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10.

[명언음악] 침묵 자의 타의 방법 The Sound of Silence








[명언음악] 침묵 자의 타의 방법 The Sound of Silence











[음악동영상 The Sound of Silence]







01

가장 깊은 감정은 항상 침묵 속에 있다. 

토머스 무어 



02

가장 무서운 사람은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다. 

호라티우스 



03

떠들지 않는 사람은 위험하다. 

라 퐁테느 



04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기보다 침묵하는 쪽이 차라리 

그 관계를 해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몽테뉴 



05

말해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은 침묵해야 할 때도 안다. 

아르키메데스 



06

시간을 잘 맞춘 침묵은 말보다도 좋은 웅변이다. 

터퍼 



07

이 무한한 우주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나를 

두렵게 한다. 

파스칼 



08

침묵은 경멸을 나타내는 가장 완벽한 표현이다. 

조지 버나드 쇼 







09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말의 근본이다.

- 순자



10

침묵한 것에 대해선 한 번쯤 후회할 수 있지만,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해서는 자주 후회할 것이다.

- 이안 가비롤



11

 “침묵으로부터 나온 말이 참된 말이며 말에서 나온 말은 잡음어다”

-막스 피카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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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나의 침묵이 그에게 아무 말도 못한다면

나의 말들도 쓸모없을 것입니다.







14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하는 것이 말의 근본이다.

-순자







15

무엇을 물어봤을 때 대답이 없으면

침묵도 사실 대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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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우리가 중대한 일에 대해 침묵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종말을 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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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진정한 침묵은 마음의 평안이다.

진정한 침묵이 영혼에 제공하는 것은 수면이 육체에 제공하는 것, 바로 자양분과 원기회복이다.

-윌리엄 펜







22





23

어떨땐 침묵이 마치 큰 관용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허나 불의에 대한 침묵은 그저 공범일 뿐이다.







24

다른 사람들에 의해 침묵하지 말라. 스스로 희생자가 되는 것을 용납하지 말라.

당신의 삶에 대한 그 누구의 규정도 받아들이지 말라. 당신의 삶은 당신이 규정하라.

-하비 피어스타인







25

침묵은 다른 방식으로 펼친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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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지옥의 가장 암울한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28

눈을 감고 있다고 해서 잠든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을 안 한다고 해서 상처를 안 주는 것도 아니다.

경우에 따라 침묵은 가장 고통스러운 고문이다.



29

네가 말할 때에는 그 말이 침묵보다 나은 것이어야 한다.

-아라비아 속담



30

침묵은 오해하기 쉬운 글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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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沈黙 silence



국어사전에 따르면 '아무 말도 없이 잠잠이 있는 것 혹은 그런 상태'로 정의한다. 한마디로 조용함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데 실제로 사용될 때는 조금 정적이고 평안, 고요한 상태 가운데에서 조용한 것을

 이를 때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문학적이거나 종교적인 의미와 결부되는 경우가 많다.

긍정적 효과도 있는데, 대상자에게 사고, 느낌, 결정 등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치료적 의사소통

방법이기 때문이다. 명상 또한 잠시 잡다한 생각을 멈추고 침묵(언어만이 아니라 마음도)하면서,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발췌출처: 나무위키 '침묵'













침묵 (법률) -위키백과



침묵(沈默)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행위로 법률 표시행위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침묵이 표시행위가

되려면 '특별한 상황'이 존재하여야 한다. 즉, 당사자의 약정, 거래관행, 신의칙 등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에는 침묵은 표시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단법인 사원총회에서

의장이 제안된 안에 반대하는 사원은 손을 들라고 한 경우나 계속적 거래관계의 당사자 사이에서 반복적

으로 체결되는 계약의 청약에 대한 침묵이 동의의 표시로 인정될 수 있다. 이러한 '특별한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침묵은 의사표시로 될 수 없다. 침묵은 원칙적으로 긍정 부정 어느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즉 침묵은 원칙적으로 거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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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해야 할 때인가



안셀름 그륀 신부는 "우리는 언제가 말할 때이고 언제가 침묵해야 할 때인지 구별할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독일 출신의 안셀름 그륀 신부는 영혼을 위로하는 저서들로 이름을 알린 베네딕도회 사제다.

