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 24.

[명화음악] 죽음의 무도 춤 - Danse macabre









[명화음악] 죽음의 무도 춤 - Danse macabre








[음악동영상- 죽음의 무도]






바도 모리 Vado Mori(죽으러 간다네)

나는 죽으러 간다네.
죽는다는 것은 확실하다네.
죽음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다네.
다만 그 시간이 언제일지 불확실할 뿐이라네.
나는 죽으러 간다네.

피할 길 없는 엄연한 숙명 앞에 중세 시인들은 이런 영탄의 노래를 불
렀다.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우리가 결국 죽음을 맞으리라는 것만큼
 확실한 일도 없다. 이 숙명을 담담히 받아들인 사람들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 모두 다시 만나 즐거운 곳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를 염원하면서
마치 소풍 가듯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음의 춤(무도)
-죽음의 무도의 기원을 찾아서  -박흥식(서울대서양사학과교수)

바티칸 대성당을 비롯해 유럽의 여러 성당이나 수도원에는 죽음을 형상화
한 그림들이 적지않게 걸려있다. 대체로 중세 말기와 근대 초기에 그려진
 이같은 이미지들은 유럽 전역에서 죽음에 대한 태도에 변화가 일어남을
시사한다.

중세 유럽에서 춤은 음란과 욕정을 불러 일으키고 신앙적 맥락에서 신께
반항하는 행위로 여겨졌다. 중세 초기부터 여러 종교 지도자는 춤을 추는
 행위를 비판하고 각종 종교회의를 통해 금지시켰다.

춤은 악마를 소환하고 생명의 마지막 문턱을 엄어 죽음으로 인도하는 의식
으로 간주 되기도 했다. 인간이 죽으면 지옥옥 혹은 천국에서 악마 혹은
천사와 춤을 추게 된다고 생각했는데, 점차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
게 된 인간들에게 죽음의 무도는 부정적의미의 죽음, 즉 마지못해 영원한
벌을 받으러 가는 두려운 과정이었다.
... 하지만 폴 빈스키는 15세기의 춤이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정화하는 알
레고리적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규명하기도 했다.

13세기 이래로 유랑하던 탁발 수도사들은 도시의 광장이나 공동묘지에서
집회를 열었고, 죽음을 단골 메뉴 삼아 설교했다. 설교자들은 현세적인 가
치를 조롱했고, 죽음 뒤에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런 배경에서
벽화의 형태로 가장 먼저 등장한 죽음의 무도들은 설교 중에 경고와 저주
의 차원에서 활용했다. 차츰 기도서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필사본들과 판
화 및 제단화 등에서도 이런 이미지들이 확산돼었다. 이렇게 이미지화한 죽
음은 민중적 기반을 지니고 발전했다.


세명의 산자와 세명의 죽은 자

이 설화는 13세기 이래 유럽 전역에 확산되어 있었는데, 여기서는 이교적 요
소가 다분하다. 죽은 영혼이 살아있는 인간 주위를 떠돈다거나 산자들에게
경고를 보낸다는 발상은 기독교와 무관한 토속적 요소다.
이교도적 민간신앙은 16세기에도 성마태오 축일 밤에 교회 묘지에서 죽은 자
들의 원무를 보게되면 그해에 이생을 떠나게 된다는 속설을 만들어냈고, 죽은
 후에 평화를 찾지 못한 영혼들이 인간들에게 찾아와 산자를 데려간다는 이야
기도 낳았다.

세명의 산자와 죽은자 설화는 '바를람과 요사파트 성인점'이 근원점이다.
화려한 옷을 입은 세 사람이 사냥을 가다가 우연히 세 주검과 극적으로 회동
한다. 산자들은 왕이나 귀족으로 상정되는 높은 신분이다.
반면 세 명의 주검은 시체 상태로 관에 누워 있거나 뼈가 드러나 해골로 묘사
된다.  어찌 됐든 산 자들이 주검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주검이 그들에게 말을 건넴으로 대화가 시작되고 인생을 돌아볼 만한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죽은 자들은 산 자들이 부, 권력, 점음에 취해 인생을 탐닉하며 하느님께 순
종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들은 '우리도 과거에는 당신들과 같았고,
당신들도 머지않아 우리처럼 될 것이오'라는 구절로 핵심 메시지를 던진다.
주검들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 언제 찾아올 지 모르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지옥의 고통과 심판을 대비하여 선행을 베풀며 살라고 당부
한다.




