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 성모마리아의 현대적관점 Rebecca Luker - Ave Maria
[동영상음악]
Rebecca Luker - Ave Maria
드라마 경찰특공대 ;천국의 계단 ;에 팝 형태로 편곡된 레베카 루커(Rebecca Luker)의 곡이 삽
입되어 유명해졌다. 이런 이유로 서양 등 많은 나라에서는 구노와 슈베르트가 더 유명하지만,
한국은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도 잘 알려져 있다.
[캇치니의 아베마리아]
Ave Maria - G. Caccini / Brinums - Inessa Gal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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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QvEQ8pw84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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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기독교에서는 흔히 ‘성모(聖母)’ 또는 ‘동정
녀(童貞女)’라는 이름을 앞에 붙인다.
생애
성경에 따르면, 마리아는 아비야 조의 제사장 사가랴의 아내인 엘리사벳의 친척이었으
며,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이었다. 어떤 이는 마리아가 남편 요셉과 같이 유다 지파
이며 다윗 왕의 자손이라고 보는데, 그 근거는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요셉의 족보와
일치하지 않는 루카 복음서에 나와 있는 족보가 마리아의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
이다.
야고보의 복음서(정경인 야고보서와 다름)에 따르면, 마리아는 유다 지파에 속했으며
요아킴과 안나의 딸로서 갈릴리 지방 나자렛 마을에 태어났다. 이 나자렛 태생이라는
것이 그녀가 다윗 왕실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요아킴과 안나는 경건하고 흠 잡을 데가 없는 생활을 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나
결혼한 지 20년이 다 되도록 자녀가 없었다. 근심에 쌓인 두 사람은 만약 하느님이 자
녀를 준다면 그 자녀를 하느님을 섬기는 데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그래서 축제 때마다
성전으로 올라가 기도를 하였다.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천사가 요아킴 혹은 안나에게
나타나 마리아의 탄생을 예고했다고 한다. 요아킴과 안나는 기쁜 마음에 하느님의 약
속을 굳게 믿고 기대감에 넘쳐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이윽고 안나가 임신하여 딸을
낳았다. 두 사람은 천사의 지시대로 이름을 마리아라고 지었다.
어느덧 마리아가 세 살이 되자 요아킴과 안나는 제물을 준비하여 그녀를 성전으로 데리
고 갔다. 요아킴과 안나가 여행할 때 입고 있었던 옷을 벗고 관습에 따라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 동안, 마리아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계단을 하나씩 올라갔다. 그 후 일곱
살 때 성전이 봉헌되었으며, 열두 살 때까지 성전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목수 요셉과 약혼을 하였지만 처녀의 상태로(기독교의 가르
침에 따르면, 성령에 의해) 아이를 갖게 되었다. 이를 성모영보라고 부른다.
성모 영보에 관한 성경 구절(루카 1, 26-28)에 따르면 마리아는 하느님의 명을 받고 파
견나온 대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시여, 기뻐하십시오”라는 인사를
받았고, 마리아는 가브리엘에게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에 동의함으로써 예수의 모친이 되었고, 아무런 죄의 거
리낌도 없이 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받아들였다.
임신한 그녀는 이 기쁜 소식을 사촌언니이자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에게 전
하고,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내 주님의 어머니”라고 인사말을 건네었다. 그러자
곧 마리아는 마니피캇을 노래하였다. 처음에 약혼자 요셉은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
고나서 마리아와 자신을 모두 책망하며 이혼을 결심하였으나 그날 밤 요셉의 꿈에 대
천사가 나타나 아이는 성령으로 잉태된 아이이므로 걱정하지 말고 결혼하라고 당부하
였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마리아와 결혼을 하였다.
그녀는 남편 요셉과 함께 인구 조사 때문에 로마 제국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칙령에
따라 호적을 등록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갔지만 숙소를 구하지 못해 근처 마굿간에서
밤을 보내다가 거기에서 예수를 낳았다. 그녀는 정해진 날에 율법에 따라 아기 예수를
성전에 봉헌하였다.
당시 유다 지역을 다스리던 헤로데스 1세 왕은 베들레헴에 유대인들의 왕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수를 죽이려 하였다. 그를 피해 이집트로 도망쳤던 예수네 가족은 헤
로데스 1세가 죽자 나자렛으로 돌아와 예수가 서른 살 무렵이 될 때까지 그 곳에서 목수
일을 하며 살았다.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가 열두 살이 되었을 때, 그를 성전에 데리고
갔으며, 거기서 가족들은 3일 동안 서로 떨어져 있게 되었다.
예수가 공생활을 시작할 때에 마리아는 그와 함께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였고, 거
기에서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녀는 예수가 가르침을 전하다가
유대교와 로마 제국을 모욕하고 반역을 꾀했다는 이유로 십자가형에 처해져 죽을 때에
십자가의 발치에 서서 예수의 죽음을 지켜 보았으며, 사도들이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던
때에 그들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 그 후 마리아는 예수의 뜻에 따라 죽을 때까지 사
도 요한과 살았다고 전해진다.
[ 마리아와 관련된 로마 가톨릭 교리 ]
원죄 없는 잉태(무염시태) 교리
마리아는 잉태 첫 순간부터 원죄의 아무 흔적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기에 적합하도록 그리스도의 예견된 공로에 비추어 미리 하
느님이 계획한 특전이라 한다. 교회는 ‘원죄 없는 잉태’가 사도들에게 계시되어 교
회 내에 전래되어 온 교리의 일부라고 가르친다. 성서에는 원죄 없는 잉태 교리에 대
한 명시적인 표현이 없다. 그러나 사도들의 구두 가르침에 이 교리가 포함되어 있었
고, 다른 명확한 가르침에 은연중 내포되어 있었는데, 이는 복음의 씨앗이 그리스도
인의 가슴에 열매를 맺고 난 이후에 비로소 전면에 드러난 것이다. 성서상 간접적인
근거로 창세기 3장 15절과 루카 복음서 1장 28절을 들기도 하지만,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한 뚜렷한 신앙은 마리아의 성덕(聖德)에 대한 일반적인 교리를 구체화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루카 복음서 제1장과 제2장이 그녀의 성덕을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선택받은 사실과 관련시키기 때문에 마리아를 예외적으로 거룩한 사람으로 본다. 개
신교파중 루터교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완전한 은총(Full of Grace)을 받은 것을 인정
한다.
