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20.

[기독교. 신비사상] 한국 오순절교회와 방언










[기독교. 신비사상] 한국 오순절교회와 방언




아래자료는 강돈구(교수)저 '어느 종교학자가 본 한국의 종교교단'(박문사간/2016)에서 요약
발췌한 것입니다. 순복음교회에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게해준 좋은 책으로 권장합니다. 이책
에는 이밖에 여러가지 한국종교에대한 소개와 평가가 실려있습니다.
덧붙여 방언문제등도 부록으로 첨가합니다. -연우.



[오순절교회]


53. 오순절은 기독교의 주요 축일 가운데 하나로 부활절로부터 50일째 되는
 일요일을 말한다.
예수는 죽은 뒤 3일 만에 부활하여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 자신이 아직
 실아있다는 것을 확신시키고 나서 승천하였다. 예수가 그 때 남긴 말 가운데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이 중요하다.

그리고 오순절 때 바로 성령이 강림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혀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위에 내렸다.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차서 성령이 시키는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사도행전 2:2~4

55. 오순절교는 성령이 최초로 강림한 바로 이 사건에 주목한다. 그리고 동시
에 고린도 전서 12장에서 바울이 한 말에도 역시 주목한다.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어떤사람은 성령에게서 지혜의 말씀을
받았고, 어떤이는 지식의 말씀을 받았으며, 믿음을 받은이도 있고,
병고치는 능력을 받는 이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직책을 ...
어떤 사람은 여러가니 이상한언어를 말하는 능력을, 어떤이는 그
이상한 언어를 해석하는 힘을 받았습니다. 이모든 것은 같은 성령께
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께서는이렇게 당신이 원하는대로 각 사람
에게 각가 다른 은총의 선물을 나누어 주십니다.

오순절교에서는 성령이 주는 이상의 9가지 선물, 즉 권능을 은사라고 부른다.
그리고 오순절교는 성령이 제자들에게 최초로 임한 사건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어날 수 있으며, 또한 기도를 통해서 성령의 선물, 즉 은사를 간절히 간구하
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은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데서 시작되었다.

오순절 운동은 크게 셋으로 유형화해 볼 수 있다.

1. 20세기 초 미국에서 일어난 오순절 부흥운동에서 교파로 발전한 소위 오순절
주의자들. 이들은 기존 교단에서 분리하여 오순절 계통의 여러 교단들을 설립하
였다.

2. 소위 은사주의자들에 의해 196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된 오순절 부흥운동. 이
들은 오순절  계통의 교단이 아닌 각 교단 내에서 일반적으로 기도 모임을 조직
하여 활동한다. 즉 첫째의 오순적 운동이 기존의 교단에서 분리되어 스스로 교단
을 설립해 활동한다면 이들은 기존 교단 내에서 활동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이 둘째 유형을 신오순절주의 운동이라고 하는데, 이 운동에는 개신교와 천주교가
 모두 참여하고 있다.

3. 오순절 계통의 신종교들에의한 오순절 운동.

여기서는 1번 중심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다.


<오순절교의 특징>

57. 오순절교 내에서는 성령이 바로 오순절교의 창시자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비
록 오순절교라고 이름을 붙이더라도 오순절교는 교리나 의례, 그리고 조직적인 측
면에서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58. 오순절교는 사실 교리보다는 체험에 일차적인 관심을 지닌다. 즉 이들은 기독
교인의 삶 가운데 체험적인 측면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며, 신과의 인격적이며 실존
적인 체험을 강조한다. 이때 이들은 체험은 했지만 지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신적
 행위에 대한 신학적 해명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오순절교는 신조 중심이
나 신학 중심의 교파가 결코 아니다. 최근에는 오순절교도 조직신학에 나름 관심을
보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그들 신학은 비교적 덜 체계적이다.

59. 오순절 신학은 기본적으로 사도와 선지자와 방언하는 자의 계시적 은사들을
포함하여 성령의 은사들이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일어 날 수 있으며, 그것은 적법하
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런 입장은 계시적 은사가 바이블이 완성된 뒤에는 교회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일장을 취하는 대부분의 다른 교파들의 입장과 궤를 달리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사도시대가 끝났을 때 계시도 함께 중단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신앙고백을 인정하는 장로교의 경우 예언은 물론이고 방언도 제한적인 경
우만 인정한다.
* 정로교는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장로나 집사와같은 교회의 직분을 맡을 수 없단
 입장을 취한다.

61. 20세기 초 최초의 오순절교인들은 무슨 일인가가 곧 일어나라는 종말론적인 흥
분에 사로 잡혀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적에 대한 마지막 대공세를 위해 신이 예
비한 특공대로, 그리고 자신들의 선교는 곧 최후의 선교라고 생각하였다.
한마디로 이들은 종말이 곧 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선교에 열중했으며, 동시에
 바로 자신들이 선교하기 때문에 종말이 곧 올 것으로 믿었다.

