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음악] 프란치스코 교황 어록 Yo-Yo Ma & Bobby McFerrin - Andante
[음악동영상]
Yo-Yo Ma & Bobby McFerrin - Andante
01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는다면, 세속적으로 우리는 주교요, 사제요, 추기경이요,
교황일 수 있지만, 주님의 진정한 제자는 될 수 없다. 진정한 권위는 봉사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자. 아주 가난하고, 약하고,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사람
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 교황 프란치스코
02
하느님의 자비는 한계가 없습니다. 만일 당신에게 종교나 신앙이 없다면, 스스
로의 양심에 따라 살아가면 됩니다.
- 교황 프란치스코
03
우리는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싸워야지, 가난한 사람들과 싸워서는 안 됩니다.
04
05
06
-------------
프란치스코 교황 Franciscus 영어 Pope Francis
본명 :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시보리 (Jorge Mario Bergoglio Sivori)
생년월일: 1936년 12월 17일 (만 80세)
국적: 아르헨티나 출생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재위기간: 2013년 3월 13일 ~ 라틴어 Franciscus PP. 이탈리아어 Papa Francesco
다른 교황들과는 달리 교황의 권위를 뜻하는 붉은 모제타를 입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세계구급으로 유례없이 큰 지지를 받고 있는 현재 가톨릭의 수장.
가톨릭의 제266대 교황으로 역사상 최초의 남아메리카·남반구·예수회 출신 교황이자,
시리아 출신인 제90대 교황 성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만의 비유럽권 국가 출신
교황이다. 또한 요한 바오로 1세 이후 35년 만의 이탈리아인 교황이다.
일찍이 교황 바오로 6세는 "앞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가진 교황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거룩한 성인이신 프란치스코는 인간의 규칙을 깨고 오직 교리에만 순종했기
때문입니다."라며 탄식했었다. 하지만 베르골료 추기경은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역사
상 최초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했는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따른 것이다.
전임 교황의 이름의 반복이 아닌 새로운 교황명을 정한 것은 요한 바오로 1세 이후로
35년 만. 교황은 교황명을 이렇게 정한 이유를 기자들 앞에서 직접 밝혔는데, 콘클라베
에서 3분의 2 득표를 했을 무렵 옆자리에 앉아있던 브라질 상파울루 명예주교 클라우디
오 우메스 추기경이 그를 안고 입맞춤하며 "가난한 사람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말한 순
간 프란치스코 성인이 떠올랐다고 하였다.
출생과 성장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이탈리아 출신 철도노동자 마리오 주세페 베르골료(Mario
Giuseppe Bergoglio)와 레히나 마리아 시보리(Regina Maria Sivori) 사이에서 1936년
12월 17일에 태어났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 졸업하고 예수회에 입회해 32세에 수사신부가
되었다. 젊은 시절 경위가 불분명한 폐렴 합병증으로 한쪽 폐를 절제해 50년 넘게 한쪽
폐로 살고 있다. 한때 바운서로 일한 적도 있다 한다. 바운서를 할 정도라면 왕년에 한
주먹했다는 얘기인데…
사제가 되기로 한 계기가 조금 독특한데, 12살의 어린 나이에(!) 아말리아라는 여자아
이에게 러브레터를 건네며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받아주지 않으면 신부가 되겠다"고 청
혼했다가 단칼에 거절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관련기사).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
다.
그래서, 아말리아 할머니는 60여 년이 흐른 2013년 그가 교황이 되자 말 그대로 기절초
풍했다고 한다. 그녀가 자랑스레 공개한 이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실 다른 여자친구가
없었는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다만, 청소년기 탱고를 같이 춘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이야
기도 있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단순히 꼬마 시절에 실패한 사랑 고백 때문에 사제의 길을 걷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 신학에 좀 더 열중하기는 했던듯...
흑역사?