성인전 '바를람과 요사파트

이 성인전에 따르면 인도의 왕 아베나르는 아들 요사파트를 얻었는데, 태어날
 때 점성가로부터 기독교인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 기독교도를 탄압하
던 국왕은 왕자를 궁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별궁에 가두고 생로병사와 관련된
 일체의 불행한 이야기를 접하지 못하게 하며 양육하지만, 결국 아들은 우연히
외출할 기회를 얻어 성 밖으로 나갔다가 인간 존재에 대한 절망과 구원에 대한
갈망을 경험하게 된다. 요사파는 후에 은자 바를람을 통해 기독교 진리를 깨닫
게 되고 결국 기독교인으로 개종해 은자로 살다가 스승 바를람과 함께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730년경 그리스 판본 신학자 다마스쿠스의 요하네스가 기록한 성인전에서

-발췌출처;
서울대중세르네상스연구소저/산처럼간/2016년 2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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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본 글에서 이 설화가 불교의 부처 고다마 싯다르다의 유명한 설화,
태자가 4문을 외출할 때마다 병자, 노인, 죽음을 만난다는 '생로병사' 이야
기가 그 원본이라고 말한다. 이 불교의 유명한 전설은 후에 서양으로 전해지고
세사람의 귀인(싯다르타와 시종들)로 각색되었다는 이야기.
삶의 무상함을 깨닫고 진리를 찾으라는 불교의 교리가 기독교적으로 윤색되어
전해진 것이다.
-연우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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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미상 「세 명의 산자와 죽은 자의 전설」
제주도민일보승인 2011.05.26 16:59
 

▲ 14세기|프레스코(부분)|이탈리아 수비아코, 성 베네딕토 사크로
스페코(성스러운 동굴)

이 그림이 그려져 있는 수비아코의 사크로 스페코는 서구 수도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6세기의 성인 성 베네딕트가 3년간 살았다고 전해지는 동굴이다. 수
비아코는 현재 기독교 순례의 중심지이다.

세 명의 산자와 죽은 자의 전설은 1300년대부터 1600년대까지 널리 퍼졌던 이
야기이다. 초기에 이 전설은 세 명의 귀족이 말을 타고 숲을 지나다가 살아있
는 해골 셋을 만났는데, 이들은 “내가 옛날에 당신과 같았고 지금 나는 당신
의 미래 모습이다. 부·명예·권력은 죽을 때 아무 소용이 없다”라고 말했다
는 전설이다. 그러나 14세기가 되면서 이 이야기는 다양하게 변했다. 그 중
하나가 귀족들이 은둔자를 만났는데, 이 사람은 썩어가고 있는 과정을 보여주
는 시신 세 구를 귀족들에게 보여줬다는 것이다.

위 그림에서는 귀족 여인 한명만 등장한다. 운둔자는 그녀에게 부패의 단계에
 있는 관 속의 시체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 시체는 바로 이 귀족 여인의 시체
였다.
시에나 화파에 속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조잡하게 표현되지 않고 극적
으로 단순화돼 있다. 첫 번째 시체는 왼손을 오른손에 포개고 있는 반면에 다
른 두 시체는 오른손을 왼손 위에 두었는데, 이 사실은 이 그림이 다소 급하
게 제작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전설은 관람자의 시선을 해골에서부터 은둔자와 귀족 여인까지, 그리고 다
시 원위치로 이끌어주면서 생생하게 묘사됐다. 훈계를 담고 있는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숲과 교회, 나뭇잎은 원근법이 사용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페
스트가 전 유럽에 맹위를 떨치던 14세기의 맥락에서 본다면 이 그림은 무시무
시할 정도로 강렬하다. 발췌=「명화1001」


제주도민일보  webmaster@jejudomin.co.kr

-출처
http://www.jeju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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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무도

중세 시대 흑사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시절, 사람들은 교회 묘지에서
 신들린 듯 춤을 추면 죽은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후로도 '죽음과 함께 춤을 춘다'는 서구권의 관용구로 많이 이용되었다고.

