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6.

[고사성어] 배수진 죽기로 각오하면 죽을 수 있다 背水之陣






[고사성어] 배수진 죽기로 각오하면 죽을 수 있다 背水之陣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제위에 오르기 2년 전(B.C.204)의 일이다.

명장 한신은 유방의 명에 따라 위나라를 쳐부순 다음 조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러자 조나
라에서는 20만의 군사를 동원하여 조나라로 들어오는 길목인 정형의 협도(狹道) 출구
쪽에 성채를 구축하고 방어선을 폈다.

이에 앞서 군략가인 이좌거가 재상 진여에게 '한나라 군사가 협도를 통과할 때 들이 치
자'고 건의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간첩을 통해 이 사실을 안 한신은 서둘러 협도를 통과하다가 출구를 10리쯤 앞둔 곳에서
일단 행군을 멈췄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한신은 2000여 기병을 조나라의 성채 바로 뒷산에 매복시키기로 하
고 이렇 게 명했다.

"본대(本隊)는 내일 싸움에서 거짓 패주한다.
그러면 적군은 패주 하는 아군을 추적하려고 성채를 비울 것이다.
그때 제군은 성채를 점령하고 한나라 깃발을 세우도록 하라."

그리고 한신은 1만여 군사를 협도 출구 쪽으로 보내어 강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한 다음 자
신은 본대를 이끌고 성채를 향해 나아갔다.

이 윽고 날이 밝았다. 한나라 군사가 북을 울리며 진격하자 조나라 군사는 성채를 나와 응
전했다. 2,3차 접전 끝에 한나라 군사는 퇴각하여 강가에 진을 친 부대에 합 류했고, 승세
를 탄 조나라 군사는 맹렬히 추격했다.

그 틈에 2000여 기병대는 성채를 점령하고 한나라 깃발을 세웠다. 강을 등진 한나라 군사는
 필사적으로 싸웠다. 이에 견디지 못한 조나라 군사가 성채로 돌아와 보니 한나라 깃발이
나부 끼고 있지 않은가.

전쟁은 한신의 대승리로 끝났다. 전승 축하연 때 부하 장수들이 배수진을 친 이유를 묻자
한신을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군사는 이번에 급히 편 성한 오합지졸(烏合之卒)이 아닌가?
이런 군사는 사지(死地)에 두어야만 필사적으로 싸우는 법이야.

그래서 '강을 등지고 진을 친 것[背水之陣]'이네."







배수지진(背水之陣)
背 등 배, 水 물 수, 之 갈 지(…의), 陣 진칠 진

-[동의어] 배수진(背水陣)[출전]《史記》〈准陰侯列傳〉


물을 등지고 친 진지.
① (물러설 수 없도록)물을 등지고 적을 치는 전법의 하나.
② 목 숨을 걸고 싸우거나 어떤 일에 대처하는 경우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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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벼랑 끝'
입력 : 2016-11-29 [19:39:54]

죽기 살기로 싸워 이기고자 하는 것이 '벼랑 끝 전술'이다. 뒤에는 천 길 낭떠러지이고,
앞엔 수도 헤아리기 어려운 적들이어서 돌진이 살길이니 어찌하랴. 이와 비슷한 말이 배
수진(背水陣)이다. 중국 한나라 한신이 강을 등지고 진을 쳐서 병사들이 물러서지 못하고
 힘을 다하여 싸우도록 하여 조나라 군사를 물리쳤다는 데서 유래한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이 내세웠던 '옥쇄(玉碎) 작전'도 맥락을 같이한다. 이는 부서져
옥이 된다는 뜻으로, '천황'을 위하여 깨끗이 죽음을 택했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당시
무수한 청춘이 이름 모를 태평양 고도에서 숨져갔고, 그 속에 조선 청년들도 많이 포함되
어 있었을 것이다. 영웅이나 지배자를 위해 무수한 목숨이 사라졌던 이런 전술의 무참함
에 가슴이 아린다.

