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4.

[국악명상] 방랑시인 김삿갓 시모음







 [국악명상] 방랑시인 김삿갓 시모음










[국악명상곡 동영상]






















































00 기생 가련에게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가련이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

可憐妓詩 가련기시
可憐行色可憐身 可憐門前訪可憐 가련행색가련신 가련문전방가련
可憐此意傳可憐 可憐能知可憐心 가련차의전가련 가련능지가련심


*김삿갓은 함경도 단천에서 한 선비의 호의로 서당을 차리고 3년
여를 머무는데 가련은 이 때 만난 기생의 딸이다.
그의 나이 스물 셋. 힘든 방랑길에서 모처럼 갖게 되는 안정된 생활
과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의 사랑...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의 방랑벽은 막을 수 없었으니 다시 삿갓을
쓰고 정처없는 나그네 길을 떠난다.



이별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과 이별하려니
가련한 나그네의 행색이 더욱 가련하구나.
가련아, 가련한 이 몸 떠나감을 슬퍼하지 말라.
가련을 잊지 않고 가련에게 다시 오리니.

離別 이별
可憐門前別可憐 可憐行客尤可憐 가련문전별가련 가련행객우가련
可憐莫惜可憐去 可憐不忘歸可憐 가련막석가련거 가련불망귀가련






02 고향 생각

서쪽으로 이미 열세 고을을 지나왔건만
이곳에서는 떠나기 아쉬워 머뭇거리네.
아득한 고향을 한밤중에 생각하니
천지 산하가 천추의 나그네길일세.
지난 역사를 이야기하며 비분강개하지 마세.
영웅 호걸들도 다 백발이 되었네.
여관의 외로운 등불 아래서 또 한 해를 보내며
꿈 속에서나 고향 동산에 노닐어 보네.

思鄕 사향
西行己過十三州 此地猶然惜去留 서행기과십삼주 차지유연석거유
雨雪家鄕人五夜 山河逆旅世千秋 우운가향인오야 산하역려세천추
莫將悲慨談靑史 須向英豪問白頭 막장비개담청사 수향영호문백두
玉館孤燈應送歲 夢中能作故園遊 옥관고등응송세 몽중능작고원유

*오야(五夜)는 오경(五更)으로 오전 3시부터 5시 까지이다.






00 어느 여인에게

나그네 잠자리가 너무 쓸쓸해 꿈자리도 좋지 못한데
하늘에선 차가운 달이 우리 이웃을 비추네.
푸른 대와 푸른 솔은 천고의 절개를 자랑하고
붉은 복사꽃 흰 오얏꽃은 한 해 봄을 즐기네.
왕소군의 고운 모습도 오랑케 땅에 묻히고
양귀비의 꽃 같은 얼굴도 마외파의 티끌이 되었네.
사람의 성품이 본래부터 무정치는 않으니
오늘 밤 그대 옷자락 풀기를 아까워하지 말게나.

贈某女 증모녀
客枕條蕭夢不仁 滿天霜月照吾隣 객침조소몽불인 만천상월조오린
綠竹靑松千古節 紅桃白李片時春 녹죽청송천고절 홍도백리편시춘
昭君玉骨湖地土 貴비花容馬嵬塵 소군옥골호지토 귀비화용마외진
人性本非無情物 莫惜今宵解汝거 인성본비무정물 막석금소해여거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元帝)의 궁녀. 흉노 땅에서 죽음.
*마외파는 안녹산의 난이 일어났을때 양귀비가 피난 갔다가 죽은 곳.
*김삿갓이 전라도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커다란 기와집
을 찾아갔다.
주인은 나오지 않고 계집종이 나와서 저녁상을 내다 주었다.
밥을 다 먹은 뒤에 안방 문을 열어보니 소복을 입은 미인이 있었는데
독수공방하는 어린 과부였다.
밤이 깊은 뒤에 김삿갓이 안방에 들어가자 과부가 놀라 단도를 겨누
었다.
김삿갓이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길인데 목숨만 살려 달라고 하자
여인이 운을 부르며 시를 짓게 하였다.


00 공씨네 집에서

문 앞에서 늙은 삽살개가 콩콩 짖으니
주인의 성이 공가인 줄 알겠네.
황혼에 나그네를 쫓으니 무슨 까닭인가
아마도 부인의 아랫구멍을 잃을까 두려운거지.

