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7.

[예화] 후원자






[예화] 후원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돌아온 한 청년이 1919년 미국
시카고의 작은 아파트에 세를 들었다. 그가 그곳으로 이사한 것은 유명한
작가 셔우드 앤더슨의 집과 가깝기 때문이었다.

당시 앤더슨은 (오하이오 위네스버그)라는 소설을 써서 격찬을 받고  있었
으며, 젊은 작가들을 잘 후원해 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청년과 작가는 급속도로 가까워졌으며, 두 해 동안 거의 날마다 함께 시
간을 보냈다. 그들은 함께 밥을 먹고, 긴 산책을 했으며, 밤 늦게까지 소설
작법에 대해 토론했다. 청년은 종종 자신이 쓴 작품을 앤더슨에게 가져갔으
며, 이 노련한 작가는 냉정할 정도로 솔직한 비평을 가했다.
 
하지만 젊은 작가는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매번 그는 선배 작가의 비
평을  귀담아 듣고, 조심스럽게 메모를 하고, 그런 다음 타자기로 돌아가 자
신의 작품을 고쳐 썼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을 방어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훗
날 그가 고백한  대로 그는 셔우드 앤더슨을 만나기 전까지는 글을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 젊은 문하생에게 앤더슨이 해준 가장 큰 도움은 그를 미국 문단에 소개한
 일이었다. 오래지 않아 젊은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1926년에
그는 첫 번째 소설을 발표했으며, 문단 안팎에서 놀라운 찬사를 받았다. 소설
의  제목은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였고,  작가의 이름은 어네스트 헤밍웨
이였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헤밍웨이가 시카고를  떠난 뛰 앤더슨은 뉴
올리언즈로 이사했다. 거기서 그는 또다른 문학도를 만났다.자신의 문장력을
개선하려는 지칠  줄 모르는 정열을 가진 시인이었다.

앤더슨은 헤밍웨이와 했던 것과 똑같은 과정을 그 젊은  시인과 함께 해나갔다.
쓰고, 비평하고, 토론하고, 격려하고, 그리고 언제나 더 많은 작품을 쓰게 했다.
앤더슨은 젊은 친구에게 자신의 소설 작품들을 주면서  그것들을 정독하고,
단어와 주제와  이야기 전개를 배우게 했다.

1년 뒤 앤더슨의 도움으로 이 문학도는 첫  번째 소설(군인 월급)을 출간했다.
3년 뒤, 눈부신 재능을 가진 이 신인 작가 윌리엄 포크너는 (소리와 분노)를
출간했으며 금방 미국 문단의 대표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젊은 작가들을 후원하는 앤더슨의 역할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에서 그는 극작가 토머스 울프, 그리고 존 스타인벡이라는 이름의 신인 작가와
함께 동일한 작업을 하면서 몇 년을 보냈다.
 
앤더슨의 문하생들 중에서 모두 합해, 세 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와 네 명의
퓰리처 상 수상자가 나왔다. 유명한 문예 비평가 말콤  코울리는 앤더슨이야말
로 '다음 세대의 문장력과 세계관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 그 시대의 유일한 작
가'라고 평했다.
 
무엇이 앤더슨으로 하여금 자신의 시간과 정열을 쏟아 젊은 작가들을 돕게 만
들었는가?  한 가지 이유는 앤더슨 자신도 우대한 선배 작가 테오드르 드라이
저 밑에서 문장력을  쌓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는 또 시인이자 전기 작가 칼
샌드버그와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칩 맥그레거-

- 씨뿌리는 사람의 씨앗 - 브라이언 카바노프  류시화 역/열림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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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운 풍토를 가진 미국이다. 물론 다그렇지는 않겠지만, 여건을
마련해 준다는 것은 진정한 작가가 아니고서는 어림없는 일....
나도 누군가의 후원자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우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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