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3.

[음악명상] 방황 걷고 또 걷고 - 김영동 어디로 갈까나







[음악명상] 방황 걷고 또 걷고 - 김영동 어디로 갈까나







1

[음악동영상  김영동  어디로 갈까나 ]









01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02 방황 彷徨 -네이버 국어사전

-이리저리 헤매어 돌아다님. 잘 곳을 정하지 못해 거리에서 방황을 계속하였다.
-분명한 방향이나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함. 젊은 시절의 방황
-[북한어] 오락가락, 이리저리 자유롭게 거닒.

03
"가고 가고 가는 중에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중에 깨닫게 된다."
去去去中知 行行行裏覺
거거거중지 행행행리각
-권태훈(1900~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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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방황(輪形彷徨)
이진경  |  jinkyung.lee@yahoo.co.kr


눈을 가리고 걸을 때 사람은 아무리 똑바로 걷고 싶어도 똑바로 걷지 못한다. 처음 몇 걸음은
가능하겠지만 걸음이 길어지면 어김없이 직선으로부터 간격이 벌어진다. 그런 식으로 점점 간격이
벌어지다 아주 먼 길을 걷게 되면 결국은 커다란 원을 그리며 걷게 되고 만다. 실제로 알프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길을 잃은 조난자는 마을을 찾기 위해 눈 속에서 매일 12시간씩 걸었으며,
그렇게 조난자는 13일을 방황했다. 12시간씩 13일을 걸었다면 도대체 얼마나 멀리까지 걸어갔던
것일까? 그런데 결국 조난자가 구조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 조난자가 길을 잃은 장소에서 불과 6킬로
미터 반경 안에서 헤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눈을 가리고 걸을 때 큰 원을 그리며 걷게 되는
 현상을 한 독일 학자는 ‘링반더룽’(Ringwanderung)이라고 불렀다. 고리 모양의 방황이라는 독일어로
 우리말로는 윤형방황(輪形彷徨) 또는 환상방황(環狀彷徨)이라고 한다. 집을 잘 찾아오는 비둘기와
개 역시 눈을 가리면 커다란 원을 그리며 날거나 걷는다고 하니 이 현상은 비단 인간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닌 모양이다.

내 딴에는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제자리. 왠지 낯익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단거리 직선으로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많이 온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제자리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왜일까? 어쩌면 지금 나는 윤형방황처럼 눈이 가린 채로 걷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새 세상에 눈이 가려져버려 한 치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빙빙 원만을 그리며 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을 가리고도 윤형방황을 피해 똑바로 걸어가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과감한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걷는 것이고, 둘째는 30걸음쯤 걷다 잠시 멈추고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출발해
다시 30걸음쯤 걷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어느덧 삶에 허덕이면서 눈이 가린 채 윤형방황 속에 빠져
 있는 나를 보게 된다면 이 두 가지 방법을 되새겨보고 삶에 적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후략)

-전문보기: 아래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4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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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없이 사는 일은 방황이다......


인식의 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목적을
정확히 하고 사는 것이다.

살아가는 목적이
정확한 사람은 방황하지 않는다.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일직선으로 나간다.

하지만 목적이 없이 사는 사람은
돈을 벌어도, 건강해도, 명예를 얻어도
목적이 없다면  방황하는 사람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목적 없이 하루 하루 살아간다.
그것이 바른 삶이라 생각한다.

지금 순간을 보면 방황하지 않지만
멀리 내다보면 방황하며 산다.

목적이 정확한 사람은
돈을 좀 벌지 못해도 방황하지 않는다.

목적이 정확한 사람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섭섭해 하지 않는다.

지금 하는 일을 잠깐 멈추고
나는 과연 이 세상을 살면서
무슨 목적을 가지고 사는지
한 번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목적이 정확한 사람은 방황하지 않기 때문이다.


- 좋은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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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길을 걷고 있었다..

1.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 곳에 빠졌다.

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 구멍에서 빠져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2.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걸 못 본 체했다.
난 다시 그 곳에 빠졌다.

