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성경] 성서는 완벽한가? 성경무오설 축자영감설
본글은 성서사본학의 거장인 바트 어만의 '성경 왜곡의 역사'를 발췌요약한 글이다.
정통교단에서 인정하는 본문비평학*/ 성서전승 연구의 권위자인 그의 글을 읽으면,
성서가 어떻게 왜곡되었으며, 변질되었나를 알 수 있으며, 소위 '킹제임스 성경' 등
에 관한 논쟁의 허구점이 뭔지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내용이 방대하여 일부만 발췌했는데, 나머지 부분도 귀중한 내용이 많다.
성경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서점에서 구입하여 꼼꼼히 읽어보시길 권한다.
-연우
*** 본문비평(학)
현존하는 성경의 사본들에 나타나는 이문들을 수집하고 연구하여 원 본문에 가까운
본문을 재구성하려는 학문. 이와 더불어 본문 전승의 역사를 밝히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사본 자체, 사본의 외형보다는 사본에 기록된 본문에 관심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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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경 Apocrypha
'감추어진'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 개신교에서 정경에 포함되지않는
기독교 문서들을 가리키는 용어. 구약성서의 경우 칠십인역에는 들어있으나 히브리
성서에는 들어있지않은 15권의 문헌이 외경에 속하며, 신약성서의 경우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권위있는 문서로 받아들여 졌으나, 다른 문서들과의 경쟁구도에서 탈락하
여 최종적으로 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문서를 가리키느데, 외경복음서만 해도 50개가
넘는다.16.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 verbal inspiration)
축자영감설은 성서는 글자까지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단 한 글자도
틀림이 없으며, 역사와 과학적으로도 사실이라는 기독교 근본주의적 성서읽기방식이다.
축자영감설과 대립되는 것이 성서의 문헌양식, 전승자료, 편집양식, 사회학적 배경
등을 분석하는 성서해석방법론인 성서비평학이다.-위키백과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생긴 것이다(막2:18~27)
나는 마가복음 2장에서 한 구절을 선택했다.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가
면서 낱알을 따먹은 일로 예수가 바리새인들과 논쟁하는 단락이었다. 예수는 바리새인
들에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
니다"라는 사실을 가르치셨다. 그래서 다윗 왕이 굶주렸을 때 부하들과 함께 행했던 일,
즉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그들이 성전에 들어가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느 제단 빵을
먹었던 사실을 그들에게 상기시켜준다.
이 구절의 잘 알려진 문제점들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다. 예수가 여기서 인용하고 있
는 구약성서의 말씀(사무엘하 21:1~6)을 보면, 다윗이 이 일을 행한 때의 대제사장은
아비아달이 아니라 사실은 아비아달의 아버지인 아비멜렉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단락은 성서가 문자적으로 무오하지 않으며, 실수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
로 보여주는 구절들 가운데 하나다.34.
여러가지 오류들
마가는 예수가 유월절 식사를 한 후에 십자가에 달렸다고 말하고(마가복음 14:12, 15:25),
요한은 유월절 식사 전에 예수가 숨을 거두었다고 말한다.(요한19:14). 이것은 사실 중요
한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누가는 예수의 탄생기사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갔다가 겨우 한 달 뒤에 나
사렛으로 돌아와 정결예식을 행했다고 말한 반면(누가2:39), 마태는 누가와 달리 그들이
이집트로 피신했다고 말한다(마태2:19~22). 이것도 중요한 차이점이다.
또 다른 예를들면 바울은 자기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회심을 체험한 후에 자기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지 않았다고 말한 반면(갈라디아1:16~17),
사도행전의 보도에 따르면 예루살렘에 간 일은 바울이 다마스커스를 떠난 후에 제일 먼
저 한 일이었다(행전9:26). 이것 역시 중요한 차이점이다. 36쪽.
