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21.
[예화] 이 빠진 접시
[예화] 이 빠진 접시
내가 식탁을 차리고 있을 때면 엄마는 종종 가장 좋은 접시들을 꺼내 놓으라고
말했다. 자주 있는 일이라서 나는 거기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난 그것이
엄마의 일시적인 기분이라고 여기고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내가 식탁을 차리고 있는데 예고도 없이 옆집에 사는 마가렛
아줌마가 찾아왔다. 마가렛이 문을 두드리자 음식 만드느라 정신이 없던 엄마는
아줌마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주방으로 들어온 마가렛 아줌마는 식탁에
놓인 아름다운 접시 세트가 눈에 띄자 이렇게 말했다.
"아, 손님이 오실 예정인 줄 몰랐네요. 다음에 다시 올께요.
먼저 전화를 드리고 나서 왔어야 하는 건데."
엄마가 말했다.
"아녜요. 괜찮아요. 아무 손님도 오지 않아요."
그러자 마가렛 아줌마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왜 이렇게 귀한 그릇 세트를 꺼내 놓았죠?
난 이런 그릇은 일년에 한두 번밖에 쓰지 않는데."
엄마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난 지금까지 우리 가족을 위해 언제나 가장 좋은 식사를 준비해 왔어요.
손님이나 외부인을 위해 특별한 식탁을 차려야만 한다면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할 까닭이 없지 않겠어요? 가족은 누구보다도
특별한 사람들이니까요."
"그 말도 일리가 있긴 해요. 하지만 그러다가 아름다운 그릇들이 깨지기라도
하면 어쩔려구요?"
마가렛 아줌마는 가족에 대해 엄마가 갖고 있는 특별한 가치 기준을 이해하지 못했
기 때문에 그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도 있겠죠."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온 가족이 저녁 테이블에 앉아 이 아름다운 그릇들로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접시에 이가 빠지는 것쯤은 그다지 큰 대가가 아니죠.
게다가..."
엄마는 소녀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덧붙였다.
"이 빠진 접시들은 제각기 그것과 관련된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기 마련이죠."
그렇게 말하면서 엄마는 찬장으로 가서 접시 하나를 꺼냈다.
그것을 손에 들고 엄마는 말했다.
"이 접시에 이가 빠진 게 보이죠? 내가 열 일 곱살 때의 일이었어요.
난 그날을 결코 잊을 수 없답니다."
마치 다른 시대를 기억하는 듯 엄마의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어느 가을 날, 오빠들은 그해의 마지막 건초를 저장하느라 일꾼이 필요했지요.
그래서 젊고 튼튼하고 잘 생긴 청년이 우리 집에 고용됐답니다. 엄마가 나더러
닭장에서 금방 난 달걀들을 꺼내 오게 했어요. 내가 그 청년을 본 건 그때가 처
음이었어요. 난 걸음을 멈추고 서서 그가 크고 무거운 건초 더미를 어깨에 들어
올렸다가 능숙하게 헛간의 널 대 위로 집어던지는 걸 바라봤어요.
정말이지 매력적인 남자였어요. 가는 허리에다 팔뚝은 강인해 보이고 머리 결은
빛이 났답니다. 그는 내가 바라보는 걸 눈치챘는지 어깨에 건초 더미를 들어올린
채로 얼굴을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었어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미남
이었어요"
엄마는 손가락으로 접시 가장자리를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오빠들도 그 청년이 맘에 들었던 모양인지 저녁 식사에 그를 초대했답니다.
큰오빠가 그 사람더러 내 옆자리에 앉으라고 말했을 때 난 거의 숨조차 쉴 수
없었지요. 그를 쳐다보고 있다가 들킨 뒤였으니 내가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그런데 이제 그 사람 바로 옆에 앉아 있게 된 거예요. 그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서 입을 꼭 다물고 식탁만 내려다봤지요.
문득 어린 딸과 이웃집 여자 앞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듯 엄마는 얼굴을 붉히며
서둘러 이야기의 결론으로 달려갔다.
"어쨌거나 그 사람이 나한테 음식을 덜어 달라며 접시를 내밀었는데
난 너무 긴장되고 떨리고 손바닥에는 땀까지 나서 그만 접시를 떨어뜨리고
말았답니다. 접시는 찜냄비에 부딪치면서 그만 한쪽에 이가 빠져 버렸지요."
엄마의 이야기에 무감동한 채로 마가렛 아줌마가 말했다.
"나 같으면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군요."
엄마가 말했다.
"오히려 정반대죠. 일년 뒤에 난 그 멋진 남자와 결혼을 했으니까요. 그리고 지
금까지도 이 접시를 볼 때마다 난 그이를 처음 만난 그날이 생각나요."