이런 생각 끝에 떠오르는 장면이 2015년 청와대 비서실 시무식이다. 이때 거론된 고사성
어가 '파부침주(破釜沈舟)'인데 이 의미를 안 국민은 무척이나 생뚱맞아했다. 밥 지을 솥
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이다.
초나라 장수 항우가 적을 치러 갈 당시 고사에서 유래한 성어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적은 과연 누구인가. 국민은 그것을 도통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8일 새누리당 내 친박계 핵심 중진들에게서 '명예퇴진' 건의를 받았다.
자신의 친위대라고 할 수 있는 친박계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았으니 참으로 '벼랑 끝'까
지 몰린 셈이다. 이에 박 대통령은 어제 3차 대국민담화에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항우와 한신의 '벼랑 끝 전술'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항우는 작은 싸움들에선 승리했지
만, 천하는 한신의 군주 유방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유방의 명장 한신도 토사구팽을 탄식
할 수밖에 없었다. 민심을 외면하거나 군사의 절대적인 신임이 없으면 '파부침주'나 '배
수진'도 사상누각일 뿐이라는 교훈을 남긴다.

항우는 '해하 전투'에서 사방을 가득 채운 초나라 노래를 듣고 그의 마지막 운명을 예감
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란 말은 이래서 나왔다. 주말 밤이면 전국을 밝히는 수백만 개
의 촛불. 이것이 현대판 사면초가임을 알아야 국정 혼란을 끝낼 수 있는 묘안이 나온다.
이준영 논설위원 gapi@

-원문출처:부산일보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61129000310






--------------------[보충자료]



배수진


등 배 물 수 진칠 진


물을 등지는 형태의 군진. 일반적으로는 퇴로를 차단시키면 전멸의 위험이 크지만, 대신 이
판사판으로 싸우기 때문에 이길 수도 있는 방법. 사기와 훈련정도가 낮아 군대가 와해될 위
험이 클때 사용하는 전술이다.

유명한 예로는 《초한지》에 나오는 한신의 경우가 있다. 유방이 이끄는 전한 본군과 분리
돼 북방의 제후국들을 평정하던 한신은 조나라에서 조의 재상 진여의 20만 병사와 대결하게
되는데, 이 정형 전투에서 한신은 훈련도가 낮은 자국의 군사들을 분발시키기 위해, 일부러
 강을 등지고 진을 쳤으며, 물러설 곳이 없는 공포를 느끼고 사력을 다해 저항하기 시작한
한나라 군대는 한신을 얕보고 공격했던 조나라 군대에게 승리했다.

이처럼 '배수진'하면 왠지 일부러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서 사기를 높여 적을 무찌르는 비장
의 전술이라는 인식이 퍼져있다. 물을 등지는 형태의 군진이 아니나 신라의 임전무퇴 작전의
 경우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했다.


2. 실제

위의 내용이 일반적인 인식이지만, 사실 이는 정확하지 않다. 정형 전투에서 한신의 군대는
 잇달은 승리로 사기는 높았으나 숫자도 적고 보급선이 길어져서 장기전을 감당하기 어려
웠다. 한신의 배수진의 한 가지 목적은 단기결전으로 승부를 내는 것으로, 한신이 배수진을
치자 실제로 조나라 군대는 한신이 병법을 모른다고 가볍게 여기고 공격해 왔다. 이 공격을
배수진에 몰린 한 본진이 버티는 사이에 별동대가 비어있는 적진을 빈집털이하자 조나라 군
사는 크게 당황하여 무너지게 된 것이다. 《

또 배수진 자체로 보면 물을 뒤에 끼는게 원래라면 전혀 좋지 않은 방법인 것처럼 보이지만,
군사적으로 후방 공격을 방지한다는 효과도 있다. 사실 약한 군대는 정면 공격에는 어느 정
도 내성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측후방 공격등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극도로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데, 배수진은 후방에 강이 흐르므로 후방 공격을 방지할 수 있다. 뭐 상대가 배타고
 "오"면서 "뒤"를 공격할 수 도 있긴 하지만.

다만 저런 것들을 감안해도 배수진은 단점도 많다. 우선 더 이상 물러날 수 없기 때문에 전
열을 유지하면서 물러나거나 예비대를 유기적으로 운용하기 힘들다. 더구나 후방이 차단되어
 있는 것은 병사들에게 상당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며, 사실상 포위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므
로 보급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쓴 전쟁론에서도 배수진과 비슷한 전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클라우제비츠의 서술에서는 이 전술의 최대 단점으로 보급의 어려움을 가장 강조했다. 따라
서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아군이 붕괴되기 쉽다.