세계 최대 교인인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당회장인 조용기는 한국이 마지막 때에 선교
의 막중한 사명을 짊어진 복음의 못자리라고 말한다.
*조용기는 자신의 저서('오중복음과 삼중축복. 서울말씀사간.1997)에서 환난 전 휴
거설을 주장한다.

오순절교의 교리는 복음주의적 기독교의 교리와 대체로 같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들
은 회심과 동령세례를 동일시하는 반면, 오순절교는 회심과 성령세례를 구분한다.
즉 오순절교는 회심 후에 성령세례를 따로 받아야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복음주의와
크게 다르다. 복음주의에 의하면 모든 기독교인은 이미 성령세례를 받았다.

오순절교에 의하면 인간의 육은 혼에의해, 그리고 혼은 영에의해 지배를 받는데 바
로 이 영이 신의 영, 즉 성령과 교통을 한다. 따라서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할지
라도 생명력 넘치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  성령이 자기
 안에 거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삶을 살도록 할 때 거룩함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으며,
 성령세례는 개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누구나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오순절교인들에게는 성령세례를 받도록 노력하는 것이 뭣보다 중요하다.
초기 오순절교인들은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방언을 하게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방언을 받은 자만이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각교회의 신오순절주의자들은 방언의 능력만이 성령세례를 받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방언을 포함해서 고린도 전서 12장 8~10
절에 제시된 성령의 9은사들가운데 하나라도 받았다면 성령세례자라고 본다. 즉 신오
순절주의자들은 방언이 성령세례를 받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여러가지 기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조용기는 바이블에서 말하는 복음의 진수를 중생, 성령충만, 축복, 신유, 재림으로 제
시하고 이들을 '오중복음'이라고 하였다. .. 이를 염두에 두고 오순절교의 성령세례를
 받고 난 결과를 몇 가지 제시해보자.

64.
1. 오순절교는 성령세례를 받고 나면 육체적인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
한다. 그들은 육체적인 병이 마귀와 범죄, 그리고 저주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병은 믿음에 의해서 고칠 수 있다는 신유를 주장하고, 그 방법으로 안수라는 의식을
 행한다. 그렇다고 현대의학을 전혀 도외시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신자들이 자신의 믿
음에 자신이 없다면 병원에 가라고 충고한다.

2. 오순절교는 예수를 믿고 성령세례를 받으면 물질적으로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잘사는게 신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주장이 비난받고 있기는 하지만.


66. 오순절교는 신과 인간의 직접적인 체험의 관계를 강조하므로 교회의식도 특이하다.
미국의 초기 오순절 운동의 모든 집회에서는 방언, 축귀, 신유, 예언, 통성기도, 울부
짖기 등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들을 '떼굴떼굴 구르는 사람들'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신교에서는 이런 현상을 비정상적이고 바람직하지 않은 것
으로 본다.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은 조용하고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옿다고 생
각한다. 그러나 오순절교인들은 박수를 칠 뿐만 아니라 기쁨에 겨워 춤추고 뛰는 행위가
오히려 예배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나운몽은 일견 아수라장 같이 보이는 예배 양상이 바람직하다는 근거로 시편
47, 149, 150편을, 사도행전 3:8절을 제시한다.

68. 오순절교는 19세기말 미국에서 일어난 성결운동의 급진적인 분파, 즉 성결교에서 분
리된 소집단을 주축으로 시작되었다. 감리교인이었다가 나중에 성결교의 독립 설교가로
활동하였던 파램이라는 인물에 의해 시작되었다. 1901년 캔사스의 토페카에 있던 파램의
베델 성서학교에서 방언과 함께 기괴한 현상들이 나타났다. 그러자 파램은 방언이 성령
세례의 증거라고 가르치고 이러한 가르침과 신유를 기반으로 하는 사도신앙운동을 전개
하였다.

20세기 초의 오순절교는 교리와 예배상의 특징으로 인해 주류 교회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
았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확산되어 갔다.

73. 한국의 오순절교는 1928년 오순절 계통의 미국 선교사 럼지가 내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본래 감리교 계통의 신학교를 졸업한 감리교인이었으나 1907년 로스렌젤레스로 이
주하며 오순절운동에 접하고 오순절교인이 되었다.

78.한국 오순절 계통의 최대 교단인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는 1981년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당회장인 조용기 목사의 이단시비문제로 인해 총회측과 순복음 특으로 분열되었
는데, 양측 교역자들의 노력과 미국 '하나님의 성회'측의 도움으로 다시 '기독교대한하나
님의 성회'라는 교단이름으로 통합하였다. 그러나 일부세력은 통합에 참여하지 않고 현재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순복음'이라는 교단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80.장로교는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되었지만 가장 큰 장로교회는 한국에 있고, 감리교는 영
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역시 가장 큰 감리교회는 한국에 있다. 그리고 오순절 계통의 하나님의
 성회는 미국에서 비롯되었지만 가장 큰 하나님의 성회 교회는 역시 한국에 있다.

