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31.

[음악잡담] 시나브로 알게모르게 조금씩 변한다 Karelia





[음악잡담] 시나브로 알게모르게 조금씩 변한다 Karelia















[음악동영상   Karelia]







00 시나브로



부사.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도저히 가망 없어 보이던 방죽 쌓는 일이 시나브로 시나브로 이어져 나가더니

마침내 완성의 날이 온 것이다. 출처 : 조정래, 태백산맥

바람은 불지 않았으나 낙엽이 시나브로 날려 발밑에 쌓이고 있었다.

출처 : 김용성, 도둑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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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무서운 시나브로 소문



[김지은 기자의 고소기] 나는 허지웅의 전 부인이 아니다



온라인에 허위사실이 유포돼 피해를 입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나 역시 ‘허지웅의 전 부인’이라는

낭설로 고통 받아 두 차례 고소를 했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박서강 기자



검찰에서 통지서를 받았다. ‘피의자 A, 처분죄명 명예훼손, 구약식(기소)’. 그건 내게는, ‘김지은

 한국일보 기자는 방송인 허지웅씨의 전처가 아니다’라는 일종의 증명서나 마찬가지다. 벌써

 5년째 나는 인터넷에서 ‘허지웅 전 부인’으로 통하고 있다. 이런 허위사실을 유포한 블로거들을

지난해 10월 고소했고 검찰이 최근 명예훼손 혐의를 인정해 기소했다. 4년 전 첫 고소로도 악

몽이 끝나지 않은 결과다.



어느 날 눈 뜨니 허지웅의 전 부인



살면서 한번도 예상하지 못한 낭설의 쓰나미는 2014년 2월 시작됐다. 휴무였던 금요일, 친한

회사 후배에게서 이런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그는 한 블로그의 주소와 함께 “선배, 이런 글이

 도는데… 아니죠?”라고 남겼다. 그 블로그에는 ‘방송인 허지웅씨의 전 부인이 김지은 한국일보

기자’라는 사실로 포장한 주장과 기자 칼럼에 쓰인 내 사진까지 버젓이 있었다. 처음엔 ‘뭔 뚱딴지

같은 글이?’ 하며 웃음으로 넘겼다. 그러나 연이어 다른 후배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혹시 제가 몰

랐을 수도 있어서, 고민하다 보내요. 이 글이 꽤 확산되고 있어요”란 의문 반, 걱정 반의 메시지였다.

심상찮다 싶었다. 허씨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게다가 난 결혼조차 한 적 없는 사람이다.



알고 보니 허씨가 전날 한 케이블 채널의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전 부인 얘기를 한 모양이었다.

그 이후 흘러간 상황을 짐작하면 이렇다. 온라인 상에서 허씨의 전 부인이 대체 누구냐는 궁금

증이 증폭됐고, 일부 블로거들이 관련 검색어를 노려 거짓 글을 쓴 것이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

지만, 허씨의 전 부인과 나는 동명이인일 뿐이다. 허씨의 전 부인과 관련해선, 기자인지 여부는 물론

 그 어떤 인적 정보도 알려져 있지 않다. 도대체 어떻게 내가 태어나서 단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인물과 수년 간 동거도 했고, 결혼식도 했으며, 그러나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사이가 됐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김지은 기자’는 한국일보뿐 아니라 다른 언론사에도 여럿이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됐다. 나의 명예훼손 고소전은.



내가 택한 최소한의 조치, 고소



고소까지 하기로 결심한 건, ‘블로그’의 엄청난 위력 때문이다. 심지어 나와 십 수년 간 알고 지낸

 동료들도 ‘혹시 그간 내가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차마 내게 직접 묻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하고 있었다. 기자가 쓴 기사도 아니고 그저 익명의 블로거가 쓴 포스트일 뿐인데도

지인들에게까지 시나브로 사실로 각인된 것이다. 포털사이트 검색으로 나타나는 텍스트의 힘은

생각보다 셌다. 심지어 뒤에서 ‘말은 저렇게 하지만, 맞을 걸. 저런 글들이 그렇게 많은데.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잖아’라고 수군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사람을 만나 취재하고 얘기를 듣는 게 업인

내게는 말할 수 없는 피해이자 고통이며 충격이었다. 게다가 나는 신뢰를 생명이자 무기로 하는

기자다. 취재원이 ‘싱글이라더니 이혼했었어?’란 생각을 하며 나를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내가 먼저 ‘저 그 김지은 아니에요’라고 ‘양심고백’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불안에 휩싸였다. 허위사실이 허위임을 증명하려면 법적인 대응 밖에 없었다.



