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양귀비와 헌종의 애절한 사랑 연리지[ 連理枝 ]
[연리지]
連 : 이을 연
理 : 이치 리, 결 리
枝 : 나뭇가지 지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나무처럼 자라는 현상.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뜨거운 사랑을 읊은 시
‘장한가(長恨歌)’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칠월칠일장생전(七月七日長生殿;7월 7일 장생전에서)
야반무인사어시(夜半無人私語時;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약속)
재천원작비익조(在天願作比翼鳥;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재지원위연리지(在地願爲連理枝;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천장지구유시진(天長地久有時盡;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가 있건만)
차한면면무절기(此恨綿綿無絶期;이 한은 끝없이 계속되네.)
위 시의 비익조는 날개가 한쪽 뿐이어서 암컷과 수컷의 날개가 결합되어야만
날 수 있다는 새로서 연리지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연리지 [連理枝]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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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외연도의 동백나무 연리지
부부간의 사랑을 비유하는 말에 '비익연리(比翼連理)'라는 말이 있다. 비익조
(比翼鳥)라는 새와 연리지(連理枝)라는 나무를 합친 말이다.
이 말은 당나라 때 시인 백낙천(白樂天)이 지은 <장한가(長恨歌)>1)에 나온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영원히 헤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비익조(比翼鳥)에서 비(比)는 앞서 비견(比肩)·즐비(櫛比) 등의 말에서 보았듯
나란하다는 뜻이다. 익(翼)은 날개이다. 비익조(比翼鳥)는 전설 속의 새이다.
이 새는 눈도 하나요, 날개도 하나뿐이다.
그래서 암수 한 쌍이 한데 합쳐야만 양 옆을 제대로 볼 수 있고 날 수도 있다.
또 연리지(連理枝)의 리(理)는 '결'이라는 뜻이다. 연리지란 그러니까 나무결이
연결된 가지를 말한다. 뿌리가 서로 다른 나무가 허공에서 만나 한 가지로 합쳐
진 나무이다.
부부는 비록 다른 집안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랐지만, 결혼을 해서 한 가정을
이루게 되면 연리지(連理枝)처럼 한 몸을 이루어, 비익조(比翼鳥)와 같이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 준다.
-하나 되는 사랑, 비익조(比翼鳥)와 연리지(連理枝)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2011.5.23,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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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되는 사랑, 비익조(比翼鳥)와 연리지(連理枝)
최상현의 세상보기] 장한가(長恨歌)-황제의 사랑
뉴스천지 | newscj@newscj.com 2013.10.17 17:42:34 최상현(주필)
당나라 현종과 경국지색 양귀비가 만난 것은 현종의 나이 55세, 양귀비는 22세
때였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피가 끓고 살이 타는 황홀경의 사랑을 시작했다.
정말인지는 모르지만 황제가 마음만 먹으면 다 그의 ‘것’인 3천 궁녀가 있었다
지만 현종은 오로지 양귀비에게만 빠져있었다. 그렇기에 현종의 밤은 양귀비
만이 독차지할 수 있었다.
양귀비를 만난 뒤부터 황제는 조회(朝會)에 늦거나 빠지는 일이 잦아졌다.
유시유종(有時有終), 천하의 모든 일이 시작이 있고 끝이 있듯이 이들의 불타는
사랑도 16년을 이어져 오다 현종이 71세, 양귀비 나이 38세에 끝이 났다.
현종은 인생의 황혼기였지만 양귀비는 타고난 미색이 여전한 나이였다. 사랑의
종말은 현종이 안록산의 반란에 쫓기어 서남쪽 촉으로 피난 가던 길에 벌어졌
다.
촉으로 가는 길은 험준한 고산준령에다 산악의 길은 비탈지고 좁아 ‘푸른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더 가기가 어렵다’는 곳이다.
현종과 양귀비의 피난 행렬이 장안에서 서쪽으로 1백여 리 떨어진 마외파에 이르
렀을 때다. 돌연 황제의 근위병들이 황제를 호위하고 따르던 재상 양국충을 활로
쏘아 말에서 떨어뜨리고 양귀비마저 처단할 것을 요구했다.
양국충은 양귀비 덕분에 출세한 양귀비의 친인척이다. 현종에게는 반란 속의 반
란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양귀비와 그의 친인척들이 황제의 총명을 흐리게 하고
국정을 농단해옴으로써 나라의 운명을 존망의 위기에 처하게 했으며 급기야는
반란군에 쫓기어 피난을 떠나는 위급한 지경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양귀비의 처단을 요구한 근위병들만의 목소리였을까. 요즘 말하는 ‘백성
의 소리, 하늘의 소리(박스 포퓰라이, 박스 디아이/ vo’x po’puli, vo’x De’i)’가 아
니었을까.
고립무원의 피난길에서 이 같은 돌발 사태를 맞은 현종은 선택의 여지없이 양귀
비에게 자결을 명령한다. 천하의 주인인 황제도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 명령에 따라 자연인으로서의 본명이 양옥환(楊玉環)이었던 양귀비는 무상한
잠시의 영화를 흐르는 역사의 시간 속에 묻고 짧은 한 생을 마친다.
