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음악] 행복. 행복에대하여 - Arcangelo Corelli -La Follia
[유튜브음악]
01
행복은 무엇보다 건강 속에 있다. - G. W. 커티스
02
행복이란 우리 집 화롯가에서 성장한다. 그것은 남의 집 뜰에서 따와서는 안 된다.
- 제롤드
03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마음의 평온함을 뜻한다. - 시세로
04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이라 불리는 상품은 없다. - 헨리 벤 다이크
05 행복의 원칙 세 가지
어떤 일을 할 것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
- 칸트
06
행복은 입맞춤과 같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어야만 한다.
- 디오도어 루빈
07
행복의 비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앤드류 매튜스
08
행복이란 타인의 불행을 바라봄으로써 생기는 쾌감이다.
-비어스
09
행복을 즐겨야 할 시간은 지금이다. 행복을 즐겨야 할 장소는 여기다.
- 로버트 인젠솔
10
인간은 행복해지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 A. 링컨
11
내일이면 나도 행복해진다!
그러나, 행복에는 내일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어제라는 것도 없습니다.
행복은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니와
미래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행복에는 현재만 있습니다.
그것도 오늘이 아니라 다만 순간적인 것입니다.
- 이반 투르게네프
12
가장 큰 행복이란, 사랑하고 그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다.
- 앙드레 지드
13
사람의 행복은 얼마나 많은 소유물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그것을 어떻게 잘 즐기느냐에 달려 있다
- 영국 작가 찰스H.스파존
14
행복은 여정이지, 목적지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라
- 정치가 로이M.굿맨
15 소유와 행복의 관계
미국 갤럽연구소가 18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행복도 조사를 했습니다.
조사결과 ‘아이슬란드’인들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추운 북대서양에 고립되어 사나운 바다와 싸워야 하고,
겨울에는 밤이 20시간씩 계속되며,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인구 30만
여 명에 불과한 나라의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아이슬란드 대학교의 사회학자 소르린드 교수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
합니다.
“행복의 비결은 생활의 안락함이 아니라 오히려 불편함에 있다고 믿고 있습니
다. 불편함 속에서도 아이슬란드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환경을 즐길 줄 아는 것
입니다.”
-류중현(지하철사랑의편지 운영자)
17 행복 (幸福) -네이버 국어사전
1. 복된 좋은 운수. happiness, bliss, happy, blissful
2.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18 幸福追求權 (행복추구권)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음.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 이는 제5공화국 시절 쓰이게 된 내용으로, 헌법에
'행복추구권'을 보장한 국가는 대한민국과 일본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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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긍정심리학에 따르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몰입),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되어야 함(사회적 지지)을 이야기한다.
물론 최소한의 경제적인 조건이 필요하지만, 먹고 사는 수준을 넘어서면 대
체로 얼마나 부유하냐는 행복의 수준을 높이는 절대적 조건은 아니라고 한다.
-나무위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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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칸젤로 코렐리(Arcangelo Corelli, 1653년 2월 17일 ~ 1713년 1월 8일)
이탈리아의 작곡가.
북이탈리아의 푸지냐노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파엔차에서 한 신부로부터 음악의 기초를
배우고, 13세 때부터 당시 기악의 중심지였던 볼로냐에 가서 바이올린을 배웠다.
코렐리는 이미 17세로 국제적으로도 유명하던 볼로냐의 아카데미아 필하모니카의 회원이
되었다. 그 뒤 프랑스로 가서 륄리를 만났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그는 1675년에는 로마에 있는 성당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있었으며 1679년에는 로마에서
파스퀴니(1637-1710)의 오페라를 지휘하였다. 같은 해 독일을 여행했다고도 하지만 이것
도 불명확하다.
1681년에 당시 로마에 거주하고 있던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에게 바친 작품 1의 트리
오 소나타집을 출판하였다. 1689년에 후원자인 크리스티나 여왕이 승하한 뒤 코렐리는 추
기경인 오토보니의 저택에서 악장과 바이올린 주자를 겸한 지위에 올랐고 그 뒤로는 추기
경의 후대를 받아 마음놓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생전에 작품1에서 작품4까지 각각 12곡씩의 트리오 소나타집(集)과 작품5의 12곡의
바이올린 소나타집을 출판했고 사후 작품6이라 하여 역시 12곡의 콘체르토 그로소(합주
협주곡)가 출판되었다.
이탈리아 작곡가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오페라나 칸타타의 작곡에 큰 비중을 두었던 당시
로서는 코렐리의 작품구성은 진귀하다.
그는 소년시절을 보낸 볼로냐의 음악가들에 의하여 개척되고 있던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한 기악, 트리오 소나타, 콘체르토 그로소의 영역에서 수는 많지 않으나 한곡 한곡이 불멸
의 금자탑을 이룩하였다. 코렐리는 이러한 곡들의 내적 구성 면에서 교회 소나타와 실내
소나타 양쪽의 원리를 근거로 하고 있다.
