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11.

[명시음악] 민속시인 김소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명시음악] 민속시인 김소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음악동영상. 활주로 -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00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가고 오지 못한다'하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萬壽山)을 올라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고 하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 산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의
무덤엣 풀이라도 태웠으면!












00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00 「산유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00 「먼 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리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리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00 못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어요
그런 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그리워 살뜨리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나겠지요?


00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00 「초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00 「접동새」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00 개여울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 이 개 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 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 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00 옛 이야기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오면은
어스러한 등(燈)불에 밤이 오면은
외로움에 아픔에 다만 혼자서
하염없는 눈물에 저는 웁니다

제 한 몸도 예전엔 눈물 모르고
조그만한 세상(世上)을 보냈습니다
그때는 지난날의 옛이야기도
아무 설움 모르고 외웠습니다

그런데 우리 님이 가신 뒤에는
아주 저를 버리고 가신 뒤에는
전(前)날에 제게 있던 모든 것들이
가지가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한때에 외워 두었던
옛이야기뿐만은 남았습니다
나날이 짙어가는 옛이야기는
부질없이 제 몸을 울려 줍니다





00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00 부모

낙엽(落葉)이 우수수 떠러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來日)날에
내가 부모(父母) 되어서 알아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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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金素月 (음력 1902년 8월 6일 ~ 1934년 12월 24일)




대한민국의 시인.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본명보다 소월(素月)이라는 아호로 더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당시 서양적인 시가 아닌 민족의 한과 정서를 그대로 담아낸 시를 써서 한국의
 대표 시인으로 불리고 있다.

흔히 그의 시를 보고 김소월을 현실에 대해 무감각한 예술가의 이미지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1977년 발견된 그의 미발표 창작노트를 보면 가장으로서의 삶 일제 치하의 현실에
 대한 비판 등 현실에 대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 인물이었다. 다만 그의 내성적인 성격과
짧은 시작 활동기 탓에 현실비판시를 발표할 여건이 안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시집
<진달래꽃>에 실린 시들로 대표되는 전성기 시절 후 발표하는 시들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시어는 '집'과 '돈'이며 말년에는 시 쓰기를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고 일종의 취미
활동으로 여겼다고 한다.


2. 삶
1902년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태어났다. 자란 곳은 평안북도 곽산군이다.

1904년 아버지 김성도가 일본인들에게 폭행당해 정신 이상자가 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후
 소월의 가족은 광산을 운영하고 있었던 소월의 할아버지 집으로 이사한다. 아버지가 사고를
 당한 직후인 1905년 훗날 소월의 민요적 어조에 김억과 더불어 큰 영향을 끼친 계희영이 소
월 집안에 소월의 숙모로 들어온다. 계희영의 남편은 당시 경성에서 사업을 하고 있어서
자주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고 홀로 남은 그녀는 어린 소월을 앉혀놓고 자신이 알던 전래동
화나 민요들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이후 소월은 남산보통학교를 입학, 졸업하고 1915년 평
안북도 정주군에 있는 오산학교로 진학한다. 오산학교 재학 도중인 1916년 할아버지의 주선
으로 14세라는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의 친구였던 홍명희의 딸 홍단실과 결혼한다.

김소월은 오산학교에서 시로서의 스승인 김억과 사상적 스승인 조만식을 만나게 되는데 이는
 그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전기가 된다. 한편 같은 시기 소월은 오산학교에서 같이 수업을 받
던 오순이라는 이름의 여성과 교제를 하게된다. 하지만 소월은 이미 홍단실과 결혼을 한 상
태였기에 두 사람의 인연은 오순이 19살의 나이로 시집을 가게되면서 끊어졌고 오순은 의처
증이 심했던 남편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2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이 당시 소월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탄식하며 김억에게 배운 시 작법으로 많은 양의 시를 썼는데 이들
시는 훗날 소월 생전에 낸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에 실려서 김소월의 대표적인 서정시들로
자리잡게 된다. 김소월의 대표시 중 하나인 <초혼>은 오순의 장례식에 참석한 직후 쓰여졌
다고 한다.