辱孔氏家 욕공씨가
臨門老尨吠孔孔 知是主人姓曰孔 임문노방폐공공 지시주인성왈공
黃昏逐客緣何事 恐失夫人脚下孔 황혼축객연하사 공실부인각하공

*구멍 공(孔)자를 공공(개 짖는 소리), 공가(성), 구멍이라는 세 가지
 뜻으로 썼다.



아내를 장사지내고

만나기는 왜 그리 늦은데다 헤어지기는 왜 그리 빠른지
기쁨을 맛보기 전에 슬픔부터 맛보았네.
제삿술은 아직도 초례 때 빚은 것이 남았고
염습옷은 시집 올 때 지은 옷 그대로 썼네.
창 앞에 심은 복숭아 나무엔 꽃이 피었고
주렴 밖 새 둥지엔 제비 한 쌍이 날아 왔는데
그대 심성도 알지 못해 장모님께 물으니
내 딸은 재덕을 겸비했다고 말씀하시네.

喪配自輓 상배자만
遇何晩也別何催 未卜其欣只卜哀 우하만야별하최 미복기흔지복애
祭酒惟餘醮日釀 襲衣仍用嫁時裁 제주유여초일양 습의잉용가시재
窓前舊種少桃發 簾外新巢雙燕來 창전구종소도발 염외신소쌍연래
賢否卽從妻母問 其言吾女德兼才 현부즉종처모문 기언오녀덕병재

*시집 온 지 얼마 안 되는 아내의 상을 당한 남편을 대신하여 지은
시이다.
아내가 떠난 집에 제비가 찾아오고 복숭아 꽃이 피니, 아내를 그리는
 정이 더욱 간절해짐을 표현했다.


00 기생에게 지어 주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어울리기 어렵더니
이제는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네.
주선(酒仙)이 시은(市隱)과 사귀는데
이 여협객은 문장가일세.
정을 통하려는 뜻이 거의 합해지자
달그림자까지 합해서 세 모습이 새로워라.
서로 손 잡고 달빛 따라 동쪽 성곽을 거닐다가
매화꽃 떨어지듯 취해서 쓰러지네.

贈妓 증기
却把難同調 還爲一席親 각파난동조 환위일석친
酒仙交市隱 女俠是文人 주선교시은 여협시문인
太半衿期合 成三意態新 태반금기합 성삼의태신
相携東郭月 醉倒落梅春 상휴동곽월 취도락매춘

*주선(酒仙)은 술을 즐기는 김삿갓 자신.
시은(市隱)은 도회지에 살면서도 은자같이 지내는 사람.
이백(李白)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에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이라고 하여
달, 자신, 자신의 그림자가 모여 셋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술을 좋아하는 시객(詩客)이 아름다운 기녀와 대작을 하며 시로
 화답하고 봄 밤의 취흥을 즐기는 풍류시이다.









00 그림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날 따르는데도 고마워 않으니
네가 나와 비슷하지만 참 나는 아니구나.
달빛 기울어 언덕에 누우면 도깨비 모습이 되고
밝은 대낯 뜨락에 비치면 난쟁이처럼 우습구나.
침상에 누워 찾으면 만나지 못하다가
등불 앞에서 돌아보면 갑자기 마주치네.
마음으로는 사랑하면서도 종내 말이 없다가
빛이 비치지 않으면 자취를 감추네.

詠影 영영
進退隨농莫汝恭 汝농酷似實非농 진퇴수농막여공 여농혹사실비농
月斜岸面篤魁狀 日午庭中笑矮容 월사안면독괴상 일오정중소왜용
枕上若尋無覓得 燈前回顧忽相逢 침상약심무멱득 등전회고홀상봉
心雖可愛終無信 不映光明去絶踪 심수가애종무신 불영광명거절종

* ....아직 그의 파격적인 희롱의 시편들을 예감하기에는 이르다.
....그의 마음 가운데 잉태하고 있는 시의 파괴적인 상태는 아직 보
이지 않는다.
다만 시의 내용에서 어떤 우수나 비애도 내비치지않은 냉철한 서
술이 있는데 바로 이 서술에서
그의 장난스러운 상상력을 얼핏 내보이고 있다.
-고은 <김삿갓 1>