그녀는 마외파의 작은 불당(佛堂) 안의 배나무에 목을 매 죽었다.
불쌍하고 슬픈 죽음이다.
양귀비는 촉에서 사호(司戶)라는 벼슬을 지낸 양현염(楊玄琰)의 딸이다. 양귀비
가 현종의 총애를 독점하면서 그의 양씨 친인척 모두에게는 장안 주변의 좋은
땅들이 황제에 의해 하사됐고 벼슬자리도 빠짐없이 나뉘어졌다.
부와 권력이 양씨 일가에게 집중되는데 민심의 선망과 질시가 집중되지 않을 수
없고 위화감이 조성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은 불문가지다.
양귀비를 이렇게 보내면서 현종은 피눈물을 흘린다. ‘그의 눈물에는 양귀비의
피가 뒤섞여 흘렀다’고 한다. 그것이 백거이(白居易)가 장한가(長恨歌)에서 읊은
‘혈루상화루/ 血淚相和淚’라는 대목이다.
양귀비가 없는 밤은 현종에게 견디기 어려웠다. 그는 말했다. ‘밤이 이렇게 긴 줄
을 비로소 알았다(初長夜)’라고-. 장한가는 자가 락천(樂天)인 당나라 때의 대시
인 백거이가 현종과 양귀비 사이의 비련을 다룬 역사시이며 황제 현종의 사랑을
사실적으로 기술한 걸작의 서사시다. 다만 백거이가 현종과 양귀비를 직접 거명
하지 않고 한무제의 고사에 빗대어 썼으나 장한가가 당 현종과 양귀비의 비련을
다룬 것임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백거이의 장한가에 의하면 현종과 양귀비는 칠월칠석 날 깊은 밤에 맹세하기를
‘하늘에서는 암컷과 수컷이 반드시 짝지어 나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땅에서
는 뿌리는 다르지만 서로 얽히어 자라는 나무인 연리지(連理枝)가 되자’고 했다.
이렇게 황제와 주고받은 사랑의 맹약도 훗날 휴지조각이었다. 사람들 사이의
맹세는 이처럼 허다하게 지켜지지 않는 것이 예사다. 그것이 진리 아닌가.
그렇다 해도 현종과 양귀비 사이의 사랑은 그 비참한 최후로 미루어 보아 원래
하늘이 축복한 사랑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백거이는 양귀비 같은 천생의 미녀는 반드시 임자가 있기 마련이어서 누가 차지
해도 차지한다는 뜻으로 ‘천생의 아름다움은 버려지기 어렵다
(천생여질 난자기/ 天生麗質 難自棄)’고 했다.
그 말마따나 양귀비에게는 일찍부터 임자가 있었다. 원래는 현종의 열여덟 번
째의 아들 수왕의 비였다. 수왕의 비인 양귀비가 빼어난 미인임을, 마침 절세미
인을 찾던 풍류의 황제 현종에게 누군가가 고해바쳐 그 미모에 반한 현종이 하
루아침에 그녀를 취해 비로 삼았다. 말하자면 며느리가 마누라가 된 것이다. 이
처럼 시작이 개운치가 않았다.
절대 권력의 전제군주, 황제는 매사를 제멋대로 해도 그 밑에서 벼슬을 하고 목
숨을 부지하는 사람들은 알랑거리고 비위 맞추기에 바쁘지 견제에 나서기가 어
려웠다. 특히 황제의 원초적인 본능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중국이나 우리 땅에서나, 동서양어디에서나 그 시절에는 대동소이하다. 황제의
사랑은 황제의 선택이지 배필의 선택은 아니었다.
황제라고는 하지만 시아버지가 부를 때 양귀비의 심사는 어떠했을까. 달려가고
싶었을까? 죽고 싶었을까? 운명의 바람에 내맡기자는 체념의 심정이었을까?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에 대한 갈등으로 고통은 겪지 않았을까? 그리고 원래
양귀비의 남편인 현종의 아들 수왕은? 상전벽해(桑田碧海)보다 더 변한, 개명
한 지금 시대의 사람으로서 이런 저런 것을 생각할 때 머리가 터질 듯 복잡하지
만 어떻든 그때의 역사는 그렇게 그때의 방식으로 결판이 났다. 지금으로 보아
터무니가 없더라도 그런 역사를 알아야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있는지, 어떤 모
습으로 살고 있는지가 보인다. 역시 그래야 우리가 가는 미래가 짐작이 간다.
현종 시절의 황제들은 개개는 억센 뿔로 언제 주인을 들이받을지 또는 난폭한
발길질로 언제 도자기를 깰지 모를 ‘도자기 가게 안에 든 황소(A bull in a china
shop)’ 같은 이미지를 지닌다. 권력은 견제가 없으면 폭주한다. 이것도 알아야
한다. 오늘의 치세를 역사의 흐름에 비추어 정확히 보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참고서적 장기근 편저, 출판사 석필 간)
-발췌출처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209559
[위 내용을 디자인편집해보았다-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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