이 때문에 배수진에만 의존하는 경우 전멸을 면하지 못한다. 사실 배수진에만 의존해서 승
리할 수 있을 정도면 배수진 없어도 충분히 이긴다. 임진왜란에서 벌어진 신립의 탄금대 전
투가 배수진의 실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탄금대 전투에서 보듯이, 배수진에서 공포에
 질린 병사들은 차라리 강물에 뛰어들어서 익사하는 것을 택하지 적진에 결사적으로 돌진하
지 않는다. 또한 활 든 군대가 배수진을 치면 그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다. 상대 입장에서는
 움직임을 제약하기 위해 물로 몰아넣는데 알아서 물쪽에 진을 쳐주니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
이 어디 있는가.

예를 들어 탄금대전투에서 일본군이 우회에서 배수진일줄 알았던 신립부대를 포위하게 됐을
 때 배수진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포위에서 자유롭다는 장점이 사라진 사례가 있다. 설사
 돌진한다고 해도 잘 통제되지 않은 공격은 별 효과도 없다. 고려-거란 전쟁 당시, 거란군
 장수들은 모두 구릉을 끼고 싸우자 했으나 야율팔가 홀로 배수진을 주장, 총사령관인 소배
압이 이에 따랐다가 몰살크리 당했던 것도 대표적인 예라고 할수 있다.

배수진은 아니지만 마속이 가정에서 패배한 상황도 비슷하다. 둘 다 어떤 전술이 좋다고 해서
 제대로 된 상황판단 없이 무작정 그 전술에만 의존했다가 망했다고 볼 수 있다. 마속의 경
우엔 '산 위에 진을 치는 것이 전술적으로 유리하다.'고 주장하면서 그대로 실행했다가 신나
게 털렸다.

배수진을 성공적으로 운용한 한신의 작전에서는 별동대를 운영해서 적의 진지를 점령하는 것
이 주된 승리 요인이었으며 배수진은 점심을 먹기 전의 짧은 시간동안만 버티면 되는 여러
 작전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한신의 배수진은 일부러 불리한 상황을 보여서 적의 공격을 유
도하고 본진을 비우도록 만드는 심리전의 효과도 있었다. 즉, '저 상황에서는 배수진을 치는
 것이 좋았던 것'이지, '배수진을 쳐서 상황이 좋아진 것'이 아니다.

사실 당장 한신의 말 또한 배수진을 친 이유를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이었지 그것만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배수진으로 승리한 또다른 예인 창정 전투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창정 전투에서는 조조의 선봉군이 배수진을 치고 결사적으로 싸워서 원소군이 한 발 물러났을
 때 십면매복한 조조군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해서 원소군은 궤멸당했다. 여기에서도 조조는 한
신과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지만, 승리의 주요 원인은 십면 매복이었지 배수진이 아니었으며
병사들이 배수진에서 오랫동안 버틸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배수진의 요건이 성립되는 곳 자체도 그렇게 많지 않다. 배수진의 요
건은 병사들에게 '퇴로가 없다'는 점을 인식시키고 생존욕구를 극대화시킨다는 것인데, 그러려
면 적이 후방을 제외한 삼면을 모두 포위한 상태이든지, 그도 아니면 강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
어야 하지만 그런 조건이 갖춰지긴 힘들다. 뒤가 막혔더라도 양 옆이 뚫려있으면 병사들이 그
 쪽으로 도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임 이론에서도 게임의 판도를 바꾸는 방법으로 등장하며 영어로는 'Burning the bridge'라고
 한다. 이 경우 상대가 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퇴로를 열어줌으로써 이쪽의 배수진 자체가
성립하지 않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이 있다. 그리고 게임 이론에서도 확실히 하는 점은 배수진은
상대가 너무 압도적인 상황이라면 먹히기 힘들다는 것이다.