00 길가에서 처음 보고

그대가 시경 한 책을 줄줄 외우니
나그네가 길 멈추고 사랑스런 맘 일어나네.
빈 집에 밤 깊으면 사람들도 모를테니
삼경쯤 되면 반달이 지게 될거요. -김삿갓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 눈 가리기 어려우니
마음 있어도 말 못해 마음이 없는 것 같소.
담 넘고 벽 뚫어 들어오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내 이미 농부와 불경이부 다짐했다오. -여인

街上初見 가상초견

芭經一帙誦分明 客駐程참忽有情
파경일질송분명 객주정참홀유정
虛閣夜深人不識 半輪殘月已三更
-金笠詩 허각야심인불식 반륜잔월이삼경 -김립시
難掩長程十目明 有情無語似無情
난엄장정십목명 유정무어사무정
踰墻穿壁非難事 曾與農夫誓不更
-女人詩 유장천벽비난사 증여농부서불경 -여인시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여인들이 논을 메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미인이 시경을 줄줄 외우고 있어서 김삿갓이 앞구절
을 지어 그의 마음을 떠 보았다.
그러자 여인이 뒷구절을 지어 남편과 다짐한 불경이부(不更二夫)의
맹세를 저 버릴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00 늙은 소

파리한 뼈는 앙상하고 털마저 빠졌는데
늙은 말 따라서 마굿간을 같이 쓰네.
거친 들판에서 짐수레 끌던 옛공은 멀어지고
목동 따라 푸른 들에서 놀던 그 시절 꿈 같아라.
힘차게 끌던 쟁기도 텃밭에 한가히 놓였는데
채찍 맞으며 언덕길 오르던 그 시절 괴로웠었지.
가련해라 밝은 달밤은 깊어만 가는데
한평생 부질없이 쌓인 고생을 돌이켜보네.

老牛 노우
瘦骨稜稜滿禿毛 傍隨老馬兩分槽 수골릉릉만독모 방수노마양분조
役車荒野前功遠 牧竪靑山舊夢高 역거황야전공원 목수청산구몽고
健우常疎閑臥圃 苦鞭長閱倦登皐 건우상소한와포 고편장열권등고
可憐明月深深夜 回憶平生만積勞 가련명월심심야 회억평생만적노

*세월의 무상함은 인간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늙은 소를 보고서도 세월이 앗아간 전날의 혈기 넘쳤던 때를 생각
할 수 있다.


00 회양을 지나다가

산 속 처녀가 어머니만큼 커졌는데
짧은 분홍 베치마를 느슨하게 입었네.
나그네에게 붉은 다리를 보이기 부끄러워
소나무 울타리 깊은 곳으로 달려가 꽃잎만 매만지네.

淮陽過次 회양과차
山中處子大如孃 緩著粉紅短布裳 산중처자대여양 완저분홍단포상
赤脚낭창羞過客 松籬深院弄花香 적각낭창수과객 송리심원농화향

*'낭'은 足(족)부에 良, '창'은 足(족)부에 倉.
*김삿갓이 물을 얻어먹기 위해 어느 집 사립문을 들어 가다가 울타리
밑에 핀 꽃을 바라보고 있는 산골 처녀를 발견했다.
처녀는 나그네가 있는 줄도 모르고 꽃을 감상하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
끼고는 짧은 치마 아래 드러난 다리를 감추려는 듯 울타리 뒤에 숨었다.


00 피하기 어려운 꽃

청춘에 기생을 안으니 천금이 초개 같고
대낮에 술잔을 대하니 만사가 부질없네.
먼 하늘 날아가는 기러기는 물 따라 날기 쉽고
청산을 지나가는 나비는 꽃을 피하기 어렵네.

難避花 난피화
靑春抱妓千金開 白日當樽萬事空 청춘포기천금개 백일당준만사공
鴻飛遠天易隨水 蝶過靑山難避花 홍비원천이수수 접과청산난피화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가는데 청년들이 기생들과 놀고 있었다.
김삿갓이 부러워하여 한자리에 끼어 술을 얻어 마신 뒤 이 시를 지어
 주었다.


