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영화] 컬트영화 베스트 걸작선 100선
오늘은 컬트영화에 대해 소개해본다. 예전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에는 문화관이나
영화제, 소극장을 찾아다니며 즐기던 영화들이 이제 클릭몇번이면 찾게되는 편한
세상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본 영화를 위주로 천천히 소개해 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컬트영화의
개념과 명작을 훑는 선에서 자료를 취합해보았다. -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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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영화 100선
1. 이레이저 헤드 (Eraserhead) / 데이빗 린치 / 1979년 / 미국 / 90분
2. 록키 호러 픽쳐 쇼 (The Rocky Horror Picture Show) / 짐 샤만 / 1975년 / 미국 / 95분
3. 프릭스 (Freaks) / 토드 브라우닝 / 1932년 / 미국 / 64분
4. 아리조나 유괴사건 (Raising Arizona) / 조엘, 에단 코엔 / 1987년 미국 / 94분
5. 충격의 복도 (Shock Corridor) / 사뮤엘 퓰러 / 1963년 / 미국 / 101분
6. 핑크 플라밍고 (Pink Flamingos) / 존 워터스 / 1972년 / 미국 / 95분
7. 미치광이 교수 (The Nutty Professor) / 제리 루이스 / 1963년 / 미국 / 107분
8. 엘 토포 (El Topo) / 알렉산드로 조도로브스키 / 1971년 / 멕시코 / 123분
9. 썸씽 와일드 (Something Wild) / 조나단 드미 / 1986년 / 미국 / 114분
10. 살아난 시체들의 밤 (Night of the Living Dead) / 조지 A. 로메로 / 1968년 / 미국 / 96분
11. 법에 위한 굴복 (Down by Law) / 짐 자무쉬 / 1986년 / 미국 / 107분
12. 황야의 무법자 (A Fistful Of Dollars) / 세르지오 레오네 / 1964년 / 이태리 / 96분
13. 어둠의 무렵 (Near Dark) / 캐드린 비글로우 / 1987년 / 미국 / 95분
14. 매드 맥스 Ⅱ : 로드 워리어 (Mad Max Ⅱ : The Road Warrier) / 조지 밀러 / 1981년 / 오스트레일리아 / 94분
15. 리포맨 (Repo Man) / 알렉스 콕스 / 1984년 / 미국 / 92분
16. 기생 살인자 (The Parasite Murders) / 데이빗 크로넨버그 / 1975년 / 캐나다 / 97분
17. 황무지 (Badlands) / 테렌스 멜릭 / 1974년 / 미국 / 95분
18. 애타게 수잔을 찾아서 (Desperately Seeking Susan) / 1985년 미국 / 103분
19. 리틀 숍 오브 호러 (The Little Shop of Horrors) / 로저 코먼 / 1960년 / 미국 / 70분
20. 돈을 갖고 튀어라 (Take The Money and Run) / 우디 알렌 / 1969년 / 미국 / 85분
21. 결투자 (The Duellists) / 리들리 스코트 / 1977년 / 영국 / 101분
22. 제 1형 위험 (第一型 危險) / 서극(徐克) / 1980년 / 홍콩 / 90분
23. 외계로 부터의 계획 '9' (Plan 9 from Outer Space) / 에드워드 우드 / 1956년 / 미국 / 79분
24. 컨터키 프라이드 무비 (Kentucky Fried Movie) / 존 랜디스 / 미국 / 78분
25. 피위의 대모험 (Pee-Wee's Big Adventure) / 팀 버튼 / 1985년 / 미국 / 91분
26. 퍼포먼스 (Performance) / 니콜라스 로그 / 1970년 / 영국 / 105분
27.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 (Texas Charisma Massacre) / 토비 후퍼 / 1974년 / 미국 / 83분
28. 신체 강탈자들의 침입 (Invasion of Body) / 돈 시겔 / 1956년 / 미국 / 80분
29. 이블 데드 (The Evil Dead) / 샘 레이미 / 1987년 / 미국 / 86분
30. 피핑 톰 (Peeping Tom) / 마이클 파웰 / 1960년 / 영국 / 109분
31. 어두운 별 (Dark Star) / 존 카펜터 / 1974년 / 미국 / 83년
32. 부모 (Parents) / 밥 밸러밴 / 1989년 / 미국 / 82분
33. 블랙록에서의 재수 없는 날 (Bad Day at Black Rock) / 존 스터지스 / 1955년 / 미국 / 81년
34. 박스카 버사 (바바라 허쉬의 공황시대) (Boxcar Bertha) / 마틴 스콜세지 / 1972년 / 미국 / 97분
35. 챈의 실종 (Chan is Missing) / 웨인 왕 / 1982년 / 미국 / 80분
36. 포인트 블랭크(수평사격 / Point Blank) / 존 부어맨 / 1967년 / 미국 / 92분
