달은 떠도 그 임은 왜 안 오실까
相應君在處  생각해 보니 아마도 임의 곳은
山高月出遲  산이 높아 뜨는 달 늦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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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능운(凌雲).
참 고 ; 상응(相應)―생각해 보니








 07
洞天如水月蒼蒼  마을 하늘은 물이런 듯 맑고 달빛도 푸르구나
樹葉蕭蕭夜有霜  지다 남은 잎에 서리가 쌓일 때
十二擴簾人獨宿  긴 주렴 드리우고 혼자서 잠을 자려니
玉屛還羨繡鴛鴦  병풍의 원앙새가 부러웁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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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취선(翠仙). 호는 설죽(雪竹) 김철손(金哲孫)의 소실.
참 고 ; 십이상렴(十二擴簾)―긴 발을 뜻함







08
駐馬仙樓下 말은 다락 아래 매어 놓고
慇懃問後期 이제 가면 언제나 오시려나 은근히 묻네
離筵樽酒盡 임 보내려는 때 술도 떨어지고
花落鳥啼時 꽃 지고 새가 슬피 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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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일지홍(一枝紅). 성천(成川)의 기생.
참 고 ; 선루(仙樓)―신선이 산다는 다락.








 09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에게
잠자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나인가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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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홍랑(洪娘).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 때의 명기






10
靑山은 내 뜻이오 綠水는 임의 情이로다
綠水 흘러간들 靑山이야 변할손가
綠水도 靑山을 못잊어 울면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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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황진이(黃眞伊).생몰 미상. 조선 중종 때의 명기.
개성 출신.






11
千絲萬縷柳垂門  실버들 천만 가지 문 앞에 휘늘어져서
綠暗如雲不見村  구름인 듯 인가를 볼 길 없더니
忽有牧童吹笛過  문득 목동이 피리불며 지나간다
一江烟雨自黃昏  강 위에 보슬비요 날도 저물어 가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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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죽향(竹香). 호는 낭각(琅珏). 평양 기생.
참 고 ; 연우(烟雨)―아지랑이가 낀 것처럼 내리는 비





12
移棹淸江口  노를 저어 맑은 강 어귀에 이르니
驚人宿驚飜  인적에 해오라기 잠 깨어 날고
山紅秋有色  가을이 짙은 탓인가 산빛은 붉고
沙白月無痕  흰 모래엔 달이 둥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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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추향(秋香)





13
誰斷崑崙玉  崑崙의 귀한 玉을 누가 캐어
裁成織女梳  織女의 얼레빗을 만들었는가
牽牛一去後  오마던 임 牽牛 안 오시니
愁擲碧空虛  근심에 못 이겨 허공에 던진 거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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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황진이(黃眞伊)생몰 미상.조선 중종 때의 명기.
개성 출신.





14
九月金剛蕭瑟雨  금강산 늦가을 내리는 비에
雨中無葉不鳴秋  나뭇잎은 잎마다 가을을 울리네
十年獨下無聲淚  십년을 소리없이 흐느낀 이 신세
淚濕袈衣空自愁  헛된 시름에 가사만 젖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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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혜정(慧定). 여승(女僧).
참 고 ; 가의(袈衣)―중이 입는 옷.





15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로 얼어 자리
원앙 베개(鴛鴦枕)와 비취(翡翠衾) 이불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서 잘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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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한우(寒雨). 조선 선조 때 임제(林悌)와 가까이
지내던 평양 기생







16
十日長霖若未晴  열흘이나 이 장마 왜 안 개일까
鄕愁蠟蠟夢魂驚  고향을 오가는 꿈 끝이 없구나
中山在眼如千里  고향은 눈 앞에 있으나 길은 먼 千里
堞然危欄默數程  근심 어려 난간에 기대 헤아려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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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취연(翠蓮). 자는 일타홍(一朶紅). 기생
참 고 ; 장림(長霖)―긴 장마
중산(中山)―지명. 사랑하는 임이 있는 곳, 또한 고향




17
落花天氣似新秋  꽃이 지는 봄은 첫 가을과 같네
夜靜銀河淡欲流  밤이 되니 은하수도 맑게 흐르네
却恨此身不如雁  한 많은 몸은 기러기만도 못한 신세
年年未得到原州  해마다 임이 계신 곳에 가지 못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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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죽서(竹西). 철종 때 사람. 서기보(徐箕輔)의 소실





18
비가 내리다가 개고 눈이 많이 내린 날에
서리어 있는 수풀의 좁디좁은 굽어돈 길에
다롱디우셔 마득사리 마득너즈세 너우지
잠을 빼앗아간 내 임을 생각하니
그러한 무서운 길에 자러 오겠는가?

때때로 벼락이 쳐서 無間地獄에 떨어져
고대 죽어버릴 내 몸이
내 임을 두고서 다른 임을 따르겠는가?