회화에서는 2가지 형태로 존재하는데, 해골들만 일어나서 자기들끼리 춤추는 것이 그
 하나이다. 이 경우는 대단히 유쾌한 듯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장기자랑도 한다.

또 다른 형태는 여러 지위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해골과 함께 춤추는 것이다.
이쪽의 의미는 보다 명확한데,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라는 것이다.
-나무위키












죽음의 무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죽음의 무도》(-舞蹈, 프랑스어: Danse Macabre, 영어: Dance of Death, 스페인어:
Danza de la Muerte, 이탈리아어: Danza Macabra, 포르투갈어: Dança da Morte, 독일
어: Totentanz)란 중세 말기에 유행한, 죽음의 보편성에 대한 알레고리를 묘사하는 미
술 장르이다. 죽음의 무도는 시체들 또는 의인화된 죽음이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을 대
표하는 산 자들, 즉 교황·황제·국왕·어린이·노동자 등과 만나거나, 또는 무덤 주위
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하여 생명이 얼마나 허무한지,
현세의 삶의 영광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보는 이에게 일깨우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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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무도 (생상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죽음의 무도 사단조》(-舞蹈, 프랑스어: Danse macabre 당스 마카브르[*]), Op. 40은
1874년 프랑스의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가 작곡한 교향시이다. 이 곡은 시인 앙리 카잘리
스가 오래된 프랑스 괴담을 바탕으로 쓴 시에서 영감을 얻어 1872년에 작곡된 성악과 피
아노를 위한 예술가곡으로 시작하였다.  1874년에 작곡가가 작품을 음시로 확장 및 편곡
하고 성악 부분을 바이올린 독주로 교체하였다.



원문

원문은 장 라오르(필명 앙리 카잘리스)의 《착각》(l'Illusion)에 수록된 〈평등, 박애...〉
(Égalité, Fraternité...)에서 가져온 것이다. 한국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


지그, 지그, 지그, 죽음의 무도가 시작된다.
발꿈치로 무덤을 박차고 나온 죽음은,
한 밤중에 춤을 추기 시작한다.
지그, 지그, 재그,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

겨울 바람이 불고, 밤은 어둡고,
린덴 나무에서 신음이 들려온다.
하얀 해골이 제 수의 밑에서 달리고 뛰며,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를 건넌다.

지그, 지그, 지그, 모두들 뛰어 돌며,
무용수들의 뼈 덜그럭거리는 소리 들려온다.
욕정에 들끊는 한 쌍 이끼 위에 앉아
기나긴 타락의 희열을 만끽한다.

지그, 지그, 지그, 죽음은 계속해서,
끝없이 악기를 할퀴며 연주를 한다.
베일이 떨어진다! 한 무용수 나체가 된다.
그녀의 파트너가 요염하게 움켜잡는다.

소문에 그 숙녀가 후작이나 남작 부인이란다.
그녀의 용감한 어리석은 달구지 끄는 목수.
무섭도다! 그녀는 저 촌뜨기가 남작인 마냥
자기를 그에게 어떻게 허락한다.

지그, 지그, 지그. 사라반드 춤!
죽음이 모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춤춘다.
지그, 지그, 재그. 군중 속에 볼 수 있는
농부 사이에서 춤을 추는 왕.

하지만 쉿! 갑자기 춤은 멈춘다,
서로 떠밀치다 날래게 도망친다; 수탉이 울었다.
아, 이 불행한 세계를 위한 아름다운 밤이여!
죽음과 평등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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