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시] 버지니아 울프 - 이상한 결혼 ...목마와 숙녀
[박인희 -목마와 숙녀.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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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이영주기자)
9일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 세계적인 여류작가 버지니아울프의
자살원인에 대한 이야기가 공개됐다.
서프라이즈 ‘말할 수 없는 비밀’편은 60세의 나이에 주머니에 돌을 넣고 물에 뛰
어들어 자살한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조명했다.
‘자기만의 방’, ‘댈러웨어 부인’ 등의 유명 소설을 출판해 영국최고의 여류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곁에는 평생 그를 사랑과 헌신으로 내조한 남편
레너드 울프가 있었다.
그는 “나와 결혼하기 위해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작가인 나를 내조하고,
잠자리 요구도 하지 말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무리한 요구조건을 받아들였고,
신경질적이고 심신이 약한 버지니아 울프의 집필을 헌신적으로 도왔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출판해줄 회사가 나타나지 않자 직접 출판사를 설
립해 아내의 소설을 출간하기도 했다. 출판된 소설은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남편의 이러한 노력에도 버지니아 울프의 우울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유명한 작가’라는 중압감은 그를 더 괴롭혔고, 강박감에 글을 쓰기가 힘들 때마
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 모든게 당신 때문”이라고 남편을 몰아세우곤 했다.
어릴 적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의붓오빠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남성혐오증이
있었던 버지니아 울프는 이처럼 남편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했고, 걸핏하면
이혼을 요구하며 그의 곁을 떠나고 싶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사실 버지니아 울프는 남편의 행동에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고, 그럼에도 고마움을 표현하기는커녕 신경질만 내는 자신에게 질려 남편이
떠날 것을 늘 두려워했던 것이다.
마침내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만이 자신이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
는 결론을 내렸고, 유서에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생애 처음으로 표현한 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의 독립된 삶을 강조하며 페미니즘의 선구자로 명성을 떨
쳤던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을 둘러싸고 '남편 때문이다'는 일각의 주장이 있던 가
운데, 사실은 남편의 헌신적인 사랑이 그의 집필을 평생 도왔다는 이같은 방송내용
은 시청자들에게 묘한 감동을 안겼다.
세상의 신비한 사건들을 재연형식으로 구성해 진실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취지로
608회째 꾸준히 방송되고 있는 서프라이즈는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35분에 MBC
에서 방송된다.
기사입력: 2014/03/09 [17:35]
최종편집: ⓒ No.1 문화신문 [뉴스컬처]
-출처원문
http://mnewsculture.heraldcorp.com/a.html?uid=3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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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유서
저자: 버지니아 울프 / 역자: 샐러맨더
영국의 모더니스트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1941년 3월 28일 우즈 강으로 산책을 나
갔다가 행방불명되었는데, 강가에 울프의 지팡이와 발자국이 있었다. 이틀 뒤에
시체가 발견되었으며, 서재에는 남편과 언니에게 남기는 유서가 있었다. 자살의
원인으로는 허탈감과 환청, 정신이상 발작에 대한 공포심 등으로 추정된다.
Virginia Woolf's suicide note.jpg
내가 다시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껴요.
우리는 그 끔찍한 일을 다시 겪을 수 없어요.
그리고 이번은 회복될 수 없을 거예요.
환청이 들리기 시작하고, 집중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에 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려고 해요.
당신은 제게 가능한 가장 큰 행복을 선사했지요.
당신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어요.
두분[1]은 이 끔찍한 병이 오기 전까지는 더 행복할 수가 없었을 거예요.
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요.
저도 알아요. 제가 당신의 삶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제가 없다면 당신은 자신의 일을 돌볼 수 있어요.
당신도 알게 될 거예요.
전 지금 이것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잖아요. 읽을 수도 없어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전 당신에게 제 인생의 모든 행복을 빚졌다는 거예요.
당신은 제게 한결같이 인내하고 대단히 친절하게 대해 줬어요.
전 그걸 ?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기를 원해요.
만약 누군가 저를 구할 수 있었다면 그건 당신이었을 거예요.
당신의 확실한 선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제게서 사라졌어요.
이제 더는 두분의 인생을 망칠 수 없어요.
두분도 우리 모두 함께였을 때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겠지요.
버지니아.
역주[편집]
↑ 남편과 언니를 말한다.
