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9.

[무의식] 우연의 일치 혹은 정신력의 힘 - 동시성







[무의식] 우연의 일치 혹은 정신력의 힘 - 동시성







01  우연을 가장한 의미있는 일치 - 동시성(Synchronicity)

"동시성이란  그것을 볼 눈이 있는 사람에게는

          늘 현존하는 현실이다 "        - 칼 융 -



제가 들은 한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제가 고등학교 때 알던 언니가 있었어요.

그 언니는 영문학을 전공하던 대학생이었는데 하루는 친구랑 이야기 하며 길을 걷고 있었어요.

그 친구는 어머니가 대학교수였고 풍족한 환경에서 잘 살던 사람이었는데 

그 당시에 갑자기 죽음에 대한 사념에 깊이 빠져 있었어요. 

그날 그 시간에도 언니는 친구가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를 들어주고 있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그 친구가 "나는 지금 죽어도 상관없어..."라는 말를 입 밖에 내자마자

차 한대가 그 친구에게 달려왔어요.

"꽝" 하는 소리가 났고 그 언니가 정신을 차리니 친구가 이미 죽어서 길에 쓰러져 있었구요.

그 언니는 너무나 충격를 받아 집에 돌아와 사흘밤 사흘낮을 그대로 쓰러져 잤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그 친구가 사고로 죽던 시각, 그녀의 어머니는 영국의 어느 학회에

참석 중이었는데 갑자기 백일몽을 꾸었다고 합니다.

손바닥 위에서  물고기 한마리가 파닥대더니 부레와 내장이 터지는 환영이었죠.

그런데 바로 그 때 딸이 길에서 차에 치여 죽어가고 있었던 거에요.

겉으로 보기에는 전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었는데

사실은 모두 내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사건이었죠.

그녀가 갑작스런 요절  며칠 전부터 죽음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느껴지구요.

자신의 죽음에 대비하라는 무의식의 배려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발췌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74ejeon&logNo=90186465992&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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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성,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

등록 :2015-02-02 20:02 직장인, 책에서 길을 묻다



안에 작은 원통이 들어있는 투명한 회전 원통이 있다. 작은 원통과 큰 원통의 사이

공간에 글리세린처럼 점성이 높고 투명한 액체를 채운다. 그리고 액체 속에 불용성의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아무런 동작을 가하지 않으면 잉크는 글리세린 속에 한

점으로 떠 있다. 이 때 손잡이로 바깥쪽 원통을 돌리면 잉크 방울은 가는 실 모양을

그리며 서서히 퍼진다. 계속 돌리면 잉크 입자들은 투명한 글리세린 속으로 점점 엷게

퍼져서 마침내 보이지 않게 된다.



놀라운 부분은 그 다음이다. 손잡이를 좀 전과 반대방향으로 돌리면 사라졌던 잉크의

 입자들이 서서히 다시 모이고 결국에는 한 방울의 잉크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양자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의 실험이다. 그는 ‘감춰진 질서’라는 개념

으로 이 현상을 설명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잉크방울은 여전히 질서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그 질

서가 글리세린 안에 접혀 들어가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잉크 방울을

 하나의 고정된 물체가 아닌, 여러 번의 회전 속에 접혀 들어가 있는 작은 방울들의 조합

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중략)



우리의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의 과거 전체가 우리들 각각에 미묘한 방식으로

접혀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과 접촉하면 우리는 창조적인 에너지를 가진 의식의 심연으로

인도됩니다.”

이것이 물리학자의 말이라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실제로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닐 보어,

슈뢰딩거, 막스 프랑크 등 많은 천재 과학자들이 신비(神秘)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은 모두 영적인 세계에 심취했으며 일부는 ‘나’의 경계가

사라지고 온 우주와 하나가 되는 합일의식(Unity Consciousness) 체험을 하기도 했다고

알려진다.



여기에 합일의식을 체험한 또 한 명의 사내가 있다. 그는 물리학자도, 신비주의자도, 철학

자나 신학자도 아니다. 그는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변호사였다. 그러나 아내의 외도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그는 방황하며 떠돌았고 이 방황의 시기가 인생의 큰 전환

점이 되었다.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과 ‘영혼의 결합 체험’, 산에서 마주친 산족제비와의

 소통, 그리고 일면식도 없었던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과의 만남 등 기묘한 사건들을 통해

그는 삶의 ‘신비’를 체험하게 된다. 온 우주와 자신이 하나라는 것을, 단지 머리로가 아니라

 몸으로 절절히 체험하게 된 것이다.



이런 체험들이 그를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이끌었다. 그는 더 이상 삶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삶이 자신을 통과하여 흘러가도록 내버려둔다. 공항에서 눈이 마주친 한 ‘신비한 느낌’의

 여성을 쫓아가 결국 결혼하게 되고, 자기 안의 목소리에 따라 변호사를 그만두고 세계적인

리더십 포럼 설립에 투신한다. 나아가 유명한 쉘 그룹의 시나리오 기획팀과 MIT의 조직학습

센터를 이끌기도 한다. 그가 동시성(Synchronicity)을 추구한 이후로 달라진 변화였다.