‘내 영혼의 치유제’(분도출판사)는 그가 4세기 이집트 수도승 에바그리우스의 ‘악한 생각 대

처법’을 현대어로 풀어 쓴 책이다.



에바그리우스는 침묵해야 할 때 말을 강요하고, 말해야 할 때 침묵을 권고하는 헛된 영광의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코헬 3, 7)는 성서 구절을 되새겨야

한다고 썼다. 불필요하게 말을 이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필요한 상황인데도 입을 닫는 것 역시

 부덕의 일종이라는 설명이다.



그륀 신부는 특히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야. 저들이 무슨 까닭으로 치고 받고 싸우는지 내 알

 바도 아니고…” 하는 식의 무신경과 침묵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쉴새 없이 지껄이는

유형은 “틈틈이 남의 말을 잘라먹는 것”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침묵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유

형은 “뜻 모를 침묵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주위의 신경을 긁어 놓기” 때문이다. ‘헛된 영광’을

버리라는 권고에 숙연해진다. 침묵해야 할 때인가. 외쳐야 할 때인가.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원문보기:

http://hankookilbo.com/v/03d0ff499293416fba69c2069831d356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하라

말해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은 침묵해야 할 때도 알아



아마도 침묵의 힘을 가장 열심히 닦는 이들이 수도자일 것이다. 침묵 속에서 신과 대면하고 자신을

 톺아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침묵의 진면목은 동양의 종교인 불교에서, 특히 선불교에서 찾을 수

 있다. 참선은 철저하게 고독하게 자신과 대면하며 화두를 잡고 끊임없이 파고드는 것이다. 그것은

침묵 속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 엄청난 대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부처와 제자 가섭(迦葉)의 소통은 언어가 사라진 채 침묵 속에서 통째로 오고간다. 석가모니가 연꽃을

 따서 들고 대중에게 보여줬다. 사람들은 도대체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제자

가섭은 빙그레 웃었다.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도(道)를 전하려는 스승의 뜻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염화시중(拈華示衆)은 바로 그런 침묵의 교감의 백미를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은 일본 막부 시대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탄압과 배교의 과정

에서 침묵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침묵은 단순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것을 응집해 바라보고 고뇌하며 끝내 올바른

판단을 이끌어 내기 위한 자기 투쟁이기도 하다. 현대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도 그의 걸작 ‘논

리철학논고’의 마지막을 이렇게 매듭짓는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침묵은 대화에 의해, 대화는 침묵에 의해 분별되기도 하고 강화되기도 한다. 따라서 침묵과 대화는 맞

선 말도 아니고 동의어도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내포와 외연의 관계와도 같다. 그러므로 올바른 침묵은

 참된 대화의 바탕이 된다.



침묵의 진정한 가치는 그 침묵이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에우리피데스의 “침묵은 참된

지혜의 최상의 응답”이라는 말은 침묵이 지혜에서 비롯돼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말해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은 침묵해야 할 때도 안다.” 아르키메데스의 말이다.



-발췌출처:  한국경제 메거진. 전문보기

http://magazine.hankyung.com/apps/news?popup=0&nid=0&nkey=2015031901007000221&mode=sub_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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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Garfunkel-The_Sound_Of_Silence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 내 오랜 친구, 어둠이여

