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멋지게 죽는 방법 천화(遷化) 웰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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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학자 조셉 탬벨은 어느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명예롭게 죽는 방법을
이렇게 소개한다.
탄성이 아주 좋은 나무 끝을 로프로 묶어 한껏 잡아당겨 고정시켜 놓는
다. 나무 끝에 칼을 묶어놓고 그 앞에 죽고자 하는 사람이 무릎을 끓고
목을 칼에 댄다.
다른 사람이 로프로 끊으면 맹령하게 되돌아가는 나무의 탄성에 의해
사람의 목이 끊어지는 동시에 머리가 하늘 높이 날아간다.
끊어진 머리가 멀리 날아갈 수록 죽은 이의 명예가 그만큼 고양된다고
한다.
잔혹함과 유머가 섞인 멋진 임종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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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으러 간다네.
죽는다는 것은 확실하다네.
죽음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다네.
다만 그 시간이 언제일지 불확실할 뿐이라네.
나는 죽으러 간다네.
피할 길 없는 엄연한 숙명 앞에 중세 시인들은 이런 영탄의 노래를 불
렀다.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우리가 결국 죽음을 맞으리라는 것만큼
확실한 일도 없다. 이 숙명을 담담히 받아들인 사람들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 모두 다시 만나 즐거운 곳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를 염원하면서
마치 소풍 가듯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출처: 중세의 죽음 : 서울대중세르네상스연구소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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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가장 멋진 죽음 - 천화(遷化)
- 엔딩연구소
죽음의 흔적이 없는 것. '천화(遷化)'라고 한다. 옛고승들은 흔적없는 죽음을 '천화
(遷化)'라 하여 가장 멋진 죽음으로 여겼다. 이승의 움직임을 끝내고 다른세상의 움
직임으로 옮긴다는 의미로 전설적인 고승들의 죽음형태라고 한다.
법정스님은 이 '천화(遷化)'의 방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나무꾼도 안다니는 길로 자기가 걸음을 옮길 수 있는데 까지 들어간다고,
그리고 쓰러지는 거야. 그래도 기운이 남아 있으면 나무 긁어서 깔고,
나무 긁어서 덮고 그리고 눕는 거지. 완전 기진맥진 상태에서 그냥 그대로 가는 거야.
그러면 시체도 못찾는 거지. 산속이니까 누가 찾을 수 있겠어.
그것이 가장 멋진 죽음이지. 흔적없는 죽음. 중들이 꿈꾸는."
"제주로 가는 밤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서 그대로 낙하하면 그게 곧 천화(遷化)야."
-출처:ending.co.kr/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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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遷化)’를 꿈꾸며...
2012/06/04 01:02 정운현
‘천화(遷化)’를 아십니까?
저도 이 단어의 뜻을 알게 된 건 며칠 전 EBS에서 ‘부처님 오신 날’ 특집으로 방영한
‘법정스님의 의자’를 보고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이날 프로에 출연한 <고승열전>의
저자 윤청광 씨가 생전에 법정스님에게 흔적도 없이 생을 마친 고승들은 어떻게 생을 마
친 것이냐고 묻자 법정스님께서 그건 ‘천화’라고 답하셨다고 합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천화(遷化)’란 1) 변하여 바뀌다 2) 불교용어로 고승(高僧)이
죽다. 이 세상의 교화를 마치고 다른 세상의 교화로 옮긴다, 라고 나오더군요.
