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예화] 패배 감각 지수
미국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당하는 실패나 패배에서 느끼는 좌절감을 지수로
나타낸 것을 본 일이 있다.
좌절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상태를 제로(0), 혹심하게 느끼는 상태를 마이너스
10, 오히려 발전적 계기로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태를 플러스 10으로 한
다면, 유태인계가 +5, 영국이나 독일 등 게르만계 미국인이 +3, 라틴계 미국인
이 -2로 나타나고 있다.
만약 우리 한국인의 패배 감각 지수를 측정한다면 아마도 마이너스 후반부로 나
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청소년 축구의 대 폴란드전의 패배가
심리적 변수로 작용한 때문인지 무덥고 우울한 지난 일요일이었다.
비단 이번 뿐 아니라 국제 경기에 패했을 때마다 더러는 승운(勝運)이 없었다 하
고, 더러는 정상으로 가는 길이 너무 멀다 하고, 또 더러는 엽전이 그렇고 그렇지
하는 등 체념이나 절망, 자조(自嘲)로 패배를 합리화시키곤 했다.
운동경기 뿐 아니라 인생 만사에 따른 패배도 이 같은 체념, 절망, 자조로 손쉽게
귀결된다는 것은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 아닌가 싶다. 곧 패배는 끝장이거나
끝장에 가깝다는 특유한 패배 감각을 우리는 공유하고 있다.
미국 초등학교의 지도 기본 방침은 주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일찍부터 패배를
잘해내는 데 버릇 들여 회복력이 왕성한 인간으로 육성하는 데 교육 목적을 둔다.
청교도 전통이 있는 가문의 부모나 학교의 선생은 패배의 함정을 일부러 만들어
시련을 가하기도 한다.
곧 전투에는 지더라도 전쟁에만 이기면 되는 것이다. 이처럼 패자부활전이 왕성
한 사회인 데 비해 우리 한국 사회는 패자부활전이 용납이 되지 않는다. 인생의
출발 단계에서부터 일류 대학, 일류 기업, 일류 관청에 들지 못하면 후에 대세를
만회하기가 어려워진다.
대기(大器)는 만성(晩成)하는 법인데, 만성 이전에 딱지가 붙어 버린다. 그래서
패배 없이 승승장구한 극소수의 영웅 주변에는 상처입은 인생이 산더미처럼
쌓이게 된다. 인재(人材) 외에는 아무런 자원도 없는 우리 나라에선 엄청난 낭비
가 아닐 수 없다.
축구건 인생이건 패배에 웃고 손뼉칠 수 있게끔 성숙했으면 싶다.
-예화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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