I've come to talk with you again

/ 자네랑 이야기하려고 또 왔다네

Because a vision softly creeping

/ 왜냐하면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

Left its seeds

/ 어떤 환상이

While I was sleeping

/ 자기 씨를 심어놓았기 때문이지

And the vision

/ 내 뇌리에 깊히 박힌

That was planted in my brain

/ 그 환상은

Still remains

/ 아직도 여전히

Within the sound of silence

/ 침묵의 소리로 남아있다네





In restless dreams I walked alone

/ 불안한 꿈속에서 자갈이 깔린

Narrow streets of cobble stone

/ 좁은 길을 혼자 걸었지

'Neath the halo of a street lamp

/ 가로등불 밑에 다다랐을 때

I turned my collar /

차갑고 음습한 기운때문에

To the cold and damp

/ 옷깃을 세웠다네

When my eyes were stabbed /

그때 반짝이는 네온 불빛이

By the flash of a neon light

/ 내 눈에 들어왔고

That split the night

/ 그 네온 불빛은 밤의 어둠을 가르며

And touched the sound of silence

/ 침묵의 소리를 감싸안았다네









And in the naked light I saw

/ 적나라한 불빛가운데서 만명 정도?

Ten thousand people

/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을

Maybe more

/ 나는 볼 수 있었다네

People talking without speaking

/ 그사람들은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하고

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

/ 듣는체 하지만 실제로는 듣지않고

People writing songs

/ 심금을 울리지도 못하는

That voices never share

/ 노래들을 부르고 있었다네









No one dared

/ 그 어느 누구도 감히

Disturb the sound of silence

/ 침묵의 소리를 깨뜨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네

'Fools' said I '

/ 그래서 나는 '바보들

You do not know

/ 암과도 같은 침묵이 자라고 있음을









Silence like a cancer grows

/ 당신들은 알지 못하나요?

Hear my words that I might teach you

/ 당신들을 깨우치는 내 말을 들으세요

Take my arms

/ 당신들에게 내미는 내 손을 잡으세요'

That I might reach you /

라고 말했지









But my words

/ 하지만 그러한 내 말은

Like silent raindrops fell

/ 소리없는 빗방울처럼 떨어져

And echoed

/ 침묵의 샘 가운데에서

In the wells of silence

/ 공허한 메아리같을 뿐이었다네













And the people bowed and prayed

/ 사람들은 자기들이 만든

To the neon god they made

/ 네온 神에게 허리굽혀 기도했다네

And the sign flashed out its warning

/그러자 네온이 만들어내는 단어중에

In the words that it was forming

/ 경고의 문구가 번쩍이었지

And the signs said

/ 네온은 이렇게 말했어

'The words of the prophets are written

/ '예언자의 말은 지하철의 벽이나

On the subway walls and tenement halls

/ ' 싸구려 아파트 현관에 적혀있다' 라고...













Whispered / 침묵의 소리 가운데에서

In the sound of silence / 그렇게 속삭이더군...

















----------------------------[보충: 시간날 때 보세요]







할아버지가 손녀 성추행하는데…할머니는 모른체





손녀를 수차례 성추행한 할아버지와 이를 알고도 모른 체한 할머니에게 법원이 각각 징역 7년과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수원지법 형사15부(김정민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13세 미만 미성

년자 위계 등 추행,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등 혐의로 기소된 김모(73), 정모(64·여) 피고인에게

이같이 선고했다고 18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김 피고인 등은 아들이 이혼한 2012년 10월부터 손녀인 A(당시 8세)양을 도맡아

키우게 됐다.



김 피고인은 A양이 경기도 화성 자신의 집에 온 지 두 달 만인 같은 해 12월 몸을 치료해준다며

 처음 성추행한 뒤 A양이 13살이 된 지난해 8월까지 5차례 성추행하고 1차례는 성폭행까지 하려

 했다.



2016년에는 12살인 A양이 할머니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흉기를 든 채 다가가 “죽이겠다”

고 하는 등 정서적 학대도 했다.



할머니인 정 피고인은 할아버지의 추행을 견디다 못한 A양이 피해 사실을 자신에게 2015년부터

수차례 털어놨음에도 “아빠한테 말하지 마라”, “네가 몸 관리를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신고해

봤자 네 부모는 너를 키워주지 않는다”라고 하는 등 남편의 범행을 은폐·묵인하려고만 하고 A양에

 대한 보호는 전혀 하지 않았다.