그는 “커다란 전체의 일부라는 믿음 안에서 행동하면 온갖 우연한 사건을 만나게 되고, 모든

 지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조셉 자보르스키의 책 <리더란 무엇인가>는 제목과는 달리 리더십에 관한 책이 아니다. 오

히려 신비주의 책에 가깝다. 그러나 여느 위대한 신비가들의 책처럼 모호하거나 어렵지 않다.

묵묵히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며 세상의 ‘감춰진 질서’를 조용히 드러낼 뿐이다.

그의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인생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임을 확인

하게 된다.

박승오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directant@gmail.com





원문보기: 한겨례신문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76484.html#csidx13416f1f2fc266c8cdf21d6825512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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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우연이 아니다



147. 루디야드 키플링의 ‘덤불숲의 소년’.

이 작품에서는 현실에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소년과 소녀가 꿈에서 만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바닷가 덤불숲을 탐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들의 만남과 모험은 몇 년이

지속되었다. 이들의 만남에서 평범한 현실의 법칙은 무시된지 오래었다.

수십년이 지나 그들은 현실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부부

가 되었다.



148. 나(작가) 자신도 아홉 살 때쯤 꿈 속에서 한 흑인여성과 만나기 시작했는데 그 만남은

 30년동안 이어지다가 현실세계에서 직접 만나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 이후로 우린 꿈속과 비슷한 현실세계에서 진기한 경험을 함께하고 있다.



273. ‘한때 나는 대단한 사실을 알아냈다. 단순히 우연으로만 여겼던 일들이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 우연이 어덯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그가 즐겨 사용했던 것은 교차소통

 현상이다.

몇 달 동안 연락을 안하고 지내던 누군가에게 글을 쓴다고 가정하자. 아니 그냥 그사람에 관해

 생각만 해도 된다. 그러면 그사람에게서 며칠 내에 전화나 편지가 온다. 그는 이런 현상과 관

련된 일화를 수첩에 적어놓았다.



‘3년 만에 아내의 사촌 루이스에 대해 잠시 생각이 났는데 이틀 후 그녀에게서 돈을 좀 빌려 줄

 수 없냐고 편지를 받았다.’

그는 교차 소통현상이 자주 있는 현상이고 그 생각을 많이 할수록 발생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288. 어느날 여성환자가 상담중에 꿈속에서 풍뎅이를 선물받았다는 얘기를 했다.

그때 상담실 창문에 진짜 풍뎅이가 날아들었다.

융이 이것을 주어서 ‘당신 것이요’라고 하자 그녀는 그때까지 품었던 융에 대한 마음의 벽이 사

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후 그녀는 내면의 깊은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풍뎅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부활과 변신의 상징이었다.

육신과 죽음을 넘어 여행을 안내하는 상징으로 최후의 여행을 위해 시신의 심장 위에 놓여지곤

했다.



295. 파울리 효과는 그가 등장하면 나타나는현상으로 특히 물리 실험과 장비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의미한다. 파울리에게는 전혀 해가 없었지만 주변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했다. ...

“파울리 효과는 마법을 걸어놓은 것 같았어요. 특히 물리학 실험실에서는 이 때문에 온갖 사고가

일어났어요. 그가 실험실에 들어서기만하면 기계는 작동을 멈추고 유리기구는 갑자기 깨지며

진공시스템에는 공기가 새어 들어갔죠. 하지만 사건의 장본인인 파울리에게는 어떠한 일도 발생

하지 않았어요.”



297. 그 내용은 열정이 절정에 이르면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이 발휘된다는 것으로 열정의 힘에 대한

 것이었다. ‘인간의 영혼 속에는 사물을 변화시키는 어떤 힘이 내재되어있다.

특히 사랑이나 憎惡(증오)가 같은 것에 휩싸이게되면 다른 물체를 종속시키는  힘이 발산한다.  그러

므로 인간의 영혼이 엄청난 열정에 빠지게 되면 물체를 원하는 방법으로 변화시키게 된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오랫동안 믿지않았다. 그러나 이모든 것의 원인이 인간 영혼의 감정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누구나 엄청난 감정에 휩싸이게 되면 주변 모든 것에 신비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감정이 물밀 듯 밀려오는 바로 그때 영혼이 미리 정해놓은 각본대로 따라가야한다.

융이 인용한 것처럼 파울리 효과는 그런 힘의 무의식적 작용으로 볼 수 있다.





301. 파울리는 융의 동시성 원리에서 우연의 일치를 중점적으로 다룬 것에 문제가 있다고본다. 우연한 일치는

 핵심요소가 아니라 몇몇 한정된 경우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파울리는 처음부터 우연이 일치에

 관련해 명쾌한 정리를 하고 있었다. 즉 우연이란 마음속에서 누군가를 생각하거나 꿈을 회상할 때 그것과

 곤련된 외부 사건에 집중되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출처: 꿈의 힘 : 로버트 모스 저/ 수막새 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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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리효과



물리학자들 사이에는 원자 안에 있는 두 개의 전자가 현실에서 동일한 지점에 함께 있거나 동일한

 행동을 보일 수 없다는 파울리의 '원리' 말고도 파울리의 '효과'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파울리 효과는 동일한 두 가지의 행위 (일상생활에서도)―동일한 지점을 함께 달리거나 동일한 행

동을 하는 것―를 설명해준다. 파울리 효과는 단지 어떤 일이 동시에 발생한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사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세계에서는 얼마나 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무언가를 손에서 떨어뜨리고, 얼마나 많은 기차들이 동시에 역을 출발하고 있는

가?)