평생 동정
초대 교회의 신앙 표현들에서는 성서의 증언에 따라 예수가 오로지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서 잉태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성령에 의한 동
정 잉태의 고백은 점차로 마리아가 예수를 낳는 그 순간에도, 그 이후에도 동정이었
다는, 즉 평생 동정이었다는 고백으로 확대되었다. “평생 동정(aeiparthenos)”이라는
표현은 4세기 초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처음으로 발견되고, 공식적으로는 553년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결정문에서 사용된다. 그리고 649년 라테라노 시노드(로마
가톨릭의 주교회의)에서는 마리아가 출산 전에, 출산 중에, 출산 후에도 동정녀였다고
선언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가
르침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형제와 자매를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로마 가톨릭에서는 구
약성서의 표현에 따라 형제라는 말은 예수의 가까운 친척을 일컫는 말이라고 해석함
으로써 마리아의 평생 동정 교리를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히브리어에서는 형제 자매
라는 명칭으로서 사촌들도 지칭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히브리어나 아랍어에서는 이
친척 관계를 나타내는 고유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 개신교에서는 마가복음서와
누가복음서에 예수의 형제들이 나온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비(非)성서적인 것으로 간
주하나, 개신교 사상의 뿌리들인 종교개혁자 칼뱅과 루터는 마리아의 평생동정을 부
정하지 않았다.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 잉태 전부터 대천사를 통해 ‘주님의 어머니’라고 불렸다. 이를 토대
로 기독교의 오랜 신앙 고백문들은 한결같이 마리아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
머니’라고 고백했었고, 성모송에서도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른다. 이는 431년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믿을 교리로 선포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재확인되었다
. 이 호칭은 예수와 마리아의 밀접한 관계에서 연유되며,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성부와 동일한 신성을 지닌 만큼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마리아는 살아 생전 예수가 잉태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함께하였으며
예수의 구세 사업을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었다고 한다.
성모 몽소승천 교리
로마 가톨릭에서 말하는 성모 마리아는 지상 생애의 시작과 마찬가지로 그 마지막도
하느님의 행동을 통해서 거룩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가 지상에
서의 생활을 마친 후 육체와 영혼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승천에 대한 최초
의 전례적 축일의 날짜와 장소는 명확하지 않으나, 3~4세기부터 순교자나 성인들을
그들이 죽은 날짜에 기념하는 사상에 부응하여 4세기 중엽의 복되신 동정녀 기념일
이 성모의 죽음과 승천의 축일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례문에 나타나는 것은 8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처음에는 ‘성모 마리아의
안식(Dormitio)’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났다가,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신심이 확
대되자 9세기에 와서 ‘성모 마리아의 승천’이라는 말이 나온다. 중세를 지나는 동
안 성모 승천에 관한 영성과 신심이 더욱 환산되어,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셨던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는 현세의 생활을 마치신
후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늘로 올라가 영광을 입으셨다.
성모 승천은 비록 성서에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초대 교회부터 내려오는 믿을 만한
전승과 구세사(救世史)에 있어서의 마리아의 역할, 마리아와 예수의 관계, 교회
안에서의 마리아의 위치 등을 고려한 신학적 결론이다. (이러한 해석 방법을
prima scriptura라고 한다. 이것은 sola scriptura를 따르는 개혁주의와 차이가
있다.) 즉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잉태하여 낳고 키운
마리아의 육체의 부패를 면하게 해준 것이다.
마리아의 승천은 예수의 승천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라틴어에서는 이 차이를
분명히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는 “하늘로 올라가심(ascensio)”, 성모 마리
아는 “받아들임(assumptio)”이라고 구분함으로써, 마리아의 승천에서는 하느님이
이 사건의 능동적 주체임을 분명히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몽소승천(夢召昇天)이
라고 표기한다. 마리아가 육체성과 함께 전인적으로 완성된 것은 하느님에게 은총으
로 인한 구원의 주도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사건이다.
8월 15일로 제정된 성모승천 대축일은 마리아 관련 축일 중 가장 중요한 날로
로마 가톨릭의 교회 전례력에 있어 의무 축일로 지켜지고 있다.
동방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의 성모신심의 근거
하느님이 마리아에게 명예를 주었다.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게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어 찬양하게 하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 루카 1,28
수많은 여인중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여인으로 선택되었으며 또한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이므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게 선택할 수 있게 하였다. 이에 마리아는
당시 처녀의 임신이 사회적인 지탄을 받게 되는 것을 알면서도 자유의지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따랐으므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친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머니 마리아를 공경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9개월을 마리아의 태중에 있었으며, 또한 마리아의 출산의 고통을
겪고 태어나게 되었다(루카 2,7).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순종하
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 루카 2,51
이에 동방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은 예수의 성모에 대한 순종을 본받아 성모 마리아를
공경한다.
마리아는 성령의 은총을 받았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 루카 1,35
따라서 신약시대에서 최초로 성령을 받은 최초의 그리스도인이 마리아라고 볼 수 있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가 최초의 기적을 행사하는 자리에 함께 하였다.
카나의 혼인식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행사한 기적은 그의 어머니 마리아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이날 예수 그리스도는 어머니의 요청에 따라 최초로 영광을 드러내는 기적
을 행사하고 이를 목격한 이후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요한 2,1~12).