김 피고인은 재판에서 A양과 A양 어머니가 자신을 음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정 피고인도 A양의

 피해 사실을 몰랐다며 혐의를 모두 부인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김 피고인은 어린 친손녀를 보호하기는커녕 성욕 만족의 수단으로 이용해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피해자는 극심한 성적 수치심과 함께 육체적·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고 실

제로 우울증, 정서불안을 겪으며 자살 충동까지 호소하고 있어 피고인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불가

피하다”고 밝혔다.



정 피고인에 대해서는 “피고인은 손녀의 피해 사실을 알고도 2년이 넘도록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아 재차 피해를 보게 했다”며 “방임행위의 정도 및 결과에 비춰 죄질이 상당히 나빠 엄격하게 처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김 피고인은 별다른 범죄전력이 없는 점, 정 피고인은 불가피하게 피해자의 양육을

맡아 상당 기간 보호자로서 역할을 수행한 점과 손녀에게 범행한 가해자가 배우자였으므로 신고를

 하는 등 손녀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 조치를 하기에는 다소나마 어려움이 있었다고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연합뉴스>



-원문보기: 문화일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0718MW15544385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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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거나 폭발하거나, 위기의 가족들



 2012.05.07 00:47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립에 크게 이바지한 건국 요원의 후손인 차 씨는 밖에선 국가유공자의 후손

으로 인정받지만, 집 안에선 누구 하나 말 붙여주지 않는 처량한 신세다.



별거 중인 부인은 어쩌다

한번 만날 때마다 냉랭하기 짝이 없고, 아들은 늙은 아버지의 말동무는커녕 본체만체 얼굴도 마주

하려 하지 않는다.



그나마 아버지를 생각하는 유일한 가족인 딸은 사회생활로 바빠 얼굴 보기도 힘

들다.





집 밖에서 보는 가족의 모습과는 달리 정작 그 안의 당사자들은 서로를 외면하며 살얼음 같은 침

묵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무언가족'이다.



하지만 침묵 속에서 고통받던 무언가족도 정적을 깨고 한

번씩 폭발하고 만다.



대화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한번 폭발하면 자제력을 잃고, 항상 폭

력과 폭언으로 서로에게 큰 상처를 주고 끝나게 된다.







살가운 딸들의 애교로 화기애애할 것 같은 인천의 세 자매 집은 매일 매일이 전쟁이다.



아버지의 술

주정과 딸들의 반항, 그 틈에서 지쳐가는 어머니까지, 함께이기에 힘이 되는 관계가 아니고 함께

여서 지옥 같다는 가족들.



이들 또한 이 시대 '무언가족'의 또 다른 모습이다.



(SBS 뉴미디어부)



출처 : SBS 뉴스 [무언가족 1-벼랑 끝의 집] ②

원본 링크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179690&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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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벌로 사용할 때

2018-02-02 카테고리: 감정





때때로 침묵을 벌로 사용하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분노, 반대 또는

비난을 ‘표현’하기 위해 돌아서는 탈출의 수단이다. 이 방법이 문제를 극복하거나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데 얼마나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누군가가 내면이 분노로 가득할 때, 그 사람과의 대화를 거부

하고 피하려 하는 데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와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해결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충돌을 맞고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대신, 상대방과 대화하는 것을 그만두게 되면, 그

관계에서 또다른 긴장이 생겨나게 된다. 해결되지 않은 분쟁의 끝에는, 독을 품고 있게 되는, 연옥이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자신들의 관점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처벌의 한 방식으로서

침묵을 사용한다. 결국에는 상대방이 포기하게 만든다. 결국 그것은 유치한 태도이며, 최악으로, 아

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그저, 자존심만 챙길 뿐이다.