 파울리 효과는 동일한 시점에 벌어지는 사건들이 사람들에 의해 동일한 의미로 한데 묶여 지각되는

 것을 말한다. 이때 하나로 묶이는 사건들은 원래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지만 마치 처음부터

 밀접한 관계가 설정되어 있어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과학자에게는 자칫 기이하게 들리겠지만, 파울리의 동료들은 분명히 파울리에게서 그런 현상이 발생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에 확실한 근거가 있다고 믿을 정도였다. 그들 모두는 파울리를 감싸고

있는 신비롭고 알 수 없는 기운이 파울리의 효과를 발생케 한다고 말했다.



파울리가 자기의 '정신적 형제'라고 부른 바 있는 제자 마르쿠스 피에르츠(Markus Fierz)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철저한 실험물리학자들조차도 파울리에게서 기이한 작용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단지 그가 곁에 있기만 해도 실험실에서는 온갖 안 좋은 일들이 발생하였고 실험이 난관에

봉착했다. 바로 '파울리 효과'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분자 빔 연구의 대가 오토 슈테른(Otto Stern)은 파울리가 자기 연구실에

들어오는 것을 아예 금지해버렸다. 그냥 떠도는 전설이 아니다. 나는 파울리와 슈테른 두 사람 모두 개

인적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럼 파울리 자신은? 실은 그 역시 이러한 효과를 전적으로 신봉했다. 파울리는 자기 때문에 안 좋을

일이 생길 때면 항상 그 전에 불편한 긴장감을 먼저 느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김

없이 사고가 났다고. 또 그럴 때마다 그는 기묘한 해방감과 편안함을 느꼈다고 실토했다. 나는 '파울리

효과'를 동시성 현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피에르츠는 이 문제를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에게로 소급되는 동시성 개념과 연결

시켰다. 파울리와 공동으로『자연의 해석과 심리』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던 융은 자신의 동시성 아이디

어를 <비인과적 관계 원리로서의 동시성>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전개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파울리 효과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하자. 사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위에서 말한 현상에 대해 진지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저 재미있는 사건 정도로 받아들

인다. 그 안에 담긴―17세기 데카르트 이후로 정신과 물질로 분명하게 구별되기 시작한―두 영역 사이의

 대칭관계는 눈에 띄지도 않았고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이 같은 동시성 현상은 피에르츠가 지적하

듯이 다른 과학자들에게는 불쾌한 느낌을 주었다.



앞에서 언급한 일화는 괴팅겐 대학에 재직하던 때의 슈테른과 관련된 것이다. 어느 날 슈테른이 자기 연

구소에서 비용이 많이 드는 꽤 복잡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실시해온 작업이었는데

 갑자기 이상한(전례가 없던) 사고가 발생했다. 계측기 중 하나가 폭발하는 바람에 그것을 수리하느라 오

랫동안 실험을 중단해야 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사고가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연구팀은 끈질

기게 사고의 원인을 조사했다. 하지만 아무런 기술적 결함이나 실험재료의 취약점을 찾아낼 수 없었다.

실험기기를 다루는 과정에서도 실수나 미숙함을 발견할 수 없었다. 모든 사용규정도 정확하게 지켜졌다.



사실이 분명해지자 실험에 참가한 과학자들 사이에서 점차 어떤 '초자연적' 힘이 개입했으리라는 의혹이

확산되었다.

결국 어느 참가자의 제안에 따라 여기에 파울리 효과가 작용했는지의 여부를 조사했다. 그들은 기계가 폭

발한 시점에 파울리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디에 머물고 있었는지를 확인해보았다.

취리히에 문의한 결과(당시 파울리는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서 일하고 있었다. -옮긴이) 그들은 놀라운

대답을 듣게 되었다. 사고가 발생한 날 파울리는 기차를 타고 취리히에서 코펜하겐으로 떠났는데, 중간에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서 내린 역이 바로 괴팅겐 역이었다. 파울리를 태운 기차는 실험실이 폭발로 정전이

 되던 바로 그 순간 괴팅겐 역으로 들어섰다.

-출처 슈뢰딩거의 고양이, 에른스트 페터 피셔, 2009.1.20,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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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융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순간 뒷머리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느꼈다. 그 순간 그의 환자

가운데 한 사람이 권총자살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총알은 마침 융이 심한 통증을 느낀 부 분에 박혀 있었다.



1918년 융은 영국인 수용소의 지휘자로 있으면서, 자기(Self)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형 상화되어 나타나는 像을

그림으로 옮겼다. 그 그림은 황금의 성 모양을 한 만다라였다. 얼마 뒤에 리햐르 트 빌헬름이 융에게 보낸 책 안

에는 융이 그렸던 만다라 그림이 놓여있었던 것이다.