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에 대해 침묵했던 전적이 있다는 비난을 받았고 관련 건
으로 인권단체에서 2010년도에 고발된 적이 있다. 예수회 소속의 사제 2명이 독재정권에
납치되어 고문당한 사건에 침묵했다는 의혹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황이 아르헨티나 군부
유력자의 가족신부 등의 개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독재자들에게 사적으로 선처를 호소
하였고, 두 사제는 결국 풀려났다고 밝혀졌다
비겁해 보일지는 몰라도, 이는 쿠바의 가톨릭 사제들도 택하고 있는 나름의 실용적 전략
이다. 당장 정권을 전복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직접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타협과 조
정을 통해 어떻게든 사람들을 돕는 것도 현명한 전략이다. 게다가 교황이 군사독재에 찬
성한 것은 결코 아니며, 군부의 살인부대에 쫓기는 사람들을 숨겨주고 자신의 여권을 주
어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의 개인적인 저항을 적극적으로 했다.
그는 1973년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이 되었다. 199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주교에 임명되었고, 2001년 2월 21일 같은 교황에 의해 추기경에
서품되었다.
교황 선출과 즉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건강상의 문제로 퇴위한 후에 치러진 콘클라베 이틀째인 2013년 3월
13일 오후 7시 기준으로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비유럽파 추기경들은 개혁적인 교황을 원했으나 적절한 후보를 내지못
한 상태에서 콘클라베에 돌입했다고 한다. 투표 전에 모든 추기경들이 소신을 피력하는 개
인발표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 베르골료 추기경이 교회가 본연의 영적인 임무에 돌아가야
한다고 피력한 것이 결정적이 되었다. 그의 이런 피력을 계기로 개혁파 추기경들이 그에게
주목했고 뒤이은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성품
개인적인 성품은 매우 겸손하고 온화한 편이라고 한다. 추기경 시절 화려한 관저가 아니라
작은 아파트에 거주하였으며, 바티칸에서 대주는 비행기 값을 빈민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
을 정도. 운전기사를 따로 두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동은 거의 항상 사복 차림으로 대중교
통을 이용했으며 식사는 직접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다가 손수 요리해서 먹었다. 특히 프란
치스코 교황은 교황에 선출되자 소감을 묻는 질문에 "저처럼 모자란 놈을 교황이라고 뽑아
놓아준 분들을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고 말해 온통 폭소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취미는 별로 없지만 좋아하는 작가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특히 축구의 경우는 자국 리그의
팀인 CA 산 로렌소의 열성적인 팬이며 회원이기도 하다.
공적인 면
교리나 문화적으로는 보수적 성향을 보이지만 가톨릭 교회 전반적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심히
보수적인 것도 아니다. 이는 해방신학에 부정적이라는 등 지나치게 개별 이슈로 보수성을 몰
아가는 측면도 크다. 되려 아래에 제시된 사례처럼 미혼모가 낳은 자녀에게 세례성사 주는 것
을 거부하는 사제들을 비판했으며, 콘돔 사용을 반대해서 홍역을 치른 베네딕토 16세와는 달리
에이즈 예방을 위해서 사용해도 된다는 생각을 밝힌 적도 있다고 하여 아주 꽉 막힌 사고의 소
유자는 아닌 듯하다. 더구나 재임 중 해방신학의 창시자를 초청하여, 교황청 기관지 <옵서바토
르 로마노>에서 해방신학이 그늘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콘클라베 시기 <가디언>에서 정한 기준에서도 "Moderate"(온건한)에 속하는데, 진보-온건-보수
에서 중간 정도라는 의미가 아니라 Moderate(온건)-Conservative(보수)-Ultra Conservative(강
경보수) 가운데 가장 온건하고 진보적인 것이다. 교황청 개혁에 적극적이면서 스캔들에도 해당
안 되는 인사라는 점에서도 베르골료 추기경은 두드러진다.