37. 투 레인 블랙탑 (Two-Lane Blacktop) / 몬티 헬만 / 1971년 / 미국 / 101분
38. 몬티 파이튼 비행 서커스 (Month Python and the Holy Grail) / 테리 길리암 , 테리존스 / 1974년 / 영국 / 90분
39.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Last Tango in Paris)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 1973년 / 프랑스. 이태리 / 129분
40. 우회 도로 (Detour) / 에드가 울머 / 1945년 / 미국 / 69분
41. 오페라의 밤 (A Night at the Opera) / 샘 우드 / 1935년 / 미국 / 92년
42. 와일드 원 (The Wild One) / 라줄로 베너딕 / 1953 / 미국 / 79분
43. 마타도르 (Matador) / 페드로 알모도바르 / 1985년 / 스페인 / 105분
44. 위안과 기쁨 (Comfort and Joy) / 필 포사이스 / 1984년 / 영국 / 105분
45. 만주인 후보자 (The Manchurian Candidate) / 존 프랑켄 하이머 / 1962년 / 미국 / 126분
46.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 (This Is Spinal Tap!) / 로브 라이너 / 1984년 / 미국/ 82분
47. 특급 비밀 (Top Secret!) / 제리 & 데이빗 주커, 짐 애브럼스 / 1984년 / 미국 / 90분
48. 그녀는 그것을 가져야만 해 (She's Gotta Heve It) 스파이크 리 / 1986년 / 미국 / 84분
49. 시계태엽장치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 스탠리 큐브릭 / 1971년 / 영국 / 136분
50. 드림 스케이프 (Dreamscape) / 조셉 루벤 / 1984년 / 미국 / 99분
51. 마지막 전투 (Le Dernier Combat) / 뤽 베송 / 1983년 / 프랑스 / 90분
52. 열여섯 순정 (Sixteen Candies) / 존 휴즈 / 1984년 / 미국 / 93분
53. '84 찰리 모픽 ('84 Chalie Mopic) / 패트릭 던칸 / 1989년 / 미국 / 105분
54. 식인어 피라냐 (Piranha) / 조 단테 / 1978년 / 미국/ 92분
55. 모든 것이 변하기 마련 (Things Change) / 데이빗 마멧 / 1988년 / 미국 / 100분
56. 자매 (Sisters) / 브라이언 드 팔마 / 1973년 / 미국 / 93분
57. 꿈속의 아이 (Dream child) / 개빈 밀러 / 1985년 / 영국 / 94분
58. 오징어 노동조합 (Catamari Union) / 아키 키우리스마키 / 1985년 / 핀랜드 / 93분
59. 거주자 (Le Locataire) / 로만 폴란스키 / 1976년 / 프랑스 / 126분
60. 관계의 종말 (Pat Garret and Billy the Kid) / 샘 페킨파 / 1973년 / 미국 / 122분
61. 람페이지 (Rampage) / 윌리암 프리드킨 / 1988년 / 미국 / 105분
62. 빅 칠 (The Big Chill) / 로렌스 카스단 / 1983년 / 미국 / 103분
63. 뇌 손상 (Brain Demage) / 프랭크 헤넨로터 / 1988년 / 미국 / 94분
64. 퍼블릭 우먼 (La Femme Publique) / 안제이 줄랍스키 / 1984년 / 프랑스 / 110분 (금성출시)
65. 히트 (The Hit) / 스티븐 프리어스 / 1984년 / 영국 / 98분
66. 동성애로 보지 말아요. 그저 살아가는 모습일 뿐이죠 / 로자 폰 프라운하임 / 1971년 / 서독 / 97분
(It Is Not the Howmosexual Who Is Perverse, But The Situation in Which He Lives)
67. 차례로 물에 빠지기 (Drowning By Numbers) / 피터 그리너웨이 / 1987년 / 영국 / 118분
68. 나이트 포터 (The Night Porter) / 릴리아나 까바니 / 1974년 / 이태리 / 115분
69. 자기만의 인생 (Vivre Sa Vie) / 장 뤽 고다르 / 1962년 / 프랑스 / 85분
70. 해럴드와 모드 (Harold and Maude) / 핼 애쉬비 / 1971년 / 미국 / 91분
71. 노래하는 탐정 (The Singing Detective) / 데니스 포터 / 1988년 / 영국 / 402분
72. 그랑프리 (The Pinchciffe-Grand Prix) / 이보 카프리노 / 1987년 / 스웨덴 / 90분
73. 차이나 걸 (China Girl) / 아벨 페라라 / 1987년 / 미국 / 88분
74. 스턴트 맨 (Stunt Man) / 리차드 러시 / 1979년 / 미국 / 130분
75. 달콤한 영화 (Sweet Movie) / 두상 마키베예프 / 1974년 / 유고슬라비아 / 123분
76. 미 제국의 멸망 (Le Declin de I'Empire American Glorre) / 드니 아르깡 / 1986년 / 캐나다 / 101분
77. 제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Whatever Happend to Baby Jane?)