1919년, 3.1 운동의 여파로 오산학교가 문을 닫자 소월은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학하여 졸
업하고 1923년, 일본의 도쿄상과대학(현 히토쓰바시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그러나 하필이면
입학 직후 관동 대지진과 일본에 의한 한국인 학살 사건이 발생하여 일본 분위기가 흉흉해진
탓에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귀국한다. 당시 집안이 점점 기울던 소월의 집안은 가문의 마지막
 자존심 겸, 집안을 일으킬 마지막 희망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가문의 전 재산 절반을 밑천 삼아
 가까스로 소월을 상경학교에 입학시킨 것이었기에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한 아쉬움과 자책감은
소월에게 평생 한으로 남았다.

귀국 후에 김소월은 스승 김억과 경성에 가서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온다. 경성에서 김소월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나도향과 친하게 지냈으며 경
성에서 구성군으로 돌아오기 직전인 1925년 소월의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을 김억의 자비
출판으로 출간하였다.

낙향한 소월은 할아버지의 광산 경영을 도왔으나 망하고 이후 할아버지의 집에서 독립하여
동아일보 지국을 열고 신문배포, 수금, 경영 모두를 혼자 도맡아서 했을 정도로 돈을 벌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신문사는 얼마 못 가서 당시 대중들의 신문에 대한 무관심, 일제의 방해 등이
겹쳐 문을 닫고 말았다.

신문사가 문을 닫은 이후 소월은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며 술에 의지했고, 결국 193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뇌일혈로 사망했다. 유서나 유언은 없었으나 아내에게 죽기 이틀
 전, "여보,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것 같구려." 라면서 쓴웃음지으며 우울해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김소월이 자살한 거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김소월의 증손녀가 증언한 바로는, 김소월은 심한 관절염을 앓고 있었고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아편을 먹곤 했다고 한다. 그것으로 인해 아편을 과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3. 대표작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으로 일컫어질 정도로 대표작이 많다.
김소월의 시는 노래로도 많이 만들어져 아직도 불리우고 있다.



-발췌출처: 나무위키 '김소월'







--------[더 읽을거리: 시간날 때 보세요]


김소월,서정주...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시 TOP 10
승인 2015-02-19 10:02:55 | 김규태 기자 | suslater53@gmail.com


[미디어펜=김규태기자] 도서판매사이트 YES24에서 고객과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투표했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시 베스트 10> 결과가 네티즌들로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랑시는 아름다운 시구절로 누군가를 연모하는 마음을 전하는 시다.
베스트 10 사랑시에는, 사랑시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시인들 다수가 손꼽혔다.
3위는 유치환의 ‘행복’, 2위는 한용운의 ‘사랑하는 까닭’, 대망의 1위 사랑시에는 김소월의
‘먼 훗날’이 꼽혔다.

10위.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9위. 도종환 ‘옥수수 밭 옆에 당신을 묻고’

8위. 안도현 ‘그대에게 가고 싶다’

7위. 서정주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

6위. 김남조 ‘그대 있음에’

5위.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

4위. 황동규 ‘즐거운 편지’

3위. 유치환 ‘행복’

2위. 한용운 ‘사랑하는 까닭’

1위. 김소월 ‘먼 훗날’

-출처: 미디어팬
http://www.mediapen.com/news/view/6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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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진달래꽃’ 대표시집 1위
2012-08-11 00:38

문학평론가 선정… 2위는 서정주 ‘화사집’
문학평론가들은 한국현대문학사를 대표하는 시집으로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년
 매문사 펴냄)을 꼽았다.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는 창간 10주년을 기념한 가을 특집호에서 문학평론가들이
뽑은 한국 대표시집 순위를 10일 발표했다.
평론가 75명이 각각 고른 시집 10권을 정리한 결과 63명이 선택한 ‘진달래꽃’이 1위를,
 60명이 선택한 서정주의 ‘화사집’이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백석의 ‘사슴’(59명), 4위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56명),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정지용의 ‘정지용
 시집’이 각각 48명과 45명의 선택으로 5, 6위에 올랐다. 이상의 ‘이상 선집’과 김수영의
 ‘달나라의 장난’, 임화의 ‘현해탄’, 이육사의 ‘육사시집’이 근소한 차이로 7~10위에
올랐다.

시인별 득표수로는 서정주가 1위를 차지했고, 정지용, 김소월 순이었다. ‘시인세계’는
 “전후의 폐허와 군사정권의 폭압 등 시대가 어려울수록 뛰어난 시집이 나온다는 게
입증됐다.”면서 “이번 설문에서 문학평론가들은 감성의 시보다는 격정의 시를, 서정성
보다는 실험성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평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811021026#csidxb2cc2af14afd79c878cae36641808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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