또한 사회경제적인 면에서는 진보적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기작가는
"그는 해방신학자는 아니지만, IMF에 반대하며, 신자유주의에도 반대한다"고 언급하였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직후에도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여 아르헨티나의 빈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바 있
다. 외국의 반응들도 전반적으로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지도자로서는 대중적인' 교황이라
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외신마다 평가가 갈리는 편인데, 이에 대해 미국과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진보의 기준과 라
틴 아메리카에서 생각하는 진보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이라는 지적이 있다. 꼬
리표를 뭐라고 붙이든 간에, 사회적 약자에 대해 온정적이며 공동체의 가치와 평화를 중시하는
성향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11월 27일 펴낸 교황 권고에서는 자본가들의 천문학적인 연봉을 비
난하면서 규제 없는 자본주의를 '새로운 독재'로 규정하고, 가난을 만드는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
교황명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으로 삼은 것만 보더라도 사회경제적인 면에서는 청빈을 강조
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 관심이 많아 보인다.
4.2.1. 사생아, 동성애, 동성결혼에 대해
" If someone is gay and he searches for the Lord and his good will, who am I to judge?
"만약 게이라도 주님의 말과 바른 뜻을 찾아 간다면, 내가 누구라고 그들을 판단하겠습니까?"
그는 가톨릭 교리에 따라 동성결혼을 반대하지만[20] 사생아에게조차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례성
사를 줬다. 가톨릭에서 사생아를 사람 대우하지 않는 것이 중세부터 시작된 오랜 전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파격. 또한 사생아에게 세례를 주길 거부하는 사제들을 비판했다. 사실
교회법상 사생아를 외면할 근거는 부족하므로 교황이 이상한 태도를 취한 것은 딱히 아니다.
무신론자들에 대한 관용
무신론자로 밝힌 라 레푸블리카의 공동 설립자 에우제니오 스칼파리가 교황에게 '하느님을 믿지
않거나 믿음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하느님이 용서할지'를 물었고, 교황은 하느님의 자비는 한
계가 없으며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내서 답변했다고
한다.
그리고 스칼파리 본인이 먼저 전화해온 교황과 약속을 잡아 직접 산타 마르타 관館에서 인터뷰하
고 주로 이탈리아 지성인들의 의견을 포함해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로 편집, 출간되
었다. 한국에서는 바다출판사 발행, 번역은 최수철과 윤병언.
일찍이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도 2001년 'KBS 도올의 논어이야기'에 출연하여 정하상 바오로 성인
의 예를 들며 이러한 견해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런 논조는 종교가 아예 필요 없다거나, 가톨릭을 믿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야 천상으로 향할 수 있다'는 가톨릭의 정체성이자 핵심
교리이기 때문.
하지만 교황이 비신자나 무신론자에 대해서 관용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건 사실이다. 교황 선출
후 진행된 첫 일반 알현에서 알현 마지막에 참석자들을 향해 축복기도의 성호를 긋지 않은 대신
다음과 같이 스페인어로 말한 적도 있었다.
이곳에 모인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고 어떤 분들은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
지만 저는 진심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축복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가지고 계신 양심
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여러분 각자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알고 있기에 말입니다. 하느님
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십니다.
여담으로 범죄자, 폭력 조직, 가톨릭 교회 내의 부패한 성직자들을 격하게 비판하면서 그따위로
행동하느니 차라리 무신론자가 되는 것이 낫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아브라함 계통 종교에서 무
신론자가 갖는 위치를 생각하면 파격적인 언행이다.
인본주의
"하느님은 인간 없이는 하느님이 될 수 없다."라는 말을 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까지의
크리스트교는 최우선 순위를 신에게 두었던 반면, 인간을 가장 중요한 자리에 두며 신의 이름으
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탄압하는 것을 경계한 것. 그러나 이것 때문에 개신교 극단주의자들로부
터 욕을 엄청나게 먹고 있다.
2014년 방한한바 있다.
동북아시아, 특히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이 깃들기를 빕니다.
기타
국내 잡지 시사in에서는 지도자의 격은 집단 전체를 달리 보게 한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시사in의 진보적인 성향과 교황의 행보를 연결시키면 저런 평가가 나올
만하다는 중론. 종교를 초월한 교황의 인기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진정한 리더를 원하는 현대인의
갈망이 교황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어렸을 적엔 독실한 가톨릭 신자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지만 무신론자로 유명한, 미국 HBO의 유명
한 토크쇼 호스트 빌 마허는 프란치스코가 교황에 취임된 이후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행보를 할
때마다 "내가 장담하는데, 이번 교황은 무신론자일 거야"나 "지금 바티칸에선 독약을 준비하고
있을 거야"같은 농담을 하면서 그의 행보를 칭찬해주었다. 다른 가톨릭계 토크쇼 호스트인 스티븐
콜베어 역시 마와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반응을 매번 보여주었다.