이렇게 하고자 저렇게 하고자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망설이는 期約입니까?
맙소서 임이시여 임과 한 곳에 가고자 하는 기약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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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작자 미상





河橋牛女重逢夕  은하수 다리에서 견우직녀 이 날 저녁에 만나
玉洞郞娘恨別時  옥동에서 다시 슬프게 헤어지네
若使人間無此日  이 세상에 이 날이 없었더라면
百年相對不相移  백년을 즐겁게 살아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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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연희(蓮喜)
참 고 ; 하교(河橋)―은하수 다리

~출처:園圃~
http://blog.daum.net/domalgog/5239






--------------[더 읽을거리]


기생 [ 妓生 ]

춤 ·노래 또는 풍류로 주연석이나 유흥장에서 흥을 돋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관기(官妓) 등의 총칭.

그 원류는 신라 24대 진흥왕 때에 화랑의 원화에서 발생하였다고도 하고, 정약용과
 이익은 고려시대부터 생겼다 주장하고 있다.

이 밖에도 전쟁 포로 중 부녀자의 노비화, 사노비의 매음녀화 등의 예를 추정할 수
있다. 고려 문종 때에는 팔관연등회에 여악(女樂)을 베푼 것이 관기(官妓)의 시초
라고도 하며, 여악은 후에 창기희(唱技戱)로 발전하여 조선시대에 들어와 많은 관
기가 생겨 태조가 개경에서 서울로 천도할 때 많은 관기가 따라갔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관기 설치 목적은 주로 여악(女樂)과 의침(醫針)에 있었으며, 따라서
 관기는 의녀(醫女)로서도 행세하여 약방기생, 또는 상방에서 침선(針線:바느질)
도 담당하여 상방기생이란 이름까지 생겼으나 주로 연회나 행사 때 노래 ·춤을 맡아
 하였고, 거문고 ·가야금 등의 악기도 능숙하게 다루었다.

관기는 지방관아에도 딸려 지방관의 위락(慰樂)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역대의
 왕이나 왕족으로 기생을 즐긴 예는 성종 ·수양대군 ·연산군 ·양녕대군 ·안평대군
등을 꼽을 수 있다.

기생을 관장하는 기관으로는 기생청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가무(歌舞) 등 기생이
갖추어야 할 기본 기예는 물론, 행의(行儀) ·시(詩) ·서화(書畵) 등을 가르쳐 그들
이 접대하는 상류 사족(士族)의 교양과 걸맞게 연마시켰다. 기생청은 후에 권번
(券番)으로 개칭되어 기생청의 기능을 맡았거니와, 서울과 평양에는 기생학교가
있어 15세에서 20세까지의 처녀를 입학시켜 가음곡 외에 예의 ·서예 등을 가르쳐
예능과 교양을 겸비하도록 하였다.

기생의 배출지로 이름났던 곳으로는 서울 ·평양 ·성천(成川) ·해주(海州) ·강계
(江界) ·함흥 ·진주 ·전주 ·경주 등이었다. 또한 시(詩) 등 문장으로 유명한 명기
(名妓)로는 황진이(黃眞伊) ·매창(梅窓) ·소백주(小柏舟) 등이 있으며, 의기(義妓)
로 유명하기는 평양의 계월향(桂月香), 진주의 논개(論介), 가산(嘉山)의 홍련
(紅蓮) 등이 있다.

기생제도는 조선시대에 발전하여 자리를 굳히게 되어 기생이라 하면 일반적으
로는 조선시대의 기생을 지칭하게 되며, 사회계급으로는 천민에 속하지만 시
와 서에 능한 교양인으로서 대접받는 등 특이한 존재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기생 [妓生] (두산백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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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음 [ prostitution , 賣淫 ]


사회적 의미로는 보통 여자가 돈 등 기타 대가를 받거나 받기로 약속하고 남자
에게 웃음이나 몸을 파는 행위.
매춘(賣春)이라고도 한다. 법률적으로는 윤락(淪落)행위라고 하여 불특정인으
로부터 금전 기타 재산상의 이익을 수수(收受) 또는 약속받거나 기타 영리의 목
적으로 성행위를 하는 일(윤락행위 등 방지법 2조)을 말한다.

매음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며, 종래에는 인간의 본능과 사회제도와의 관련에서
‘필요악(必要惡)’이라고 하여 공인(公認)된 일도 있으나 최근에는 윤리와 공공
질서면에서 ‘사회악’으로 단정하여 법률로써 금지하게 되었다.