윤 선생이 전한 바에 따르면, ‘천화’란 임종을 앞둔 고승이 홀로 깊은 산속으로 걸을
수 없을 정도까지 걸어가 어느 지점에서 쓰러지면 스스로 나뭇잎을 주워 모아 바닥에
깔고 다시 그 몇으로 자신을 덮어 생을 마치는 형태라고 합니다. 깊은 산속에서 홀로 생
을 마감하는 이런 죽음은 아무도 알 수 없어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법정스님 다비식에서 점화하기 전에 스님의 법구 좌우로 화목을 채우는 장면
이날 윤 선생이 전한 바에 따르면, 법정스님은 생전에 또 다른 형태의 ‘천화’를 꿈꾸
었는데 그건 밤배를 타고 가다가 아무도 몰래 어둡고 깊은 바다에 뛰어내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역시 ‘완벽한 천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언젠가 법정스님이 제주도에 한동안 가 계신 적이 있는데 이 얘기를 전해들은 주변사람
들이 혹시 스님이 그리 하실까 싶어 얼른 가서 모셔왔다고 합니다. 아마 시간이 더 지
체되었다면 스님께서 그리 하셨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말년에 폐암을 앓으셨던 스님께서는 잠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하셨는데 그 때를 담은
사진을 보면 스님의 표정이 몹시 부자연스러워 보이더군요. 평소 ‘천화’를 꿈꾸셨던
스님으로서는 병석에서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몹시도 부자연스러웠
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거부가 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코끼리들의 상아가 떼로 모아져 있는
'상아동굴'을 발견하면 가능한데요, 코끼리는 죽을 때 자기들만이 죽는 장소로 찾아가서
생을 마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장소가 비밀스러워 사람들이 찾아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코끼리 상아
오래 전부터 제가 가졌던 궁금증 가운데 하나는 야생동물들은 대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죽
길래 시체를 남기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미물도 태어나면 죽게 마련인데 야생
에서 살다가 생을 마치는 동물들은 그 죽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체 그들의 시체
는 어디로 갔을까요? 모르긴 해도 그들 역시 전부 ‘천화’의 형태로 생을 마감하는 게 아
닐까 싶습니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절한 때 저는 이 도시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1차 천화’입니다. 그리고 어느 구석에선가 추하지 않을 만큼 산 연후에는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2차 천화’입니다. 지금의 마음 같아서
저 역시 ‘천화’의 참뜻대로 전인미답의 깊은 산속으로 찾아 들어가 적당한 자리를 잡고는
거기서 며칠 가쁜 숨을 쉬다가 솔가지와 낙엽을 이불 삼아 깔고 덮고는 이생을 마치고 싶
습니다.
그러면 제 살덩이는 늑대, 여우, 살쾡이, 오소리 같은 산짐승이 먹고, 눈알이나 남은 살점
몇몇은 매, 수리부엉이, 올빼미 같은 날짐승이 먹고 그래도 남은 살점은 들쥐나 지네 같은 쬐
끄만 녀석들이 와서 즐기겠지요. 마지막으로 남은 뼈는 햇볕에 빛바래 백골이 되었다가 모진
풍상에 깎이고 녹아 땅속으로 들어가면 그 남은 뼛조각조차 땅속의 미생물들이 깨끗이 마무
리를 해주겠죠.
이 세상에 올 때도 혼자였으니 갈 때도 혼자 가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생각합니다. 또 애초에
무(無)에서 왔으니 다시 무(無)로 돌아가는 것도 정한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남이 어딘
가에서 비롯됐다면 죽음은 그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슬퍼할 것도, 아쉬워
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고향을 찾아가는 귀향객의 발걸음만큼이나 가볍고 자유로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문출처:
http://m.blog.ohmynews.com/jeongwh59/293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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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삶이었습니다" 품위있게 죽음 끌어안은 거목들
송고시간 | 2015/08/29 09:00
지미 카터·저명 의학자·교수…의연히 시한부 공개·여생의 각오 공유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멋진 삶이었습니다. 수천 명의 친구를 사귀었고,
신나고 흥미진진하고 기쁜 삶을 살았습니다."
이달 초 시한부 판정을 받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91)은 지난 20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
었다. 한때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에게 간암이 뇌로 전이됐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기
위해서였다.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 공개석상에서 자신의 시한부 판정을 알리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치매를
앓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등은 서면발표를 택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예의 그 사람 좋은 웃음으로 몰려든 취재진을 맞았다. 여유 있는 얼굴로 때론 농
담도 섞어가며 불과 보름 전 알게 된 자신의 몸 상태를 설명했다.
그는 "이제 무슨 일이 닥쳐오든 완전히 편안하다"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이제 신
의 손에 달려 있다고 느낀다"고도 했다.
손자인 제이슨(40)은 늘 솔직한 걸 좋아하던 할아버지가 평소와 다름없는 방식으로 숨김없이 투병
사실을 알린 것이라고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퇴임 후 카터재단을 세워 세계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 증진을 위해 애써온 카터 전 대통령이 임박한
죽음을 알리며 남은 생에도 할 수 있는 만큼의 활동을 하겠다고 밝히자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품위 있는 전직 대통령의 귀감'이라고 치켜세웠다.
NYT도 이번 기자회견에 대해 퇴임 후 가장 주목할 만한 활동을 보여준 카터 전 대통령의 행보와 일
치한다고 높게 평가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 사흘 뒤, 퇴임 후 30여 년간 성경을 가르쳐온 주일학교 강단에 섰다.
평소 40명 정도가 카터 전 대통령의 성경교실에 참석했지만, 이날은 700여 명이 몰렸다.
앞서 올해 2월에는 미국의 저명한 신경과 전문의 올리버 색스(81)가 NYT 기고문을 통해 자신의 임박
한 죽음을 알리며 여생에 임하는 태도를 고백해 감동을 줬다.