81. 한국의 개신교가 급성장한 배경에는 여러가지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중 우리는 오순절
교의 전개가 한국 개신교 성장의 주요 배경 내지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한국의 개신교가 무속적이라는 지적에 심심치않게 접한다. 이런 지적은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개신교가 비개신교적인 요소를많이 지니고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에서 나온 지적이다.

한국에 무속이라는 종교현상이 적지않은 영향력을 지니고 존재하는 것은 틀림없다. 따라서
무속이 한국 개신교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당연하다.  좋고나쁨을
떠나 한국 개신교가 무속적이라는 주장은 다른 각도에서 이해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본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심심찮게 지적되어왔던 개신교의 무속적인 요소는 다른 말로하면
 개신교의 오순절 주의적 요소였는지도 모른다.
만약 이상의 지적이 타당성이 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지적되어왔던 개신교의 무속적인 측
면의 상당부분을 비판적인 시각에서만 언급할 것이 아니라 보다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다 적
극적으로 이해해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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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주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오순절 운동(五旬節運動, Pentecostalism) 또는 오순절 교회는 기독교에서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적 은사(헬라어로 카리스, 방언, 병고침등)를 강조하는 개신교의 신학적 갈래이며, 이들
의 첫 단계는 190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아주사에 있었던 부흥운동이 그 모체인데 1914년 오
순절교파 태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들은 승천한 예수 그리스도가 선물로 약속했던 성령이
오순절에 임할 때(성령강림일) 사도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고 각 다른 나라의 언어(방언)들로
말했다는 사도행전 2장의 사건이 현 시대에도 재현되어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덧붙이자
면 대한민국에서는 '오순절교회'라고 하면 '순복음교회'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교회인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소속된 교단이기도 하다.

역사
1914년 미국 미주리 주(Missouri) 스프링필드(Springfield)에서 조직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1932년 8월 박성산·배부근 두 목사가 일본에서 귀국하여 오순절(五旬節) 신앙운동을 시작하고,
해방과 함께 체스넛 선교사가 내한함으로써 본격적인 선교가 개시되었다.1953년 4월 8일 제1회
 창립총회를 가짐으로써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가 발족되었다. 교리의 특색은 성령론(聖靈
論)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국에는 1932년 서빙고교회가 오순절교회의 첫 시작이며,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예수교대한
하나님의성회 및 대한예수교복음교회가 오순절교회에 속한다. 종교적인 체험을 강조하여 개신
교 선교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의 뿌리가 깊은 중·남미지역에서의 개신교 선교에 많은 공헌을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간증의 지나친 강조로 인해 성서나 신학적 근거가 없는 주관
적인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치료나 기적의 체험이 성서보다 더 권위있게 작용할
 수도 있는 문제가 있다. 은사적 결과과 주로 기복적인 신앙으로 연결되어 문제점으로 나타난다.
한국교회의 이런 은사주의의 지나친 강조는 정통 교회가 주장하는 성서 중심의 신앙에서 멀어질
수 있는 소지가 있기에 비판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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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순복음교인 되기
권영문 (kymn@ks.ac.kr) 승인 2011.03.22 09:19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는 개신교의 오순절 계통의 한 교파이며 보통 순복음교회라고도 한다.
 이 교단의 교인 수는 전체 개신교의 약 8.2%를 차지하며 교회 수는 3.9%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교회사>, 김영재, 이레서원, 391쪽). 기하성의 교단 산하에는 두 개의 정규 신학교와
14개의 무인가 신학교가 있다(<크리스천투데이>, 2009.7.12). 지난 2009년 7월에 교과부로부터
 4년제 대학으로 인가를 받은 순복음총회신학교는 당시에 4년제 학력 인가 감사 예배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순복음총회신학교 졸업자인 조용기 목사는 "동료들과 동고동락하며 눈물로 4년제
학력 인가를 내 달라고 기도했었다"며 "마치 요셉이 꿈을 꾸는 것과 같은, 꿈 중에서도 꿈이었
다,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크리스천투데이>, 2009.8.22).

(생략)

오순절교는 교회의 조직에 있어서는 장로교와 회중 교회를 조합한 치리 형태를 갖고 있다. 그리
고 교리적인 면에 있어서는 신조보다는 개인의 신앙 체험적인 면을 중시한다. 미국에서 초기의
오순절 운동의 모든 집회에서는 '방언, 신유, 통성기도, 귀신 쫓기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
늘날에도 여전히 오순절파  계통에서는 집회 시에 방언의 은사와 기적적인 치유를 비롯한 여러
 표적들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기적들이 성령세례로 말미암아 일어난다고 믿고 있다.
 순복음교회의 헌법에도 "모든 교인들은 성령세례의 체험을 하며, 그 처음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기록해 놓았다(제12조 성령세례의 증거).