00 기생과 함께 짓다

평양 기생은 무엇에 능한가. -김삿갓
노래와 춤 다 능한 데다 시까지도 능하다오.-기생
능하고 능하다지만 별로 능한 것 없네. -김삿갓
달 밝은 한밤중에 지아비 부르는 소리에 더 능하다오. -기생

妓生合作 기생합작
金笠. 平壤妓生何所能 김립. 평양기생하소능
妓生. 能歌能舞又詩能 기생. 능가능무우시능
金笠. 能能其中別無能 김립. 능능기중별무능
妓生. 月夜三更呼夫能 기생. 월야삼경호부능

*평양감사가 잔치를 벌이면서 능할 능(能)자 운을 부르자 김삿갓이
먼저 한 구절을 짓고 기생이 이에 화답하였다.



00 낙민루

선정을 펴야 할 선화당에서 화적 같은 정치를 펴니
낙민루 아래에서 백성들이 눈물 흘리네.
함경도 백성들이 다 놀라 달아나니
조기영의 집안이 어찌 오래 가랴.

낙민루
宣化堂上宣火黨 樂民樓下落民淚 선화당상선화당 낙민루하낙민루
咸鏡道民咸驚逃 趙岐泳家兆豈永 함경도민함경도 조기영가조기영

*관찰사가 집무 보는 관아를 선화당이라고 하였다.
*구절마다 동음이의어를 써서 함경도 관찰사 조기영의 학정을 풍자했다.
宣化堂(선정을 베푸는 집) 宣火黨(화적 같은 도둑떼)
樂民樓(백성들이 즐거운 집) 落民淚(백성들이 눈물 흘리다)
咸鏡道(함경도) 咸驚逃(모두 놀라 달아나다)
趙岐泳(조기영) 兆豈永(어찌 오래 가겠는가)



00 스스로 탄식하다

슬프다 천지간 남자들이여
내 평생을 알아줄 자가 누가 있으랴.
부평초 물결 따라 삼천리 자취가 어지럽고
거문고와 책으로 보낸 사십 년도 모두가 헛것일세.
청운은 힘으로 이루기 어려워 바라지 않았거니와
백발도 정한 이치이니 슬퍼하지 않으리라.
고향길 가던 꿈꾸다 놀라서 깨어 앉으니
삼경에 남쪽 지방 새 울음만 남쪽 가지에서 들리네.

自嘆 자탄
嗟乎天地間男兒 知我平生者有誰 차호천지간남아 지아평생자유수
萍水三千里浪跡 琴書四十年虛詞 평수삼천리랑적 금서사십년허사
靑雲難力致非願 白髮惟公道不悲 청운난력치비원 백발유공도불비
驚罷還鄕夢起坐 三更越鳥聲南枝 경파환향몽기좌 삼경월조성남지

*월조(越鳥)는 남쪽 지방의 새인데 다른 지방에 가서도 고향을 그리며
남쪽 가지에 앉는다고 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00 야박한 풍속

석양에 사립문 두드리며 멋쩍게 서있는데
집 주인이 세 번씩이나 손 내저어 물리치네.
저 두견새도 야박한 풍속을 알았는지
돌아가는 게 낫다고 숲속에서 울며 배웅하네.

風俗薄 풍속박
斜陽鼓立兩柴扉 三被主人手却揮 사양고립양시비 삼피주인수각휘
杜宇亦知風俗薄 隔林啼送不如歸 두우역지풍속박 격림제송불여귀



00 가난이 죄

지상에 신선이 있으니 부자가 신선일세.
인간에겐 죄가 없으니 가난이 죄일세.
가난뱅이와 부자가 따로 있다고 말하지 말게나.
가난뱅이도 부자되고 부자도 가난해진다오.

難貧 난빈
地上有仙仙見富 人間無罪罪有貧 지상유선선견부 인간무죄죄유빈
莫道貧富別有種 貧者還富富還貧 막도빈부별유종 빈자환부부환빈










00 비를 만나 시골집에서 자다

굽은 나무로 서까래 만들고 처마에 먼지가 쌓였지만
그 가운데가 말만해서 겨우 몸을 들였네.
평생 동안 긴 허리를 굽히려 안했지만
이 밤에는 다리 하나도 펴기가 어렵구나.
쥐구멍으로 연기가 들어와 옻칠한 듯 검어진 데다
봉창은 또 얼마나 어두운지 날 밝는 것도 몰랐네.
그래도 하룻밤 옷 적시기는 면했으니
떠나면서 은근히 주인에게 고마워 했네.

