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15.
[사후세계] 죽어도 구원받을 수 있다 연옥
[사후세계] 죽어도 구원받을 수 있다 연옥
00 낯선이의 방문
마리아: 그 때는 1940년이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새벽 3~4시 정도였는데, 누군가
내 방에 들어 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바로 잠이 깨서 도대체 누가 내 방에 들어
왔는지 살펴봤습니다.
질 문: 그날 밤에 어떻게 된 건가요?
마리아: 처음 보는 낯선 남자가 있었는데, 천천히 앞뒤로 걸어 다녔습니다. 내가
"도대체 당신은 어떻게 들어왔죠? 어서 나가요! "하고 무섭게 소리쳤지만, 그는
전혀 듣지 못한 것처럼 초조하게 방안을 돌아 다녔습니다. 그래서 "뭐 하는 거
예요?"라고 소리쳤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그를 잡으
려 손을 내밀었는데, 허공뿐이었고 아무 것도 없었죠. 그래서 침대로 돌아 왔는데,
또 그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어떻게 볼 수는 있는데, 잡을 수는 없는
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일어나 그를 잡아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려고
했는데, 역시 허공이라서 당황스러웠습니다. 다시 침대로 돌아왔고, 그는 다시 나
타나지 않았습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다음 날, 미사가 끝나고 영적 지도신부님께 지난 밤의
일들을 모두 말했습니다. 신부님은 다시 그 사람이 오면 "누구냐"고 묻지 말고
"내게서 무얼 원하느냐"고 물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밤, 다시 그 사람이 나타
났습니다. 내가 "당신은 나에게서 무얼 원합니까?" 라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나를 위해서 미사 3 대를 봉헌해 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해방될 것 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연옥의 영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영적 지도 신부님도
이를 확인해주셨어요. 신부님은 불쌍한 연옥 영혼들을 절대 내치지 말고, 관대하
게 받아들이고 그들이 청하는 것을 들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연옥의 고통받는 영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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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 영혼들이 말한다' 라는 이 책에서 마리아 심마는 (-1915 -2004-) 연옥 영혼
에 관한, 최근의 이야기와 교회의 가르침을 잘 설명하고 있다. 또한 세상을 떠난 영
혼들의 영복과 자신의 행복 을 위한 선택이 지상에서의 우리 삶에 좌우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발췌출처: 평화의 모후 선교회
http://www.qpmm.org/reading/3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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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저는 제 수호천사를 보았는데, 그 천사가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하였습니다. 한 순간
저는 넘실대는 불길이 어슴푸레 바라보이는곳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수많은 영혼
들이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기도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직 우리만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수 있습니다. ... 그때부
터 나는 고통받는 영혼들과 더욱 가깝게 친교를 맺고 있습니다. (일기 중..에서)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연옥에서 영혼을 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물론 미사입니다." - 성 토마스 아퀴나스 -
연옥 영혼을 구하는 최상의 방법은 그 영혼을 위해 무한한 가치를 지닌 미사를 봉헌하
는 것이다. 이는 교회가 구령을 위하여 가장 권장하는 바이기도 하며, 또 실제로 많은
성인들이 미사의 도움으로 천국에 오르는 연옥 영혼들의 수많은 환영을 체험하기도
하였다.
-발췌출처:
http://www.dallaskoreancatholic.org/churchboard/1567
03 연옥설화 중에서
16세기 로마 시몬 가(家)의 왕자 바오로가 여덟 살에 죽었다.
바오로는 언제나 성 필립보 네리에게 고해성사를 보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의 병세가 악화되었다. 왕비는 성 필립보 네리에게 임종 때에 있어
달라고 청했다.
“그때가 되면 알려주십시오.”
성인은 왕비에게 이렇게 말하고 그 자리를 물러나왔다.
그날 밤 바오로의 병세가 대단히 나빠졌다. 날이 새기 전에 심부름꾼이 성인을 부르러
갔다. 마침 미사가 시작되었기에 미사를 끝마치자마자 성인은 아이에게로 갔으나 이미
한 시간 전에 아이는 죽었다는 것이었다.
성인은 아이의 손을 잡고 슬픔에 잠겨 침대 곁에 꿇어앉아 기도했다.
