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 1.

[예화] 편작보다 형들처럼 - 안전불감증






[예화] 편작보다 형들처럼 - 안전불감증

내일신문-칼럼 2012.05.16 00:50


 우리 사회는 늘 파국을 맞은 뒤에야 숙명처럼 뒷수습에 나서는 일이 유별
나게 많다. 무슨 일이든 상처가 문드러지고 곪아터져야만 그제야 치유에 나
선다. 멀리는 IMF 외환위기가 그랬고, 가까이는 저축은행 퇴출사건, 학교
폭력 문제, 한진중공업 사태, 쌍용자동차 사태, 각종 부정부패 사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일들이 그렇다.


 그럴 때면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명의인 편작(扁鵲)의 일화가 생각나곤 한
다. 편작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의사인 두 형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위나라 왕이 편작에게 물었다.
“그대 형제들 가운데 누가 가장 실력이 뛰어난가?”

편작이 대답했다.
“큰 형이 가장 뛰어나고, 그 다음은 둘째 형이며,
제가 가장 하수입니다.”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편작이 삼형제 가운데 가장 떨어진다니 왕은 의아했다.
                                                     

그러자 편작이 자세히 아뢰었다.
“큰 형은 환자가 아픔을 느끼기 전에 얼굴빛만 보고도 앞으로 병이 날 걸
압니다. 병이 나기도 전에 병의 원인을 제거해 줍니다. 환자는 큰 형이 병을
 미리 막아 주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둘째 형은 환자의 병세가 가벼울 때 병을 알고 치료해 줍니다.
 환자는 큰 병을 미리 낫게 해주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저는 형들과 달리  병이 커져 심한 고통을 느낄 때라야 비로소 알아봅니다.
 위중한 병이어서 진기한 약을 먹이고, 아픈 곳을 도려내는 수술을 해야 했
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병을 고쳐 주니 명
의라고 믿으며 존경합니다.

가장 실력이 모자라는 제가 명의로 소문난 까닭입니다.”

 서민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한 저축은행 회장이란 인물들의 부정부패 행태를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의사 노릇을 해야 할 감독 당국과 정권 핵심들이 중병
을 알면서도 방치한 도덕적 해이를 용서하기 어렵다. 편작의 형들처럼 예후를
 미리 알았지만, 단물 빨아먹기에 혈안이 돼 터질 때까지 모른 채 한 느낌이
확연하다. 지난해 한바탕 씻김굿을 한 부산저축은행 사고만 해도 중병이 드러
난 후에도 2010년 G20서울정상회의의 분위기를 망친다는 핑계로 치료를 늦춰
 병을 키웠다. G20서울정상회의에서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규제하는 문제
를 중점 논의하려하자 눈감고 아웅 한 정권 전체가 부산저축은행 계열의 불법
사실을 더 오랫동안 묵인하는 중죄를 저질렀다.

 만신창이가 된 학교폭력도 마찬가지다. 오래전부터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였
지만 여러 명의 어린 목숨을 잃고 나서야 실정에 맞지도 않는 종합대책을 내
놓느라 허겁지겁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인들은 한술 더 뜬다. 대화와 타협
으로는 풀지 못하고 늘 벼랑 끝까지 대치하다 파국에 이르러서야 피투성이가
된 채 어쩔 수 없이 봉합하는 일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한다.

질병뿐만 아니라 자연재해와 인재(人災)도 사고의 징후는 미리 찾아온다. 하인
리히 법칙이 이를 뒷받침한다. 1:29:300의 법칙으로도 불리는 하인리히 법칙은
 심각한 안전사고가 한 건 일어나기 전에 29건의 가벼운 사고가 있고, 29건의
경미한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300건이나 되는 위험요소가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미국 보험회사 관리감독자인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가 수 천 건의 고객보험
상담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도출한 공식이다. ‘산업재해예방’이라는 책에서
처음 언급한 이 이론은 예후들을 자세히 파악해 대비책을 철저하게 세우면 대
형사고도 막을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작은 감기가 허파에 돌이킬 수 없는 병으로 진전되면 치료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비용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사회적 사건의 비용은 더욱 엄
청나다. 다르다면 사회에 병마가 오면 늘 애먼 서민들만 죽어난다는 점이 문
제다. 저지르는 사람은 늘 잘 먹고 잘 사는 자리 높은 사람들이지만, 당하는
사람은 언제나 불쌍한 기층민들이다.

 여기엔 우리의 의식도 한 몫을 한다. 병 고치는 편작만 알아줄 뿐 두 형처럼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은 기억조차 해주지 않는다. 홍수를 예방한 공로는 인정
해주지 않는 반면 목숨을 바꿔가며 구조한 영웅만 상찬하는 게 세태다.

 - 이 칼럼은 내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김학순이 들려주는 책이야기
http://librekim.khan.kr/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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