-출처 : 위키문헌
https://ko.wikisource.org/wiki/%EB%B2%84%EC%A7%80%EB%8B%88%EC%95%84_%EC%9A%B8%ED%94%84%EC%9D%98_%EC%9C%A0%EC%84%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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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버지니아 울프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2014.10.28 00:10 -이현우 북 칼럼니스트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한국인 애송시 가운데 하나인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서두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들을 읽다가 자연스레 떠올린 구절인데, 대개 한국인의
독서 경험에서 울프의 생애보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보다 먼저 접하는 시
가 아닐까 싶다.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는 어떻게
연결되며 어떤 관계인지 알기 어렵지만 뭔가 그럴듯한 인상을 남긴다. 한
잔의 술을 걸치고 읊조린다면 더 그럴듯할 것이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박인환은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떠올리며 등대의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고 노래한다. 페시미즘, 곧 염세주의에도 ‘미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지만 반어법으로 읽으면 억지는 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오늘날 버지니아의 생애와 더 관련되는 것은 페시미즘이 아니라 페미니즘
이다. 비록 울프가 정신병 발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코트 주머니에 돌을
채워 넣고 강으로 걸어 들어가 자살했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흔히 ‘여성주의’라고 번역되는 페미니즘에 대해 울프는 매우 자각적이었다.
여성 차별에 대한 민감한 인식은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평가되는
『자기만의 방』(1929)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당초 케임브리지대에서 ‘여성과
소설’이란 주제로 강연을 제안받았던 울프는 이 문제를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 도대체 여성이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할까를
생각해본 것이다. ‘여성과 소설’에 대해 성찰하기 위해 그 전제조건을 먼저
문제 삼은 것이다. 울프는 간명한 답변을 제시한다. 여성 작가가 되기 위해서
는 자기만의 방과 돈이 필요하다고.
중상류층에 속하는 작가였지만 울프도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준 건 숙
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었다. 이로써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을 얻을 수 있
었고, 이것이 그녀의 창작을 지탱해준 재정적 바탕이 된다. 자신의 사례를 견
본으로 삼아 울프는 여성 작가에게는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문학사를 장식하고 있는 거장들의 목록에서 여성의 이
름이 그토록 드문 것은, 여성의 열등함이 원인이 아니라면, 이러한 사회적 조
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울프의 생각이다. 『오만과 편견』의 작
가 제인 오스틴은 자기만의 방도 안정된 수입도 없는 상태에서 글을 쓴 희귀한
사례였다.
울프는 자신의 생각을 입증하기 위해 가상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문호
셰익스피어에게 똑같이 뛰어난 재능을 갖춘 누이가 있었다고 가정해보자는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주디스로 하고. 오빠 셰익스피어가 학교에 다니면서
오비디우스와 베르길리우스, 그리고 호라티우스를 읽을 때 주디스는 비록
오빠만큼 모험심이 강하고 상상력이 풍부했지만 학교에 가지 못했다. 당연히
문법과 논리학을 배울 수도 없었고, 집에서 오빠의 책이라도 집어 들라치면
책을 읽는 대신에 스타킹을 꿰매거나 스튜가 끓는 거나 잘 보라는 야단을 들
었다. 부모가 정해준 혼처를 마다하고 주디스는 연극에 대한 열망으로 집을
나간다. 하지만 극장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훈련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감독
의 아이까지 갖게 된 주디스는 한겨울밤에 목숨을 끊고 길가에 묻히게 된다.
울프가 보기에는 이것이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셰익스피어와 동등한 재능을
갖고 있던 여성이 겪었을 법한 생애다.
무엇이 문제인가. 여성의 가난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다. 창작은 지
적 자유에 달려 있지만 지적 자유는 다시 물질적인 것에 의존한다고 울프는
단언한다. 하지만 여성은 항상 가난했고 시를 쓸 기회가 없었다. 돈과 자기
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다. 이것은 <목마와 숙녀>에서 노래하듯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매우 도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다. 한국 사회 여성의 현실이 아직도 울프가 기대했던 바에 미치지
못한다면, 거저 간직한 ‘페미니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가 ‘처량한 목마
소리’ 대신에 기억해두어야 할 역설이다.
이현우 북 칼럼니스트
[출처: 중앙일보] [삶의 향기] 버지니아 울프 이야기
http://news.joins.com/article/16244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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