78. 은밀한 명예 (Secret Honor) / 로버트 알트만 / 1984년 / 미국 / 90분
79. 디 바 (Diva) / 장 자끄 베넥스 / 프랑스 / 123분
80. 타올라라 (Burn!) / 질로 폰테코보 / 프랑스·이태리 / 112분
81. 시에스타 (Siesta) / 매리 램 버트 / 1987년 / 미국 / 97분
82. 히더스 (Heathers) / 마이클 리먼 / 1989년 / 미국 / 102분
83. 복수의 만가 ( 中情) / 양본희(楊本熙) / 1988년 / 홍콩 / 92분
84. 파리를 삼킨 자동차 (The Cars That Ate Pares) / 피터 위어 / 1974년 / 오스트레일리아 / 91분
85. 동경 시간에 맞춰 살기 (Living on Tokyo Time) / 스티븐 오까자끼 / 1987년 / 일본 / 83분
86. 히든 (The Hidden) / 잭 숄더 / 1988년 / 미국 / 97분
87. 도착 즉시 사망 (D·O·A) / 록키 모튼, 애니벨 잰켈 / 1988년 / 미국 / 100분
88. 신이 내게 말했다 (God Told Me to) / 래리 코헨 / 1977년 / 미국 / 95분
89. 드라이버 (The Driver) / 월터 힐 / 1978년 / 미국 / 91분
90. 헐리우드식 술책 (Hollywood Shuffle) / 로버트 타운젠드 / 1987년 / 미국 / 82분
91. 슈가랜드 특급 (The Sugarland Express) / 스티븐 스필버그 / 1974년 / 미국 / 109분
92. 팍시스 (Faxes) / 에드리안 라인 / 1980년 / 미국 / 106분
93. 모두가 초심자들 (Absolute Beginners) / 줄리언 템플 / 1986년 / 영국 / 108분
94. 브레즈네프에게 보내는 편지 (Letter to Brezhnev) / 크리스 버나드 / 1985년 / 영국 / 94분
95. 몬도가네 (Mondo Cane) / 구아르티에로 야코페티 / 1963년 / 이태리 / 105분
96. 고물차 소동 (Used Cars) / 로버트 저메키스 / 1980년 / 미국 / 113분
97. 트론 (Tron) / 스티븐 리스버거 / 1982년 / 미국 / 96분
98. 초록빛 문 뒤 (Behind the Green Door) / 짐 & 아트 미첼 / 1972년 / 미국 / 72분
99. 영웅본색 (英雄本色) / 오우삼(吳宇森) / 1986년 / 홍콩 / 115분
100. 개그맨 / 이명세(李明世) / 1989년 / 한국 / 121분
-원문출처:
http://jimmynflea.tistory.com/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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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 영화, cult 映畵
젊은이들로부터 종교적 숭배에 가까운 열광을 받는 영화. 주로 소극장에서 반복 상영됨. 1970년대 뉴
욕에서 등장한 말임. 컬트 무비.
-구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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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 영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컬트 영화(Cult Film)란 비교적 소수의 열광적인 팬을 가진 영화에 대한 분류의 하나이다. 보통 영화
와는 달리 특정한 장르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열광적 현상"의 유무에 따라 컬트 영화인가 아닌
가가 정해진다. 대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거나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영화, 저예
산 영화, B급 영화 등이 컬트 영화가 되는 경우가 많으나, 컬트 영화 중에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
도 존재하므로 절대적인 분류는 아니다. 컬트 영화라는 분류는 최초로 관객들이 컬트 현상을 보인 미
국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이후에 일반화되었다.
컬트 영화로 분류되는 영화들
록키 호러 픽쳐 쇼
성스러운 피
이레이저 헤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지구를 지켜라
토마토 특공대
영웅본색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
핼러윈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
쇼 걸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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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 영화 -나무위키
영화 자체의 특이함으로 소수의 열광적인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는 마니아 영화들.
록키 호러 픽쳐 쇼: 최초의, 그리고 가장 유명한 컬트 영화.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 영화사 최고의 괴작이자 망작으로 꼽히는 작품. 시기상으로는
록키 호러 픽쳐 쇼보다 먼저 나왔지만 1980년부터 인기를 얻었다. 이로써 에드 우드는
사후에 컬트적인 영화감독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저작권 문제로 유족에게는
돈이 안 돌아간다.
환타즘 시리즈: 돈 코스카렐리의 시리즈. 1979년부터 지금까지 인기를 얻고 있다. 한
편이라도 보지않으면 내용이 이해가 불가능하다. 평가는 극과 극.
토마토 케첩 황제: 고전 일본영화. 아이들이 반란을 일으켜 살인, 섹스, 폭력 등 비인
간적인 행위들을 하는 영화. 속내용이 의미깊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트
라우마로밖에 남지 않을 영화.