그러자 아이는 홀연 눈을 뜨고 성인에게 말했다.
“아, 신부님이세요?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고백할 때에 죄를 잊어버렸었어요.”
잠시 후 아이의 고백을 듣기 위하여 신부만 혼자 남았다.
고해성사가 끝나고 성인은 모든 이 앞에서 아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제 바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 봅시다.”
성인은 아이에게 물었다.
“바오로야, 너는 우리하고 같이 있고 싶으냐,
아니면 아까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으냐?”
“신부님, 아까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성인은 모친에게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바오로는 당신의 뜻대로 할 겁니다.”
두터운 신앙의 소유자인 모친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바오로가 우리와 함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곳에 가 있다면
억지로 붙들지는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아이는 곧 눈을 감고 다시 죽었다.
이 아이는 소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연옥에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에 돌아오기보다는 거기 있기를 원했다.
-“성 필립보 네리와 왕자” 중에서
-발췌출처:
http://www.yes24.com/24/goods/2812093
[연옥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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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을 알고 있나요? ]
연옥이란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데 우리는 어떻게 연옥을 알고 있죠?
그렇죠. 성경을 눈을 씻고 뒤져봐도 연옥이란 낱말은 안 나옵니다. 연옥이란 단어는
연구에 따르면 12세기에나 비로소 등장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연옥은, 저승이라는
사후 세계의 공간이 개념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생긴 것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공간적으로 하늘과 저 땅 속 깊이 자리 잡은 두 곳이 인간의 머리 안에 사
후 세계로 있었으나, 나중에는 그리스도께서 수난 받고 죽었다가 되살아나셨다는 사
실에서, 그분이 머무셨던 죽은 이들의 공간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문제제기가 생겨
났습니다. 그것이 제 3의 공간을 떠올리게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다녀오신 저승이 지옥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지옥에도 이미 구원을 위한
출구가 생겨난 셈인데, 그렇다면 지옥은 사실상 없는 것이 되는 겁니다.
지옥이 없다면 아주 행복하겠죠? (개인적으로 답해 보시길!)
그러나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지옥을 하느님의 빛으로부터 절대적이고 영원히 단절된
상태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내려가셨다가 사흘 만에 돌아오신 그 공
간은 지옥과는 다른 죽은 이들의 세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연옥이 있다는
단서입니다.
이렇게 등장한 연옥은 천국에 이르기 위해 영혼이 정화되어 다듬어지는 공간으로 여
겨져 왔습니다. 정화의 과정은 이미 이승에서 시작된다고도 할 수 있는데, 즉, 이승
에서 어려운 삶(병고, 가난 등)을 통해 영혼이 받아야 할 정화의 시간을 이미 보냈거
나, 기도, 자선 등의 공덕을 많이 쌓았거나 순교를 통해 신앙을 증거한 이들은 이미
살아있을 때, 정화의 단계를 거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니 죽음을 맞이하여 그들
의 영혼은 즉시 천사들에 이끌려 천국으로 향하게 되어 있지만, 천국으로 가기에는
아직 미흡하여 일정한 시간동안 영혼을 다듬어야 하는 이들에게는 정화의 시간이 필
요하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이리하여 성경에는 명시되지 있지 않았음에도, 마땅히 필요한 공간이 (인간의 이성적
추론을 통해) 생겨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옥이 있어야 한다는 또 다른 이유가 있
다면,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것이었습니다. 즉, 죽은 이들이 세상
마지막 날 결정적인 판결을 받을 텐데 이때까지 미결의 상태로 있는 영혼들에게 머물
공간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연옥은 공간적으로 지옥과 인접한 곳이자 생태환경도 지옥과 거의 다를 것 없는 열
악한 곳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미 느끼셨겠지만, 지옥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구원에 대한 희망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연옥은 그 기능상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영혼이 정화되는 단계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옥에서는 일단 희망을 잃지 않고 버티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연옥 영혼 중 가
장 버림받고 소외된 영혼이 있다고 신앙인들은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치면서 가장 버림받은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 상태의 영혼에게
전대사*를 받아 기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승에서 살아있는 신자들의 도움
을 받아 하루라도 빨리 천국에 이른 영혼들이 그냥 입을 닦겠습니까? 그 영혼은 자신
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산 자들을 위해 기도해 준다는 믿음이 우리 신앙 안에는 있습니
다. 이것이 ‘모든 성인의 통공’입니다. 천국에 이른 영혼들, 곧 성인들의 기도가 이
승과도 통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 이어지는 세계가 이분법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게 행복하지 않으신가요? 연
옥은 우리에게 고통 안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을 건네주는 공간으로 보입니다.