축자영감설의 문제들
성서의 축자영감설은 해결할 수 없는 끊임없는 논쟁거리이다. 우리는 원본문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본문을 처음으로 베낀 사본도 가지고 있지 않다. 심지어 원본문의 사본의
사본이나, 원본문의 사본의 사본의 사본도 갖고있지않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본은 후에, 그것도 아주 한참 후에 만들어진 사본들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사본들은 수 세기 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어는 한 사본도 다른 사본과
일치하는 사본이 없을 전도다. 그것도 한두 군데 다른 것이 아니라 수천 군데나 차이가 난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본문들을 이문(異文)이라고 한다.
이책 후반부에 다루겠지만, 사본들은 서로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신약성서 필사 전승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문이 있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다. 아마 상대적인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신약성서에 있는 낱말의 수보다 이문의 수가 더 많을 것이다.37.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성서는 매우 인간적인 책이다.39.
인간적인 성서
성서를 우리의 신앙과 삶과 미래에 대한 무오한 청사진으로 받들어 읽다가, 이제 지극히 인간
적인 관점에서 쓰인 인간적인 책으로 보는 것은 아주 급격한 변화다. 다양한 인간적인 관점은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이 가운데 어떤 관점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무오한
지침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마침내 도달한 사고의 전환이며, 지금 나는 여
기에 푹 빠져있다.
나는 종종 이렇게 쓰인 범퍼 스티커를 본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믿는다.
그러면 결론은 분명하다." 나는 그런 말에 이렇게 응답한다.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하지 않았다
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을 전해주는 책이라고 당신은 옆에 끼고 다니는
책이 만일 인간의 말을 말도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를 천천히 설명해 나가겠다.42.
정경 형성에 영향을 끼친 마르시온
우리는 현재 남아있는 증거들을 살펴봄으로써 정경 형성의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할 수 있다.
2세기 중반, 탁월한 한 기독교인이 로마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훗날 이단으로 정죄된 철학자이
자 교사인 마르시온이다.
그는 조선업으로 큰 재산을 모았고, 로마교회에 막대한 헌금을 했다. 그는 5년동안 로마에 머
물면서 기독교 신앙에 대해 자신이 깨달은 바를 가르치며, 그 내용들을 집필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 문서들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그가 편집한 책들이다. 마르시온은
우리가 아는 사람 가운데 실질적인 '정경'을 만들어낸 최초의 기독교인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
경이란, 그의 주장에 따르면 거룩한 분문이 실려 있는 책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마르시온은 사도 바울의 생애와 가르침에 완전히 빠져있었으며, 바울을 초대교회 이래 유일한
참사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접할 수 있었던 바울의 서신 열통과 예수의 복음서 한편을
자신의 정경에 포함시켰다. 이 복음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누가복음서로 알려진 것과 비슷한 형
태의 것이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마르시온의 정경은 11권으로 구성되있다. 구약은 하나도 없었고, 복음서 한
권과 열권의 바울 서신뿐이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르시온은 마르시온은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신앙을 이해하는 거짓 신자들이 이 11권의 책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여기저기에
이런저런 구절들을 덧붙였다고 생각했다. 이 책들의 본문을 그들의 생각에 꿰어 맞추기 위해서다.
그래서 마시온은 자신이 정경으로 삼은 11권의 책을 '교정했다'.
구약의 하나님을 언급하거나, 창조를 참 하나님의 사역으로 말하거나, 율법을 지켜야한다고 말한
부분을 삭제한 것이다.
마르시온의 정경이 신약성서의 정경화를 가속시켰다는 데에는 학자들 사이에 거의 이견이 없다.
마르시온을 제외한 다른 기독교인들이 정경화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순전히 마르시온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되었다.79.
4복음서의 형성
갈리아 지방 리용의 감독이었던 이레니우스는 마르시온과 영지주의자들 같은 이단자들을 논박하기
위해 다섯권의 책을 저술했는데, 여기서 그는 어떤 책을 정경으로 받아들여야하는지 매우 분명한
견해를 보인다.