또한 마리아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예수 그리스도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전달한 최
초의 사람이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 있었다(요한 19,26)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한 유일한 사람인 마리아를 존경하고 닮
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써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마지막 순간에 제자에게 성모 마리아를 직접 부탁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
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 요한 19,26-27
[성모 마리아 관련 축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1월 1일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2월 11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3월 2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5월 31일
가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7월 16일
성모 대성전 봉헌 기념일: 8월 5일
성모 승천 대축일: 8월 1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8월 22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 9월 8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9월 15일
로사리오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10월 7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11월 21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12월 8일
성모 발현
성모 발현은 성모 마리아의 초자연적인 현현(顯現)을 일컫는 말이다.
옛부터 성모 마리아의 환시나 성모상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기이한 현상들을 통해
서 마리아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이 마리아로부터 직
접 받았다는 메시지는 인류의 갖가지 범죄로 말미암아 진노한 하느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박하였으니 끊임없이 세계의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보속(補贖)
의 기도를 바치고 회개하라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출처 필요]. 성모 발현지
에는 기념 성당 등이 세워지고 전 세계 신자들의 순례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발현과 이에 따르는 메시지를 사적계시(특수계시)라고 하나 이는 교리가
아니므로 공식으로 인준되어도 모든 신자가 이를 믿을 의무는 없다.
전 세계적으로 약 200건의 성모발현이 주장되어지나 현재 로마 교황청에서 공식
적으로 인정한 성모 마리아의 주요 발현은 다음과 같이 소수에 불과하다. 한편
옛 유고슬라비아의 메주고리에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붕괴전의 주교단이 이는 성
모 발현의 기적이 아님을 판명하였으며 로마 교황청은 지역교회 주교단의 결정
을 존중하여 공식 발현으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1531년 12월 9일-12월 12일 멕시코 과달루페에서 4차례 발현
1846년 9월 19일 프랑스의 라 살레트에서의 발현
1858년 2월 11일-7월 16일 프랑스의 루르드에서의 18차례 발현
1879년 8월 21일 아일랜드의 노크에서의 발현
1917년 5월 13일-10월 13일 포르투갈의 파티마에서의 6차례 발현
1932년 11월 19일-1933년 1월 3일 벨기에의 보랭에서의 발현
1933년 1월 5일-3월 2일 벨기에의 바뇌에서의 8차례 발현
-발췌출처: 신화위키
http://ko.mythology.wikia.com/wiki/%EB%A7%88%EB%A6%AC%EC%95%84_(%EC%98%88%EC%88%98%EC%9D%98_%EC%96%B4%EB%A8%B8%EB%8B%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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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 교리비판 Sancta Maria, mater Dei, Mary, Virgin Mary, Mother Mary]
1. 개요
그리스도교에서 '천사의 계시로 처녀 상태에서 잉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다'고 얘
기하는 인물. 성서의 구절을 나왔다.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이사야서 7장 13~14절 (공동번역성서)
이 구절의 '처녀'를 단지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단어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논란
은 위의 처녀가 히브리어로 Almah라는 단어로 쓰여 있었기 때문인데, 이는 일반적으로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단어이고, 처녀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Betulah라는 주장이 제기
되어 현재까지도 논란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가톨릭과 정교회를 비롯한 그리스도교 주
요 종파는 '평생 동정'을 믿을 교리로 하여 이 해석을 인정하지 않는데, 일반적인 반론
은 젊은 여성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은 전혀 신기한 일이 아니므로 주님이 보여주는
징조로 볼 수 없다는 견해이다.
논란이 되는 이사야서와는 달리 마태오 복음서에는 해당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리스어로
Παρθενο(Virgin, 동정녀)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사야서에서 '젊은 여자'라
는 뜻으로 저 단어를 썼다 한들, 마태오 복음서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는 동정녀인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마태오를 비롯한 복음서들은 처음부터 그리스어권에서 그리스어권
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여졌으며, 그래서 구약 인용도 그리스어로 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어권 유대인들[4]에게 널리 쓰이던 구약성경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제작된 70인역
인데, 이 책에서 이사야서의 해당 구절을 Παρθενο(동정녀)로 번역한 것이 그대로
복음서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이미 유대교 공동체 안에서 해당 구절을 원 맥락에서 벗어
나 처녀 출생의 신적인 기원을 가진 메시아 도래의 예언으로 이해하는 전통이 자리잡았음
을 알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의 부모인 안나와 요아킴은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다고 한다.
이를 자신의 탓이라 여긴 요아킴은 기도를 위해 은둔했고, 안나는 남편의 은둔과 자식이
없는 것을 한탄하면서 하느님에게
"만일 아이를 낳게 해준다면 당신께 바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부부는 천사의 방문을 받고 안나가 놀라운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부부는
나자렛 성벽에서 기쁨의 재회를 맛보고, 그 뒤 태어난 딸이 성모 마리아라고 한다. 그리
고 성모 마리아는 안나의 기도대로 3살 때 예루살렘의 성전에 맡겨진다.
성모 공경이 숭배 수준으로 극심해질 시기에는 성모 마리아가 안나와 요아킴이 성벽 아래
에서 만났던 그 때 잉태되었다고, 즉 예수와 같이 성관계 없이 잉태되었다는 수준으로 격
상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아래에 언급될 '무염시태'와 연관된다.
성모 마리아는 가톨릭에서는 신앙의 대상인 성부, 성자, 성령를 제외하면 성인 중에서 가
장 우선 가는 이로서, 불후의 2인자로 자리매김한다. 그야말로 하느님의 한 위격의 현세적
어머니다운 대접이다.
한국 가톨릭에서는 남편인 성 요셉과 함께 대한민국의 수호성인, 정확히 말하면 '원죄 없
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의 호칭[6]으로서의 수호성인이다. 여러가지 성모 마리아를 지
칭하는 호칭 중에서 특별히 선택된 것이며, 한국 가톨릭의 중심지인 명동성당의 주보성인
이기도 하다. 순결과 가족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정서에 딱 맞는 수호성인들. 광복절과
성모승천일이 겹치는 것을 한국 가톨릭에서는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2. 가톨릭의 성모 공경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비록 공식적인 의견 표명은 아니었지만, 요
한 복음서 14장 3절을 성모 승천에 대한 교의적 근거로 인용하였다.