한편 구원론에 있어서 오순절교는 감리교와 성결교처럼 알미니안주의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그
러나 오순절교의 구원의 교리는 '회심과 성령세례'를 별도로 구분시켜 회심 후에 성령세례를 따
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복음주의자들은 회심과 성령세례를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에
서 오순절교와 큰 차이가 있다(<한국 개신교 주요교파 연구>, 233쪽). 또한 오순절교는 침례교나
 장로교와는 달리 구원을 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전인적인 구원이라 하여 질병의 치유까지 포함
시켜 놓아, 복음적인 기독교 교리와는 동떨어진 비성경적인 구원관을 갖고 있다.

그리고 오순절 계통의 교인들은 사도 시대의 '방언 등 표적의 은사'가 모든 시대에도 계속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 교회 시대 이후, 속사도들이나 그리고 16세기 종교 개혁자들이나
 20세기 이전의 세계적인 전도자들은 "방언이나 기타 표적은 초기 기독교의 표적이며 일시적인
현상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사가들도 '표적의 은사'는 성경의 정경이 완성되기
 전에 이미 활동이 멈추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오순절교는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진리의 요소들과 일시적이고 과도기적인 요소들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아 많은 부분에서 혼란을
 자초하였다"고 지적했다(<분파주의>, 엔드류 스텐하우스, 전도출판사, 106쪽).

국내에서 오순절 계통의 교회 중에서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세계 최대 교인을 갖고 있으며 조용기
 목사가 50년간 목회를 해 왔다. 그는 1962년 목사 안수를 받고 신유, 귀신 쫓기 등의 초자연적인
 기사이적을 나타내 보이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듣고 몰려들었다. 그리하여 1964년에는
서대문 개척 교회의 교인 수가 3,000명에 이르렀다. 그 후 1973년에는 현재의 여의도에 새 건물을
 지으면서 1만 8,000명의 교인이 생겨났다. 그 후에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여 1984년 40만 명,
 2000년에는 70만 명으로 세계 최대의 교인 수를 자랑하면서 초대형 교회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2008년에 교인 수가 무려 78만 명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된 것은
 신유와 귀신 쫓기뿐만 아니라 소위 '오중복음과 삼중축복'도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조용기 목사는 초창기 이후 줄곧 설교를 통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강조해 왔다. 오중복음이란
 성결교나 미국하나님의성회의 사중복음에다 '축복'을 하나 더 첨가한 것이다. 그리고 삼중축복은
 요한 3서 2절을 조용기 자신이 교리화하여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오중복음이 순복음 신앙의
 이론적인 부분이며 삼중축복은 오중복음의 실천 부분이라고 주장해 왔다.

조용기 목사도 성결교의 이단이었던 이재록 목사처럼 사중복음에다 '부활' 대신 '축복'을 추가시켜
오중복음을 만들어 내었다. 그는 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순복음교회에 교리화시킨 장본인이다.
 그도 이재록처럼 성경에 나오는 하나밖에 없는 '구원의 복음(엡 1:13)'을 다섯 개나 되는 것처럼
 오중복음으로 바꿔치기하였다. 그러나 거듭난 분별력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오중복음이 비성경적인
용어이며 그것이 가짜임을 직감할 수 있다.

(생략)

또한 조용기는 이전에 자신의 저서들과 설교를 통해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했는데 나중에 그 내
용이 엉터리로 판명되었고 1999년 7월에 기독교 TV '행복으로의 초대'시간에는 자신이 '하나님을
 보았다'고 간증하여 정통주의자들로부터 그의 신앙이 '정상이 아님'을 다시 한번 드러내 보였다.
 이 외에도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비성경적인 모습을 나타내 보이면서 자신의 숨겨진 '마각'을
본인도 모르게 드러내었고 상술한 것처럼 동국대 불교대학원 초청 강연회에서는 '불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여 결정적인 '마각의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조용기 목사 이단 정체>, 이대복, 기독
교이단문제연구소, 129쪽).