逢雨宿村家 봉우숙촌가
曲木爲椽첨着塵 其間如斗僅容身 곡목위연첨착진 기간여두근용신
平生不欲長腰屈 此夜難謀一脚伸 평생불욕장요굴 차야난모일각신
鼠穴煙通渾似漆 봉窓茅隔亦無晨 서혈연통혼사칠 봉창모격역무신
雖然免得衣冠濕 臨別慇懃謝主人 수연면득의관습 임별은근사주인

*어느 시골집에서 비를 피하며 지은 것으로 궁벽한 촌가의 정경과
선비로서의 기개가 엿보이는 시이다.
누추하지만 나그네에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베풀어 준 주인의 따
뜻한 마음에 감사하면서 세속에 굽히지 않으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00 주막에서

천릿길을 지팡이 하나에 맡겼으니
남은 엽전 일곱 푼도 오히려 많아라.
주머니 속 깊이 있으라고 다짐했건만
석양 주막에서 술을 보았으니 내 어찌하랴.

艱飮野店 간음야점
千里行裝付一柯 餘錢七葉尙云多 천리행장부일가 여전칠엽상운다
囊中戒爾深深在 野店斜陽見酒何 낭중계이심심재 야점사양견주하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떠돌아 다니는 나그네 길, 어쩌다 생긴 옆
전 일곱닢이 전부지만 저녁놀이 붉게 타는 어스름에
술 한 잔으로 허기를 채우며 피곤한 몸을 쉬어가는 나그네의 모습.




00 농가에서 자다

골짜기 따라 종일 가도 사람을 못 보다가
다행히도 오두막집을 강가에서 찾았네.
문을 바른 종이는 여와 시절 그대로고
방을 쓸었더니 천황씨 갑자년 먼지일세.
거무튀튀한 그릇들은 순임금이 구워냈고
불그레한 보리밥은 한나라 창고에서 묵은 것일세.
날이 밝아 주인에게 사례하고 길을 나섰지만
지난밤 겪은 일을 생각하면 입맛이 쓰구나.

宿農家 숙농가
終日緣溪不見人 幸尋斗屋半江濱 종일연계불견인 행심두옥반강빈
門塗女와元年紙 房掃天皇甲子塵 문도여와원년지 방소천황갑자진
光黑器皿虞陶出 色紅麥飯漢倉陳 광흑기명우도출 색홍맥반한창진
平明謝主登前途 若思經宵口味幸 평명사주등전도 약사경소구미행

*여와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천지를 만들었다는 인물, 천황씨는 전
설에 나오는 고대 중국 임금.




00 즉흥적으로 읊다

내 앉은 모습이 선승 같으니 수염이 부끄러운데
오늘 밤에는 풍류도 겸하지 못했네.
등불 적막하고 고향집은 천 리인데
달빛마저 쓸쓸해 나그네 혼자 처마를 보네.
종이도 귀해 분판에 시 한 수 써놓고
소금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마시네.
요즘은 시도 돈 받고 파는 세상이니
오릉땅 진중자의 청렴만을 내세우지는 않으리라.

卽吟 즉음
坐似枯禪反愧髥 風流今夜不多兼 좌사고선반괴염 풍류금야부다겸
燈魂寂寞家千里 月事肅條客一첨 등혼적막가천리 월사숙조객일첨
紙貴淸詩歸板粉 肴貧濁酒用盤鹽 지귀청시귀판분 효빈탁주용반염
瓊거亦是黃金販 莫作於陵意太廉 경거역시황금판 막작어릉의태염

*진중자(陳仲子)는 제나라 오릉(於陵)에 살았던 청렴한 선비.




00 나를 돌아보며 우연히 짓다

푸른 하늘 웃으며 쳐다보니 마음이 편안하건만
세상길 돌이켜 생각하면 다시금 아득해지네.
가난하게 산다고 집사람에게 핀잔 받고
제멋대로 술 마신다고 시중 여인들에게 놀림 받네.
세상만사를 흩어지는 꽃같이 여기고
일생을 밝은 달과 벗하여 살자고 했지.
내게 주어진 팔자가 이것뿐이니
청운이 분수밖에 있음을 차츰 깨닫겠네

自顧偶吟 자고우음
笑仰蒼穹坐可超 回思世路更초초 소앙창궁좌가초 회사세로경초초
居貧每受家人謫 亂飮多逢市女嘲 거빈매수가인적 난음다봉시녀조
萬事付看花散日 一生占得月明宵 만사부간화산일 일생점득월명소
也應身業斯而已 漸覺靑雲分外遙 야응신업사이이 점각청운분외요

*세속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며 지내
는 자신의 생활을 감회에 젖어 읊은 시이다.