'이단논박'에서 이레니우스는 그들이 복음서들 가운데 오직 하나만 정경이어야한다는 잘못된 생각
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율법의 지속적인 타당성을 주장하는 유대 기독교인들은 마태복음서만
사용했다. 예수가 진정한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주장한 그룹은 마가복음서만 받아들였다. 마르시
온과 그의 추종자들은 누가복음서만 받아들였는데,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형태와는 다른 것
이었다. 발렌티누스파로 불리는 영지주의 그룹은 요한복음서만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이네니우는 이 모든 그룹이 오류에 빠져있다고 주장하며 4복음서를 주장한다. 그는 땅에는
네 방위, 네 바람, 네 기둥 들이 있으므로, 당연히 복음서도 넷이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거의 2세기 말경에는 이레니우스처럼 마태복음서, 마가복음서, 누가복음서, 요한복음서 등
4개의 복음서들만 인정하는 기독교인들이 생겼다.80
정경화에 대한 논쟁은 수 세기 동안 줄기차게 계속되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신약 정경이
예수가 죽은 뒤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이것은 한참 잘못된 생각이다.
오늘날 우리의 신약성서에는 27권의 신약문서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서로 상이한 신약성서 목록들이 유포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27권의 정경을 사용한 사람은 정확히 알려져있다. 이 사람은
신약문서들이 기록되고 나서 거의 3백년 후인 4세기 후반에 활동한 저술가인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아타나시우스다. 하지만 정경에 대한 논쟁은 그후에도 계속이어져 거의 수백년간 논란이 계속되었다.
기독교 문서의 독자들
누구든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이 현대 사회의 당연한 현상이지만, 실재로 이것은 산업혁명 이후에
나 정착되었다. 현대가 되기 전까지는 거의 모든 사회에서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
했다.
심지어 공식 서기관조차 글을 베끼기만 했고, 자기가 베낀 글을 읽지도 못했다는 사실이 전해진다.
하물며 당시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하층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문맹자로 봐야한다.
고대사회에서 글을 읽는 것은 일반적으로 혼자서 눈으로 책을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
른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책을 직접 읽지 않더라
도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것을 듣기만 해도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문서들을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
으며,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이문서를 큰 소리로 읽었댜. 그래서 문맹자라해도 그 내용을 듣고
이해하고, 심지어 연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공동체들은 돛대체 어떻게 그 책들을 입수할 수 있었을까? 93.
필사자들의 문제97~
고대사회에서 책을 복사하는 유일한 방법은 손으로 베껴쓰는 것이었다. 이 일은 당연히 더디고 힘겨
운 작업이었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최종적으로 저술작업을 마무리한 저자는 몇몇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에게 그 책의 필사본을 만들어 나누어주었다. 이것이 바로 고대 사회에서의 출판행위였다.
이로써 책은 저자의 손을 떠나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간다. 책의 사본 하나를 손에 귄 누군가가 가
족이나 친구들에게 이책을 나눠주고 싶으면, 그사람은 또다시 필사본을 만들어야했다.
본문을 베끼다보면으례 실수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문제는 고대 사회 전반에 걸쳐 널리 인정된 일이
었다.
신약성서를 포함해 거의 모든 초기 기독교문서들은 그리스어로 되어 있었고, 당시의 의 그리스어를
읽은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대사회에서는 문장에 구두점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한 소문자와 대문자를 구분하지 않았다. 더 기이한 것은, 무엇보다 띄어쓰기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단어와 단어 사이를 띄어쓰지 않고 모두 붙여 쓴 것이다. 이러한 몇가지 이유로 본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둘째치고, 일단 글을 읽는일도 쉽지않았다.
"사본들이 지나치게 많은 차이가 난다. 이것은 일부 필사자들의 부주의와 일부 필사자들의 그
릇된 뻔뻔함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베낀 것을 한 번 더 검토하는데 소홀하거나, 아니면
점검하는 과정에서 자기 마음대로 말을 덧붙이거나 삭제해버렸다."
-교부 오리겐109
"마치 술잔치를 벌이다 온 것같은 어떤 기독교인들은 스스로 모순에 빠져 복음서의 본문을
바꾸어버린다. 세 번, 네 번, 그 이상 말이다. 그러다가는 급기야 복음서의 특징마져 달라
지게 만들어버렸다. 비판을 받으면 그 비판을 면하기 위해 자꾸 복음서를 변경시켰던 것이다."