교황이 일반 사제 복장을 갖추고 몰래 바티칸을 빠져나와 노숙인들을 만나는 등 잠행을 한다는 설
이 돌았다. 이런 추측이 나오는 이유는 교황이 노숙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고,
추기경 시절 실제로 밤에 몰래 나와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주고 함께 나눠먹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베네치오 리바라는 장애인을 감싸안은 모습 또한 많은 이들의 감명을 불러일으켜 만화로 그려지기
도 했다.
2013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로 뽑혔다. 하지만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면 으레 하게
되어있는 인터뷰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미국의 남성잡지 에스콰이어가 교황을 올해의 베스
트 드레서로 선정했다. 지마라가 아닌 소박하고 검소한 백색 수단에 수수한 검은 구두를 신은 차림
새가 교회 개혁을 위한 행보에 부합하며 교황의 가치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며 호평했다. 2015년에
는 미국 방문을 앞두고 스포츠 스타들의 피규어를 전문 생산하는 블리처 크리처가 제작한 피규어가
등장했다. 스포츠 스타는 아니지만 블리처 크리처가 피규어의 대상으로 삼을 만한 인물이라는 게
블리처 크리처의 창업주 매슈 호프먼의 설명.
이탈리아로 왔을 때는 평범한 소형차를 이용한다
으레 교황용 의전차는 메르세데스-벤츠의 특수개조 SUV차량을 이용해온 것이 관례이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런 고급차를 마다하고 16,000달러도 안 하는 구형 포드 포커스. 국산차로 비유하자면 아
반떼나 i30 정도 수준이다. 게다가 지금 포커스는 3세대이지만 교황의 포커스는 2세대 전기형으로,
2004년식 차량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터뷰에서 "사제들이나 수도자들이 고가의 최신 차량을 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물론 업무 목적으로 자동차가 필수적이긴 하지만, 고가의 비싼 차를 구입하기 전에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의 어린이들이 얼마나 많이 굶어죽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라며
성직자들의 사치 자제를 몸소 주문하였다. 바티칸 근처에서 돌아다니는 SCV 009** 번호판의 파란색
포드 포커스를 발견하면 그것은 교황의 차이다.
2014년 여름 내한 때에도 한국산 소형차를 의전차로 사용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면서 기아 쏘울을
의전차로 사용했다. 교황 의전차로 선정될 시의 홍보효과를 노릴수 있기 때문. 특히 경차를 만드는
한국GM과 기아자동차가 큰 관심을 보얐는데 최종적으로는 경비 문제 등으로 기아 쏘울이 의전차로
선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방탄차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저격 사건 이후로는 경
호를 위해 방탄차를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의 경우에는 "정어리 깡통 안에서는
소통이 안 됩니다."는 말을 하며 의전 때는 앞서 말했다시피 소형차를, 퍼레이드 때는 사방이 뚫
린 무개차를 즐겨 탄다. 심지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 지역 방문 때도!! 물론 근위대들은 심히
죽을 맛 프란치스코 교황 본인은 경호 문제에 대해 "내 나이쯤 되면 잃을 것도 없습니다. 어떤 일
이 일어날지는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라는 말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있다.
이런저런 면이 합쳐져서 상당히 인기가 많은 교황이다. 당장 나무위키에도 하위문서가 있는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일하다. 하지만 개혁적이고 동성애자 및 무신론자들에게 관용적인 면 등으로
인해 극렬 안티가 많고, 심지어는 적그리스도 소리까지 듣는 교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비종교
인들은 그에게 매우 큰 감동을 받고 있다.
2014년 3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았다.
-발췌출처: 나무위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