융은 이러한 정신적 사건과 물질적 사건의 의미있는 일치를 동시성(Synchronicity) 이론으로 부르 고, 이와 같은

 정신현상에 대하여 진지하게 논의한다.  실로 융에게 있어서 텔레파시나 예언현상은 신비한 체험 이나 주관적

환상이 아니라 자명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꿈은 마음의 가장 깊고, 가장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작은 문(門)이며그 문은 저 우주의 태고적 밤을 향하여 연다.

그것은 아직 자아의식이 없던 시기의 마음이었고 자아의식이 일찍이 도달할 만한 곳을 훨씬 넘어서 있는 마 음

이 될 태초의 밤이다. 

- 칼 구스타프 융 -



 예를 들자. 쌍둥이 형제 S1과 S2가 서울에서 출발하여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하자. S1은 백록담

으로 갔고 S2는 천지연으로 갔다. 백록담에 간 S1이 돌에 부딛쳐 이마에 혹이 났는데, 같은 시각에 천지연에 있는

 S2는 돌에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동시에 이마에 혹이 났다.

이런 상황은 물론 상식적 인 거시적 인과율을 어기는 일이다. 이 결과는 당시로서는 사고 실험이었으나 1982년

프랑스의 아스페(Aspect)의 세 번에 걸친 실험에 의해 결정적으로 판명된 실험이었다. 그 결과는 공간적으로 분

리된 두 실재가 알지 못할 상 관성이 있고 서로간의 작용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더 나아가서 우리 세계는 근본적

으로는 관계로 직조된 세계라 는 것을 밝혔다.



그럼 융의 동시성 현상은 무엇인가. 소련에서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실험을 하였다.

어미 고양이를 바다 깊은 곳의 잠수함에 가두고 지상에서 새끼 고양이를 죽인 일련의 실험이다. 이 실험에서는,

 지상에서 새끼 고양이를 죽이는 순간 잠수함의 어미 고양이는 움찔거리면서 매우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가.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의 관계에 보이지 않는 내재적 상호작용이 일어났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 러한 작용은 동시성의 부분적인 증명사례이다.



우선 동시성은 동일하지 않은 시간으로 연결된 사건의 동시성과, 동일한 시간으로 연결된 사건의 동시성이 있다.

예를 들자면, 전자는 아버지의 교통사고를 꿈에서 보았는데 '그날 오후' 그 교통사고가 현실에서 일어난 경우이고,

후자는 부산에서 일어난 아버지의 교통사고가 서울에 있는 아들 에게 '동시에' 마음에서 스쳐 지나간 경우이다.

특히 여기에서 논의하는 동시성은 후자, 즉 동일한 시간으로 연결 된 사건의 동시성만을 지칭하려 한다.



지금 이 순간 부산과 서울은 동시적 세계이다. 융의 동시성 이론에 의하면 한 순간에 부산에서 발생된 정보가 동

 시적인 순간 서울에까지 전달될 수 있음을 밝혀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동시성 현상의 외양은 EPR의 실재관을 근

 거로 하고 있다.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만약 부산에서 발생된 정보가 <동시적 시간>에 서울

 에까지 전달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지상에서 발생된 새끼 고양이에 관한 정보가 <동시적 시간>에 깊은 잠

 수함에 있는 어미 고양이에까지 전달된다고 할 수 있는가? ..융의 동시성 현상은 결코 현대과학과는 유리된 사각

지대의 현상이 아니다.









칼 구스타프 융의 동시성 이론과 그 의미

전 철



1, 들어가며 : 왜 동시성 현상이 문제인가?





우리는 일상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한다.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한 번 왔었다는 아련한 느낌, 혹은 현실에서의 이 순간은 언젠가 꿈에서 한 번 보았던 순간 같다는 느

낌을 자주 갖는다.

어떤 친구는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아침에 집에 전화를 걸어보니 아버님이 병으로 누우셨다는 말을 한다.

 실로 인과율과 통계법칙으로 설명이 안되는 이러한 경험은 본인 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억속에 내밀하게 간직한 경험들일 것이다.



어쩌면 나를 포함하여 우리가 만나는 이 생경하고 모호한 경험은 태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삶

 가운데 면면히 축적된 사건이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경험을 그리 쉽사리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의 언어는 인간의 경험을 포섭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포용력은

경험의 생경함 앞에서 언제나 쉽게 좌절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강렬한 경

험과 이미 타진해버린 나머지 빛이 바랜 청동거울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의 정상과학으로 해명할 수 없는 과거와 미래의 뒤섞임, 인과율의 파탄,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

계를 인생을 거쳐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여든 가까이 되어서 조심스럽게 내놓은 글이 바로 <동시성 : 비인

과적인 연결원리>Synchronizitat als akausaler Zusammenhange (Zurich, 1952)이라는 논문이다. 여기에서는

 이 논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융의 동시성 개념과 그 의미를 숙고하려 한다.