예수님은 누가복음 16장에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예화를 통해,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부자
에게 아브라함이 말한 대로 "비록 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눅 16:31)"고 말했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거짓 목자와 그 아래에 있는 광신도들'
을 설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흔히 개신교에서 이단으로 알려진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안식교, 통일교, 하나님의 교회, 신천지교회' 등의 교인들을 설득시켜 자신들의 종파로부터 빠져
나오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순복음교회는 감리교회와 유사하게 교인의 구분을 원입교인과 입교인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교인
의 생활 규범에 대해서는 "교인은 순복음교회의 헌법과 신조를 지키며 거룩하고 참된 생활을 해야
 한다"고 씌어 있다(제32조 생활 규범의 목적). 그러나 구원받은 신자의 신앙생활의 기준은 성경
만으로 충분하다. 성경 외에 인간이 만든 헌법과 신조를 지키는 것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기 때문
에 따로 지킬 필요가 없으며 성경만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헌법과 신조는 비성경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지키지 않는 것이 좋다. 예컨대 순복음교회의 헌법에 나오는 '권사와 권찰 제도 그리고
서리집사와 명예집사 제도 등'은 성경에 없는 제도로서 따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교인의 자격에 대해서는 "교인이 신고 없이 교회를 떠나 의무를 행치 않고 6개월이 경과
하면 회원권이 정지되고 1년이 경과하면 실종 교인이 된다"고 씌어 있다(제31조 교인의 자격정지).
오늘날 국내 개신교는 교인들의 수평 이동 현상이 76%나 된다. 직장 문제(23%)로 교회를 옮기는
 것 외에 다른 이유로는 목사의 설교와 자질 문제가 가장 크게 나타났다. 그래서 중대형 교회들은
 자기네 교인들의 수평 이동을 방지하기 위해 온갖 시스템을 도입하여 교인들을 관리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예컨대 셀 교회, 목장 교회, 구역 책임 할당제 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신고하지 않고 떠나는 실종 교인 수가 절반이나 된다. 따라서 여의도순복음교회도 실종 교
인의 숫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순복음 교인이 되는 길은 상술한 대로 여러 가지 신조나 규율을 지키고 따를 것이 많아 그렇게
쉬운 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순복음 교인이 되려면 첫 코스부터 난코스의 과정임을 알
 수 있다. 즉 우선 교회에 나간 지 오래지 않아 헌법에 나오는 대로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도 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방언을 하게 되면 교인으로 인정받을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방언을
못하게 되면 처신하기가 난감해지게 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과한다 해도 계속적으로 성령 충
만이 아닌 감정 충만한 가운데 박수를 치고 통성기도나 방언 기도도 하며 오중복음이나 삼중축복의
 비성경적인 설교를 들으며 교회 생활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상술했듯이 순복음교회는 교리보다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이면서 실존적인 체험을 중시한다. 그들의
 종교적인 열정은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교제와 성경 공부를 통해서가 아니라 집단적인 분위기 속
에서 유발되는 감정적인 체험을 우선시한다. 순복음 교인들은 자기네 목사들의 주장대로 성령세례
를 받고 집회에 참석하면 각종 질병을 치유받고 물질적으로도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인 기독교가 아니라 비성경적인 기복 신앙에 불과하다.

많은 학자들이 한국의 개신교가 무속적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한국의 개신교가 무속적이라는
 지적은 다시 말해 한국의 개신교가 비기독교적인 요소가 많다는 의미이다. 그중에서도 오순절주
의가 그 정도가 가장 심한 편이다(<한국 개신교 주요교파 연구>, 249쪽). 따라서 오순절 계통인
한국순복음교회도 여러 교파 가운데서도 가장 심하게 기독교의 진리를 '주술 또는 무속적인 종교'
로 전락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순복음교인들은 이러한 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소위 귀신 쫓기· 울부짖기· 통성기도· 방언 기도· 병 고치기· 박수 치기· 몸 흔들기· 뛰
고 춤추기 등 무속적이며 비성경적인 행위를 중단하고 오중복음이 아닌 하나뿐인 구원의 복음
(엡 1:13)과 성경적인 교회(빌 1:1)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상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발췌출처: 뉴스앤조이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4261


---------------[보충자료. 방언]



[방언1. 방송소개]


[방언2. 비판적개그자막]


방언[glossolalia, gift of tongues(영어)]

기독교에서 성령의 은사로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언어.

그 기원은 신약성서 사도행전 2:1~14에서 예수 승천 후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성령이 강림하면서 성
령의 힘으로 방언(여러 지방의 언어)을 하게 되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즉 성경에 처음 기록된 방
언은 말 그대로 외국어 능력 득템(제노글로시)의 수준이었다.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 '저놈들이 술이
 취해서 저러는 거다'라는 걸 보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섞여 있다는 것으로 보이며, 이를 기반으
로 모든 방언이 외국어 능력인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애초에 자기네들 말이 아니면 알아들을 수 없으니 이상한 소리를 지껄인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면 당연한 것이다.

현재 (특히 개신교 내에서) '방언'으로 언급되는 현상은 외국어가 아닌 '알 수 없는 말'이다. 이러한
'방언'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그리스도교 성립 초기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코린토 전서 14장에서
방언은 현재의 형태처럼 '알 수 없는 말'로 나타나며 이를 알아듣는 자가 없다고 표현한다. 또한 방
언을 해석할 필요가 있어 방언 해석의 은사에 대해 언급한다.