-켈수스논박.2.27
"같은 기독교인들이 편지를 써서 보내달라고 나에게 요청했을 때, 나는 그렇게 해주었다.
그런데 이 사탄의 사도들은 내편지들을 온갖 나쁜 것들로 가득 채웠다. 없는 내용을 만들어
덧붙이거나 있던 내용마져 삭제하는 일을 일삼았다. 이런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마저 함부로 바꾸려드는 사람들이라, 나같은 사람이 쓴 별볼 일없는 작품
을 훼손하려고 작당하는것은 아주 우습게 저지른다."
-고린도 감독 디어니시우스
신약성서의 요한 계시록 저자는 작품의 끝부분에 다음과같은 무시무시한 경고를 덧붙였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두 이 두루마리에 기독된 생명나무
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18~19
종종 이구절은, 독자가 이 예언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받아들이거나 믿어야한다는 위협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실제로 이말은 이책을 베끼는 필사자들에게 던지는 전형적인 위협이었다.
구체적인 실례찾기120~
오늘날 남아있는 것은 바울의 편지 원본이 아니다. 바울이 직접 만들게 한 첫 단계의 필사본들
가운데 하나도 아니며, 편지의 수신처가 되는 갈라디아 지방의 어느 도시에서 만든 필사본도
아니다. 그런 필사본을 베낀 필사본도 아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그나마 완전하다고 할 수
있는 최초의 갈라디어서 사본은 파피루스 사본 46번이다. 파피루스 사본 가운데 마흔여섯 번째로
공식적인 사본목록에 등록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사본도 단편이다. 그나마 갈라디아서 본문을 상당량 포함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이 사본은 주후 2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때라면 바울이 편지를 쓴 때로부터 대략 150년 후다.
바울의 편지 원본은 150년 동안이나 회람되면서 필사되고 또 필사되었다. 정확하게 필사되기도 했고,
부정확하게 필사되기도 했다. 그후에야 비로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사본이 만들어진 것이다.
예를들면, 이미 오래 전부터 독자들은 요한복음 21장이 후대에 첨가된 부분이라고 추측하고 있다는 사
실을 알고 있었다. 요한복음서는 분명히 20장 30~31절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21장에 보도되는 사건들은 추가적인 보도처럼보인다. 아마 예수의 현현 전승을 부풀리기 위해,
또 요한 전승의 중심에 서 있는 '애제자'가 죽었을 때 이것이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21장이 덧붙여진 것으로 보인다.(요한복음 21장 22~23절을 보라).
[신약성서에 포함되지 않았던 본문] 128~140요약
1. 간음중에 붙잡힌 여인 : '죄있는 자 돌로쳐라'는 유명한 문구등으로 사랑받는데...원문에는 없다!
2. 마가복음서의 마지막 열두 절: 덧붙였다는 논란이 성서해석사에 유명하다.
필사자들은 사본들을 필사하면서 수많은 구절에서 본문을 변경시켰다. 위에서 소개한 구절들은 단지 그
가운데 두가지에 불과하다. 이경우 모두 필사자들이 상당한 길이의 본문을 신약성서에 첨가시킨 사례다.
대다수의 변개가 이렇게 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소한 이문들이 훨씬 더 많다. 139.
존 밀의 그리스어 신약성서163~
1707년 신약성서 본문비평학 분야의 혁신 적인 고전이 된 한 권의 책이 발행되기 전까지는, 이문과 관
련된 문제들을 심각하게 인식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이책은 그야말로 그리스어 신약성서의 전승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지각변동에 준하는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학자들로하여금 신약성서 사본들의 본
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물꼬를 터 주었다.
이책은 옥스퍼드 퀸즈 칼리지의 연구원이었던 존 밀이 펴낸 그리스어 신약성서다. 밀은 신약성서를 펴내기
위해 30년 동안 열심히 자료를 수집했다.