2. <동시성>Synchronicity에 대한 융과 제자들의 개념정의



정의 1 : "나는 그 사이에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으나 그 사이에 같거나 비슷한 의미가 있으며, 또 시간적으로

일치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둘이나 그 이상 사이의 사건들을 지칭하기 위해서 동시성(Synchronicity)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을 사용한다. 이 개념은 두 가지 사건이 단순하게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가리키는 동시

(synchronism)라는 개념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동시성이란 무엇보다도 먼저 어떤 계기에 한 개인의 정신적인

상태와 외부적인 사건 사이에 일치가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의 2 : "동시성은 둘 혹은 그 이상의 사건들의 의미 있는 일치이다."

정의 3 : "동시성은 우리 의식의 일상적인 차원과 근원적인 차원, 즉 두 정신적 차원의 순간적인 연합이다.

정의 4 : 첫째, 동시성은 인과적으로 서로 결부되어 있지 않은 정신적 사건과 물질적 사건의 의미있는 일치,

혹은 상응을 묘사하기 위해서 창안한 개념이다. 그러한 동시적 현상은 예컨대 내적인 사건(꿈, 환상, 예감)이

외부적인 현실에서 상응한 것을 가질 때, 내적인 상(像) 또는 예감이 진실임이 판명된다. 둘째, 비슷한, 혹은

같은 꿈, 생각들이 동시에 여러 곳에서 일어난다. 어느 하나도 인과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것들은 오히려

무의식에서의 원형적 과정과 상호 관련된다.





3. 동시성 현상의 세 가지 유형과 그 사례

동시성 현상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관찰자와 의식상태(M)와, 외부의 사건(과거/N)이 동시적으로 일치를 보이는 경우이다.

이 첫째의 유형에 관한 융의 경험은 다음과 같다. 융은 지나치게 합리적이어서 치료에 강한 저항을 보이던

여자환자와 분석을 진행하고 있었다. 닫혀 있는 창을 등 뒤로 하고 앉아서 융은 이 환자가 자기의 꿈을 설

명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환자의 꿈은 매우 인상 깊은 꿈이었는데, 누군가가 황금색 풍뎅이 모양의 고귀한

 보석을 선물로 주는 내용이었다. 순간 등 뒤의 창 밖에서 갑자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융이

 소리나는 곳을 돌아보니 황금색 풍뎅이와 유사한 곤충이 방으로 들어오려 하는 것이었다. 융은 창을 열어

그 곤충을 잡아 환자에게 "여기에 당신의 풍뎅이가 있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건네 주었다. 이러한 사건은

 환자의 냉철한 합리주의와 지적인 저항에 금을 가게 하였고, 이후에 그 환자에 대한 치료는 매우 원활하게

진행되었다고 융은 말하고 있다.

둘째, 관찰자의 의식상태(M)와, 관찰자의 지각영역으로 포섭되지 못하는 외부의 사건(N)이 동시적으로 일

치를 보이는 경우이다.



두번째의 유형에 관한 융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융이 언급한 이 사례는 자신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회고하였던 사례이고, 많은 문헌에 기록된 사건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스웨덴보그는 스톡흘롬에서 큰 화

재가 나는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환상은 환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 순간에 스톡흘롬에서는 대

 화재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상에는 투시, 텔레파시라 불리울 수 있는 것들이 깊이 관여되어 있다

고 융은 해석하고 있다.



셋째, 관찰자의 의식상태(M)와,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사건(미래/N)과 일치를 보이는 경우이다.

세번째 유형에 관한 융의 진술과 경험은 다음과 같다. 융은 1902년 봄에 던(I.W. Dunne)이 꾼 꿈을 인용한다.

던은 꿈에서 자신이 화산에 서 있는 것 같다고 고백하였다. 그 곳은 섬이었고 던은 화산 폭발의 위험을 감

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꿈에서 4,000명의 주민을 대피시키기 위하여 뛰어다니는 꿈을 꾸었다. 며칠 후에

 던은 신문을 받아보았다. 그의 시선은 다음과 같은 신문의 헤드라인에 쏠리게 되었다. "마르티니크의 화산

폭발―용암이 도시를 휩쓸어 갔다. 40,000명 이상의 인명 유실."



또 다른 경험은 다음과 같다. 한 등산가가 융을 찾아왔다. 그 등산가는 어느 날 밤 높은 산의 정상에서 허공

으로 발을 내딛는 자신의 꿈에 대하여 융에게 말해주었다. 융은 그 꿈을 다 듣고 등산가의 앞에 닥쳐올 위험을

 알았다. 그리고 융은 꿈이 주는 경고를 강조하여 그에게 스스로 등산을 자제하도록 경고하였다. 그러나 그것

은 허사였다. 왜냐하면 그는 결국 등산 중에 발을 헛디뎌 "허공으로" 낙하하였기 때문이다 자기는 자아의 미래

를 감지하고 그것은 꿈으로 전달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등산가는 믿지 않았던 것이다.





4. 동시성 현상의 역학과 의미

우리는 위에서 동시성 현상의 세 가지 유형을 살펴 보았다. 이 유형과 사례를 바탕으로 동시성 현상은 어떠한

역학과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숙고해 보도록 하자.



첫째, 동시성은 무의식의 보완기제의 산물이다.