연옥은 하늘에 이르는 여정의 최종 단계입니다 (물론 천국 직항노선을 타는 분들도
계시지만). 지금의 삶이 고달프다면,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이미 연옥을 경험하고 있
는 것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영혼이 정화되고 있다고 이해해도 좋겠습니다.
*전대사: 우리는 고백성사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 받아야 하는 벌이 남아있는데 그것을 교회용어로는 ‘잠벌’이라고 합니다.
잠벌은 통회와 회개에 대한 내적인 태도를 행실로 드러내 보이는 것, 즉 보속행위를
통해 면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속을 면제해 주는 것을 ‘대사’라고 합니다.
대사에는 전대사(indulgentiae plenariae)와 한대사(indulgentiae partiales)가 있습
니다. 전대사는 죄인이 받아야 할 벌을 전부 없애주는 것이고, 한대사는 그 벌의 일부
를 없애는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전대사를 받아 가장 버림받은 영혼에게 양도
를 할 경우, 그 영혼은 모든 벌을 면제받고 천사들에 이끌려 하늘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박종인 신부 (요한) editor@catholicnews.co.kr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출처: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36
[연옥을 방문한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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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 [purgatory, 煉獄 (라틴)purgatorium ]
가톨릭 교리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아있는 동안 지은 죄를 씻고 천국으로 가기 위해 일
시적으로 머무른다고 믿는 장소이다.
가톨릭 교리에서 연옥은 천국으로 가기에는 자격이 부족하지만 지옥으로 갈 정도의 큰 죄를
짓지 않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머무르는 곳이다. 영혼들은 연옥에서 보내는 고통스러운 시
간을 통해 이승에서의 죄를 씻고 정화한다. 연옥이 정죄계(淨罪界, 깨끗함과 죄 사이의 경
계)나 정화소(淨化所, 깨끗해지는 장소)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화의 방법으로는 ‘정화하는 불(purgatorius ignis)’이 알려져 있는데, 이는 신약성서
《고린도전서》 3장에 나오는 ‘심판의 날에 내려질 불’에 근거하고 있다. 문화 인류학자들
은 불이 가지고 있는 신화적·고대적 이미지인 소멸, 소생, 불멸, 시련의 통과, 단련, 신의
상징, 물과 불의 대비와 환기(물세례vs.불세례), 자연의 4원소(물, 불, 흙, 공기) 등이 영
향을 끼쳤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연옥에서의 불이 물질적 의미인지 정신적 의미인지에 대
한 명확한 정의는 내려지지 않았다. 한편 연옥은 심판의 공간이 아닌 정화의 공간이므로 연
옥으로 들어간 영혼들은 지옥으로는 가지 않는다. 단, 죄의 크고 작음, 이승에서의 회개와 선
행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연옥에서 머무는 시간은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체류 기간을 가톨
릭에서는 신의 뜻이 작용한 신비로움이라고 정의한다.
연옥의 역사
저승과 이승 사이의 중간 단계에 대한 사고는 초기 기독교 시대 이전부터 동서양에 걸쳐 광범
위하게 나타난다. 고대 인도의 베다 시대 말기에는 이승에서의 공덕에 따라 망자들에게 주어
지는 3가지 길에 관한 믿음이 있었다. 이중에서 중간 길은 심판이 없고 윤회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연옥과 차이를 보이나 어둠과 빛 사이에 있는 연기로 싸인 공간이라 점에서는 유사점이
있다. 유대교의 스올(Sheol) 역시 지옥과 낙원 사이에 있는 공간으로 고통 받는 장소는 아니
지만 망자들이 대기하는 어두운 공간이라는 점에서 연옥과 유사하다.