색스는 쉽게 비정상으로 치부돼버리는 희귀질환 환자들의 삶을 애정 어린 눈으로 관찰하고 그들의
특별한 재능을 아름다운 언어로 기록해온 '의학계의 시인'이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화
성의 인류학자' 등의 저서로 한국 독자에게도 친숙하다.
뉴욕대 의대 신경학과 교수인 색스는 "남은 몇 개월을 어떻게 살지는 내게 달렸습니다. 풍성하고 깊
고 생산적으로 살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정을 깊게 하고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더 많이 쓰고 여행하면서 인식과 통
찰력의 새 지평에 다다르려 합니다"라고 다짐했다.
색스는 "사람이 죽으면 채워질 수 없는 구멍을 남깁니다. 모든 인간이 자신만의 길을 찾고 자신만의
삶을 살다가 자신만의 죽음을 맞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이지요"라고 털어놨다.
이어 "두려움이 없는 척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강한 느낌은 고마움입니다. 저는 사랑했고,
사랑받았습니다. 많은 걸 받았고 돌려주었습니다"라면서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저는 지각이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고 이는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습니다"라고 기고문을 맺었다.
'마지막 강의'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대중과 나눈 40대의 교수도 있었다. 췌장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 낙천적이고 열정이 가득한 고별 강의로 대중의 심금을 울렸던 미국 카네기멜런대 랜디 포시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포시 교수는 47세로 세상을 떠나기 9개월 전인 2007년 9월 학생과 동료 교수 400여 명 앞에서 '어릴
적 꿈을 진짜로 이루기'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강의'를 했다.
그는 자신의 일생이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회상하면서 "장벽은 절실하게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걸러내려고 존재합니다. 장벽은 당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멈추게 하려고 거기 있
는 것입니다"라며 용기를 북돋웠다.
그의 강의 모습은 유튜브에 동영상으로 올라 수백만 명에게 감동을 줬다. 한국에도 '마지막 강의'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삶의 소중함을 나누고자 했던 이들 가운데 베스트셀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주인공 모리 슈워츠 교수를 빼놓을 수 없다.
루게릭병 판정을 받은 슈워츠 교수는 제자인 작가 미치 앨봄에게 인생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일러줬다. 앨봄이 노교수의 '인생수업'을 받아적어 1997년 출간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40여
개 언어로 번역돼 1천400만 부가 팔려나가며 세계인의 가슴을 적셨다.
nar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5/08/29 09:00 송고
-원본출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8/27/0200000000AKR201508272055000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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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큼 살고, 임종이 다가올 때 쯤이라면 우리는 죽음을 준비해야한다.
이때 다가오는 죽음에 맞서고 싸우려고 한다면 비참한 최후를 당하게 된다.
평소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고, 어느정도 능동적 자세를 취하도록 연습을 해야
멋진 죽음을 맞이할 수있다.
아래 기사는 '당하는 죽음', '더 살려는 이들의 죽음'이 멋질 수 없다는 내용을 담는다.
참고로 읽어보시고, 평소 나름 죽음의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연우생각
---[보충자료: 멋진 죽음은 없다]
멋진 죽음은 없다
[최철주의 ‘삶과 죽음 이야기’<7>7>
동아일보입력 2012-10-03 03:00수정 2012-10-04 04:33
멋있는 죽음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은 7년 전 내가 호스피스 교육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실
습을 나갔을 때도 그랬다. 그 이후 죽음교육 강의를 할 때는 환상을 부수라는 이야기부터
먼저 꺼내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 영화나 TV 드라마에는 이런 장면들이 허다했다. 말기 암 환자로 내일을 기약할 수
없게 된 주인공이 어느 날 세상을 떠나게 된다. 얼굴이 쪼그라들도록 쇠약한 모습으로 분
장한 주인공이 간신히 입을 열며 짤막한 유언을 남긴다. 그가 드디어 고개를 떨어뜨린다.
침대 옆에 있던 가족들이 일제히 오열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장중한 음악이 흐르고 ‘그가
눈을 감은 뒤…’라는 내용의 내레이션이 시작된다.