교황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거룩한 교부들과 신학자들의 모든 입증과 확신은 거룩한 전승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성모 승천설은 수세기 전부터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 공연히 믿어져 오던 전승이었다.
비록 성경에 직접적으로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초대 교회부터 내려오는 믿을 만한 교회
의 전승으로 여겨져 왔으며, 또한 구세사(救世史)에 있어서 마리아의 역할, 마리아와 그
리스도의 관계, 교회 안에서의 마리아의 위치 등에 의해 받아들여진 것이다.
우선 마리아 이전에 최소한 두 명 이상의 사람이 이미 승천, 즉 육신과 영혼이 하늘나라로
들어 올림을 받은 사례가 있다.
1. 엘리야
주님께서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에 실어 하늘로 들어 올리실 때였다. …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서 그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엘리사는 그 광경을 보면서 외쳤
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기병이시여!” (2열왕 2,1-5)
2. 에녹
믿음으로써, 에녹은 하늘로 들어 올려져 죽음을 겪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하늘에
들어 올리셨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늘로 들어 올려
지기 전에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인정받았습니다. (히브 11,5)
모세 역시 사후에 그의 주검이 하늘로 들어 올려진 것으로 전한다.
이와 같은 사례를 봤을 때, 마리아 역시 그러한 들어올림의 대상이었다고 보는 것이 그렇
게 큰 무리라고 볼 수는 없다.
가톨릭교회에서는 마리아의 육신과 영혼이 모두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하늘나라로 들어
올려졌다고 가르치고 있다. 마리아에게 죄가 없다면(원죄 없는 잉태), 죽음이 그녀를 구
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생각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자신의 부모를 공경하며 순
종하며 지냈다.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하여 낳았으며, 그를 양육하였으며, 십자가 밑에서
그의 수난과 죽음을 지켜보며 곁을 지켜주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자기 어머니인 마리아를
각별히 여겨 그녀의 육신이 땅 속에 묻혀 의미없이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에녹과 엘리야 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기 어머니의 육신도 하늘나라로 들
어 올렸을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우리 그분 거처로 들어가 그분의 발판 앞에 엎드리세. 주님, 일어나시어 당
신의 안식처로 드소서. 당신께서, 당신 권능의 궤와 함께 드소서.”라는 내용의 시편 132장
7-8절이 이미 성모 승천이 예정된 일이었다고 보고 있다.
마리아는 새로운 계약 궤이다. 다윗 왕이 예루살렘 백성들을 이끌고 피난처로 이끌었듯이,
그리스도 역시 하늘로 승천하여 자신의 거처로 백성들을 이끈다.
요한 묵시록 12장을 보면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등장한다. 이 여인은 쇠 지팡이로 모든 민족을 다스릴 사내아이를 출산하였다.
교회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예수가 묵시록에 나오는 이 사내아이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내아이를 낳은 여인은 다름 아닌 동정 마리아를 뜻한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흥
미로운 점은 수세기에 걸쳐 발생한 성모 마리아의 발현, 즉 가르멜 산의 성모, 과달루페의
성모, 뤼뒤박의 성모, 파티마의 성모 등을 살펴보면 성모 마리아의 모습에서 태양 내지는
발밑에 달을 두고 있다는 점, 머리에 열두 개의 별로 된 관을 썼다는 점 등 묵시록에서 언
급된 여인의 모습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점이다.
요한 묵시록 12장에서 여인이 낳은 사내아이는 하느님에게로, 그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다고
나온다. 여기서 들어 올려져 하느님에게로 갔다는 뜻은 십자가상에서 죽은 예수가 부활하여
하늘에 올라 성부의 오른편에 앉아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교부들은 창세기를 검토하면서 성모 승천을 확신하였다. 창세기 3장 15절을 보면
동정 마리아는 아들 예수의 인류 구원 사업에서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으며, 아들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공동 운명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창세 3,15)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사탄과 마리아 사이에, 타락한 천사들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적개심
이 형성되리라는 것은 하느님에 의해 결정되었다. 개신교인들은 이런 풍유적 해석을 볼 때마
다 참 쇼킹하다. 부정적인 의미로.
성모 승천 교의를 입증하는 모든 논리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논리로는 하느님의 어머니로
서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할 완전한 궁전이 되기 위해서는 원죄의 모든 흔적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야 한다는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기초하고 있다. 8세기의 교부 성 제르마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동정 마리아가 원죄의 모든 흔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잉태된 순간 받
게 되는 육신과 정신 그리고 영혼의 세 요소가 태중에서부터 이미 완전무결해져야만 한다.
마리아는 하느님에 의해 제2의 하와로서, 즉 티 없이 깨끗한 상태로 창조되어야만 했다.