그는 본문비평장치에 자신이 모은 자료를 수록했다. 그런데 이 신약성서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거
나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밀의 본문 비평장치에는 당시에 알려진 사본들에서 얻은 이문들이 실려있었는
데, 거기에는 무려 약 3만 군데나 되는 이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당시 사본들과 교부 인용문들과 번역본들 사이에 퍼져 있던 이문들이 3만 군데나 되었던 것
이다. ....
대략 100개의 그리스어 사본을 알고 있었던 밀은 그것들을 관찰한 결과, 거기서 3만개의 이문들을 찾아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사본들을 가지고 있다. 최근의 통계를 보면, 5,700개가 넘는 그리스어
사본들이 발견되어 공식적으로 사본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그당시와 비교하면 57배에 달하는 수치다. 171.
이렇게 자료가 풍부한데, 오늘날 알려진 이문의 전체숫자를 어떻게 추측할 수 있을까? 학자들마다 그 계산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알려진 이문이 20만 개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30만 개, 어떤 사람
들은 40만 개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 이상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컴퓨터 공학의 획기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아무도 이문을 전부 세어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신약성서 사본들 가운데 흩어져 있는 이문의 수는 신약성서 전체에 있는 단어 수보다 더 많다.173
[사본에 나타난 다양한 변개들]174~189 요약
1. 우발적인 변개: 실수, 누락, 착오...등
2. 의도적 변개: 첨가, 삭제, 변형..등
본문비평 방법론
사본 전승에 나타나는 엄청나게 많은 이문들은 성서가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
명하게 보여준다는 생각이었다. 194
"비록 성서가 우리 신앙의 근거가 되는 확실한 규범이기는 하지만, 이 규범이 그 자체로는 완벽하지
않다. 이것 외에 사도적 전승이 무엇인지 알아야한다. 아울러 우리는 성서의 진정한 의미를 보존해온
사도적 교회들로부터가 아니면 그 사도적 전승을 결코 배울 수 없다."
"첫 원본들이 없어짐에 따라, 성서 사본들에 엄청난 이문들이 유입되었는데... 이 이문들은 개신교도
들의 원리를 완전히 무효화시킨다. 이들 개신교들은 이문투성이의 성서 사본들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가! 그것도 예전의 형태가 아니라 오늘날의 형태대로 말이다.
기독교의 진리는 교회 안에 지속적으로 살아서 전해져 내려온다. 따라서 교회의 전통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책에서만 기독교의 진리를 찾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책에는 너무나도 많은 이문들이 들어있고,
또 많은 문제들이 필사자들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가!"
-리차드 사이먼(성서전승연구가)
-발췌출처:
바트 어만 저 '성경 왜곡의 역사' 청림출판/민경식역/2006 중에서
-----------------------------------[참고/보충자료]
[성서무오설 聖書無誤說 Biblical inerrancy ]
성서는 신의 말씀을 빠짐없이 적어 놓은 책이므로 틀린 부분이 단 한 글자도 없다는 주장.
사실 이 성서무오설이라는 말은 복합적인 뜻을 가진 단어이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내용은 글자 하나
하나가 역사적, 과학적 사실만을 담고 있다.'는 뜻(축자영감설)으로 이 단어가 쓰일 수도 있고, '비록
과학적 엄밀함이나 역사적 정확성을 기대할 순 없지만, 맥락적이고 유기적으로는 구원의 진리를 오류
없이 주장한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이 문서에서 후술할 성서무오설은 '성경은 모든 문자 하나하나가 사실이다' 라는 입장인 전자를 뜻하며,
사실 이 문서뿐 아니라 나무위키 내에서 말하는 성서무오설은 절대다수가 전자의 의미이다.
Biblical inerrancy 를 그대로 번역하자면 '성경의 무오류'라는 뜻이며, 국립국어원이나 국어사전 등
에서 공식적으로 이걸 번역한 명칭은 없다. 일단 한국 인터넷 상에서는 임의적으로 '성서무오설'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일본어 위키백과의 경우는 '성경의무오성'이라고 번역되어있다.