똑같은 장소에 또다시
빠진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 곳에서 빠져나오는 데
또다시 오랜 시간이 걸렸다..


3.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미리 알아차렸지만 또다시
그 곳에 빠졌다.

그건 이제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난 비로소 눈을 떴다.
난 내가 어디 있는지를 알았다.
그건 내 잘못이었다.
난 얼른 그 곳에서 나왔다..


4.
내가 길을 걷고 있는데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 둘레로 돌아서 지나갔다..



5.
난 이제 다른 길을 찾은 듯 하다..
난 이제 다른 길로 가고 있다..

-포르티아 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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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여행은 방랑이다/법정 스님



<명료자유>는 여행의 멋과 참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르쳐준 글이다.
여행이란 곧 방랑을 뜻한다. 방랑이 아닌 것은
진정한 여행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여행의 본질은 그 어떤 의무도 없고
일정한 계획도 없고 편지도 없고
호기심 많은 이웃도 없다. 환영회도 없고
정해진 목적지도 없는 자유로운 나그네길이다.
(p.93)

그러나 좋은 여행은 목적지보다도
그 과정과 도중에서 보다 귀한 것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은 여행뿐 아니라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되는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삶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물으면서
탐구하는 그 과정에서 보다 값진 인생을
이룰 수 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 안에서
고마움과 기쁨을 찾아내어 누릴 줄 알아야한다.
(p.94)

여행은, 즉 나그네길은 더 말할 것도 없이
혼자서 홀가분하게 나서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나 형편이 그러지 못할 때는
동반자가 필요한데 그 동반자를 잘 택해야 한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도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그래서 옛 성인도 말씀하셨듯이
‘차라리 혼자서 갈 것이지 어리석은 자와
길벗이 되지 말라’고 가르친 것이다.(p.95)

운수야인으로 자처한 명료자는 행복을 얻는
비결은 즐거움을 끝까지 추구하지 않고
알맞게 그칠 줄 아는 데에 있다고 한다.
알맞게 그칠 줄 안다면
우리들의 삶은 넘치지 않고 신선할 것이다.
그는 여행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표주박 하나에 옷 한 벌로 가고 싶은 곳은
아무 데나 가고 머물고 싶은 곳에서 머문다.
어느 곳에 자더라도 주인의 일은 일체 묻지 않고,
그곳을 떠날 때에도 내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
추위 속에 떠나도 외롭지 않고,
시끄러운 무리 속에 섞여도
그 때문에 내 마음은 물들지 않는다.
그러니 내 방랑의 뜻은 단순한 떠돌이가 아니라
도를 배우려고 하는 데 있다.’ (p.96)

ㅡ<오두막 편지>에서

-발췌원본: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621879&memberNo=4864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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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나태주






‘풀꽃’은 대중에게 나태주란 이름을 인장처럼 새기게 한 대표작이다. 2012년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에 내걸렸던 시구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라는
시구는 지난해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글판으로 뽑혔다. 쉽고 간명한 시어지만 한 번 두
번 곱씹어 볼수록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그의 시에는 ‘위로의 힘’이 있다.

이번 수상작 ‘돌멩이’도 독자들의 마음에 불쑥 그윽한 파동을 일으킨다. 시인이 백담사 내설악
골짜기를 찾았다가 자갈돌을 건지며 함께 길어 올린 시다.

“맑은 물 밑에 깔린 자갈돌이 참 예뻤어요. 갈 때 하나 주워가야겠다고 마음먹고 바위 위에
하나를 건져 올려놨죠. 10여분 배회하고 돌아왔을까. 물에 젖어 반짝반짝했던 자갈이 물이
 마르니 다른 돌과 똑같이 되어버렸어요. 찾을 수가 없었죠. 난감하더라구요. ‘이게 우리 사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나도 본래의 나를 잊어버리고 남과 구분이 안 되게 사는
 건 아닌가’ 하고요. 시란 인생의 각성과 발견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거잖아요. 그래서 늘
이렇게 제 생활에서 시가 뽑아져 나옵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발췌출처: 서울신문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0622024005#csidxbbd98983861dce4b8475c21b4f63c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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