헤드윅: 동명의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 그나마 인지도가 높고, 기괴한 요소들이 적
고, 뮤지컬 영화라 음악이 좋고 다른 컬트 영화보다 재밌지만, 순차적이지 못하고 다소
난해한 구성으로 처음 본 사람들은 '응?'하는 반응이 대부분. 어느 정도 사전 정보가
필요한 영화다.
성스러운 피: 컬트 영화의 지존.
델리카트슨 사람들: 프랑스 영화. 인육을 먹는 델리카트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완
전한 끝맺음이 있음에도 정확한 결말을 내기 힘들다. 컬트 영화의 시초격 작품.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영화 전부. 특히 엘 토포는 이 바닥에서 전설급.
핑크 플라밍고: 세상에서 가장 추잡한 영화 중 하나다.(...)
킬러 콘돔: 내공이 없으면 못 보는 고전 B급 호러 영화. 퀴어적인 요소가 있으며 서양
쪽에 소수의 열광적인 지지자들이 있어서, 컬트 영화만 상영해주는 소형 극장에서 매일
해주는 경우도 있다.
환상의 호수: 1982년에 제작된 일본 영화. 도호영화사 창립기념 50주년작품이며, 개봉
된지 2주만에 극장에서 내렸다. 덧붙여 비디오로 나오지도 않았고, TV방영도 없었던 말
그대로 ‘환상의’ 영화.그나마 2003년에는 DVD가 나왔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마이너한 영화들.
더 룸: 못 만든 영화계의 시민 케인, 제 2의 록키 호러 픽쳐 쇼로 평가받는 괴작이자
망작 영화. 처음부터 기괴함이나 난해함으로 소문난 여타 컬트 영화들과 달리 내용이
극히 평범하면서도 극히 괴상하다(...)
뉴욕의 헤라클레스: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배우 데뷔작. 각본 자체도 엉성하지만 미국
생활, 연기 등 모든 것에 아직 부적응 상태였던 젊은 시절의 주지사 아저씨 때문에
더 괴작이 되었다.
무서운집: 일부러 못만든 한국의 실험 영화
코야니스카시 : 1982년 개봉된 실험적 다큐멘터리 영화. 필립 글래스의 사운드트랙과 비
주얼의 조화로 유명하다.
지구를 지켜라
그린 엘리펀트
벨벳 골드마인
Something Weird Video 배급사가 배급하는 일부 영화들.
(대게 오래된 포르노영화나 고어영화가 많다)
-발췌출처: 나무위키 '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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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컬트영화’ ]
최인화 (영화칼럼니스트) [샌프란시스코 중앙일보] 기사입력 2005/05/05 09:14
컬트영화가 사라져가고 있다. 그 이유는 컬트영화로 인정 받아오던 영화들이 더 이상은
대접 받지 못하도록 시대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컬트영화는 영화의
한 장르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기도 하다.
원래 ‘컬트’란 특정 종교의 종파, 특히 제의나 의식 측면에서 이들 종파를 일컫는 말이
다. 이 말의 의미가 확대돼 어떤 특정한 인물이나 사물에 대한 열렬한 지지나 숭배를 뜻하
게 되었다. 따라서 컬트영화란 컬트의 대상이 되는 영화, 즉 일부 관객이 열광적으로 숭배
하는 영화를 말하는 것이다. 초기에는 컬트 현상이 루돌프 발렌티노나 제임스 딘, 마릴린
몬로 같은 스타들을 대상으로 나타났다. 차츰 영화에 대해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데 대
상 영화들은 <카사블랑카>, <수색자>(The Searchers), <시민 케인> 등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들은 근자에 일컫는 컬트영화와는 차별을 두어 클래식 컬트영화라고 구분 짓는 게 보
통이다.
우리가 통상 컬트영화라 부르는 것은 1960년대 미국에서 심야에 상영하던 영화들로부터 유
래했다. 소극장이나 드라이브 인 극장에서 심야에 상영하던 그 영화들은 주관객층인 10대,
20대 취향에 맞는 작품들이었다.
심야극장에서 컬트 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75년도 작품인 영국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 (짐 셔먼 감독)부터로 보고 있다. <록키 호러 픽쳐 쇼>는 SF, 호러,
뮤지컬이 정신 없이 믹스된 영화로 여장 남자에 양성연애자인 우주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다.
컬트영화의 큰 특징의 하나는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기는 영화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
부모 세대에게도 즐거움을 주는 영화는 컬트영화의 자격이 없다. 즉 컬트영화는 정상적인
것에 도전하는 반사회적인 영화인 것이다.