12세기 유럽에서는 연옥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 ‘푸르가토리움(purgatorium)’이 등장하고 그
논리가 구체화되었다. 가톨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13세기에 적극적으로 퍼져나간 연옥 사상
은 공의회와 종교 심문에서 이단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14세기 작성된 단테의
《신곡》, 르네상스 시대의 성화, 조각 등에서도 연옥에 관한 수많은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이
처럼 중세부터 오늘날까지 연옥은 서양의 예술, 문학, 종교, 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
치고 있다.
연옥에 대한 상반된 입장
기독교 교리에서 저승은 천국과 지옥으로 나뉜다. 그러나 천국도 지옥도 아닌 제3의 세계인 연
옥을 받아들이는 문제는 종파마다 차이를 보이는데,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가 가장 크다.
연옥은 가톨릭의 필수 교리 중 하나이다. 이는 신교와 구교의 갈등이 심했던 16세기에 열린 트
리엔트 공의회(Council of Trient)의 ‘연옥에 관한 교령’을 통해 분명하게 공표되었다. 즉
연옥은 가톨릭이 종교 개혁이라는 위기의 돌파구를 모색하던 시기에 신교와는 다른 구교의 정
체성을 확보하고 내부체제와 교리를 정비하기 위해 사용한 주요 신앙 개념이었다.
이에 반해 개신교는 저승이 천국과 지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기독교의 이원론적 사고를 고수하
며 중간적 공간인 연옥을 거부한다. 이는 연옥 사상이 ‘개인의 공덕이 아닌 신앙을 통해 구원
을 받는다’는 신앙의인, ‘교권이나 전통이 아닌 성서만이 근본’이라는 성서원리, ‘믿는 자
각각이 신 앞에 직접 선다’는 만인사제주의와 같은 개신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연옥이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란 문제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입장은 크게
다르다. 개신교에서는 성서에 연옥이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반면 가톨릭
에서는 구약성서 《마카베오 하권(12:41~45)》의 ‘죽은 자들의 구원을 위한 기도’와 신약성서
의 《루가복음(16:19~26)》, 《고린도전서(3:10~15)》, 《마태오복음(12:31~32)》 등에 담긴
‘죄의 용서 받음’, ‘망자의 대기’, ‘불의 정화’의 비유적 해석을 근거로 이에 맞서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연옥 [purgatory, 煉獄] (두산백과)
[단테가 상상한 지옥]
[기독교인이 생각하는 사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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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연옥과 가장 흡사”
시집 ‘연옥의 봄’ 펴낸 황동규 시인
“나는 죽은 다음의 세상을 믿지 않아요. 하지만 있는 것처럼 생각해도 나쁘지는 않
아요. 연옥이 가장 인간다운 옥(獄)일 겁니다. 천국은 지루하지 않겠어요? 연옥답게
사는 거죠, 지옥답게 사는 게 아니고. 우리 삶에 주어진 조건 속에서 열심히, 최대
로 살려고 노력하는 게 제일 가치 있는 거죠.”
황동규(78) 시인이 최근 펴낸 열여섯번째 시집 ‘연옥의 봄’(문학과지성사)을 들고
그를 만나러 수원에 갔다. 그는 수원에서 개최된 전국시인대회에 참가해 기조강연을
하고 하룻밤 그곳에서 유숙한 터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얼굴은 맑고 여전히 강건한 인상이었다. 그는 “연옥은 단테가 지
옥에서 쓰다 쓰다/ 채 못다 쓴 기억들을 털어버린 곳”이라고 썼거니와 가장 이 세
상과 닮은 옥이 연옥이라고 했다.
천국은 “기대해도 좋고 기대하지 않아도 좋은 곳이어야 진짜 천국”이며 열반도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아야 열반이지 열반을 위한 열반은 아니다”고 했다. 그는
기독교 가톨릭 불교를 두루 존중하지만 어느 한 종교를 믿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누군가 이러한 태도를 두고 “선생님은 보험을 여러 군데 들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는데 그는 정작 “어느 한 종교가 나를 재판한다면 나야말로 아주 불리할 것”
이라고 했다. 이번 시집 표제작은 이렇게 흘러간다.