그녀의 정신과 영혼 그리고 육신은 원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야만 했다.”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하느님의 뜻에 불복종했을 때, 하느님에게서 받은 자신의 영원한 생
명을 상실해 버렸다. 그리고 아담 이래 모든 인간은 때가 되면 영혼과 정신 그리고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의 세례를 통
해서만 새로운 마음과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구원의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되
었다. 누구나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로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성경이나 교회의 전승 그 어디에서도 마리아가 여느 인간처럼 세례를 받았다는 이
야기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것은 마리아가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이미 새로운 몸과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그녀는 원죄를 사함 받기 위하여 세례를 받
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마리아는 원죄에 전혀 물듦 없이
잉태되도록 하느님에 의해 예정되어 있었다. (원죄 없는 잉태)
마리아가 여느 인간처럼 단순히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합으로서만 생겨난 자손이었
다면, 마리아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녀의 부모로부터 원죄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
리아의 경우는 달랐다. 하느님은 특별히 손을 써서 마리아가 태중에 잉태될 때 미리 그녀
를 원죄로부터 차단하여 그녀가 티 없이 깨끗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마리아는
원죄 없는 여인이 됨으로써 주의 어머니가 될 자격을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예수가 태중
에 잉태될 때 원죄의 모든 흔적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함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육신과 정신, 영혼이 하느님에 의해 온전히 불멸의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지
지하는 성경상의 증거는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하와가 죄를 범한 후 그녀에게 한 말에서 엿
볼 수 있다. 하느님은 하와에게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창세 3,16)라고 예고하였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원
죄를 물려받지 않고 흠 없는 상태에서 예수를 낳을 때는 원죄의 산물로 나타나는 출산의
고통을 겪지 않았으리라는 논리적인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논리로 볼 때 마리아의 육신은 여느 인간처럼 땅속에 묻혀 의미없이 소멸될
수 없으며 살아있는 상태에서 하늘나라로 들어 올려졌거나 죽은 상태에서 부활하여 하늘
나라로 들어 올려졌다는 신학적 논리로 도출된다. 이 두 가지 논리 가운데 어느 것이 정답
인지는 교회는 유보적인 상태다. 어쨌든 새로운 하와이자 세상의 어머니로서 티 없이 깨끗
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마리아의 육신과 정신, 영혼은 때가 되자 하늘나라로 들어 올려져
영광스러운 빛의 존재로 변화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보통 인간은 지금의 육신은 결
국 소멸하며, 소멸하지 않는 불사의 몸을 갖기 위해서는 최후의 심판 날이 도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만, 마리아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창세기, 이사야서, 요한 묵시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가톨릭에
서는 이들 성경 구절을 전부 종합해 보면 동정 마리아의 몽소승천 교의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내용이라 본다.
초대 교회
성모 공경은 1세기 이전 초대교회에는 언급이 되지 않다가 2세기경 부터 본격적으로 기록되
기 시작했다. 천사의 인사가 마리아 공경의 역사적 기원이다. 이것은 역사적, 신학적 관점에
서 고려되어져야 한다. 하느님의 파견자인 천사가 나자렛 처녀에게 보여준 존경과 영광의
태도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천사는 하느님이 그녀에게 행하였던 것과 그녀
에게 주어진 성소 때문에 존경하고 영광을 드린다. 또한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마리아를 보자마자 "주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며 공경을 드린다.
2세기에 유행했던 위경인 <야고보의 유아 복음서>에는 성모 마리아의 출생, 성장, 수태 등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리옹의 주교였던 성 이레네오는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하와(이브)의
안티테제로서 성모 마리아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브의 불순종을 동정녀의 순종
(Fiat voluntas tua)으로 말소하고 원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 동정녀는 여
성의 대변자가 된다.
431년에 개최된 에페소 공의회에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주장이 신학적 정당성을 얻고 공식
교리로 채택되었다. 여기서 그리스도교는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을 낳은 자'임을 선언했다.
이후 성모 공경은 거침없이 확산되어,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사랑받는 성인에 이르게 되고,
후대에 이르면 교회에서 그리스도 다음가는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중세 시대
중세를 지나면서, 특히 유럽에 흑사병이 돌았을 때 이를 주의 징벌로 해석하면서 더욱 강해
지면서, 신자들이 받아들인 마리아의 이미지는 하느님의 분노를 누그러트리는, 자애로운 성
모.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엄격한 심판자로, 마리아를 자비로운 어머니로 이해하였고, 성모
마리아는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이기 보다는 기적적인 도움을 청하는 기도의 대상으로
국한되게 되었다. 중세 후기에 마리아에 관한 많은 작품들은 외경을 근거로 온갖 상상력을
동원한 것들이 많았다. 물론 과장되고 잘못된 마리아 신심을 바로잡으려는 신학자들의 노력
도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서 대 알베르토는 성모 마리아는 모든 성인들보다 최고의 공경을 받아야 하지만 하
느님께 드리는 흠숭을 받을 수는 없다고 강조하면서, 당시 많은 작가들이 잊고 있었던 마리
아와 그리스도 사이의 무한한 차이를 항상 주지시켰다. 그는 물론 마리아의 중개성을 인정하
지만, 그 중개는 항상 간접적인 것임을 일깨워 주었다.
"어머니의 영예는 왕의 영예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는 그의 신성으로 말미암아 다른 성질을
지니시는 것이므로 마리아는 신적 영예를 요구하지 못한다. 그분의 아드님은 그의 신성을
그 어머니로부터 받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19세기
1800년대에 들어오면서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여 하느님의 사적 계시를 전해주었다는 보고
가 잇달아 교황청에 접수되었고 마리아 신심을 더욱 확장시켰다. 지금까지 성모 발현에 대
한 수많은 보고가 있었지만 교회 교도권이 그 진실성을 인정한 성모 발현은 다음의 10번이
다. 멕시코의 과달루페(1531년), 프랑스 파리의 뤼 뒤 박(1830년), 프랑스의 라 살레트
(1846년) , 프랑스의 루르드(1858년), 프랑스의 퐁멩(1871년), 아일랜드 공화국의 녹
(1879년), 포르투갈의 파티마(1917년), 벨기에의 보랭(1932년), 벨기에의 바뇌(1933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1945년).
이 외에 미국의 베이사이드나 나주의 성모 발현, 스페인의 가라반달은 공식적으로 부인되
었다. 나주 성모동산의 경우 관할 교구인 천주교 광주대교구 당시 교구장 최창무 안드레아
대주교가 나주 성모동산이 더 이상 가톨릭교회와 일치 화합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
한다는 교령을 2008년 1월 반포하였다.
한편 메주고리예의 성모 발현은 아직 조사 중에 있어서 최종 결정이 유보된 상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인하여 성모 신심에 대한 중용을 찾게 되고, 성모 마리아는 '교
회와 신자들의 모범인 성모'라는 이미지로 제자리를 찾고 그에 맞는 자리를 잡게 된다.