00 시시비비

이 해 저 해 해가 가고 끝없이 가네.
이 날 저 날 날은 오고 끝없이 오네.
해가 가고 날이 와서 왔다가는 또 가니
천시(天時)와 인사(人事)가 이 가운데 이뤄지네.

是是非非詩 시시비비시
年年年去無窮去 日日日來不盡來 년년년거무궁거 일일일래부진래
年去月來來又去 天時人事此中催 년거월래래우거 천시인사차중최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꼭 옳진 않고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 건 아닐세.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것이 그른 것은 아니고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일세.

是是非非非是是 是非非是非非是 시시비비비시시 시비비시비비시
是非非是是非非 是是非非是是非 시비비시시비비 시시비비시시비




-출처:
http://www.thinkpool.com/MiniBbs/ViewPost.do?action=read&hid=ldj566200&cid=mini&ctg=2&viewType=1&sn=1164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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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나무위키]


조선 후기의 시인으로 본명은 김병연(金炳淵). 자는 난고(蘭皐).
별호는 김립(金笠)이다.  김삿갓이란 이름은 그가 인생의 대부분을 삿갓
을 쓰고 다니며 방랑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807년(순조 7년) 음력 3월 13일(양력 4월 22일) ~ 1863년(철종 13년).

김병연이 '김삿갓'으로 된 직접적 원인은 그의 조부였던 무신 김익순
(1764 ~ 1812)에게 있다. 그가 고작 대여섯 살이던 1811년 신미년부터
다음해 임신년 봄까지 일어난 홍경래의 난 때, 김삿갓의 '할아버지'인
당시 선천 부사 5품 관료인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붙잡힌다.
그는 홍경래에게 구걸하며 항복해 가족들은 모두 목숨은 부지하였으나
 홍경래의 세력은 패하였다.

왜 삿갓을 '썼을까'?

야사에 따르면 그가 나이를 먹어 16세가 되었을 때, 과거를 본 적이 있다
해당 과거는 중앙에서 임금이 주재하는 대과가 아니라 거주하는 지역의
 지방관이 주재하는 "향시"로 대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봐야 할
시험이었다.

문제는 하필이면 그 날의 시제가 김익순을 논박하라는 것이었다. 김삿갓
은 자신의 할아버지인 김익순의 잘못을 신랄하게 깠다

그 때 썼다는 시에 따르면
 "선대왕이 보고 계시니 넌 구천에도 못가며, 한번 죽음은 가볍고 만번
죽어 마땅하리라. 네 치욕은 우리 동국 역사에 길이 남아 웃음거리로
 남을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하여간 글솜씨는 있어서 급제 해서 즐겁게 돌아와서 자랑하다가 그 이야
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은 어머니에게서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되는데…
 하필이면 그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였고 자신은 그것도 모른 채 할아
버지를 신랄하게 까는 답안을 적어내려갔던 것이다.

이에 큰 충격을 받아 4년간 집에서 폐인처럼 지내다가 20살 되던 해 방랑
생활을 시작하였다.




22세까지는 그냥 이곳저곳 다니는 방랑생활을 하였으나, 어느 날부터 자신
은 더 이상 하늘을 볼 낯짝이 없다는 이유로 몸 전체가 그늘지는 거대한 삿
갓을 만들어 쓰고 다녔다고 한다. 이후 김병연은 김삿갓으로 불리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름보단 김삿갓(김립)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위와 관련하여 김삿갓 본인이 쓴, 참고할 만한 시 한 편이다
(편역본 출처: 양동식의 '길 위의 시').



나와 삿갓

내 삿갓은
정처 없는 빈 배

한 번 쓰고 보니
평생 함께 떠도네

목동이 걸치고
송아지 몰며

어부는 그저
갈매기와 노닐지만

취하면 걸어두고
꽃 구경

흥이 나면 벗어 들고
달 구경

속인들의 의관은
겉치레, 체면치레

비가 오나 바람 부나
내사 아무 걱정 없네




세상을 떠날 때 까지 그야말로 백두산을 제외한 조선팔도 이곳 저곳을 누볐으며,
 때로는 한 곳에 머물며 훈장 노릇을 하여 후학을 기르고 숙식을 해결하였다.