학계에서는 외향적이고 신경성이 낮을수록 방언을 잘 배우지만, 정신병리적인 문제와는 의외로 관련
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트랜스 상태가 항상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2. 신학적 해석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개정개역)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은혜를 간절히 구하십시오. 그리고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것도 굳이 막지는 마십시오.(공동번역)
고린도전서 14장 39절

방언을 성령의 은사로 보는 것은 모든 기독교 신학에서 동일하다. 다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해서는 교단마다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가톨릭은 혼합론, 정교회·성공회·장로교는 부정론, 오
순절교회(순복음)는 긍정론.

신비주의 기독교 신학에서 방언의 의미는 성령이 임하신 표적이다. 그렇기에 성령의 은사를 중요시하는
교단에서는 방언이 필수인가 하면, 상대적으로 성령의 은사를 덜 중요시하는 교단에서는 즉 방언이 성
령이 임한 증거인 것은 확실히 인정하나, 구원을 받아 성령이 임했다고 해서 무조건 방언의 은사가 생
긴다고 보진 않는다. 그 외에 코린토 1서 14장 2절을 근거로 방언이 천사의 언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설이지 정설은 아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
을 말함이라.(개정개역)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사람은 성령의 힘으로 신비한 일을 말하는 것이므로 아무도 알아들을 수가 없
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공동번역)
고린토전서 14장 2절

흔히 복음주의나 보수주의 성향이 강한 개신교 교단에서는 다 하나같이 방언을 권장할 것이라고 생각하
지만, 이것은 개신교의 실제 신학적 분포를 잘 몰라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오해라고 할 수 있다.
장로교등의 칼뱅주의 교단에서는 예장 고신 같이 보수 성향을 강하게 띌수록 방언을 경계하고 있으며,
실제로 기도 중에 누가 방언을 하는 게 보이면 일부러 툭툭 쳐서 눈치를 주기도 한다.
또한 기독교 전통에 의한 예식이 많이 남은 성공회 및 일부 루터교회에서도 방언을 성경에 써있으니
존중하는 정도이지 중요시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는 무당의 푸닥거리와 나름 유사한 측면이 있어서 방언이 강조된 듯도 하지만. 이
 주제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다음의 책들도 참고하자. 옥성호의 저서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는
굉장히 과격하게 방언을 비판하는 책이다. 보다 온건하게 비판하는 책으로는 고신대학교 신학교수의 저서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을 추천.

천주교에서는 방언이 아니라 신령한 언어 또는 이상한 언어라고 부른다. 뭔가 이름이 이상하지만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현재와 같은 방언 형태에 대해서는 이에 심취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주로 전통 가톨릭 등 교회의 전통적 내지는 보수적인 이들은 신령한 언어를 믿지 않거나 크
게 경계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개신교(특히 오순절교회)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성령기도회
 등 같은 주로 '성령' 신심을 깊이 중시하는 기도모임 등에서 행하기도 한다. 본래 천주교에서는 그 이전
까지만 해도 '성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이 때 (본래부터 '성령'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개신교의
영향을 받아 성령쇄신운동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성령'이라는 용어가 들어와 자리잡게 되었다.

천주교의 성령쇄신운동은 과도하게 은사를 받기 위한 신비 체험 목적의 기도를 하지 않도록, 그리고 조용
하게 하나의 올바른 신심으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개개인이 하는 방언을 모두 은사며 은
총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며, 방언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신앙의 지표나 모범이 될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각 교구마다 성령쇄신모임에 담당 신부를 배정해 절대 일정선을 넘지 않도록 지도하도록
 한다. 올바른 신심의 토대 없이, 단순히 신비로운 체험을 원하는 이유로 이러한 기도를 접하는 것은 경계
해야 하는데, 이는 '신령한 언어'가 천주교의 전통적인 영성이 아니라 20세기에 도입된 일종의 신비체험인
만큼 가톨릭 정통 교리를 벗어나 신비주의적 신앙에 빠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일례로 90년대 말에 성령쇄신운동회를 통해 국내 천주교 내부에 가계치유가 신학적 비판 없이 확산되어 신
자들 사이에 금전적 피해가 발생하고 심지어 사상자까지 나오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긍정적인
요소도 없지는 않겠지만, 은사를 쫓아다니고 거기에 매달리는 기복적 사고를 갖거나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
면서 내적 탐욕과 교만에 빠지거나 봉사자들끼리 상처를 주고받아 물의를 빚는 등 좋지 않은 모습을 나타내
기도 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성령쇄신운동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교회 내부로부터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3. 현재

19세기까지는 교회에서 방언을 잘 하지 않다가 20세기 초부터 폭발적으로 재개되기 시작하더니, 현재 들어
서는 많은 기독교 교회에서 시행되고 있는 은사가 되었다. 특히 은사주의 운동, 그 중에서도 신사도 운동이
퍼지면서 더더욱 널리 확장되었다. 방언을 하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마지막 때에 성령이 만인에게 부어진
다는 요엘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한다.