바티칸 제2차 공의회 문헌 교의 헌장 부분의 제8장,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
시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 부분에 잘 나와 있다.
분명히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는 구별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으며, 성모로서 그 어떤
성인보다 공경하는 것뿐이지 절대로 숭배가 아니라는 것이 가톨릭의 입장이다.
엘리사벳이 말했듯, 최고로 복되신 여인이며, 역사에 그녀보다 더 아름답고 능력있는
여인들이 많을지 몰라도, 성모 마리아만큼 복된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
가톨릭의 평신도 사도직 단체 중에는 성모 마리아를 총사령관으로 한 군대를 모토로 한
레지오 마리애가 있다. 여기서 쓰는 성모상은 뱀을 발로 밟고 있는 루드비코의 무염시
태 성모상이다.
터키의 에페스(Efes)라는 조그만 시골마을 근처에 위치한 뷜뷜 산(Bulbul da?ı)에는
성모가 사도 요한과 함께 여생을 보냈다는 집의 유적이 있다. 한 수녀가 환시를 통해
성모님의 집을 찾았는데, 우연히 닿은 그곳이 환시에서 본 집과 주변 상황과 놀라울 정
도로 똑같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성지로 공인된 곳이다. 무슬림인 터키인들은 이 집을
찾아와서 소원(!)을 빌고 가는데, 종이에 소원을 적은 다음 성모의 집 주변의 나무에
매달아놓는다. 또한 성모의 집 근처에 있는 우물의 물은 영험한 치유 효과가 있다는 이
야기도 있다. 한국 가톨릭 신자들도 많이들 떠나는 성지순례 여행패키지에도 파트모스
섬과 함께 반드시 들어가는 곳.
한국 천주교회와 성모 마리아
한국 천주교는 교회 형성 시기부터 성모 공경을 통한 마리아 신심 운동을 활발히 펼쳐
오고 있다. 신자들은 「천주실의」 「성경직해광익」 「주교요지」 등 서학서를 통해
마리아에 대한 이해를 키웠고 묵주기도를 통해 성모 신심을 함양했다. 박해시대 관헌에
체포된 신자들은 모진 고문에도 "예수 마리아"를 외치며 신앙을 증거했고, 순교 직전까
지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았다.
한국 천주교의 성모신심은 1831년 조선대목구 설정 이후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더욱 확산됐다. 조선대목구는 놀랍게도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서 탄생
했다. 유럽에서 최초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이 성당에서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조선대목구 설정을 반포한 것이다.
조선 땅에 입국한 선교사들은 당시 프랑스에서 널리 확산되고 있던 성모 신심, 특히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께 대한 신심과 전통을 한국에 그대로 옮겨놓았다. 주교로서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딘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는 신자들의 성모신심을 칭송해
1838년 교황청에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교회 수호성인으로 청했고,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41년 8월 22일 이를 허락했다.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는
1846년 11월 2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원죄없으신 성모 성심회'를 설립, 신자들의
성모신심 운동을 체계화ㆍ조직화했다. 한국 천주교 마리아 신심 단체의 효시인 성모성
심회 회원들은 매주 정기 모임에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기도를 많이 바쳤다.
제6대 조선교구장 펠릭스 클레르 리델 주교는 1877년 재입국한 후, 중국의 예수회 선교
사 이탁이 저술한 「성모성월」을 한글 번역본으로 간행해 유포함으로써 성모 공경을 더
욱 신장시켰다. 한글 번역본 「성모성월」의 내용은 서문에서 성모성월에 대한 해설과
1822년 비오 7세 교황이 공포한 ‘성모 성월 및 성모 공경에 관한 대사문’이 수록되
어 있고, 본문에는 5월의 ‘성모 성월’이 시작되기 하루 전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총
32일 분량의 묵상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각 날은 그날의 주제에 대한 설명과 성모 마
리아에 대한 기도에 이어 덕행 실천, 기도 지향, 성인 행적의 예로 구성되어 있다. 무
엇보다도 성모 성월을 정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성모 마리아님을 예로써 공경하는 달을 정한 첫 번째 이유는 성모님께서 우리 인간들
에게 평생토록 주시는 온갖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이다.……성모성월을 정한 2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천주의 성총이며, 이는
잠시라도 멀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악을 고치고 선을 행하여 선종하는 것은 모두
천주 성총의 도우심 때문이니, 자기 힘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다. 또 성모님의
인자하심에 의뢰하지 않고 이 성총을 얻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울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할 대 어찌 성모님을 공경하고 성모님께 기도하는 데에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3번째 이유는 성모 성월이 성모님을 특별히 열애하고 공경하는 거룩한 때와 가르침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이후 한국 천주교는 1898년 명동성당을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 봉헌했다. 우리 민족이 해방된 8월 15일은 바로 성모승천대축일이었
는데, 한국 천주교는 민족의 해방을 성모 마리아의 선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신자
들 사이에 성모 신심은 더 확산됐는데 특히 반공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공산주의자들
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는 파티마의 성모 신심이 급속도로 퍼졌다. 1950년 전후로 레
지오 마리애, 파티마의 성모 사도직(푸른군대), 성모 기사회 등 성모신심 운동 및 사
도직 활동이 도입됐고,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교리 선포 100주년이 되던
1954년 한국 주교단은 성모 성년 대회를 개최하고 다시 한 번 한국 가톨릭교회를
성모 마리아께 공식적으로 봉헌했다.
아울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5월 6일 명동성당에서 한반도와 한국 천주교회
를 마리아에게 봉헌했다. 한국 천주교회는 또 대구대교구 성모당,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순례지, 수원교구 남양 성모성지 등 성모 순례지를 지정, 신자들의 건전한 성모
신심을 함양시키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이처럼 성모 마리아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3. 정교회의 성모 교리
정교회 역시 테오토코스 즉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평생 동정이시며" 거룩하시고
순결하신 천상 모후 로서 찬미를 받는다. 그러나 서방교회의 무염시태는 부정한다. 성
서에서 그리스도의 어머니와 원죄의 관련성에 대하여서는아무런 언급이 없기 때문에
1854년 서방 교회에서 무염시태를 선포한것과 달리 동방교회에서는 교리상 이렇게 본다.