그는 높은 문장으로 사대부들의 악덕과 사회에 존재하던 폐해 따위를 비판하여
듣는이의 동조를 이끌어내는 격조높은 노래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노래로 풀어내어 불렀기 때문에 그는 명망이 있었다한다.

김삿갓의 시의 특징은 뼈대가 있는 언어유희다.

사멱난관(혹은 사멱난운)

許多韻字何呼覓 많고 많은 운자에 하필 멱자를 부르는가?
彼覓有難況此覓 첫 번 멱자도 어려웠는데 이번 멱자는 어이 할까?
一夜宿寢懸於覓 오늘 하룻밤 자고 못자는 운수가 멱자에 걸리었는데
山村訓長但知覓 산촌의 훈장은 멱자 밖에 모르는가.

마음 씀씀이가 고약한 시골 훈장이 한 끼를 청하러 찾아온 김삿갓을 내쫓기 위해,
실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는 글자인 '찾을 멱(覓)'[10]자 네 개로 운을 떼어 시를
짓게 했을때 그가 지은 시이다. 김삿갓 이전에는 이 사멱난운을 통과한 사람이
전무했다고 한다. 잘 보면 멱이라는 글자의 뜻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한거라 멱
이 아닌 다른 글자여도 되니 약간 치사한(?) 수이긴 하나 기발하긴 기발하다고 할
 수 있다. 절묘하게 시골 훈장에게 한 방 먹이기도 했고.



어느 서당에서 걸음을 멈추었는데 제대로 대접도 해주지 않은채 야박하게 문전
박대하니 분기탱천하여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시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내 일찍이 서당인줄은 알았지만
방안에는 모두 귀한 분들일세
생도는 모두 열명도 못되고
선생은 와서 인사조차 않는구나.

해석만 보면 그냥 점잖게 까는 것 같지만, 이 문장의 음을 소리내어 읽으면...

서당내조지요,
방중개존물이라.
생도제미십이고.
선생내불알이라.

오늘날에 봐도 상당히 저속한 단어들을 사용하였는데, 당시 19세기 조선의 언어생
활과 이 시를 쓴 김병연은 양반이었음을 생각해보면 그 때 김삿갓은 굉장히 화가
 났었던 것 같다. 한국 최초의 펀치라인.

물론 민중들의 대사(예를 들면 봉산탈춤이라던지)에서 욕설이 난무하는 것으로 말
미암아 이와 같은 과격한 표현은 감정과 생각을 나타내는 수단으로써 그다지 드문
 표현은 아니었지만, 이 시에서 파격적인 특징은 시를 지은 사람도 양반이고, 시에
서 풍자하는 대상도 서당의 훈장이니 역시 양반이라는 것이다.
더하여 이 시는 조선시대의 욕과 비속어에 대한 귀중한 자료이기도 한데, 오늘날도
그렇지만 욕이나 비속어가 기록된 기록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과거의 비속어에 대
한 귀중한 자료다.



(김삿갓)

毛深內闊 모심내활
必過他人 필과타인

털이 깊고 속이 넓은 것을 보니
필시 딴 사람이 먼저 지나갔도다.

(처녀)

溪邊楊柳不雨長 계변양류불우장
後園黃栗不蜂坼 후원황률불봉탁

개울가 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길게 자라고
뒷마당 알밤은 벌이 쏘지 않아도 벌어지네.

물은 사람이나 대답한 사람이나 아니 그전에 처녀것이 그렇게 생긴걸 어떻게 알았지

가렴주구를 폭로한 시도 썼다.

宣化堂上宣火黨 선화당상선화당.
樂民樓下落民淚 낙민루하낙민루
咸鏡道民咸驚逃 함경도민함경도.
趙岐泳家兆豈永 조기영가조기영.

선화당에서 화적같은 정치를 행하고
낙민루아래에서 백성들이 눈물흘리네
함경도 백성들이 모두 놀라 달아나니
조기영이 가문이 어찌 오래 가리오?

당대 함경도 관찰사 조기영의 가렴주구를 폭로한 시로 선화당, 낙민루, 함경도, 조기영
의 한자 훈을 바꿔서 기가막힌 시를 지었다.

걸식 도중 쉰밥을 얻어먹고 분노하여 이런 시도 지었다.

