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15.

[가곡] 떠나가는 배







[가곡] 떠나가는 배





[음악동영상]

가 곡 작사 : 양중해 작곡 : 변 훈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 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로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터져나오라 애설픔 물결위로 한 된 바다
아담한 꿈이 푸른 물에 애끓이 사라져 내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뜬 바다를 지키련다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 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로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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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배>의 작사자 이름이 바로잡힌 사연 / 이정식


 이번엔 “<떠나가는 배>의 작사자 이름이 왜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바로
잡혔는가?”에 대해 이야기 해야겠다.

이 설명을 위해 지난 번에 박목월 시인의, 한 사람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그 독특
한 시를 소개했던 것이다.

1984년 9월 어느 날, 제주대의 양중해 교수가 관덕정 근처에 있던 제주 MBC에 들
어왔다. 양 교수는 당시 프로그램 출연 차 일주일에 한번 가량 방송국에 들렀다.
제주 MBC엔 양 교수가 과거 오현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할 때의 제자인 아나운
서 출신 김순두 씨가 라디오 편성부장을 하고 있었다.
김순두 씨는 제주 최초의 TV 아나운서로 제주에선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분이다.

김 부장은 편성국으로 들어오는 양중해 교수를 반갑게 맞았다. 출연에 앞서 양 교
수와 차를 한잔 나누고 있는데, <떠나가는 배>가 라디오에서 흘러 나왔다.

양 교수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저거 내 노래야.”

순간 김 부장은 귀가 쫑긋해졌다.
“무슨 말씀이세요? 내 노래라니요?”

“저거 내가 작사한 거야. 내가 쓴 거지.”

김 부장은 존경하는 은사가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니 놀라웠다. 가곡 <떠나가는
 배>는 오래 전부터 방송에서 자주 들려주던 것이고, 작사자의 이름도 그저 무심코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김 부장은 재차 물었다.
“어떻게 된 이야기입니까?”

양 교수는,
“6.25 때 피난민들은 물론이고 문학인들도 많이 제주에 왔었잖나. 그 분들이 제주를
떠나가는 모습을 서부두에서 늘상 보면서 그 때의 감상을 쓴 것이지.”
라고 말했다.

전쟁 당시 제주에는 ‘백치 아다다’로 유명한 소설가 계용묵(1904-1961) 씨를 비롯,
문인들도 40명 가까이 와 있었다. 미술가 이중섭씨(1916-1956)도 1951년 1월부터 12
월까지 서귀포에서 가족과 어렵게 살다 부산으로 돌아갔다.

“왜 아직까지 말씀을 안 하셨어요? ”
“그거 내가 쓴 거니 내꺼지 뭐, 굳이 이야기할 게 뭐 있어.”

김순두 씨는 양중해 시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양 선생님은 선(善)하기가 이를 데 없는 분이었습니다. 평생 어느 누구에게도, 지나
가는 강아지에게도 욕 한번 한 일이 없는 분이었지요. 문학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 직접 대응하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 성품이었기 때문에 <떠나가는 배>가 오랫동안 양명문 작시로 방송과 음악 교
과서 등에 소개 되어왔는데도 자신의 작품이란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내놓고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마침 김 부장과 함께 있을 때 <떠나가는 배>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바람에 그같은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김 부장은 그 자리에서 평소 가깝게 지내던 서울 MBC 본사 FM부 박경식 차장에게 전
화를 걸었다. 박 차장은 당시 FM에서 오전 11시부터 하는 ‘나의 음악실’ 담당 피디였
다. 박 차장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 후 양 시인은 서울 MBC FM의 ‘나의 음악실’ 프로그램에 초청되어 이 시에 대한 이
야기를 하게 된다. 이어 박 차장은 중앙의 문교부에, 제주의 김 부장은 제주도 교육청
에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작사자를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다.

김 부장은 다른 한편으로 이 사실을 기정 사실화 하기 위해 자신의 기획으로 그해
1984년 11월 5일 제주 시민회관에서 “제1회 제주 MBC 가곡의 밤"을 열었다. 노래를
하기에 앞서 사회자가 <떠나가는 배>의 작사자는 바로 제주도민들이 존경하는 시인인
 제주대학의 양중해 교수라고 소개했다. 관객들은 전부 기립하여 양중해 시인에게 뜨
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 후 음악 교과서를 비롯, 모든 자료에 작사자의 이름이 양중해로 바뀌게 되었다. 김
부장의 적극적인 성격이 이뤄낸 결과였다.

한참 뒤 어느 날, 방송국에 온 양 시인이 김 부장을 손짓해 불렀다.
“자네 이리 좀 와 봐.”
“예, ------”

“요즘 내 수입이 괜찮아. 원고료가 꼬박 꼬박 들어와.”
김 부장 덕에 저작권료를 받게 되어 고맙다는 인사였다.


김순두 부장은 그 후 제주 MBC에서 아나운서실장, 편성국장, 보도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뒤, 1999년 3월 KCTV 제주방송 사장으로 취임해 이 회사를 크게 성장시켰다.
2006년 퇴임해 2010년 9월 현재까지 (전국)민요학회 회장을 맡아 우리 민요의 발굴과 보
존, 보급에 힘쓰고 있다. 제주 문학 발전의 발자취를 보존, 계승하기 위한 ‘제주문학관설
립’도 구상 중이다.(*)



액자 설명: 제주의 서예가 현병찬 선생이 쓴 이 <떠나가는 배> 원시(原詩) 액자는 생전
에 양중해 선생이 갖고 있던 것인데, 현재 서귀포시 안덕면 ‘카멜리아 힐’(회장 양언보)에
보관되어 있다. 제주 탑동해변공연장의 시비(詩碑)는 이것을 옮겨 새긴 것이다.

-출처
http://nocutkorea.egloos.com/v/1855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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