그의 음악은 현악기의 높은 포지션이나 중음주법(重音奏法) 등의 어려운 기교를 지양하여
기술을 완전히 내적 표현에 종속시키면서 균형잡힌 고아한 서정에 넘치는 양식을 만들어
놓았다.
코렐리는 또한 바이올린의 교사로서도 뛰어난 소미스(1686-1763), 제미니아니(1687-1762),
로카텔리(1695-1764) 등의 뛰어난 제자를 통해 그 가르침은 유럽에 퍼졌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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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노래, 코렐리 ‘라 폴리아’
-이채훈 MBC 해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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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폴리아’는 포르투갈의 민속 무곡으로, 장중하고 애절한 주제에 이어 23개의 변주곡이 펼쳐
진다. 열정적이면서 기품을 잃지 않는 선율들이 가슴을 적신다. 원래 바이올린 독주곡이지만,
프란스 브뤼헨의 리코더앞으로 부는 플루트, 불어로 flute a bec 연주가 일품이다.
그의 호흡 하나하나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대상도 알 수 없는 원초적 그리움을 불러낸다.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은 복잡한 조바꿈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한 조성으로 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모음곡과 변주곡을 즐겨 사용했다.
유럽 여러 나라의 춤곡(독일의 알레망드, 프랑스의 쿠랑트, 스페인의 사라방드, 영국의 지그 등)
을 엮은 모음곡, 그리고 주제의 리듬과 선율에 변화를 주어서 발전시키는 변주곡은 바로크 시대의
중요한 음악 장르가 됐다.
아르칸젤로 코렐리(1653~1713)의 <라 폴리아>는 바흐 <샤콘느>, 헨델 <파사칼리아>와 더불어
바로크 시대 변주곡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비발디와 살리에리도 <라 폴리아> 변주곡을 썼지만
코렐리의 이 작품이 가장 널리 사랑받고 있다.
코렐리는 바로크 바이올린 음악의 기초를 다진 사람이다. 그의 바이올린 연주는 음색이 우아하고,
표정이 풍부하고, 운궁運弓이 다채로웠다고 한다. <라 폴리아> 변주곡은 1700년에 출판된 바이
올린 소나타 Op.5 중 마지막 곡인 12번이었다. 이 곡을 연습하는 학생의 절반 정도가 아예 바이올
린을 포기해 버린다고 하니, 바이올린 전공자들에게 큰 시련을 주는 곡인가보다. 이 어려운 작품
을 프란스 브뤼헨이 리코더로 연주한 게 어느 바이올린 연주보다 더 애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바이올린 전공자들이 굴욕을 느낄까봐 걱정되는 지점이다.
300여 년 전에 나온 이 음악이 오늘날 우리 마음에 이렇게 생생하게 울린다는 게 신기하다.
옛 사람이나 요즘 사람이나 사랑하고 그리워하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일까? 한국 핏줄을 갖고 미
국에서 자란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도 이 곡을 아주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는 남다른 어린 시절을 겪었기에 다른 이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음악가다.
용재 오닐이 블로그에 남긴 말.
“이 곡을 들으면 영혼에 쓰나미가 밀려오는 느낌을 받아요.
삶의 모든 것을 가슴으로 떠안고 가는 모습이랄까,
슬픈데 내색하지 않고, 그것조차 동반자인 듯 말이죠.”
참여사회 2015년 1월호(통권 218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도 코렐리 <라 폴리아>를 사랑한다.
용재 오닐의 비올라 연주는 수수한 음색이지만 뜨거운 열정이 가득하다. 비올라는 악기가 크기
때문에 이 곡을 비올라로 하는 건 바이올린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바이올린
전공자들에게 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코렐리는 소나타뿐 아니라 협주곡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크리스마스> 협주곡이 포
함된 Op.6, 12곡의 합주협주곡은 바흐와 헨델에게 직접 영향을 미쳤다. 그는 매우 검소하고 부지
런한 사람이었다. 헨델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취미는 돈이 안 드는 그림 감상 뿐”이었다.
그는 귀족들에게 늘 공손했다.
어느 날, 그가 연주하는데 한 손님이 옆 사람과 잡담을 시작했다.
그러자 코렐리는 바이올린을 놓고 객석으로 가서 앉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제 연주가 저 분들의 대화를 방해하면 안 되니까요”라고 대답했다는 것.
‘갑’의 폭언에 무수한 ‘을’들이 상처 입는 요즘, 코렐리의 태도는 지혜롭게 보이기도 한다.
이채훈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
-발췌출처: 참여연대
http://www.peoplepower21.org/Magazine/123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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