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6.
[처세예화] 랑퀘와 우유배달소년
[처세예화] 랑퀘와 우유배달소년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Ranke, 1795-1886)가 연구에 몰두하다
피곤한 눈을 좀 식힐까 하여 산책을 나갔습니다.
랑케는 동네 골목에서 한 소년이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유배달을 하는 소년이었는데 실수로 넘어져 우유병을 통째로
깨뜨린 것이었습니다.
소년은 깨진 우유병보다도 그것을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 더 걱
정되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랑케는 자신이 대신 배상해주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얘야 염려
말거라. 지금은 산책하는 중이라 내가 돈을 안 가지고 왔구나.
내일 이 시간에 여기로 나오면 내가 대신 우유값을 배상해 주마
하고 소년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려 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는 한 독지가가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랑케를 만나본 후에 역사학 연구비로 거액을 후원하고 싶으니 내
일 당장 만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랑케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지만 순간 소년과 한 약속이 떠올랐
습니다.
그 후원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짐을 꾸려 바로
먼길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소년과의 약속을 지킬 수가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랑케는 망설임 없이 편지를 썼습니다. 대단히 고마운 일이지만
나는 그 시간에 다른 약속이 있어 당신과 만날 수 없습니다.
랑케는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 작고 가난한 한 영혼과의 약속을 지
켰습니다.
그에게는 역사학 연구보다 한 사람이 더 소중했던 것입니다.
랑케의 편지를 받은 독지가는 순간 기분이 나빠 화를 냈지만
전후 사정을 알게 된 후 랑케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한번도 만나본 일이 없는 그에게 처음 제안했던
액수보다 몇 배나 더 많은 후원금을 보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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