(이하생략)
-발췌출처: 세계일보 2016-11-28 20:54:12
http://www.segye.com/newsView/2016112800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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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한 말씀이 생각난다. 제사는 '귀신이 옆에 있는 것처럼' 지내라.
'있는 것 처럼'이란 말은 공자도 귀신을 믿지않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사후세계에 관심이 없던 그의 사상에 걸맞다. 종교에서 가르치는 말
대부분은 좋다. 사후세계의 교훈도 그럴듯하다. 그런 주장을 믿는 것처럼 해도
나쁘지는 않으리. 진짜 있다면 더욱 좋고.... -연우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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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을 알고 있나요? ]
연옥이란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데 우리는 어떻게 연옥을 알고 있죠?
그렇죠. 성경을 눈을 씻고 뒤져봐도 연옥이란 낱말은 안 나옵니다. 연옥이란 단어는
연구에 따르면 12세기에나 비로소 등장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연옥은, 저승이라는
사후 세계의 공간이 개념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생긴 것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공간적으로 하늘과 저 땅 속 깊이 자리 잡은 두 곳이 인간의 머리 안에 사
후 세계로 있었으나, 나중에는 그리스도께서 수난 받고 죽었다가 되살아나셨다는 사
실에서, 그분이 머무셨던 죽은 이들의 공간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문제제기가 생겨
났습니다. 그것이 제 3의 공간을 떠올리게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다녀오신 저승이 지옥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지옥에도 이미 구원을 위한
출구가 생겨난 셈인데, 그렇다면 지옥은 사실상 없는 것이 되는 겁니다.
지옥이 없다면 아주 행복하겠죠? (개인적으로 답해 보시길!)
그러나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지옥을 하느님의 빛으로부터 절대적이고 영원히 단절된
상태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내려가셨다가 사흘 만에 돌아오신 그 공
간은 지옥과는 다른 죽은 이들의 세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연옥이 있다는
단서입니다.
이렇게 등장한 연옥은 천국에 이르기 위해 영혼이 정화되어 다듬어지는 공간으로 여
겨져 왔습니다. 정화의 과정은 이미 이승에서 시작된다고도 할 수 있는데, 즉, 이승
에서 어려운 삶(병고, 가난 등)을 통해 영혼이 받아야 할 정화의 시간을 이미 보냈거
나, 기도, 자선 등의 공덕을 많이 쌓았거나 순교를 통해 신앙을 증거한 이들은 이미
살아있을 때, 정화의 단계를 거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니 죽음을 맞이하여 그들
의 영혼은 즉시 천사들에 이끌려 천국으로 향하게 되어 있지만, 천국으로 가기에는
아직 미흡하여 일정한 시간동안 영혼을 다듬어야 하는 이들에게는 정화의 시간이 필
요하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이리하여 성경에는 명시되지 있지 않았음에도, 마땅히 필요한 공간이 (인간의 이성적
추론을 통해) 생겨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옥이 있어야 한다는 또 다른 이유가 있
다면,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것이었습니다. 즉, 죽은 이들이 세상
마지막 날 결정적인 판결을 받을 텐데 이때까지 미결의 상태로 있는 영혼들에게 머물
공간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연옥은 공간적으로 지옥과 인접한 곳이자 생태환경도 지옥과 거의 다를 것 없는 열
악한 곳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미 느끼셨겠지만, 지옥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구원에 대한 희망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연옥은 그 기능상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영혼이 정화되는 단계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옥에서는 일단 희망을 잃지 않고 버티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연옥 영혼 중 가
장 버림받고 소외된 영혼이 있다고 신앙인들은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치면서 가장 버림받은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 상태의 영혼에게
전대사*를 받아 기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승에서 살아있는 신자들의 도움
을 받아 하루라도 빨리 천국에 이른 영혼들이 그냥 입을 닦겠습니까? 그 영혼은 자신
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산 자들을 위해 기도해 준다는 믿음이 우리 신앙 안에는 있습니
다. 이것이 ‘모든 성인의 통공’입니다. 천국에 이른 영혼들, 곧 성인들의 기도가 이
승과도 통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 이어지는 세계가 이분법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게 행복하지 않으신가요? 연
옥은 우리에게 고통 안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을 건네주는 공간으로 보입니다.