다음으로 컬트영화 팬의 관심을 끈 영화들로는 죠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난 시체들의 밤>과
<엘 토포> (알렉상드로 조도로브스키 감독), <런던의 미국인 늑대인간> (존 랜디스 감독),
<클락웍 오렌지> (스탠리 큐브릭 감독), <소돔의 120일>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
<몬티 파이돈과 성배> (테리 길리엄 감독), <이레이저 헤드>, <블루 벨벳> (이상 데이빗
린치 감독) 등이 있다. 컬트의 주요 대상 영화들 중에는 호러물의 비중이 크다. <살아난
시체들의 밤>에서부터 <나이트메어> (웨스 크레이븐 감독),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토비
후퍼 감독) 등은 특히 잔인한 정도가 심하고, 사회 체제에 대한 강한 반항을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본격적인 컬트영화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심야극장이 자리를 못 잡은 사실
외에도 컬트영화의 정수로 꼽히는 작품들이 거의 국내 수입이 안됐었고, 본래적인 의미에
서의 컬트영화의 맛이 상당히 순화된 <블레이드 러너>, <천국보다 낯선>, <리포맨> 등과 몇
몇 호러물이 소개됐을 뿐이었다. 그나마 컬트적인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꼽자면 홍콩 영화
<영웅본색> (오우삼 감독)이 재개봉 되었을 때 우리 청소년들이 열광적인 호응을 보였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컬트’라는 용어는 빠른 속도로 확산돼 아무데나 갖다 붙이는
웃지 못할 경향까지 생겼고, 심지어는 새로이 개봉하는 영화들까지도 버젓이 ‘컬트영화’
임을 내세워 광고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제 시대는 바뀌어 비디오 보급 확대와 함께 심야극장이 사라져 집단적으로 열광하던 장
(場) 대신에 개인 공간에서 영화를 즐기게 되고, 워낙 다양한 관객의 기호에 맞춰 컬트영화
풍의 독특한 영화들이 양산되고, 비주류를 표방하던 컬트영화와 주류 영화의 구분이 모호해지
고, 영화관객층 확대로 소수만이 열광하는 영화가 적어지고, 더구나 과거에 컬트영화라 꼽혔
던 영화조차도 이미 대중화된 개념 속으로 들어오게 돼, 더 이상은 컬트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된 것이 현실이다. 결국 컬트영화는 한 시대에 유행했던 현상으로서 그 소임을 마치고
영화의 장에서 사라져갈 추억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원문출처:중앙일보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35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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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 영화의 부흥
금냥
2012. 11. 30. 17:01
미국 영화사 아홉 번째 시간 - 컬트 영화의 부흥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컬트 영화의 시작은 사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 시작은 앙리 랑글루아와 조르주 프랑주가 1936년에 프랑스 파리에
설립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이다. 굉장한 영화광이었던 앙리 랑글루아는 자신이 사
랑했던 무성 영화들이 점점 잊혀져 가는 것에 안타까워하면서, 자신이 직접 그 영화
들의 프린트를 구입해 영화를 상영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파
리에 작은 소극장을 열었고, 이곳에서 그 당시에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었던 찰리 채
플린, 세실 B. 드밀, D.W 그리피스의 작품 외에도 랑글루아 자신이 생각하는 걸작
영화들을 상영하기 시작하였다. 그 명단에는 버스터 키튼의 수많은 단편들이 있었
고,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잔 다르크의 수난>이 있었고, 당시 수입이 금지되었지
만 이미 영화광들에겐 전설적인 영화로 칭송받았던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과 같은 영화도 있었다. 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차츰 입소문을 타서, 영
화광들이 모이는 장소로 발돋움하였고, 이곳에서 영화를 보고 자라난 세대가 바로 프
랑스 누벨바그 시대를 이끈 영화 감독들이 되었다. 그리고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거
기에서 멈추지 않고 현재까지도 그 영향력을 보존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시네마테
크의 프랑세즈는 영화인들에게 한 가지 교훈을 전해준 것이다. 영화는 결국 좋은 관
객과 만나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이었다.
이 시네마테크 운동은 전 세계로 확산되어, 미국에도 워싱턴D.C의 워싱턴 센터 안에
시네마테크가 설립되어 고전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하였고, 뉴욕의 현대 박물관이나
미국영화협회 시네마테크 같은 곳에서도 고전 영화나 실험 영화를 상영하였다. 하지만
미국에서 이 시네마테크 운동은 프랑스의 시네마테크 운동만큼 파급력 있지 못했다.
아무래도 미국은 시네마테크 운동의 원형이 아니었었고, 무엇보다 이 시네마테크의
주요 관객층인 청년들이 시네마테크보다는 대학교 인근에 있는 소극장에서 영화를 더
많이 보러갔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와 더불어, 1970년 대 중반부터 시작된 비디오의 보
급은 이제 개봉 당시 놓쳤던 영화를 다시 보기 위해 극장에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조성했었다.