침묵을 벌로 사용할 때



침묵을 벌로 사용하는 이유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유효하다는 생각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종류의 논쟁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찾고 있는 것은, 그저 처벌일 뿐이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경우에도, 그 말의 부재라는

 모순점과 비난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침묵을 유지하지 않고, 직접 이야기를 한다면 어떨까?

이하의 것들은, 사람들이 침묵을 유지하려 하는 이유이다.



모욕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논쟁에 참여하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말하기를 그만 두는 것이 차라리 낫다.

이 사람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아무리 내가 바꾸라고 외쳐도, 그들은 듣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 말도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낫다. 왜냐하면, 저쪽은 요점이 뭔지도 모르니까!



그들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기 때문에,(또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과를 해야 한다. 사과를 할 때까지,

나는 그 사람과 절대 말 하지 않을 거야.



우리가 항상 같은 장소에서 끝내면, 말하는 게 즐거울 리가 없지, 저쪽이 나를 단념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도록, 말 한마디도 안 하는 게 훨씬 나아.



이 모든 시나리오에서, 이들은 침묵이 갈등을 극복하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의 말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사람과의 대화를 단절함으로서, 상대방이

 이것을 벌로서 인식하게 만들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상대방은 자신의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처벌로서 침묵을 사용하는 것은 공격적인 일이다

침묵은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정말로 폭력적이기 짝이 없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수동적인 공격성을 취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을 향해 묵시적으로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 이런 종류의 태도는 직접적인 침략만큼이나 유독한 것이다. 침묵은 여러 방면으로 해

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멈추는 사람들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또한 이 상황이초래하는 결과에

 대해 분명한 기대감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전술에 의존하는 사람들에게 한번 질문해야 한다:

당신은, 상대방이 정말로 당신의 침묵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화의 부재가, 정말로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있거나, 변화하고 싶게 만들거나,

공격하는 수단이라고 정말로 생각하고 있는가?



침묵은 서로의 거리를 더더욱 멀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서로의 거리는 일반적으로 깨지거나 손상된 유대

관계를,이해하거나 복원하기에 좋은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멀게 만들 뿐이다.



반면에,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는 것은 잠시 동안 효과적일 수는 있다. 처벌을 바라지 않되, 상대방이 움직

이도록 유도한다. 상대방이 우리에게 사과하여, 기대하고 있는 변화로 돌아가도록 유도하거나, 당신이 원

하는대로 행동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장기적으로는 잠재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분노를 품게 만들 것이다.

 침묵이 갈등을 완전히 해결하거나 해결책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저 문제점을 감춰버릴 뿐이다.



침묵의 더욱 건강한 여러 기능

때로는 말하는 것이 낫다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실제로 일을 끝낼 때 그러하다. 분노는 우리를

 과장되게 만들고, 우리가 실제로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만든다. 그 조건에서 우리는 우리의 평정을 회복할 때까지, 침묵보다는 휠씬 더 잘 작용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했듯이, 누군가를 처벌하거나 ‘항복’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침묵을 사용하면, 거의 긍정적인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분노나 격노를 표현하는 도전에 직면하게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를 주지 않는다. 그 상황의 탈출구는 말하기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돕는 다리를 만드는 방법을

 새로이 찾아내는 것이다. 말의 부재는 상대방에게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분쟁이 사라진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상대방도 짐짓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위험한 나비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어쩌면 대화를 위한 더 나은 조건을 찾아야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의 비난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도

찾아봐야 할 것이다. 평소의 공간에서 더 따뜻하고 친근한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은, 때로는 소통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심어린 말을 전한다면 어떨까? 당신이 전하는 말과, 다른 사람이

느끼는 바는 정말로 다를 수도 있다. 그러니 이 방법은 결코 거의 실패하지 않는 방법일 것이다.

한번 시도해보자.



-원문출처: 원더풀 마인드

https://wonderfulmind.co.kr/use-silence-as-punish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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