매음의 역사는 고대 인도의 무희(舞姬)가 사원의 참배자에게 전 여성의 대표
로서 몸을 맡기고 그 보수를 받은 풍습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이집트·페니키
아·아시리아·페르시아 등에서도 이러한 풍습이 있었는데, 이를 총칭하여 사원
매춘(temple prostitution)이라고 한다.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 매음에도 여러
종류가 생겨났다. 성행위를 직무로 하는 남녀 노예, 위정관(爲政官)에 등록
하여 세금을 바치게 되어 있는 공창(公娼)이나 사창(私娼)의 집창(集娼), 가
무연(歌舞宴)이 끝난 뒤에 매음하는 예능인, 타이스나 사포 등 대표적인 개인
의 이름이 남아 있는 고급 사교계의 매음부 등이다. 로마도 그리스의 매음형태
를 답습하였다.

중세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매음을 금지했으나, 현실적으로는 사창만을 금지
했고, 공창의 매음은 세금을 바치는 대신에 보호를 받았다. 십자군원정 때에
는 대규모의 매음부 부대가 조직되기도 했다. 또, 농촌경제의 붕괴나 도시경
제의 길드의 모순에서 생활의 방도를 잃은 여성들 사이에서 많은 매음부가
생겨나, 국제적인 대시장이 열린 라이프치히·프랑크푸르트·리옹 등 대도시에
 집결하였다. 한편 궁정에서는 음유시인들이 귀부인들에게 매음행위를 하였다.

르네상스가 중세적 성(性)의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여 근대에 들어와서는
 매음이 성행하게 되었다. 정치적·경제적으로 몰락한 계급의 여성들이 창녀가
 되었는데, 17세기 런던에는 5만 명의 창녀가 있었다고 한다. 더욱이 매음만이
 아니고 새디스트들이 회초리로 때리면서 즐기기 위한 매음굴도 번창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콜럼버스 일행이 아메리카에서 원주민으로부터 옮아 온 성병
(매독)이 15세기 말부터 차차 퍼져 나가 사회문제가 되었다. 즉, 매음문제는
성도덕과 성병이라는 2중의 문제가 된 것이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춘희(椿姬)》로 상징되는 고등매음부가 생겨났다. 이
들은 창녀와 정숙한 여성의 중간형으로, 연애를 목적으로 하는 반사교계(半社
交界)의 여성들이었다. 교양이나 사교성도 갖추었으며, 변형된 형태의 매음부
로서 정치나 사교생활 또는 유행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는 성병의 무서움이 새삼 강하게 인식되었다. 코펜하겐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
면 성인남녀의 30%가 감염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공창의 검진(檢診)
이 실시되기 시작하였고, 매음금지운동이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가 20세기에 들
어와서는 문명국이 점차로 매음금지법을 제정하게 되어, 현재 이 금지법을 가
지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금지법이 생겼다고 해서 매음이
 즉시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법망을 피하면서 매음은 여전히 각국에서 계속되
고 있다.

한국의 경우 고대나 고려시대에 어떠한 매음이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양반 등 상류계급에서 소실(小室) 등 축첩제도가 공인
되었기 때문에 상류사회의 매음은 소실제도에 흡수되었다. 그러나 관기(官妓)
라고 하여 지방관아에 소속되어 지방사또의 수청을 드는 일종의 공인된 매음
제도가 있었다. 그리고 《춘향전》에서 알 수 있듯이 관기 출신의 여성들이
경영하는 술집에서 매음이 행해지는 경우가 있었으며, 《소춘풍전》에 보이듯
이 평양 등지의 고급 술집에서 양반들이나 상인들을 상대로 매음이 행해지기도
 하였다. 중·하류계급에서는 지방의 주막집 주모나 작부들이 나그네나 고을 사
람들을 상대로 매음을 하였고, 남사당 등 지방을 순회하는 예능인들이 공연이
끝난 뒤에 매음을 하였다. 한말(韓末)에 이르러서는 고급 술집에 가무나 기악
으로 손님을 접대하는 직업적인 예능을 갖춘 기생이 생겨나서, 주연과 가무연
이 끝난 뒤에 매음을 하였다. 국권피탈 이후 일본의 공창제도가 도입·실시되었
고, 일제말기에는 정신대(挺身隊)라는 명목으로 많은 처녀들을 전쟁일선지로
보내 강제 매음을 시킨 일도 있다.

8·15광복 후 미군이 진주하면서 미군을 상대로 한 매음이 미군부대 주변에서
성행하였으며, 역(驛) 주변과 여관·여인숙 또는 호텔·술집 주변에 사창가가 생
겨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매음을 금지하고 매음부들을 건전한 직업으로 선도
하기 위하여 1961년 ‘윤락행위 방지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윤락행위뿐만
아니라 윤락행위를 유인·권유·매개하는 행위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자를
처벌하며, 국가에서 윤락여성들을 보호·선도하기 위한 보호지도와 직업보도
 시설을 마련하여 건전한 직업교육을 시켜 자립갱생을 도모하고 있다. 그
러나 현실적으로는 좀처럼 매음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매음 [prostitution, 賣淫]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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