실로 <집중>은 의식의 특징이다. 우리는 의식적 집중을 통해서 세계에 대한 사리분별을 가하고 세계를 분명

하게 파악한다. 하지만 세계에 대한 집중의 강도가 높아지는 반면, 세계 전체에 대한 통전적이고도 온전한 수용

력이 낮아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식은 전체의 세계에 대한 조명을 쉽게 상실해버릴 우려가 있다. 이런 면

에서 의식의 예리한 칼날은 무의식의 육중함에 비해 쉽게 소진되거나 마모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의식은

 갇힌 의식의 감옥 철창 사이로, 끊임없이 온전하고 보편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의식을 향해 암호와 메시지

를 보낸다. 바로 인간에게 있어서 동시성의 경험은 무의식의 보완기제이며, 또한 개인의 의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경험인 것이다. 빅터 만스필드(Victor Mansfield)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동시성 경험의 의미와 목적은 무의

식적 보완을 통하여 구현되는 것이다. ... 동시성 경험은 개인적인 측면의 의미를 지닐 지언정, 그 경험은 원형적인

 차원이며 보편적인 차원이다."



둘째, 융의 동시성 이론은 우리시대의 양자물리학적 세계상에 기반하고 있는 정신 현상에 관한 해명이다.

인과론의 파탄 속에서도 이러한 정신적 사건과 물질적 사건의 의미있는 일치를 해명한 융의 시도는 가히 예언

자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융이 최초로 이론화한 동시성 이론은 우리시대의 양자물리학적 세계상에

 기반한 정신적 현상의 한 면을 밝히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융의 동료인 폰 프란츠(Marie-Louise von Franz)는 융의 심리학과 과학과의 관련성을 <인간과 그의 상징>Man

 and His Symbols 후반부에서 개괄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프란츠에 의하던 융이 전개한 정신현상에 관한 이론과

 현대과학은 긴밀한 연관을 보여준다고 한다. 오늘날의 많은 과학자들은 융의 저 이론에 대하여 다각도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융의 동시성 이론을 물리학적으로 해명하는데 매우 커다란 일조를 한 융디안 빅터 만스필드

(Victor Mansfield)는 EPR 사고실험과 양자 파동과 데이비드 봄의 내장 질서(Implicate Order)와 동시성 현상과의

관련성을 심도깊게 논의하고 있다.



EPR 사고실험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EPR 사고실험을 통하여, 전자와 다른 전자 사이의 정보소통에 있어서 시

간의 개입이 없이도 서로 정보를 주고 받는 장(field)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935년 아인슈타인은 동료제자인 포돌스키와 로젠과 함께 중요한 사고실험의 결과인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세 사람의 약자를 띤 실험은, 초기 상태에서는 상호작용이 있었으나, 그 이후로 서로 분리된 양자적 대상인 S1과

 S2의 두 체계를 상정하였다. S1과 S2는 물론 공간상으로는 분리되어 있다. 이 실험의 요약은, S1에 외부의 영향력

으로 인해 결과로서 S1이 변했을 때 아무 관계도 없는 S2가 동시적으로 S1의 변화값 만큼 변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은 물론 상식적인 거시적 인과율을 어기는 일이다. 이 결과는 당시로서는 사고 실험이었으나 1982년

 프랑스의 아스페(Aspect)의 세 번에 걸친 실험에 의해 결정적으로 판명된 실험이었다. 그 결과는 공간적으로 분리

된 두 실재가 알지 못할 상관성이 있고 서로간의 작용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더 나아가서 우리 세계는 근본적으로는

 인과율을 넘어선 관계로 직조된 세계라는 것을 밝혔다. 



만스필드는 인간의 내적인 정신의 영역이 바로 거시적 인과율을 어기는 EPR이 작동하는 영역, 그리고 인과성과 확

률을 동시에 고려하는 양자역학에 있어서 살아있는 내적인 정신의 영역을 양자파동(quantum wave)의 영역으로 해

명하고 있다.  또한 그는 현대물리학의 입장에서, 초심리학적인 현상은 자연법칙의 비인과적 표현들이라고 진술함

으로서 초심리학을 자연법칙의 일부로 편입시켜 놓고 있다.



셋째, 동시성 현상을 통하여 인간의 무의식은 현존하는 인과적 시공구조를 넘어서는 다른 차원의 영역임을 발견하

게 된다.

이부영은 "무의식에는 의식의 제약된 시간, 공간을 초월하여 이를 상대화 하는 기능이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의식

은 4차원 시공연속체를 매개로 한 사태이지만 무의식은 4차원 시공연속체를 넘어서 있다는 것이다. 초기에 융은 고

전적인 물리적 세계상의 3요소인 공간, 시간, 인과성에 동시성을 결합시켰다. 이후 융은 물리학의 혁명의 영향과 파

울리의 도움을 받아 시공의 대립이라는 고전적 공식을 에너지(보존)―(시공)연속성으로 대치하였다. 이는 시공의 절

대좌표 조차도 정신 안에서 상대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정신이라는 그 아르키미데스 점은 시공연속체

 안에 있으면서 그를 넘어서는, 다차원적으로 열린 초점이라는 것을 지시하고 있다. 정신은 시공 안에 있지만 정신은

 시공을 넘어서 있다.