<카사블랑카>
컬트 영화가 무엇이다 라고 규정내리기는 굉장히 애매모호한 면이 있다. 컬트 영화는
흔히 한국에서 말하는 ‘독립 영화’라고 규정내리기도 어렵고,(물론 많은 컬트 영
화들이 독립적인 프러덕션으로 제작되기는 하지만) 단순히 B급 영화라고 정의 내리기도
애매모호한 면이 있다. 왜냐하면, 컬트 영화를 만들어내는 주체는 산업이 아니라 관
객이기 때문이다. 관객이 잊혀진 영화를 발굴해 내서, 그 영화를 만신전의 위치에 올
리는 것이 바로 컬트 영화의 가장 주요한 덕목이기 때문에 컬트 영화를 장르로 규정짓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사의 최초의 컬트 영화가 무엇이다
라고 규정내릴 수는 없지만,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컬트 영화를 기본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텍스트는 바로 마이클 커티즈가 1942년에 만들었고,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카사블랑카>이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소설가이며, 영화광인 움베르트 에코는 <카사블랑카>에
대한 글을 적으며 ‘<카사블랑카>는 별 개연성 없이 감상적인 장면들이 얼기설기 엮어
진 잡탕이며, 등장 인물들도 심리학적으로 전혀 그럴 듯해 보이지 않으며 배우들의 연기
도 상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영화적 담론의 위대한 전범, 20세기의 종
교적 현상을 연구하는 미래의 학도들을 위한 양피지 사본이자 텍스트 전략을 기호학적
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최고의 실험실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것은 컬트 영화가
되었다.’라고 밝혔다.
많은 연구가들이 밝힌 <카사블랑카>의 컬트적 매력은 카사블랑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수많은 국가와 문화, 인종과 함께 영화 안에 다양한 문학에 대한 인용과 다양한 장르의
혼합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컬트라는 단어의 원래 뜻은 종교상의 숭배를 의미한다. 컬
트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영화가 컬트 영화인가가 아니라, 그 영화가 왜 컬트 영화
가 되었는가의 측면일 것이다. 왜냐하면, 컬트 영화는 (단어 뜻 그대로) 교인들로부터
숭배되어진 영화이기 때문이다.
<앤디 워홀>
그런 의미에서 미국 영화사 안에서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컬트 영화의 부흥이 시작
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물론, 컬트 영화의 전통은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말
해야 할 것이다. 1948년, 파라마운트 판결로 인해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극장 독점이 해
소되기 시작하자 독립 제작사에서 만든 영화들이 극장에 하나 둘 씩 등장하기 시작하였
고,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동시 상영관’이라는 이름으로 스튜디오의 주요 영화 1편과
적은 제작비로 만든 싸구려 영화 1편을 함께 상영하였다. 이 때 등장한 감독들이 로저
코만, 윌리엄 캐슬, 조지 팔, 필 카슨, 커트 뉴먼과 같은 B급 영화 감독들이었다. 하지만,
이 감독들의 영화가 모두 컬트 영화인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영화들은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감독들의 영화가 컬트 영화의 역사에 중요하게 자
리 잡는 것은 바로 영화의 세계관이었다.
당시 헐리우드 주류 영화의 기본 가치관이었던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며 유토피아적인 세계관에 이 B급 영화 감독들은 기상천외한 상상
력을 동원하여 틈새시장을 노렸다. 폭력과 에로티시즘이 그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주류
영화들의 관습을 부쉈으며, 싸고 빠르게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은 B급 영화들이 굉장
히 시대 반영적인 작품들로 만들도록 한 배경이 되었다. 이를 테면, 조지 팔의 SF영화는
당시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명백한 공포의 은유이며, 래이 해리하우젠의 스톱모션 괴수 영
화들은 핵전쟁 이후의 돌연변이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1960년대가 되자 시작되자
이런 B급 영화와 더불어, 전위적인 실험 영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 시대에 유럽에서 일어났던 모더니즘 영화의 부흥. 이를 테면,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
로 해라> 혹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정사>와도 같은 영화들이 미국에 소개되기 시작
했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미국 영화 안에서도 1943년에 만들어진 미야 데렌의 <오후의 그물망> 이후, 실험
영화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제시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실험 영화들이 본격적인
컬트 영화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앤디 워홀의 작품만큼은 그 모더니즘의 실험 형식의
한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과감성으로 1960년대 실험 영화에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 받
았고, 이 영화는 컬트 영화로 등극 되었다. 이를 테면, 앤디 워홀이 1964년에 만든 <엠파
이어>는 8시간의 러닝 타임 동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롱 쇼트의 롱 테이크로 보여준
다. 혹은, 1963년에 만든 <잠>은 6시간 동안 잠자는 남자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앤디 워홀의 작품 외에도, 케네스 앵거가 1964년에 만든 <스콜피오 라이징>은 악마주의와
동성애, 폭력을 거친 몽타쥬 기법을 사용하여 전위적으로 표현하면서 역시 컬트 영화의 대
열에 올랐다. 그 밖에 헐리우드 외부에서 만들어진 (주로 퀴어와 폭력, 에로티시즘을 주제
로 한) 언더그라운드 필름과 영화 매체 그 자체의 순수성을 실험하는 구조주의 영화(앤디
워홀이 가장 대표적이며, 홀리스 프램튼과 마이클 스노우의 영화들) 역시 이런 실험 영화
들의 성공으로 잇달아 부흥하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1960년대부터 이런 컬트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것은 60년대
시작된 케네디 시대의 진보적인 낙관론과 더불어, 케네디 이후에 벌어진 베트남전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청년 문화의 등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케네디의 시대는 새로
운 사회, 새로운 문화에 대한 관심과 호응이 급증했을 때였고 그 시기에 맞춰 등장한 이런
전위 영화들은 새로운 영화를 보려하는 소규모의 움직임들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으로 등
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불어, 이런 움직임의 영향으로 과거에 잊혀졌던 미국 영화들이
다시 재발견되기도 하였다. 어떻게 본다면, 1965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회고전을 통해 과거
의 명성이 다시 부활한 버스터 키튼의 영화 역시 1960년대 재발견된 컬트 영화인 셈이다.