미국과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신비주의적 방언을 처음 한 사람이 19세기 스코틀랜드의 목사였던 에드워드
어빙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우습게도 이 사람의 주장을 그대로 이어받은 Catholic Apostolic 계열 교파들
은 방언을 인정하지 않는다. 현대 개신교에서 본격적으로 방언현상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1906년 로스엔
젤레스에서 생겨난 아주사 스트리트 부흥운동의 영향이라고 본다.

대부분은 패턴화되어 있는데, 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같은 느낌의 소리나 옛날
테이프 5배속급의 속도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 대개는 상당히 빠르게 말이 나오기 때문에 몬데그린 현상이
심하다. 외국어(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같이 들리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외국어는 아닌 경우도 있고, 묘
하게 불경 암송을 듣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특히 그 조음 원리가 너무 뻔히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
으며 사회자가 아예 대놓고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일부 종교 연구가들은 동일한 단어를 빠르게 반복하는
것, 특히 그 발음 속에 ㄹ 발음이나 ㅁ 발음 등이 많이 들어있는 경우는 종교를 막론하고 다양한 주술적 진
언들 속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얼떨결에 기도회나 부흥회에 끌려간 비기독교인이 제대로 겁먹거나 쫄게 만드는 대표적인 요인 1순위. 그래
도 기왕 교회에 갔으니 경건하게 기도나 해야겠다 마음먹는 순간 사방에서 저런 소리가 왁자하게 들려온다면
 언뜻 생각하기엔 황당함이나 기분이 더럽다거나 할 것도 같지만, 막상 기도시간에 저런 사람들에게 둘러싸
여 있으면 공포감이 먼저다. 특히 주변에 알던 사람이 이러거나, 앞에서 기타나 드럼의 쿵쿵거리는 소리까지
합쳐지면 정말 무섭다.

방언을 내뱉는 상태에 들어가면 시간감각이 사라져, 10분 정도 기도한 것 같지만 알고보니 1시간이 넘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극도의 흥분이나 격양 상태가 되면 주위를 인지하는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기독
교의 오리지널이 아니라 토속종교 등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무당(셔먼)의 트랜스 상태와 거의 동일하다.
환시, 환청, 환각 등의 현상도 동일하다. 고행이나 약, 명상등을 통해 종교적 무아지경을 경험하는 기타 다른
 종교들과 비슷한 부류로 볼 수 있다. 게다가 가끔씩 불교 승려도 방언을 하는 경우가 있기에 어떤 사람이 하
는 방언이 실제로 기독교에서 믿는 그 신에 관련된 현상이 맞기는 맞는 건지 확정해서 말할 수도 없게 되었다.
실제로 기독교 관련 현상이 아니라 보편 종교적 체험의 일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야매적인 입장에서 설명하면 교회에서 정해주는 기도시간을 때우기 위해 사용된다. 기도제목은 몇 개 안 떨
어지는데 기도시간이 한 시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바로 위 영상에도 있지만 간혹 성령이 임하셔서 하는 말이라며 어떤 예언이나 정보 등을 말하는 경우가 있는
데 성경에서는 그러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 냉정히 말해서 무당이 신들려서 내뱉는 소리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특히 다른 영혼이 말을 해 준다는 경우에는 이단이라고 취급해도 좋다.

특히 검증에 깐깐한 천주교의 경우, 천주교에서 흠숭(하느님)하거나 공경하는 존재(천사들과 성인들)의 이름을
 대고 나오는 계시들을 사적 계시로 간주하고, 설사 교황청에서 인정한 것이라도, 못 믿겠으면 안 믿어도 전혀
 잘못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하물며 아예 인정받지 못한 것이라면, 한술 더 떠서 하느님이나 성인들, 천사들이
아닌 다른 영적 존재와 소통했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4. 폐해

은사의 특성상 심지어 1~2세기의 초기 기독교에도 폐해가 있었다. 기독교 내에서 이런 방언의 폐해가 발생하는
것은 방언 그 자체보다는 방언으로 인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것들이 이 주를 이룬다. 실제로 방언에 대해서 성경
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최초의 언급이 "방언 하는 거 잘된 일이긴 한데 막 자랑하고 다닐 일은 아니다~"였음을
보자면 이는 명백하다.