융은 구체적으로 그의 자서전 12장 <죽음 뒤의 생(生)에 관하여>에서 정신의 일부는 시공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

다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시공간의 관념과 인과론이 모두 완전한 것이 아니며, 하나의

 완전한 세계상을 최종적으로 그려낼 때에는 이전의 관념과는 다른 차원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임을 제시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시간, 공간, 인과론을 지닌 인간의 세계가 그 배후에 또는 그 이면에 있는 사물의 다른 질서에 관련되며,

그곳에서는 "여기와 저기"도 "이전에, 그리고 뒷날에"라는 구별도 중요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융은 의식으로부터 점

점 멀어지면 질 수록 그것은 절대성인 무시간성, 무공간성에 다다르게 되는 것 같다고 술회하고 있다.



동시성은 철학적인 견해도 아니고 인식에 필요한 원리를 제시하는 경험적인 개념이며 물질주의나 형이상학도 아니

라고 융은 그의 글 속에서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그러나 정신적 현상으로서의 동시성에 관한 융의 착상과 지론은 이미 경험과학으로서의 심리학 안에서만 논의될 수

있는 수위를 훨씬 넘어버린, 매우 중대한 신학적, 형이상학적 함의를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신학적으로는 신 인식에

관련한 신론과 닿아 있고 형이상학적으로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인식지평을 논의하는 인식론, 주체와 주체 사이의

정체성과 관계성을 논의하는 관계론, 또한 주체를 근거지우는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의 존재론과 닿아 있다.



융의 동시성은 인과적으로 상호 독립된 사건의 의미있는 일치를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화이트헤드의 동시적인 것과

 지속에 대한 논의가 융의 동시성 현상에 어떠한 관점을 제공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화이트헤드의 동시적 세

계와 지속은 융의 동시성 현상에 대하여 다섯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1) 동시적인 것은, 동시성 현상의 기초가 되는 인과율로부터 독립된 사건들의 존재론적 기반을 형성한다.

동시적인 존재들은 상호간에 인과적으로 독립해서 발생하는 존재들이다. 인과율에 저촉되지 않는 동시적인

 영역의 확보는 절대시공간에서 상대시공간으로 넘어가는 융의 시공간 이해의 가장 구체적인 성과이다.



(2) 동시적인 것은, 동시성 현상, 즉 의미있는 사건의 우연적인 일치가 의식적 차원에서는 놀라운 경험일 수는

 있어도, 결코 놀라운 경험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존재는 <인과적 효과성>causal efficacy이라는 근원

적인 지각양태에 바탕하고 있다. 모든 정보는 광속을 기준으로 인과적 효과성의 양태로 축적이 된다. 이런 의

미에서 태양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어떠한 존재의 정보라도 7분 30초 이내에 <동시성 현상>으로 사건화되

는 것은 결코 낯선 사건이 아니다. 인과적 효과성의 '강물'은 나와 너의 경계가 매우 불분명한 Unus Mundus와

매우 가까운 영역이다. 의식적 지각의 후기양태로서의 <현시적 직접성>presentational immediacy은 인과적

효과성의 견실한 여건을 바탕으로 세계에 대한 연장적 관계를 동시적인 영역에 투사시킨다. 우리의 인과적

효과성의 양태는 우주 전체와 동시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우리의 현시적 직접성의 양태는 나의 신체와 동시적

인 영역에만 관계를 유지한다(cf. 동시성 현상의 두번째 유형).



(3) 동시적인 것이라는 특성에 의해 정의되는 지속은 동시성 현상의 다차원적 실재성을 보증해 준다.

고전적인 시공이론을 넘어서서 상대성이론을 그의 체계 속에 통합시키는 방식은 바로 M을 관통하는 지속이

 하나 이상이라는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성 현상'은 우리의 4차원 시공연속체 안에서 무한히 다양한

양태로 출현할 수 있다.



(4) 현재라고 하는, 시간폭을 가지고 있는 지속의 영역은 인과관계가 파괴하는 영역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

성을 보여준다. 즉 최소 지속의 단위가 현재에 적용된다면 아래의 보기와 같이 최소 지속 내부에서는 인과관

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이 현재라고 하는 시간폭을 가지고 있는 영역에서는 광속보다

빠르지 않는 물체의 세계에서도 인과율이 성립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융의

동시성 현상은 바로 현재라고 하는 영역에서 인과율이 파기되면서, 동시에 세계 전체의 '순간'에 대한 의식적

파악이 진행된 찰나인 것이다(cf. 동시성 현상의 세번째 유형의 접근가능성).



(5) 세계의 직접적인 현재의 상태를 확보해 주는 현재화된 지속은 개별적인 인격들의 정체성을 구유(具有)해

 줄 뿐만 아니라 Unus Mundus 개념을 구체적으로 조명해 준다.