또한, 영화계의 에드가 앨런 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토드 브라우닝 감독의 역작이자,
개봉 당시 너무 충격적인 결말로 관객들이 분노를 하여, 제작사인 MGM이 모든 프린트를
회수해 자사의 마크를 지워버리고 창고에 처박았던 1932년작 <프릭스> 역시 1962년 베니스
영화제를 통해 공개 되면서 재발견 된 컬트 영화였다. 하지만, 케네디가 암살당하고, 68혁명
이 실패로 끝난 후 1969년 보수주의적인 리차드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청년문화와 대항
문화는 60년대와 같은 격렬한 실험을 해내지 못하게 되었다.
1968년의 실패 이후 보수주의에 공격을 받던 대항문화는 닉슨의 당선으로 기존 체재로 포섭
되거나 개인적인 일탈로 자멸한 것이었다. 그 순간, 미국 영화 산업 안에서 갑자기 컬트 영화
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것은 1960년대의 실패 이후에 젊은 관객들이 영
화를 도피처로 여겼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 테다. 1960년대를 거치면서, 영화는 폭력은 더욱
강렬해졌고, 에로티시즘은 더욱 노골적이 되었으며, 영화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더욱 강
화되었고 그 60년 대의 영화 흐름을 1970년대가 고스란히 이어 받은 것이었다. 1968년에 만들
어진 조지 A. 로메로의 전설적인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1970년대 중반 뒤늦게 심야
상영을 통해 재발견 된 것은 이런 시대 분위기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핑크 플라맹고>
1970년대가 시작되자마자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가 멕시코에서 만든 서부극인 <엘 토포>가
12월에 뉴욕에서 심야 상영을 하면서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켜, 영화 사상 최초
의 심야 컬트 영화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이 영화에 가장 열광한 사람은 존 레논 이었다.
존 레논은 이 영화를 보고, 그의 매니저인 앨런 클라인에게 판권을 사라고 지시하여 미국 전
역에 <엘 토포>를 배급하였다. 1년 뒤, 스탠리 큐브릭이 <시계태엽 오렌지>를 만들었고, 이
영화는 영국에 개봉이 금지되어 컬트 영화 대열에 오를 수 있었다. 어쩌면 컬트 영화의 최고
걸작(!)이라고 할 수 있을 존 워터스 감독의 1973년도 작품인 <핑크 플라맹고> 역시 이 컬트
영화의 부흥에 동참했다. 이 영화는 1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100배의 넘는 수익을 거두었고,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반체제적 퍼포먼스의 역겨움은 지금 봐도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위력적
이었다.
그리고 이런 컬트적 취향의 영화들이 등장하자 몇몇의 감독들이 속속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
다. 1969년,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스테레오>로 대뷔하였고, <스크림> 시리즈로 유명한 웨스
크레이븐이 1972년에 <왼편 마지막 집>으로 대뷔하였고, 1974년에 존 카펜터가 <다크 스타>를
만들었고, 1974년 토브 후퍼가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을 만들었다. 이 감독들의 분균질한
영화적 테마와 호러를 표현하는 이미지들은 1970년대 미국 영화의 중요한 비평적 텍스트로 자
리매김 하였다. 로빈 우드가 쓴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에서, 로빈 우드는 1970년대의 미국 호
러 영화에 대해 언급하며 가부장적 질서와 억압된 사회 분위기를 폭력적이고 기형적으로 표현하
는 이 호러 영화들이야 말로 70년대 미국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텍스트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록키 호러 픽쳐 쇼>
그리고, 미국 영화사에서 이런 컬트 영화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하였고,
컬트 영화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영화는 1975년 짐 셔먼 감독의 <록키 호러 픽쳐 쇼>일 것이다.
