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26.

[명언음악] 허무주의의 극복 니체 Paganini Sonata No. 12






[명언음악] 허무주의의 극복 니체  Paganini Sonata No. 12


















음악[음악동영상. 모래시계]

음악[음악동영상. 파가니니]






























































00
나는 존재하는 전부가 아니다. 허무와 싸우는 생명이다.
나는 허무가 아니다. 허무 속에 타는 불이다.
나는 영원한 싸움이다. 나는 영원히 싸우는 자유의 의지이다.
- R. 롤랑




00
만물은 허무에서 나와서 무한을 향해 움직인다.
이 놀라운 행진을 누가 따를 수 있으랴.
이 불가사의한 일을 만든 분만이 알고 있다.
그 밖의 다른 누구도 알 수 없다. -파스칼


00
이 세상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명성이란 무엇인가. 꿈에 지나지 않는다.
- F. 그릴파르처




00

젊음의 소멸, 기력과 경쾌감이 넘치는 인간의 파괴는
이미 허무를 향한 첫걸음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00






[니체명언]

01
강한 신앙을 동경하는 것은 강한 신앙의 증거가 아니라 그 반대이다.
사람이 강한 신앙을 지닌다면 그 사람은 회의론의 사치에 빠질 수 있다.
-니체



02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
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래동안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보게될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중에서...

03
차라리 고난 속에 인생의 기쁨이 있다.
풍파 없는 항해, 얼마나 단조로운가!
고난이 심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

04
너는 안이하게 살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항상 군중 속에 머물러 있으라.
그리고 군중에 섞여 너 자신을 잃어버려라.

05
등산의 기쁨은 정상에 올랐을 때 가장 크다.
그러나 나의 최상의 기쁨은 험악한 산을 기어올라가는 순간에 있다.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가슴이 뛴다.
인생에 있어서 모든 고난이 자취를 감췄을 때를 생각해 보라!
그 이상 삭막한 것이 없으리라.

06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超人이 살게 되길 바란다.

07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08
옛사람들이 신을 위해서 행했던 것을
요즘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 행한다.

09
어느 정도 깊이 괴로워 하느냐 하는 것이 거의 인간의 위치를 결정한다.
-니체

10
언젠가 날기를 배우려는 사람은 우선 서고, 걷고, 달리고, 오르고,
춤추는 것을 배워야 한다. 사람은 곧 바로 날 수는 없다. -니체


11
얼마만큼 깊이 고뇌할 수 있는가가
인간의 위치를 결정짓는다. -니체


12
즉 그것은 반추(反芻, 되새김)하는 것이다. -니체


13
위대한 인간이란 역경을 극복할 줄 아는 동시에
그 역경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니체




14
이것이 인생인가,
좋다, 다시한번!





-----------------------


[허무주의]

허무주의(虛無主義) 또는 니힐리즘(Nihilism)은 기성의 가치 체계와 이에 근거를
 둔 일체의 권위를 부인하고 음산한 nihill('허무'의 라틴어)의 심연을 직시하며
살려는 사상적 입장이다.

우주·인생의 진상을 무에서 보려고 하는 사상은 노자(老莊)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이나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 사상에서도 볼 수 있으나, 자각적인 사상으
로서의 본래의 니힐리즘은 19세기 중엽 이후로부터 현대에 걸친 서구 사회의 특유
한 사상이다. 곧 서구 근대 시민 사회의 가치체계가 붕괴하고 그 후에 올 장래의
가치에 대해 전망할 수 없는 역사의 위기적 전환기에 있어서 소시민층의 세계관의
반영으로서 성립한 것이다.