웰다잉 강의를 듣는 대학생들이나 나이 지긋한 중년의 수강생들조차 그런 모습에 익숙해 있
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모두가 인생 최후의 장면으로 그리고 있는 이미지는 별개의 세상
이었다. 더 의외의 일은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죽음을 맞는 장면이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들어가 본 서울의 5대 종합병원 중환자실은 전혀 그게 아니었다. 말기 환자들
가운데 고통과 비명, 분노와 앙탈, 끝없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듯한 그러나 아주 무생물
에 가까운 환자들이 거기에 누워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는 가슴을 쥐어짜는 듯 슬픈 모습으
로 숨을 거둔다. 죽음의 표정은 가족들 가슴에 깊이 파고든다. 그것은 지울 수 없는 잔상으
로 늘 눈앞에 어른거린다. 아픔이 오래도록 남아 유가족이 버텨내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
다. 말기 환자들이 기억하고 있는 중환자실은 그토록 살벌하기만 하다.
나와 함께 호스피스 교육을 받았던 중환자실의 한 수석간호사와 드라마의 ‘멋진 죽음’을
화제로 올린 적이 있었다. 그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하는 말이 이랬다.
“세상을 곧 떠나게 된 환자가 가볍게 미소를 흘리며 몇 마디 유언을 남길 틈이 어디 있
어요? 온몸이 아프고 탈진이나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데 뭐 살짝 웃어요? 유언은 무슨 유언
이에요? 말도 안 되는 환상이지요. 당사자라면 그게 가능하겠어요? 어디 한번 해보세요.”
그렇게 속사포로 대꾸하며 나를 놀렸다.
TV가 만든 마지막에 대한 환상
그는 세미나에서 연단에 오르자마자 정색을 하며 ‘드라마의 죽음은 거짓이다’라고 비판했다.
참석자들의 반응이 참으로 미묘했다. ‘우리가 그런 것도 몰랐다니’ 하는 것과 ‘정말 우
리는 그런 모습으로 떠나는구나’ 하는 감정들이 얽혀있었다.
드라마나 영화는 멋있는 죽음을 많이 다룬다. 극적 효과를 노리는 작가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의료현장을 너무 모르는 게으름의 탓도 있을 것이다. 197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기
까지 TV 드라마에 나타난 암 환자들은 극중에서 거의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냥 죽어야 했으
니 드라마 속에서는 생존자가 있을 수 없다. 참으로 거친 드라마가 많았다. 멋있는 죽음의
희생자가 된 주인공들이 시청률을 높이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몰라도 우리들의 인생
마무리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 판타지였다. 지금은 암환자의 생존율이 60%를 훨씬 넘어
서고 있다. 예전 드라마나 영화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들은 죽었어야 했는데 어느덧 ‘부활’
한 생존자로 나타났다.
1989년 히로히토 일왕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일본 전국은 통곡의 세계였다. 왕궁 앞에서 우는
사람들의 대열이 끝없이 이어졌다. 언제나 재미있는 드라마나 쇼로 시청자를 옭아맸던 일본
의 모든 민간방송조차 관련 프로그램 방영을 일절 중단하고 열흘 넘게 추도방송을 계속할 정
도였다. 도쿄나 오사카 유흥가의 네온사인이 일제히 꺼졌다. 전제군주 시대의 통제된 사회에
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때 나는 취재기자로 히로히토 장례식에 참석했지만 그의 병명
을 알 수 없었다.
일본 국민들은 장례식이 끝난 한참 후에야 그가 췌장암으로 쓰러졌으며 장기간 고통스러운
연명치료를 받아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늘처럼 모셨던 그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계속해
왔다는 것을 국민은 전혀 몰랐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히로히토는 수십 가지 의료 기구에 둘
러싸인 채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의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한 반작용으로 존엄사를 선택하는 일본인이 늘어났다. ‘나는
저런 식의 죽음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적어도 인간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자
연스러운 죽음을 희망했다. 그때가 일본의 존엄사 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였다. 편안한
인생 마무리를 준비해야겠다는 깨우침이 여러 사람에게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환상 깬 일왕의 최후
최철주 칼럼니스트
나는 우리의 드라마에서 부딪히는 죽음과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수많은 고위직의 투신자살 사
건, 한강에 몸을 던진 전 대법원장 이야기를 꺼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토록 국내에서 엄
청난 파문을 일으켰던 죽음의 거울이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춰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료현장에서 목격하는 보통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배울 것은 참으로 많다. 그들의
편안한 죽음에는 큰 울림이 있다. 삶의 배움터가 낮은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말기 환
자도 마음먹기에 따라 편안한 생활을 충분히 지속할 수 있으며 후회 없는 인생 마무리에 디딤
돌을 놓을 수 있다. 그때는 고달픈 삶도 힘을 얻는다.
최철주 칼럼니스트 choicj114@yahoo.co.kr
-원문보기: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40100000123/3/70040100000123/20121003/49812354/1#csidxe7ba6b55a42f40caa5e5e1f762914d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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