모든 인격은 동시적 세계의 존재이다. 동시적 사건의 정의는 그것들이 상호간에 인과적으로 독립하여 발생

한다는 것이다. 두 개의 동시적 계기(M와 N)는 그 어느 쪽도 다른 쪽의 과거에 속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적 계기는 자기 독립의 절대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동시성은 모든 존재의 동등한 위상을 지시한다.

거기에는 비교도 없고 가치도 없다. 바로 그것은 동시적 존재들의 독자적 주체성이 확보됨을 의미한다.

동시에 연대성이 상실됨을 의미한다.



-발췌출처:

http://ynissi.org/bbs/board.php?bo_table=person&wr_i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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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는 우연일 뿐

김진호 < 국방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

우연의 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자주 일어난다.



 가장 흔한 예를 들어 보자.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 사람이 자기 친구의 친구이거나,

아는 사람의 친척이라는 것을 알고는 놀라는 적이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세상이 참

좁군요"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우연의 일치를 찾아낸다.



"콜럼버스가 1492년에 신대륙을 발견했는데,같은 이탈리아인 페르미(Enrico Fermi)는 1942년 원

자(atom)의 신세계를 발견했다" "기네스 북에 오른 우리나라 신동(神童)의 부모는 생일이 같다" 등등

 그 사례는 매우 많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링컨(Lincoln)과 케네디(Kennedy)의 우연의 일치 목록을 보자. 링컨은 1860년,케

네디는 1960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두 사람의 이름은 7개의 알파벳으로 돼 있고,링컨 대통령의 비서는

 이름이 케네디였는데 케네디 대통령의 비서는 링컨이었다. 또한 두 사람을 암살한 사람들은 각각

 John Wikes Booth와 Lee Harvey Oswald로 이름이 석 자씩이며,Booth는 극장에서 저격한 뒤 창고로

 도망갔고 Oswald는 창고에서 저격한 뒤 극장으로 도망갔다.



마(魔)의 바다라고 일컬어지는 버뮤다 삼각지대라는 곳이 있다. 미국 동남쪽 바다에 있는 버뮤다 제도

와 플로리다,푸에르토리코를 잇는 3각 해역으로 그곳에서는 비행기와 배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데 시

체나 비행기, 배의 파편조차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무시무시한 이름이 붙은 해역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버뮤다 해역의 수수께끼를 다양한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조류(潮流)의 영향,중력

이나 전자파의 작용,심지어 UFO가 관련되어 있다는 설도 있다. 과연 그럴까? 미국의 해안경비대가 실

제로 조사해 내린 결론은 이 지역의 사고 빈발은 순전히 우연이라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 조사 결과와 무관하게 아직도 그 해역에 대한 불가사의한 의문을 갖고 있다.



어떤 우연의 일치는 그것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낮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그런 우연의 일치가 일어

나면 매우 놀라고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수다를 떨며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더욱이 어떤 사람들은 그 우연의 일치가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힘의 작용에 의해서 일어났다고 믿으려

한다.



그러나 아주 오래 전에 소크라테스가 이미 말했듯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도 가끔씩 일어나는 것

이다. 우연의 일치는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며 실제로 우리의 일상사에서는 매일 수많은 우연의 일치가

 일어나고 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인 포레스트 검프는 "기적은 매일 일어난다"고 되뇌었

는데 그가 말한 기적의 대부분은 우연의 일치인 것이다.



문제는 우연의 일치가 일어나면 사람들은 그것이 일어나기 힘든 일이라는 선입관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야말로 우연히 일어날 수도 있는 사건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가 얼마나 흔하게 발생하는지는 다음과 같은 확률 문제로 설명할 수 있다. 만약 1000개의

주소가 적힌 봉투와 1000개의 주소가 적힌 편지를 완전히 뒤섞고 나서 아무렇게나 한 편지를 한 봉투에

 넣는다고 하자.



적어도 하나의 편지가 동일한 주소가 적힌 봉투에 넣어질 확률은 얼마일까? 놀랍게도 그 확률은 63%나

된다. 이런 실험을 서울 사람들(1000만명으로 가정)을 대상으로 하였을 때,평균적으로 6300명의 사람이

우연에 의해 제대로 된 편지를 받게 되는 것이다.



1년을 365일이라고 할 때 만일 366명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다면 그 집단에서 적어도 두 사람은 틀림

없이(확률 100%) 생일이 같을 것이다. 그런데 이 확률이 100%가 아니고 50%라면 어떻게 될까? 즉 생일이

 같은 사람이 적어도 두 사람일 확률이 50%가 되기 위해선 이 집단에 몇 명이 있어야 할까? 놀랍게도

 정답은 단지 23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렇게나 모인 23명의 사람 중에서 적어도 두 사

람이 생일이 같을 확률이 50%인 것이다.

우리나라 학교의 학급당 학생수가 대부분 50명 전후이므로 평균적으로 각 학급당 적어도 두 사람은 생일이

 같은 것이다.



jhkim@kndu.ac.kr 



-원문출처:

http://sgsg.hankyung.com/apps.frm/news.view?nkey=79&c1=99&c2=09








[우연의 일치를 과장해석하여, 자기편의적 해석으로 칼융등의 이론까지 거론하며

운명론을 강조, 착취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이런 사이비 운명론자들의 이론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연우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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