성모께서 잉태되신 순간부터 거룩하시고 순결하신 존재였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성모 마리아 역시 모든 다른 인간들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요아킴과 안나 사이에서 탄
생하셨으며 모든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운명을 피해 갈수 없었다. 오로지 그리
스도 한 분만이 구세주로 불릴 수 있으며 성모 마리아는 모든 인류의 이름으로 구세주
를 받아들이신, 하느님의 어머니'이다
정교회의 성모 교리 역시 가톨릭과 비슷한 맥락이지만, 무염시태와 몽소승천에 대한
가르침이 다르다. 우선 정교회에서는 "처음에는 성모 마리아도 다른 인간들처럼 원죄가
있었지만, 대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성모영보(聖母領報, Annunciatio)'를 받은 시
점에서 원죄가 사라졌다"는 '무염수태'를 교리로 채택하고 있다. 또한 하늘로 들어올려
졌다는 몽소승천 역시 직접적으로 승천을 교리로 가르치지는 않으며, 단지 나중에 사도
들이 성모 마리아의 무덤을 열어보니 비어 있었다는 '성모 안식(Dormitio)'을 교리로
채택하고 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교리가 아닌 '전승'의 차원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8월 15일이 가톨릭에서는 성모승천대축일이지만 정교회에서는 성모안식기념일이다.
정교회에서 이러한 입장을 취한것은 성모마리아가 원죄가 없다면, 원죄에서 해방됨으로
인류와 불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것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교회 신학자
불가꼬프(Sergei Bulgakov)는 교황이 마리아의 순결의 원천을 '기적'으로 취급함으
로써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완덕과 신심과 경건의 여지를 없애 버렸다고 말하면서 '원
죄 없는 잉태' 라는 서방 교리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한다.
정교회에서는 물론 성모 신심을 강조한것은 사실이나 신학이나 교리상이 아니라 이미
지와 상징과 의식을 통해서이다. 동방교회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콘의 이미지대로 성
모 마리아는 동정녀의 이미지보다는 '어머니'의 이미지가 친숙하다.
정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의 임종 때 열한 제자들이 자리를 지켰는데, 3일
후 늦게 도착한 성 토마스 사도가 무덤에서 부활하여 승천하는 성모를 목격하고 성모
의 허리띠를 받았다고 한다. 이 전승에 따르면 토마스 사도는 다른 열한 사도를 불러
이들이 성모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고 하는데, 복음서에서 예수 부
활을 기록한 내용과 강한 유사성이 나타난다. 반면 가톨릭의 전승에서는 성모의 시신
이 그대로 천사들에 의해 들어올려져 하늘로 올라가 영혼과 다시 결합되었다는 것과,
부활 후 천국에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것의 2가지 전승이 공존한다. 교황 비오 12세가
성모 승천을 정식 교리로 확정할 당시의 교령은, 이 둘 중 어느 쪽이 맞는지 애매한
면이 있다.
4. 예수의 형제?
성경에는 예수의 형제로 야고보, 유다 등이 있다는 언급이 나오고, 이것을 가지고 지
금도 논쟁 중이다.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성모는 영원한 동정녀라고 보기 때문에,
예수의 형제들은 유대의 관습에 따라 친척들을 그렇게 부른 것이라고 본다.
마리아의 배우자인 요셉도 평생 동정을 지켰다는 전승이 가톨릭 전승이 있으나 , 이것
은 도그마가 아니다. 즉 믿든 말든 상관없다는 것. 정교회에서는, 복음서에 언급된 예
수의 형제들은 요셉의 전처가 낳은 자식이라는, 즉 마리아는 요셉의 후처라는 것. 정
교회 전승대로라면 마리아와 요셉의 나이 차이는 상당했을 것이다.
요셉이 마리아와 재혼했다는 내용은 신약 위경<야고보 복음서>에도 기록된 내용인데,
여기에 따르면 요셉은 마리아와 재혼할 당시 이미 나이가 80이었고, 이미 사별한 전처
와의 사이에서 야고보, 유다, 시몬, 미리암 등의 자식이 있었으며, 그 중 야고보가 이
야고보 복음서를 저술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 복음은 어느 종교에서도 정식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위경이며, 정교회가 요셉이 마리아와 재혼했다는 전승을 받아들였다는
사실과는 별개이다.
반면 개신교에서는 성모를 평범한 인간으로 보기 때문에,예수의 형제들은 당연히 예수
를 낳은 후 요셉과 마리아가 동침해서 낳은 자식으로 보고 있다. 당시 유대인들은 12세
에 성년의식을 치르고 역시 10대에 조혼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요셉도 마리아와 재혼한
것이 아니라 초혼으로 보고 있고, 그래서 개신교 교리에 따라 만든 영화 등 창작물에
서는 요셉도 20대의 팔팔한 청년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신교에서 예수의 형제들을 사촌이 아니라 형제로 보는 이유는 그리스어 성경에 친형
제를 의미하는 단어 아델포스(αδελφ??)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아람어 표현을 그
리스어로 번역하다 보니, 친척에서 형제로 의미가 변질됐다는 근거가 없다고 보기에
친형제로 본다.
따라서 개신교에선 성모 마리아의 평생 동정 교리는 초대 교회의 전승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맞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부정한다.
그리고 가톨릭과 정교회는 개신교의 '오직 성경으로'와는 달리, 교회사 전승의 권위도
인정한다. 따라서 초대 보편 교회에서 발생하고 교부들에게 인정받은 평생동정을 부정
하지 않는다.