이 학설은 근본주의성향이 강한 개신교 종파에서 주로 채택한 성경관이며 사실상 과학 및 역사를 비롯
한 수많은 학문과의 단절을 선언하는 주장이다. 지성이 없는 근본주의 신자들이 흔히 범하는 순환논법
의 기초를 마련하기도 한다. 근본주의 개신교도들은 성서비평학 자체를 불순히 여기며, 성서비평학이
반영된 현대 역본들(공동번역, 새번역, NIV 등)을 '변개된 성경'이라고 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성경
침례교 참조).
현대신학에선 축자영감설을 학문적 가치가 있는 가설로 인정하지 않으며, 성경의 구절 하나하나를 곧이
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는 보수, 혹은 정통을 자처하는 신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
이다. 제대로 된 신학교육을 받은 목사라면 성서무오설을 결코 함부로 지지하지 못한다. 성서가 시대를
따라 수정 및 가필되어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신학대학에서 여러 번이나
강조하는 사항이다. 개신교에서 성서의 독자적인 해석을 용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략 2000년대부터 이러한 논의가 각 교회에 받아들여졌고, 현재 진보적 성향의 개신교
언론기관에서 축자영감설을 퇴치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도 축자영감설을 지지하는 일부 신자들은
오히려 신학자, 신학과 교수들을 이단으로 몰아세운다. 한 번 습득된 관점은 정말 안 변하기 때문에 그
렇다. 특히나 그 관점이 관념적이고 강렬하다면 더욱 그러하다.
가톨릭과 성공회는 축자영감설과 거리가 있는 편이다. 이들은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진리를 오류 없이
가르쳐주는 책이다"는 의미의, 위에서 설명한 후자의 성서무오설을 지지한다. 현실적으로 교파를 떠나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인정을 하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성경은 기독교인
들에게 교리를 묶어놓은 책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왠만한 기독교인은 성경에 오류가 없
다고 말한다. 그것이 위에서 설명한 성경무오설 중 전자인지 후자인지를 가려서 들어야 할 것이다.
현대에 성서무오설, 그중에서도 축자영감설은 미국 남부의 유색인 밀집지역, 중남미, 아프리카의 개신
교 성장세로 새로운 세력권을 확보한 상황이다.
2. 정말 오류가 없는가?
결론을 말하자면 아니다. 오류가 겁나게 많다.
2.1. 성서에 오류가 없다는 명제 자체의 맹점
성경무오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는 성경, 즉 원본이 될 성경은 불행하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발견된 것들은 성경의 사본의 사본들일 뿐이다. 신약성경의 경우 5600개가 넘는 그리스어 성경 사
본들(전체 혹은 부분)과 1만개가 넘는 라틴어 사본, 그리고 500개 이상의 타 언어 성경 사본들이 존재
한다. 가장 오래된 완성본 신약성경은 'Codex Sinaiticus'인데 여기에는 4세기에 경전에 포함된 두 권의
책이 빠져 있다. 신약성경의 가장 초기의 파편은 'Rylands Library Papyrus P52'인데 2세기 중반의 것
으로 추정된다. 사본을 비교해보면 다양한 사본들 사이의 차이점이 약 20만개로 추정된다.
성서의 문자 하나하나가 완전히 무오하다는 주장을 하려면, 그 완벽한 텍스트가 존재해서 그에 따른 논
리를 펴야 할텐데, 그게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성서가 무오하다는 주장 자체가 첫걸음부터 허공에
붕 뜨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런 사실은, 백번 양보해서 성서무오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성경에 대한 해석 방식을 인정한다
해도 큰 문제를 안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자 한획한획에 생명을 걸기 때문에 우리가 현재 보는 성
경과 조금이라도 다른 단어나 문구를 쓰고있는 더 앞선 시기의 사본이 발견된다면 그들의 신앙은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허물어져버릴 수 밖에 없다.
2.2. 일반상식과의 충돌(생략)
2.3. 성경 구절들 간의 모순(생략)
2.4. 과학적/윤리적 오류(생략)
3.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생략)
4. 성서무오설에 대한 기독교 내의 비판(생략)
-발췌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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