엄마는 접시를 다른 접시들 뒤켠의 제자리에 도로 집어넣었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엄마는 얼른 윙크를 하셨다.
방금 한 이야기에 마가렛 아줌마가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한 걸 알고 엄마는 서둘러
다른 접시를 꺼냈다. 이번 것은 완전히 깨졌다가 접착제로 다시 조각들을 이어 붙인
접시였다.
"이 접시는 우리의 아들 마크가 막 태어나서 병원에서 집으로 온 날 깨진 거랍니다.
그날은 어찌나 춥고 바람이 세게 불던지! 여섯 살 짜리 딸아이가 날 거들겠다고 접
시를 싱크대로 나르다가 그만 바닥에 떨어뜨렸지요. 처음에 난 당황했지만, 다음
순간 내자신에게 말했어요.
저건 깨진 접시에 불과해. 깨진 접시 하나가 새로운 아기가 우리 가정에 가져다 준
행복을 망쳐 놓을 순 없어, 라고 말예요. 사실 그후 우린 접시의 깨진 조각들을 맞
추느라고 몇 번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요."
내가 보기에 엄마는 그것 말고도 다른 접시들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간직하고 계
신 듯했다.
그 뒤 여러 날이 지나도록 나는 엄마가 아빠를 처음 만난 날 깨셨다는 그 접시에 대한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그것을 다른 접시들 뒤켠에 고이 간직해 왔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그 접시가 자꾸만 내 생각을 사로
잡았다.
며칠 뒤 엄마가 야채를 사러 시내로 나가셨을 때였다. 엄마가 외출하시면 나머지 아
이들을 돌보는 건 내 몫이었다. 엄마가 탄 차가 도로 아래쪽으로 사라지자마자 나는
다른 때처럼 얼른 부모님의 침실로 달려갔다.
그것은 사실 금지된 일이었다. 나는 의자를 끌어와 그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서랍장의 맨 윗 서랍을 열었다. 그 다음에는 지금까지 수없이 한 것처럼 서랍
을 뒤지기 시작했다. 서랍 안쪽, 어른들이 입는 부드럽고 좋은 냄새가 나는 옷 밑에는
나무로 만든 네모난 보석 상자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늘 같은 내용물이 들어 있었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힐다 고모가 엄마에게 물려주신 붉은 색 루비 반지, 엄마의 엄마에게
결혼식날 외할아버지가 선물한 섬세한 진주 귀걸이, 엄마 자신의 특별한 결혼 반지
등이 있었다. 엄마는 아빠일을 돕기 위해 외출할 때면 종종 그 반지를 끼셨다.
소중한 보석들에 다시금 매혹되어 모든 계집애들이 하듯이 나는 그것들을 손가락에도
끼어 보고 귀에도 달아보았다. 나도 이 다음에 엄마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되면 이런
우아한 보석들을 가질 것이라고 다짐했다. 어서 빨리 나 자신의 서랍장을 가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로 그걸 열어 보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나는 바랬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런 생각들에 너무 오래 매달려 있지 않았다. 나는 그 보석함
밑바닥에 깔아 놓은 작은 붉은 색 융단을 들췄다. 거기에는 보석과 분리된 곳에 접시에
서 깨어져 나온 평범한 사금파리 하나가 보관되어 있었다.
전에는 그것이 내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상자에서 꺼내 조심스럽게 빛에 비춰 보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부엌 찬
장으로 달려가 의자를 받치고 그 접시를 꺼냈다. 내가 상상한 그대로 엄마가 세 개밖에
없는 소중한 보석들과 함께 보관하고 있는 그 사금파리 조각은 엄마가 처음 아빠와 눈이
마주친 날 깬 바로 그 접시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고, 엄마에 대해 더 많은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
성스런 접시 조각을 보석 상자에 조심스럽게 도로 갖다 넣었다. 이제 나는 엄마의 그릇
세트가 가족에 대한 많은 사랑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았다.
그 접시들만큼 엄마에게 소중한 유산은 없었다. 깨어진 접시 조각과 함께 가장 특별한
사랑 이야기가 시작 됐으며, 그 이야기는 이제 33번째 장에 이르렀다. 부모님이 결혼하신
지 올해로 33년이 된 것이다!
내 여동생들은 엄마에게 나중에 그 골동품 루비 반지를 자기들한테 달라고 부탁했다.
다른 여동생은 외할머니의 진주 귀걸이를 갖겠다고 말했다. 나는 여동생들이 이 아름다
운 가정의 유산을 물려받게 되기를 바란다. 나 자신은 매우 특별한 한 여성의 매우 특별한
사랑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그 기념품을 갖고 싶다.
그 작은 접시 조각 말이다
베티 B, 영
-마음이 따뜻해지는 백한가지 이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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