二十樹下三十客 이십수하삼십객
四十村中五十食 사십촌중오십식
人間豈有七十事 인간기유칠십사
不如家歸三十食 불여가귀삼십식

스무 나무 아래에 서러운(서른) 나그네
망할(마흔) 놈의 마을에서 쉰 밥이네
사람 세상에 어찌 이런(일흔) 일이
집에 돌아가 설은(서른=설익은) 밥 먹느니만 못하구나






시가 아닌 말장난 중에도 이런 것도 있다.

어느 머슴이 헐레벌떡 뛰어가길래 김삿갓이 잡고 어딜 그리 급하게 가냐고 하니 사람이
죽어 부고를 쓰러 간다고 했다. 김삿갓이 자기가 글을 알고 있으니 써주겠다고 했는데,
쓴 것은 유유화화(柳柳花花)[17]. 글을 모르는 머슴은 고맙다고 하고 그것을 받아갔다.
 그런데 국어로 그대로 직역하면 '버들버들꽃꽃',
그러니깐 버들버들 떨다가 꼿꼿해졌다,(...) 즉 죽었다는 뜻이 된다.

아무튼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10년 단위로 집에 들어와서 자신의 아들과 딸들을 보고 또
나가고 그런 모양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의 아들이 그만 여행하고 집에 돌아오라는 편지
를 수십통이나 배끼어 아버지가 갈만한 마을마다 이를 부탁하고 맡긴 모양이다.

그런 편지를 아무 탈 없이 받은걸 감안하면 그의 엄청난 명망이 짐작된다. 그리고 아들과
 집안 사람들이 몇 번 귀향을 권하였으나, 그 때마다 심부름을 보내는 둥 따돌리고는 도망
쳤단다. 그렇게 살다가 마흔 줄에 들어 떠돌아 다니는 생활이 힘에 부친다는 이유로 이유
로 집에 틀어박히려고 왔는데, 가정의 일을 소홀히 하여 가족들로부터 냉대받는 것이 그
를 바깥에서의 생활로 발길을 돌리게 하였다.



방랑의 종지부


그는 외지인 전라도 동복현(현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서 그나마 거지 꼴이 아닌 잘
알던 이 집에서 누워 치료를 받다가 방랑의 종지부를 찍었으며 그가 마지막 남긴 말도
 뭔가 가련한 느낌을 준다.

"안 초시, 춥구려.
이제 잠을 자야겠으니 불을 꺼주시오…."

뒤에 '어머니가 보고싶소'라고 했다고 한다. 김삿갓의 어머니는 후에 친정으로 돌아가 말
년을 보냈는데 어머니가 사시는 마을에서 소식만 묻고 바로 가는 일을 여러번 했다고 한다.
그리고 뒤늦게 부친의 별세 소식을 들은 아들이 직접 가서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에 데리고
 왔다고 한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방랑생활이 몸에 배었을지 몰라도, 가족 입장에서는 훌
륭한 가장은 아니었던 셈.

그래도 사후에는 워낙 유명해져서 임금도 알고 있을 정도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김삿갓
 손자 되는 사람이 절에서 스님으로 있었는데, 그걸 알게 된 임금이 일부러 궁으로 불러
서 김익순 죄를 사해주고 관직을 내려주었다. 사실인즉 가문의 힘으로 복권된게 아닌가
한다. 이미 고종 즉위 이후라서 세도정치는 이미 쫑난 상황이었기는 하지만 완전히 엎어
진 것도 아니었고, 이유야 어떻건 두령의 목을 잘라왔으니 가문의 힘을 쓰면 복권이 가능
하긴 했다.

또 당시에는 거지들이 김삿갓 흉내를 내면서 구걸하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덕분에 이삿갓,
윤삿갓 임삿갓 홍삿갓 하는 별의별 짝퉁들이 어설픈 흉내를 내고자 시도 썼으나 역시 짝
퉁들이라 실력은 영 아니었다고 한다.


평가

왠지 은거기인이나 도사틱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사실은 일생을 주유한 방랑자였다. 비슷
한 인물로는 해학으로는 정지윤(=정수동)과 정만서, 실존 인물이 아닌 이로는 봉이 김선
달, 시대가 겹치는 인물로는 고산자 김정호가 있다. 다만 실제 김정호는 전국을 돌아다니
며 지도를 만든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것.

1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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