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
[예화] 자살 일기
[예화] 자살 일기
기독교 윤리에서 자살은 타살(他殺)과 맞먹는 범죄였다.
유럽의 중-근세사회에서 자살자는 살인자와 똑같은 죄목으로 다루어,
그 시체를 말에 매어 끌고 다니며 구경시켰고, 재산은 모두 국고에 귀
속시켰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는 목을 매어 자살하려다가 미수한 사람을
상처가 낫길 기다렸다가 교수형에 처하고 있다.
영국에서 자살을 범죄로 다루지 않게 된 것은 겨우 1961년의 일이었
다. 법이 굳이 규제하지 않더라도 서양에 있어 자살자를 비겁한 인생
의 패배자로 매도하는 풍조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한데 지금은 고독에 못이겨 자살을 염원하고 있는 유럽 사람이 적지
않아 10명에 한 명 꼴이나 된다 하니 놀랍다.
단식 45일 동안 최후까지 일기를 써가며 죽어간 파리의 저명한 여류
모델 피숑의 자살 일기가 작금 공개되면서 이 고독 자살병은 유럽 사
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는 것 같다. 그 일기를 간추려보자.
-심장이 텅 빈 것 같다. 한데 목숨이 이다지 끈질긴가,
모질다. (단식 17일째 일기)
-심장이 여전히 뛰고 있다. 지독하다. 수프 한 그릇을
얻을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아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 더러운 세상의 유혹에 저주있으라. (단식 32일째)
-소금통 속에서 내장을 모두 토해낸 달팽이만 같다.
한데도 심장이 멎을 생각을 않고 있다. (단식 36일째)
-정말 죽기가 이렇게 힘드는 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죽음을 죽고 있다.
그보다 두려운 것이 고독이다. (39일째).
-이제 몸을 까딱할 수 없다. 허리가 아프다. (45일째).
이렇게 고통을 겪어가면서 죽고 싶고 죽어가야 할 만큼 고독은 무서운 것
이다....
여류 작가 보브와르 작 `사람은 모두 죽는다'의 주인공 포스카는 불사약
을 먹고 6백 년 동안을 산다.
가족이나 벗이나 모든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 당한 채 영원히 죽지 못하는
가혹한 운명과 고독을 소름 끼치게 묘사하고 있다.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없는-그래서 아무 데도 없는 나를 산다는 이 죽지
못하는 포스카에 비기면 그래도 고독을 등지고 죽을 수 있었던 피숑이
더 행복한지 모른다. 서구 개인주의(Me-ism) 사회의 끝이 보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웃과 정이며, 연(緣)을 이어가며 탈고독 하는 한국의 우리주의
(We-ism)가 얼마나 싱그러운가 !
-시사예화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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