이 영화는 움베르트 에코가 정의한 컬트 영화의 개념. ‘어떤 작품을 숭배 대상으로 만들기 위
해서는 그 작품을 산산조각 내고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원래의 모습과는 다르게 변형시켜 사람
들이 작품 전체의 본래적인 관계와는 전혀 무관하게 단지 그 작품의 부분들만을 기억할 수 있
도록 하는 것’의 개념과 가장 유사한 의미에서 컬트 영화이며, 영화사상 가장 성공한 컬트 영
화일 것이다. 이 영화의 성공은 거의 신화적이다.
<록키 호러 픽쳐 쇼>가 개봉되기 2년 전.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락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노
만 쥬어슨 감독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가 대성공을 거두자 역시 브로드웨이에서 성공
한 락 뮤지컬이었던 <록키 호러 픽쳐 쇼> 역시 영화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 이 영
화가 개봉되자 모든 비평가들은 최악의 평가를 내렸고 2주 만에 이 영화는 극장에서 간판을 내렸
다. 그러자 이 영화를 궁금해 하는 젊은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얼마나 못 만들었으면 2주
만에 극장에서 간판을 내렸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겨난 것이다. 이 영화를 (2주 안에) 본 관객
들은 자신이 이 영화를 본 것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느꼈고, 영화광들 사이에서 이 영화는 전
설의 영화가 되고 있었다. 젊은 청년들의 간절한 염원으로 한 달 뒤, UC버클리 인근의 소극장에서
<록키 호러 픽쳐 쇼>의 재개봉이 이루어졌다. 이 영화가 다시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국의
영화팬들이 극장 앞에 장사진을 쳤고 이 모습을 본 주변의 소극장 관계자들은 부리나케 이 영화를
다시 상영했다. 그렇게 해서 <록키 호러 픽쳐 쇼>는 1975년 개봉 당시에 <죠스>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뜨거운 오후>에 이어 그 해 미국 내에서 흥행 4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고,
결국에 이 영화는 미국에서만 1억 4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 영화의 제작비가 1백 2십만 달러
인 것을 감안하면, 무려 100배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인 것이었다. <록키 호러 픽쳐 쇼>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어서 뉴욕의 웨이벌리 극장에서는 무려 15년 간 <록키 호러 픽쳐 쇼>만을 상영했
으며, 독일 뮌헨에서는 무려 27년 동안 이 영화만을 상영했다고 한다. <록키 호러 픽쳐 쇼>는 말
그대롤 자생적 문화라는 면에서 컬트 영화의 대표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극장에는 영화에 등장한 캐릭터들의 의상을 입고, 캐릭터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소품을 들고 와서 관객들끼리 공연하는 등의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이레이저 헤드>
그리고 이 영화의 전설적인 성공은 2년 뒤 데이빗 린치가 AFI 지원금을 받아 5년 동안 만든 장편
영화 <이레이저 헤드>로 이어졌다. 린치의 대뷔작인 이 영화는 초현실주의와 표현주의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듯 한 불연속적인 서사구조와 실험적 사운드와 엽기적인 이미지를 결합시켜 지금까지
보지 못한 형태의 새로운 영화를 발명해냈다. <이레이저 헤드>의 가장 주요한 맹점은 왜 컬트 영
화가 생겨나는 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 준 것이다. 그것은 바로 관객의 무의식적 욕망을 대리 충
족해주는 서사와 이미지를 제공하고, 그것이 프로이트적인 욕망으로 발산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로써, 영화 비평은 본격적으로 포스트 모더니즘 운동과 정신 분석학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
마 데이빗 린치가 없었으면 이것은 불가능한 작업이었을 것이고, 80년대에 포스트 모더니즘의 가장
대표적인 텍스트들.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비디오 드롬>,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풀 버
호벤의 <로보캅> 그리고 린치 자신이 만든 <블루벨벳>은 결국 이 컬트 영화의 영향력 안에서 탄생
하였으며, 이 영화 자신들도 스스로 컬트 영화 대열에 합류하면서 그 생명력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제 <핑크 플라맹고>나 <록키 호러 픽쳐 쇼>와 같은 자생 문화적인 컬트 영화는 80년대에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1975년 일본의 소니 사에서 처음으로 베타맥스라는 비디오테이프를 도입한 이후, 마츠시타 사는 같
은 해에 VHS라는 비디오 홈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극장에서 간판을 내린 영화는 비디오로 직행했고,
그 과정에서 다시 발굴되는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 인한 2차 시장의 활성화 역시 컬
트 영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열렬한 팬을 가진 영화의 비디오가 발매되면 그
팬들은 비디오를 수 십번 빌려보고, 비디오를 구매하였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 비디오의 등장이 극
장 수입을 축소시킬 것이라고 우려한 스튜디오들은 오히려 비디오로 인한 수입이 극장 수입보다 더
커지자 재빨리 비디오 시장으로 뛰어 들었다.
-원본출처:Kino/Cinematograph-6880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tmdgns1223&logNo=40173763193&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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