시민 사회를 역사적 진보의 완성으로 성화시키는 헤겔의 절대정신 철학은 그리스
적 지성과 유대적 신앙의 대담한 절충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강제적인 결혼
은 중매자인 헤겔의 죽음과 함께 파탄을 일으켰다. 합리적·실증적 정신의 발달에
 의해 그때까지 가치 목적을 한몸에 집중시키고 있던 신에의 신앙이 상실되었을 때,
그 후에 남겨진 적나라한 자연의 실상은 가치의 껍데기라고 할 수 있는 허무(니힐)
의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들을 무한한 불안과 절망의 심연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헤겔 철학에 반발한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이나 키르케고르의 실존주
의 사상에 근대시민들의 생을 잠식하고 있는 허무한 기분이 짙게 반영되기 시작하
였다. 또 헤겔 좌파의 맹장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을 철저히 밀고 나가 강렬한 에고
이즘의 입장을 세운 독일의 '자유파' 사상가 슈티르너의 자리를 무(無) 위에 놓음
으로써 자기 이외의 어떠한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절대적 자유를 향수하려는 무정
부주의적 니힐리즘 철학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허무주의적인 시대 풍조는 드디어 러시아의 작가 투르게네프의 <아버지
와 아들>(1861)의 청년 주인공 바자로프에 의해 니힐리스트라는 하나의 인간상으
로까지 결정(結晶)되었다. 철저한 과학적 실증주의 입장에서 일체의 기성 질서나
가치의 권위를 부정하는 이 자유주의를 투르게네프가 '니힐리스트'라고 명명한 이
래로 니힐리즘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었다. 신인(神人) 예수에 대한 소박한 신앙을
 거부하고 스스로 인신(人神)의 입장에서 서려고 하는 니힐리스트들의 삶은, 도스
토옙스키의 영필(靈筆)에 의해 신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무서운 인격
분열의 절망을 초래하는 것으로서 날카롭게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 사조로서의 니힐리즘의 저류를 철저히 적발하여 이를 명확한
하나의 사상으로 끌어올린 사람은 니체로서, 니체는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지
배하고 고귀한 자가 비소(卑小)한 자를 지배하는 것이 본래의 가치 체계라고 하는
 권력의지설의 입장에서 니힐리즘을 분석하여 '수동적 니힐리즘'과 '능동적 니힐
리즘'의 두 유형을 발견한다.

'수동적 니힐리즘'은 약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서 쇠퇴하고 허무한 현
실을 직시할 것을 회피하고 찰나적인 향락주의나 무관심한 이기주의 등 퇴폐적 삶
에 의해 공허감을 채워보려는 것이다. 여기서 니힐리즘은 잠재적인 형태로 예감될
 뿐이며 그 참된 극복은 무한히 연기된다.
이에 대해 소모적인 현실 도피의 삶을 거부하고 니힐의 병근(病根) 한가운데로
적극 개입함으로써 허무의 현실을 초극하려는 것이 '능동적 니힐리즘'이다. 이러
한 능동적 니힐리즘의 입장에서 모든 현존하는 가치나 질서가 뽐내는 절대적 권위
를 파괴해 갈 때, 거기에 새로운 가치를 자유로이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싹튼
다.
우상의 가면을 벗기는 이기(利器)로서 무(無)를 내세움으로써 무를 단순한 생의
소모 원리로부터 생의 적극적인 창조 원리로 전환시켜 나가는 '능동적 니힐리즘'
이야말로 니힐리즘의 지배 밑에 있는 현대를 살아가는 당연한 생활 방식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확실히 근대 합리주의의 문화는 여러가지 형태로 '목적과 수단의 가치 전도'를
일으켜서 잠재적인 니힐리즘을 준비하고 있다. 니힐리즘은 이 잠재적 니힐리즘
과 성실하게 대결하여 거기에 숨어 있는 우상 숭배적인 태도를 파괴하고 그 폐
허 위에 진실한 가치의 탄생을 이룩하려고 한다. 물론 니힐리즘 자체는 환영할
만한 손님은 못되지만 적어도 현실 도피적인 무관심주의나 찰나적인 향락주의보
다는 훨씬 진지하고 성실한 생활 태도의 소산인 것이다. 타협을 거부하고 진실
하게 살려고 하는 자만이 우상숭배적인 삶의 허망함에 절망할 수 있는 것이다
.
허무를 우러르고 허무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는 허무를 허무로서 직시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키에르케고르도 역설한 것처럼 현실의 삶이 허무에 잠식되고 있
을 때, 이러한 삶에 대해 절망하지 못한다는 것은 구원할 수 없는 중증(重症)의
 절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니힐리즘은 거기에 안주할 서식처는 아니지만, 진실한 삶에 도
달하기 위하여 경과해야 할 현대인의 필수적인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전체적 목표와 그 목표 달성을 위한 온갖 부분적 수단의 본말관계(本末關係)를
전도하는 것이 잠재적 니힐리즘의 참된 원인이다. 이러한 가치전도를 바로잡으려
는 것이 '생의 철학'이다.
생의 철학에서는 인생을 위한 합리(合理)이지, 합리를 위한 인생이 아니라는 것
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생의 철학의 주장을 한 걸음 더 진전시켜, 허무한 현실을
 스스로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결단에 의해 허무의 심연을 초극하려는 것이 실
존주의이다.


-발췌출처: 위키백과 '허무주의'

---






















댓글 없음:

댓글 쓰기

가장 많이 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