연옥은 하늘에 이르는 여정의 최종 단계입니다 (물론 천국 직항노선을 타는 분들도
계시지만). 지금의 삶이 고달프다면,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이미 연옥을 경험하고 있
는 것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영혼이 정화되고 있다고 이해해도 좋겠습니다.
*전대사: 우리는 고백성사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 받아야 하는 벌이 남아있는데 그것을 교회용어로는 ‘잠벌’이라고 합니다.
잠벌은 통회와 회개에 대한 내적인 태도를 행실로 드러내 보이는 것, 즉 보속행위를
통해 면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속을 면제해 주는 것을 ‘대사’라고 합니다.
대사에는 전대사(indulgentiae plenariae)와 한대사(indulgentiae partiales)가 있습
니다. 전대사는 죄인이 받아야 할 벌을 전부 없애주는 것이고, 한대사는 그 벌의 일부
를 없애는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전대사를 받아 가장 버림받은 영혼에게 양도
를 할 경우, 그 영혼은 모든 벌을 면제받고 천사들에 이끌려 하늘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박종인 신부 (요한) editor@catholicnews.co.kr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출처: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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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 [purgatory, 煉獄 (라틴)purgatorium ]
가톨릭 교리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아있는 동안 지은 죄를 씻고 천국으로 가기 위해 일
시적으로 머무른다고 믿는 장소이다.
가톨릭 교리에서 연옥은 천국으로 가기에는 자격이 부족하지만 지옥으로 갈 정도의 큰 죄를
짓지 않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머무르는 곳이다. 영혼들은 연옥에서 보내는 고통스러운 시
간을 통해 이승에서의 죄를 씻고 정화한다. 연옥이 정죄계(淨罪界, 깨끗함과 죄 사이의 경
계)나 정화소(淨化所, 깨끗해지는 장소)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화의 방법으로는 ‘정화하는 불(purgatorius ignis)’이 알려져 있는데, 이는 신약성서
《고린도전서》 3장에 나오는 ‘심판의 날에 내려질 불’에 근거하고 있다. 문화 인류학자들
은 불이 가지고 있는 신화적·고대적 이미지인 소멸, 소생, 불멸, 시련의 통과, 단련, 신의
상징, 물과 불의 대비와 환기(물세례vs.불세례), 자연의 4원소(물, 불, 흙, 공기) 등이 영
향을 끼쳤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연옥에서의 불이 물질적 의미인지 정신적 의미인지에 대
한 명확한 정의는 내려지지 않았다. 한편 연옥은 심판의 공간이 아닌 정화의 공간이므로 연
옥으로 들어간 영혼들은 지옥으로는 가지 않는다. 단, 죄의 크고 작음, 이승에서의 회개와 선
행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연옥에서 머무는 시간은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체류 기간을 가톨
릭에서는 신의 뜻이 작용한 신비로움이라고 정의한다.
연옥의 역사
저승과 이승 사이의 중간 단계에 대한 사고는 초기 기독교 시대 이전부터 동서양에 걸쳐 광범
위하게 나타난다. 고대 인도의 베다 시대 말기에는 이승에서의 공덕에 따라 망자들에게 주어
지는 3가지 길에 관한 믿음이 있었다. 이중에서 중간 길은 심판이 없고 윤회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연옥과 차이를 보이나 어둠과 빛 사이에 있는 연기로 싸인 공간이라 점에서는 유사점이
있다. 유대교의 스올(Sheol) 역시 지옥과 낙원 사이에 있는 공간으로 고통 받는 장소는 아니
지만 망자들이 대기하는 어두운 공간이라는 점에서 연옥과 유사하다.
12세기 유럽에서는 연옥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 ‘푸르가토리움(purgatorium)’이 등장하고 그
논리가 구체화되었다. 가톨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13세기에 적극적으로 퍼져나간 연옥 사상
은 공의회와 종교 심문에서 이단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14세기 작성된 단테의
《신곡》, 르네상스 시대의 성화, 조각 등에서도 연옥에 관한 수많은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이
처럼 중세부터 오늘날까지 연옥은 서양의 예술, 문학, 종교, 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
치고 있다.