3. 사례

임진왜란 때는 신립의 탄금대 전투가 배수진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권율의 행주 대첩도 배수진
 형태였다. 행주산성의 뒤는 바로 한강이었고, 일본군은 벽제 방면에서 행주산성으로 밀려들어
왔다. 그렇지만 행주산성은 밑에서 말하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유사하다. 특히 한강에 인접해
있었기에 보급이 원활히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간접적으로 제해권 장악의 도움을
받은 셈.

사실 저 배수의 진이 우리가 아는 죽을 각오로 결전을 벌인다는 의미라면 항우가 거록에서 진
나라 장수 장한과 싸울 때가 더욱 현재 통용되는 배수의 진의 의미에 더 근접하다. 그때는 성을
 대신 점령해줄 군대도 없이 타고온 배를 불사르고 식량도 3일치만 남기고 다 버려 살기 위해
싸운다는 것을 한신보다 먼저 보여준 셈이니까. 그리고 항우의 이 고사에서 나온 말이 '파부침
주(破釜沈舟)'. 허정무 감독이 인용한 말로 알려졌다.

근현대 전장에서도 배수진은 역시 더 이상 퇴각할 곳이 없는 막다른 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지
만, 고중세와는 달리 이제는 항공기와 해상운송 수단의 발달로 실제로 배수진이 방어자에게 유
리할 때도 있다. 강으로 인해 공격자가 방어자를 육군으로 완벽히 포위하지 못하게 되며, 반대
로 방어자는 양륙정, 혹은 항공보급 등을 통해 계속해서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이 볼가강으로 인해 스탈린그라드를
완벽히 포위하지 못해 소련군 증원병력이 계속해서 투입됐고, 결국 이로 인해 전투가 몇달씩
길어지다가 끝내 패배하는 중요한 원인중 하나가 되었다.

고대에서도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디라키움 공방전이라든가 있긴 하다. 일반적인 포위전이 아
니라 예로 들긴 미묘하지만 적어도 보급 측면에서는 배수진이 고대에서도 어느 정도는 괜찮았다.

귀주대첩의 경우도 배수진중에서도 특이한 경우인데 양군 모두 배수진을 친 상태에서 국가의 운
명을 걸고 일전을 펼쳤다. 서로 정면으로밖에 싸울수 없으니 서로를 무너트리지 못한채로 공방을
주고 받았지만 전투 후반부 김종현의 기병부대가 거란군 의 강 건너편에 도착해서 포위하는 형국
이 되었으며 동시에 갑작스런 돌풍이 거란방향으로 불어서 자연환경마저도 거란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며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서황이 왕평의 간언도 씹고 배수진을 벌였으나 패배했다. 패퇴 후 왜 말리지
않았냐고 갈구는 졸렬한 모습은 덤


4. 기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각오로 임한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동양에서는 항우의 거록대전에서
 나온 파부침주(破釜沈舟)가 있으며, 서양에서는 "조그만 섬에 도착해서 타고 온 배를 불태운다"
고 표현한다. 좀 부정적인 인상이 강하지만, 따지고 보면 배수진은 그보다 훨씬 미친 짓으로 분
류되던 것이었으니 마찬가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실 한국에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태에서 싸운다"라는 용례를 위해 배수진의 예를 드는
 것보다는 파부침주의 예를 쓰는 것이 옳다. 배수진은 말 그대로 전형적인 망치와 모루 작전에서
모루 역할을 더 잘 할 수 있게 만드는 방편의 하나일 뿐이다. 진짜 병사들에게 결사의 각오로 싸
우게 하는 것은 파부침주다.

마지노선과 비슷한 뉘앙스이긴 하지만, 마지노 선은 수세에 몰려 밀리고 밀리다 더이상 물러설 수
 없게 된 최종 방어선'을 의미하며 배수진은 비슷한 상황에서 실패하면 정말 끝, 성공하면 역전의
 한수같이 공세적 성격의 역전 카운터를 노리는 의미로 약간 다르다.

고시생 등이 학점을 말아먹음으로써 취직길을 막고 고시에 전념할 때 쓰며 빨리 붙지 않으면 군대
에 끌려간다 하여 배군진이라고도 한다.


-발체출처: 나무위키 '배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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