왼쪽은 4년 전인 2014년 첫 고소 때 명예훼손 혐의를 받은 블로그 중 하나. 오른쪽은 최근까지도

인터넷에 떠 있는 허위사실 혹은 제목에 관련 검색어를 의도적으로 넣어 허위사실 유포 효과를

내고 있는 블로그들이다. 네이버 캡처



내가 나임을 증명 받기 위한 고소



수많은 종류의 기사를 써봤지만, 고소장이란 글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 김지은’이 아니고, ‘진짜

김지은’, 그저 나일 뿐이라는 점을 주장하는 고소장, 그리고 내가 ‘그 김지은’이라는 허위사실 때문에

 받은 고통을 호소하는 고소장. 생각만해도 스트레스인 글이었다. 일단 증거를 끌어 모아야 했다.

‘허지웅’, ‘김지은’을 검색어로 넣어 나오는 모든 글들을 봤다. 그들은 정성껏 허씨가 전 부인 얘기를

하는 방송 화면 캡처에다, 어디서 찾았는지 그의 청첩장 파일까지 구해 게시했다. 청첩장 속 허씨는

 그의 ‘진짜 전 부인’과 가면을 쓴 채 나란히 서 있었다. 블로거들은 그 가면 속 여성이 나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읽는 것조차 괴로운 블로그들을 정독했다. 고소 대상이 될 만한 수준의 글을 가리고 그 글의

 어떤 부분이 허위사실이며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메모했다. 추려낸 글을 일일이 갈무리하고, 주소와

 블로거의 닉네임을 정리하고, 고소장에 첨부했다.



4년 전 첫 고소를 하면서 수많은 허위사실 블로그 중 고소 대상을 확정할 때 고려한 건 세 가지다.

단정적인 표현을 쓴 경우, 내 사진을 게시한 경우, 이름과 소속 회사까지 적시한 경우다. 악의적이라고

봐서다. 그렇게 2014년 2월 세 명의 블로거를 최종 고소했고, 같은 해 모두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돼 벌

금형을 받았다.



-발췌출처: 한국일보

http://www.hankookilbo.com/v/041c47c021dc4818a233e347cd048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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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성호 : 세사람이 같은 말을 반복하면 사실처럼 여겨진다는 소문의 무서움이

이기사에서도 느껴진다. 초기 강력대응하거나, 아니면 전혀 반응않거나 택해야

이런 루머는 사라질 것이지만, 결과는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도 있다. 아무튼 나라면 초기 강력대응하여 그 뿌리를 뽑아야한다고 본다.

이런 범죄자들은 무관용을 원칙으로 한, 매우 중한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본다.

-연우생각











00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 김경주





어쩌면 벽에 박혀 있는 저 못은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쪽에서 보면 못은

그냥 벽에 박혀 있는 것이지만

벽 뒤 어둠의 한가운데서 보면

내가 몇 세기가 지나도

만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못은

허공에 조용히 떠 있는 것이리라



바람이 벽에 스미면 못도 나무의 내연(內緣)을 간직한

빈 가지처럼 허공의 희미함을 흔들고 있는 것인가



내가 그것을 알아본 건

주머니 가득한 못을 내려놓고 간

어느 낡은 여관의 일이다

그리고 그 높은 여관방에서 나는 젖은 몸을 벗어두고

빨간 거미 한 마리가

입 밖으로 스르르 기어나올 때까지

몸이 휘었다



못은 밤에 몰래 휜다는 것을 안다



사람은 울면서 비로소

자기가 기르는 짐승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03 작은 위로



​우리는 매일 천천히 부서져 간다

아무도 모르게

그리고

나조차 모르게

조금씩 잘게 깎여져 나간다



그러나 슬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건

조금씩 사람들을 알아가고

나를 부수는 바람 덕분에

조금 더 보드란 속살로

너를 껴안는 법을 알아가기 때문이다



노을이 익어가는 모습을 보고

여물어가는 꽃을 보는 것이

꿈일지도 모르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반복되는 기적들은

내가 깎여간다는 사실을 잊게 한다.



-출처:

https://www.vingle.net/posts/1045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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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변한다.

우리를 구성하는 세포도 날마다 수억개씩 교체되며 변해간다.

그러다가 마침내 7년인가 지난다면 우리 몸 전체가 다른 물질로

대체 될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시나브로  바뀌어가던 육신은

누적된 노화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래서 '시나브로(알게모르게 조금씩)'이란 말은 무섭다.



우리는 시나브로 어느 방향으로 변해간다.

변화가 완성으로 나갈 것인가, 파멸로 나갈 것인가는

매순간의 선택들에 달려있다..

변신... 나는 카프카가 말하는 벌레가 아니라,

애벌레에서 나비로 변해 하늘로 훠얼 날아가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물방울이 바다인 것을 깨닫게 된 신비주의자처럼

오늘도 비상을 꿈꾸며...

-연우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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