우선 가짜 방언을 말하는 경우를 들 수 있는데, 많은 경우 신앙심과 관련되어 있다. 물론 방언과 신앙심은 관계
가 없지만, 다들 방언하는 분위기라서 방언을 못하면 신앙심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질까봐 방언을 하지 못하는데
도 방언을 하고 있는 양 따라하는 사람도 있고, 그저 '난 방언을 받을만큼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다.'라고 자신
의 신앙심을 자랑하기 위하여 방언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문제는 위에서도 밝혔다시피 초기 기독교에도 있었던 심각한 문제였으며, 특히 코린토스 지방에 있던 교
회가 이러한 폐단이 심했다. 사도 바울로는 이러한 코린토스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로는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하여 몇가지 방언 사용의 원리와 원칙을 정해주었다.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사람은 성령의 힘으로 신비한 일을 말하는 것이므로 아무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은 사람들을 키워주고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려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상한 언어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도울 뿐이지만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사람은 교회에 도움을 줍니다. 나는 여러
분이 모두 이상한 언어로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만일 이상한 언어를 해석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것이 교회의 이익이 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이상한 언어로 말하는 사람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이 더 위대합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4:2~5(공동번역)

그러면, 형제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함께 모일 때에는 찬송하는 사람도 있고 가르치는 사람
도 있고 하느님의 계시를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이상한 언어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지만 모든 것은 교회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상한 언어를 말할 때에는 둘이나 많아야 셋이
차례로 말해야 하고 한 사람은 그것을 해석해 주어야 합니다. 해석할 사람이 없을 때에는 교회 안에서는 그런
말을 쓰지 말고 혼자서 말하거나 하느님하고만 말하십시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4:26~28(공동번역)'''

이러한 바울로의 편지에서 드러난 바울로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1. 방언 은사를 가진 자들은 방언 해석의 은사를 겸하여 가짐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그것을 삶에
적용시킴으로 교회의 덕을 세워야 한다.

2. 공중 예배시 초신자들을 포함한 예배자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기도함으로 방언의 은사를 소
유하지 못한 신자들을 배려해야 한다.

3.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방언의 은사를 남용하거나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려는 유치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

또한 바울로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끼리 있는 곳에서는 되도록이면 방언을 사용하지 않을 것을 권면하고
있다.

형제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가서 이상한 언어로 말한다고 하더라도 만일 어떤 계시나 지식
이나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이나 가르침을 전해 드리지 못한다면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
니까? 피리나 거문고 같은 생명 없는 악기도 소리는 납니다. 그러나 악보대로 분명하게 연주하
지 않으면 무슨 곡이 연주되고 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또 나팔부는 사람이 분명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 누가 전투 준비를 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이상한 언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면 그것이 무슨 말인지를 누가 알겠습니까? 결국 여러분은 허공에다 대고 말하는
 셈입니다. 세상에는 갖가지 말이 있지만 뜻 없는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떤 말
의 뜻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과 나는 서로 외국인이 됩니다. 성령의 선물은
 여러분이 갈망하는 것이니 되도록 풍성하게 받으십시오. 그러나 그것은 교회를 돕는 것이어야
합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4:6~12(공동번역)

즉 같은 언어를 사용하여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하는 것이 더 이롭다고 본 것이다. 이 또한 어디까지나
 '방언 은사를 가진 자들은 방언 해석의 은사를 겸하여 가짐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그것을 삶에 적용
시킴으로 교회의 덕을 세워야 한다.'의 원칙에서 방언을 사용하지 않을 것을 권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방언이 애초에 성령의 임재하심의 증표인 만큼 바울로는 방언 그 자체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다. 오히려 자신이 방언 말함을 자랑하기까지 했다.

다만 현대 기독교에서는 바울로가 세운 원리와 원칙을 잘 지키지 않고 있다. 특히 개인적인 체험을 강조하는
감리교단이나 순복음교단이 이런 경향이 심한 편이다. 애초에 방언 자체가 성경의 기록과 많이 달라지기도
했고, 당연히 위에서 언급한 폐해들이 발생했으며 이미 2000년 전에 했던 삽질을 또 하고 있다. 방언이 성령
이 임재하신 표징으로 해석될지라도 이에 지나치게 집착해 신앙생활을 왜곡하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요는 비단 방언 뿐만 아니라 소위 '은사'로 분류되는 모든 행위들이 그렇다.

하지만 사람들은 특이한 거 좋아한다는 게 문제로 신사도 운동과 같은 현상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이 뜨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이 현상에 정말 집중을 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쓰러짐 현상이라든가 울부짖음
이라든가, 치아가 금으로 변한다던가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면 십중팔구는 이 신사도 운동과 관련된 것이다.
 문제는 각 교단에서는 비성경적인 것이 분명하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 알파코스와 G12, 경배와 찬양의 형태
로 이런 것들이 교회 내부에 엄청나게 침투해 들어오는데도 막지를 않는다. 방언도 이 과정에서 딸려 들어오
는 경우도 있다.

-발췌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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