사도들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그들의 제자이자 후계자들인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옹호했다. 특히 아우구스티노, 베드로 크리솔로고 등의 교부
들에게서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이 삼중형식으로 고백되고 있다. 이후 교부들의 이론
들은 교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수용되었고 마침내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통해 확증되
었다. 라테란 공의회(649)는 이 입장을 재천명하였고, 2차 바티칸 공의회 역시 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교회헌장 52항, 57항).
5. 개신교의 관점[편집]
상술했듯 성모 관련 교리는 원래 성경에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에 종교개혁가들은 없애
버려야 할 것으로 보았다.
마르틴 루터의 경우도 저작을 기존 가톨릭 마리아 찬양가와 기도문을 인용하였고 평생
동정설을 믿긴했다. 그러나 같은시대 루터의 동료나 후대학자들은 그것을 그의 시대적
한계로 여긴다. 루터나 칼뱅이라해도 틀린것은 틀리다고 지적할수 있고 이런 논의는 전
혀 금기시 되지 않으며 다른 주제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마르틴 루터는 한때 집안
가업인 광산업의 수호성인인 성 안나(마리아의 모친)을 극진히 공경했고, 법대생에서 수
도자가 된 계기인 벼락을 맞을 때 "성 안나여! 성모 마리아여! 나를 구해주십시오! 라고
외쳤지만 훗날 자신의 저작에서 그때 당시 자신이 마리아나 안나가 아닌 그리스도를 외
쳐야 했다고 후회했다.
루터는 기존 가톨릭 교회 관습인 성모공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이들이 성모마리아를 부르며 그녀를 예수 그리스도 보다 더 경배한다.
이렇게 해서 성모마리아는 그녀의 의도와 상관없이 일종의 혐오스러운 우
상이 되어버리고 만것이다.
당연히 그런고로 루터는 말그대로의 인간으로써의 공경만 할 뿐 기존 가톨릭 관습에 대
해선 숭배라며 못마땅하게 보았다. 루터는 '몽소승천도 성경에 근거가 없다 하여 부정했
다.'''이는 장 칼뱅의 개혁주의에도 이어져서 현재 개신교에선 마리아에 대해 "예수의
육체의 모친"이라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 당연히 반발한다.
성모 공경을 부정하는 이유는 기존 교회, 즉 교황으로 대표되는 가톨릭에 대해 반발하면
서 오직 성경으로만 근거로 하고 기존 가톨릭 교회는 초기교회와 전통과 전승이 끊어졌
고 성경의 권위를 이어받은 개신교회가 진정한 전통을 계승했다고 하기 때문에 기존 관
습을 부정한다.
한국의 개신교의 일반적인 견해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도
구로 드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해준, 본받을 만한 인물
이다. 천주교처럼 성모신심까진 아니더라도, 성경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한 의인으로 대한다.
다만 마리아가 모든 인간중에서 특별히 마리아 뿐만 아니라 요셉 세례요한 처럼 의인으로
보나 인간이기에 더 높이 공경해야 할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현재 개신교 중에서 루터교회나 영국 국교회(성공회)와 같은 경우 공식적으로 성모 공경을
받아들이고 있다.
성공회도 옥스포드 운동 이후 가톨릭식 관습을 대거 복구시켰고 성모 마리아를 위대한 신
앙의 모본으로 보며 신앙을 본받지만, 자체를 기도의 대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무염시태와
몽소승천도 다른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 통공기도 중보자 역할도 부
정하는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
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장 14절)
위의 성모관련 교리 4가지에 대해서는, 개신교에서는 '예수의 모친'만 인정하고 그 이외는
불인정하거나 '그거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인데?' 혹은 '그게 왜 필요한데?'라는 태도를 지닌
것에 가깝다. 천주모친'에 대해서도 "그리스도가 이세상에 오시는 방법"으로서의 의미이지
그 개인이 가지는 특별한 위치로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요한 복음서 8장 58절에 나온 것처럼,
예수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존재한다면 예수의 신성의 어머니는 될 수 없다는 것이 개신
교의 논리. 예수가 구원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조건인 무죄성은 이사야 선지지의 예언인
동정녀 탄생 자체로 증명되었기 때문에, 마리아의 원죄가 사라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즉,
개신교는 마리아가 죄가 있더라도 동정녀 탄생이라는 특별한 방법을 통해 원죄가 유전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에, 무염시태/무염수태뿐 아니라 평생동정이나 몽소승천 같은 교리도 구
원에 필요없고 계시될 필요도 없는 것이 된다. 해당 내용을 강하게 부정하는 측에서는 사람의
죄가 없어지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십자가는 필요 없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현재 교회일치 운동 참여와 상관없이 거의 모든 교파에서 가톨릭측 성모 교리에
대해선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는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교파도 마찬가지이다. 왜냐
하면 종교개혁시기 가톨릭 전승과 성경을 동일한 효력이 있다고 주장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의
대표적인것이 마리아론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개신교는 물론 가톨릭 내부에서도 이견이 따르는
교황무류설로 선포된 교리이기 때문이다. 교회일치에 긍정적인 교단도 이러한 가톨릭 교회의
전통과 교리에 부정적이기 때문.
이슬람의 관점
이슬람에서도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일화가 있다. 홀로 젊은 여자가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예전에 했던 처벌대로 던지는 돌에 맞는 벌을 당할 뻔했지만, 포대기에 싸인 어린 예수가 입을
열어서 사람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그래서 위대한 예언자를 낳은 어머니로서 대우하는데, 꾸란
의 제 19번째 장(=수라)은 마리아의 장이며, 여기서는 복음서에서는 언급하지 않는 성모의 수태
와 성장, 예수의 어린 시절 같은 이야기들도 담고 있다. 대체로 가톨릭과 정교회에서 전해 내려
오는 전승과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마리아의 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알라의 위대한 예언자인 예
수와 그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에 대한 겸손함과 신에 대한 복종, 그리고 기적들을 찬양할 뿐
예수의 신성화나 성모 신심에 대해서는 분명한 메시지로 경계하고 있다.
-발췌출처: 나무위키 ; 성모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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