연옥에 대한 상반된 입장
기독교 교리에서 저승은 천국과 지옥으로 나뉜다. 그러나 천국도 지옥도 아닌 제3의 세계인 연
옥을 받아들이는 문제는 종파마다 차이를 보이는데,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가 가장 크다.
연옥은 가톨릭의 필수 교리 중 하나이다. 이는 신교와 구교의 갈등이 심했던 16세기에 열린 트
리엔트 공의회(Council of Trient)의 ‘연옥에 관한 교령’을 통해 분명하게 공표되었다. 즉
연옥은 가톨릭이 종교 개혁이라는 위기의 돌파구를 모색하던 시기에 신교와는 다른 구교의 정
체성을 확보하고 내부체제와 교리를 정비하기 위해 사용한 주요 신앙 개념이었다.
이에 반해 개신교는 저승이 천국과 지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기독교의 이원론적 사고를 고수하
며 중간적 공간인 연옥을 거부한다. 이는 연옥 사상이 ‘개인의 공덕이 아닌 신앙을 통해 구원
을 받는다’는 신앙의인, ‘교권이나 전통이 아닌 성서만이 근본’이라는 성서원리, ‘믿는 자
각각이 신 앞에 직접 선다’는 만인사제주의와 같은 개신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연옥이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란 문제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입장은 크게
다르다. 개신교에서는 성서에 연옥이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반면 가톨릭
에서는 구약성서 《마카베오 하권(12:41~45)》의 ‘죽은 자들의 구원을 위한 기도’와 신약성서
의 《루가복음(16:19~26)》, 《고린도전서(3:10~15)》, 《마태오복음(12:31~32)》 등에 담긴
‘죄의 용서 받음’, ‘망자의 대기’, ‘불의 정화’의 비유적 해석을 근거로 이에 맞서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연옥 [purgatory, 煉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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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연옥과 가장 흡사”
시집 ‘연옥의 봄’ 펴낸 황동규 시인
“나는 죽은 다음의 세상을 믿지 않아요. 하지만 있는 것처럼 생각해도 나쁘지는 않
아요. 연옥이 가장 인간다운 옥(獄)일 겁니다. 천국은 지루하지 않겠어요? 연옥답게
사는 거죠, 지옥답게 사는 게 아니고. 우리 삶에 주어진 조건 속에서 열심히, 최대
로 살려고 노력하는 게 제일 가치 있는 거죠.”
황동규(78) 시인이 최근 펴낸 열여섯번째 시집 ‘연옥의 봄’(문학과지성사)을 들고
그를 만나러 수원에 갔다. 그는 수원에서 개최된 전국시인대회에 참가해 기조강연을
하고 하룻밤 그곳에서 유숙한 터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얼굴은 맑고 여전히 강건한 인상이었다. 그는 “연옥은 단테가 지
옥에서 쓰다 쓰다/ 채 못다 쓴 기억들을 털어버린 곳”이라고 썼거니와 가장 이 세
상과 닮은 옥이 연옥이라고 했다.
천국은 “기대해도 좋고 기대하지 않아도 좋은 곳이어야 진짜 천국”이며 열반도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아야 열반이지 열반을 위한 열반은 아니다”고 했다. 그는
기독교 가톨릭 불교를 두루 존중하지만 어느 한 종교를 믿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누군가 이러한 태도를 두고 “선생님은 보험을 여러 군데 들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는데 그는 정작 “어느 한 종교가 나를 재판한다면 나야말로 아주 불리할 것”
이라고 했다. 이번 시집 표제작은 이렇게 흘러간다.
(이하생략)
-발췌출처: 세계일보 2016-11-28 20:54:12
http://www.segye.com/newsView/2016112800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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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한 말씀이 생각난다. 제사는 '귀신이 옆에 있는 것처럼' 지내라.
'있는 것 처럼'이란 말은 공자도 귀신을 믿지않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사후세계에 관심이 없던 그의 사상에 걸맞다. 종교에서 가르치는 말
대부분은 좋다. 사후세계의 교훈도 그럴듯하다. 그런 주장을 믿는 것처럼 해도
나쁘지는 않으리. 진짜 있다면 더욱 좋고.... -연우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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